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도쿠히메 徳姫1559년 11월 11일 ~ 1636년 2월 16일
도쿠히메는 오다 노부나가의 장녀이자 생모는 이코마 키츠노[1]이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장남 마츠다이라 노부야스의 정실부인이다.
2. 생애
1567년에 9살의 나이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장남, 마츠다이라 노부야스와 혼인하였고 1576년, 1577년에 두 딸을 낳았으나 아들을 낳지 못했다. 때문에 적자가 태어나지 않는 것을 걱정한 시어머니 쓰키야마도노가 노부야스에게 전 다케다 가 가신의 딸을 측실로 맞이하도록 하였고, 이 때부터 쓰키야마도노와 도쿠히메의 불화가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2]노부야스와도 불화가 있어 이에야스가 노부야스, 도쿠히메의 불화를 중재하기 위해 오카자키(岡崎)에 방문하였다는 기록까지 있다. 그 즈음, 노부나가도 오카자키에 온 것이 기록되어 있어, 노부나가도 딸의 부부사이를 걱정해서 방문한 가능성도 추측할 수 있다. 일시적으로 부부사이가 악화된 적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1579년에 도쿠히메는 아버지 노부나가에게, 쓰키야마도노와 노부야스의 죄상을 호소하는 12개의 조항을 소장을 써서 보냈다. 이 것을 읽은 노부나가는, 아즈치 성에 방문하고 있던 이에야스의 가신 사카이 타다츠구를 통해 노부야스의 할복을 명했다. 쓰키야마도노는 8월 29일에 고야부 촌에서 살해되었고, 노부야스는 9월 15일에 후타마타 성에서 할복했다. 하지만, 이 12개 조항은 후에 가필, 수정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진다. 사건의 발단이 된 도쿠히메 자신이 노부야스 건에 대해서 해명하기 위해 아즈치에 있는 노부나가를 만나러 가겠다고 이에야스에게 부탁하는 등 노부야스 할복 사건에 관해서는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많고, 최근에는 이에야스와 노부야스의 대립이 원인이라는 설도 나오고 있다.
그 후, 도쿠히메는 1580년 두 딸을 남겨 둔채 오카자키 성을 나와, 아버지 노부나가가 아닌 오빠 오다 노부타다에게 돌아가게 된다. 1582년에 일어난 혼노지의 변에서는 아버지와 오빠를 잃게 되고 둘째 오빠인 오다 노부카츠에게 보호되지만 코마키 나가쿠테 전투[3] 시기에 인질로써 교토에 살게 되었다.
하지만 1590년에는 노부카츠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영지를 이동하게 되면서,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오와리의 작은 절로 이동하여 살게 된다. 세키가하라 전투 후에는 오와리의 기요스 성 성주가 된 이에야스의 4남 마츠다이라 타다요시로부터 1,761석의 영토를 받게 된다. 그 후는 교토에 은거 생활을 하였다. 1636년에 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