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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31 01:25:09

라 부아쟁

<colbgcolor=#D1D6DA><colcolor=#000000> 라 부아쟁
La Voisin
파일:La Voisin.jpg
이름 카트린 몽부아쟁[1]
(Catherine Montvoisin)
출생 1640년
프랑스 왕국
사망 1680년 2월 22일 (향년 39세 또는 40세)
프랑스 왕국 파리
직업 점술가, 마녀, 독살범
배우자 앙투안 몽부아쟁
자녀 마르그리트
1. 개요2. 활동3. 독약 사건4.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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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7세기 프랑스 왕국의 인물. 루이 14세 시기 가장 큰 스캔들 중 하나였던 독약 사건의 핵심 인물이다.

2. 활동

초기 생애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라 부아쟁의 본명은 카트린 데예(Catherine Deshayes)로, 파리에서 보석상을 하던 앙투안 몽부아쟁과 결혼했다. 남편의 사업이 망하자 점을 보거나 아이를 지우고 싶어하는 여성들의 임신 중절을 도우며 돈을 벌었다. 어릴 때부터 점술, 약학, 마술 등에 관심이 많았던 라 부아쟁은 그쪽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최음제, 사랑의 묘약, 독약 등을 판매했으며, 흑미사를 올렸다. 사랑을 얻고 싶어하거나 누군가를 저주하고 싶어하는 자들이 라 부아쟁을 찾으면 성당에서 쫓겨난 신부들의 주관 아래 비밀의 흑미사가 이루어졌다.

라 부아쟁은 단순히 순진한 아낙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사업을 고급화시켰다. 금실을 수놓은 고급 벨벳 로브를 뒤집어쓰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했으며, 화려한 살롱에서 손님을 접대하고 흑미사를 쇼처럼 연출해 고객의 관심을 모았다. 점차 프랑스의 고위인사들이 라 부아쟁의 고객이 되었다. 라 부아쟁은 상류 사회에서 중요한 인물이 되었는데, 귀족 여성이 딸의 대모가 되어주기도 했다.

3. 독약 사건

1677년 2월 마그들렌 드 라 그랑주라는 여성이 독살과 문서 위조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랑주는 파리 경찰서장 니콜라 가브리엘 드 라 레니에게 다른 중요한 독살 범죄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다고 하며 사법거래를 시도했다. 당시 프랑스는 독살 의혹을 받은 오를레앙 공작부인 앙리에트의 의문의 죽음과 귀족 여성이 재산을 노리고 아버지와 형제들을 독살한 브랭빌리에 사건으로 흉흉한 분위기였다. 루이 14세의 명을 받은 레니는 그랑주에게서 정보를 얻어 독살 의혹이 있는 자들을 잡아들였다.[2] 그중에는 라 부아쟁의 라이벌이었던 라 보세라는 여성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점술가이자 독을 다루던 라 보세는 체포된 후 라 부아쟁의 범행에 대해 진술했다. 수사관들은 즉시 라 부아쟁의 집을 수사했고, 그곳에서 약물 제조실과 흑미사에 사용되는 불길한 물건들, 그리고 정원에 묻혀있는 약 2,500구에 달하는 갓난아이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1679년 3월 12일 라 부아쟁은 동료 점술가를 만나러 가던 길에 체포되었다. 이 사건을 두고 위원회가 소집되었으며, 대대적인 수사가 진행되었다.

독약 사건(Affaire des Poisons)으로 불린 이 사건은 프랑스 상류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수많은 귀족들이 조사를 받거나 체포당했다. 연루된 인물들 중에는 명장으로 이름 난 뤽상부르 공작이나 프랑스의 재상 쥘 마자랭의 조카인 수아송 백작부인 올랭프 만치니, 부용 공작부인 마리 안 만치니 같은 유명인사들도 있었다. 이 사건으로 104명이 유죄판결을 받았으며, 그 중에서 36명이 처형당했다. 1680년 2월 22일, 파리의 그레브 광장에서 라 부아쟁은 화형에 처해졌다.

라 부아쟁의 단골 고객 중에는 루이 14세의 정부 몽테스팡 후작부인도 있었다. 그러나 라 부아쟁은 마지막까지 몽테스팡에 대한 말을 하지 않았는데, 이는 몽테스팡 부인의 의뢰 중에 국왕에게 약을 먹이고 주술을 거는 행위가 있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라 부아쟁의 딸 마르그리트 몽부아쟁의 고발로 몽테스팡 부인이 라 부아쟁의 고객이었음이 밝혀졌다. 몽테스팡 부인은 왕의 사랑을 잃어가자 몸에 왕의 땀을 바르고 갓난아이의 피를 마시는 주술 의식을 벌였으며, 두꺼비 점액, 박쥐의 피, 월경혈 등 기이한 재료들이 들어간 묘약을 음식에 섞어 왕에게 먹였다고 한다. 몽테스팡 부인은 가까스로 처벌은 면했으나 충격을 받은 루이 14세의 사랑을 영원히 잃게 되었다.

4. 대중매체에서



[1] 결혼 전 이름은 카트린 데예 [2] 그러나 그랑주는 정보만 주고 공범들과 함께 처형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