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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23 15:30:41

드미트리 돈스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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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f0807><colcolor=#ffcc21> 모스크바 대공국 제6대 대공
드미트리 돈스코이
Дми́трий Ива́нович Донско́й
파일:Dmitri_Donskoy.jpg
출생 1350년 10월 12일
모스크바 대공국 모스크바
사망 1389년 5월 19일 (향년 38세)
모스크바 대공국 모스크바
재위 제6대 모스크바 대공
1359년 11월 13일 ~ 1389년 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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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9f0807><colcolor=#fecd21> 이름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돈스코이
(Дмитрий Иванович Донской)
배우자 예브도키야 드미트리예브나
자녀 바실리 1세, 유리, 안드레이, 표트르 등
아버지 이반 2세
어머니 알렉산드라 바실리예브나 벨야미노바
종교 정교회
영묘 아르항겔스키 대성당
왕조 류리크 왕조 }}}}}}}}}

1. 개요2. 생애3. 업적4. 기타5. 창작물

[clearfix]

1. 개요

모스크바 대공국 벨리키 크냐즈. 이반 1세의 손자. 이반 2세의 뒤를 이어 모스크바 대공의 자리에 올랐고, 사후에 바실리 1세에게 물려 주었다.

2. 생애

1360년대와 1370년대 초 리투아니아-트베리 연합국의 공격을 막아내고 몽골에 대한 연례 조공을 거부하였다. 이후 1378년 보쥐강 근처에 있던 몽골군과의 소규모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 이에 분노한 킵차크 칸국의 실력자 마마이[1]는 1380년 리투아니아 대공국 요가일라와 연합해 대규모 군사를 일으켜 모스크바에 쳐들어왔다.

하지만 1380년 9월 8일, 돈강 상류에 있는 쿨리코보에서 펼쳐진 전투에서 마마이를 관광보내면서 승승장구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드미트리 대공은 "돈강의 드미트리"라는 뜻을 가진 드미트리 돈스코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모스크바 군 역시 전력의 반 이상을 잃는 등 큰 타격을 입긴 했지만 러시아군이 처음으로 몽골 대군을 궤멸시킨 전투로 후대에 높이 평가되었다. 이 전투에서의 승리로 러시아는 몽골의 기나긴 지배에서 벗어나는 듯 했으나....

마마이를 몰아내고[2] 킵차크 칸국의 칸이 된 토크타미쉬 칸에 의해 이 모든 상황이 뒤집힌다. 토크타미쉬는 티무르의 라이벌로 불릴만큼 걸출한 군사적 능력을 갖춘 인물이었고, 결국 라이벌이였던 다른 루스계 공국들과 연합한 토크타미쉬에 의해 1382년에는 역으로 모스크바가 털리면서 러시아의 독립은 물 건너갔다.

드미트리 돈스코이는 모스크바 대공 자리와 목숨만은 가까스로 유지했으나 그의 아들은 토크타미쉬에 의해 인질이 되었고 동시에 패전의 대가로 엄청난 배상금을 물게 되었다. 동시에 전쟁으로 황폐화된 모스크바를 지켜봐야했던 건 덤. 결국 러시아가 몽골의 지배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건 모스크바가 털리고 100년이 지난 이반 3세 시절이 되어서였다.

3. 업적

그는 1367년, 모스크바 크렘린을 완공하였다. 그 크렘린은 이후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2차례 공성전을 모스크바가 방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4. 기타

5. 창작물


[1] 마마이 '칸'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은데, 정작 그는 칸의 자리에까지 등극하진 못했다. [2] 이 때 마마이는 토크타미쉬와의 세력 다툼에서 패배해 크림반도로 도망쳤으나 그 곳에서 뜻밖의 죽음을 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