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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네이션즈/추가 정보/월드워 전당(전쟁 장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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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피켈하우베2. 철모
2.1. 브로디 철모2.2. 존 레오폴드 브로디의 철모
3. 방탄복
3.1. 부르스터 방탄복3.2. 카지미르 제글렌의 부르스터 방탄복
4. 케피 군모5. 마스크
5.1. 스플래터 마스크5.2. 존 모나쉬 경의 스플래터 마스크

1. 피켈하우베

Pickelhaube

1.1. 펠트 피켈하우베

Felt Pickelhaube
피켈하우베는 뿔이 있는 군사용 투구로 전 세계의 많은 부대에서 사용했지만 프로이센군 및 독일군과 가장 관련이 깊습니다. 다수의 디자인이 있었지만 커다란 금속 뿔이 위에 달린 가죽 투구가 가장 흔했습니다. 1차 세계 대전 중 가죽 비축량이 줄어들고 재료를 조달하기 비싸지면서 독일은 펠트와 종이로 더 낮은 품질의 버젼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의 피켈하우베는 많은 군인들이 의식용 유니폼의 일부로 착용합니다.
The Pickelhaube is a military spiked hat or helmet that, while used by many armies throughout the world, is mostly associated with the Prussian and German militaries. Though there are many designs, the most common one was made from hardened leather with a large metal spike on top. During World War I, when leather stockpiles ran low and materials became more expensive to procure, Germany started making lower quality versions out of felt and paper. Today’s Pickelhauben are worn as part of ceremonial dress uniforms by many militaries.

1.2. 카이저 빌헬름 2세의 피켈하우베

Kaiser Wilhelm II's Pickelhaube
빌헬름 2세는 독일의 카이저로서 30년을 통치했으며, 이 직함을 유지한 최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인내심이 없는 것과 독일 제국의 공격적 확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빌헬름 2세는 그의 동료들과 상의하지 않고 충동적으로 말을 하는 경향 때문에 그의 통치에 관해 논란이 많았습니다. 여러 스캔들과 사직 요구에 직면한 상태에서 1차 세계 대전에 독일이 패하게 되면서 그의 통치력은 치명타를 입었습니다.

피켈하우베는 뿔이 있는 군사용 투구로 전 세계의 많은 부대에서 사용했지만 프로이센군 및 독일군과 가장 관련이 깊습니다. 다수의 디자인이 있었지만 커다란 금속 뿔이 위에 달린 가죽 투구가 가장 흔했습니다. 1차 세계 대전 중 가죽 비축량이 줄어들고 재료를 조달하기 비싸지면서 독일은 펠트와 종이로 더 낮은 품질의 버젼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의 피켈하우베는 많은 군인들이 의식용 유니폼의 일부로 착용합니다.
Wilhelm II reigned for 30 years as the Kaiser of Germany and was the last to hold that title. He was well known for his impatience and for his aggressive expansion of the German Empire. Wilhelm II’s reign was rife with controversy due to his tendency to make impulsive statements without consulting his associates. After facing numerous scandals and calls for his abdication, the final blow to his reign was Germany’s defeat in World War I. Wilhelm II was forced to give up the throne and flee to the Netherlands where he lived the rest of his life in exile.

The Pickelhaube is a military spiked hat or helmet that, while used by many armies throughout the world, is mostly associated with the Prussian and German militaries. Though there are many designs, the most common one was made from hardened leather with a large metal spike on top. During World War I, when leather stockpiles ran low and materials became more expensive to procure, Germany started making lower quality versions out of felt and paper. Today’s Pickelhauben are worn as part of ceremonial dress uniforms by many militaries.

2. 철모

Helmet

2.1. 브로디 철모

Brodie Helmet
Mk. I 영국 투구와 M1917 미국 투구를 최초로 설계할 당시 브로디 철모의 디자인이 사용됐습니다. 세계 전쟁 기간 동안 많은 초기의 투구 스타일과 비교해 볼 때 브로디 철모는 유탄과 총격에 대해 적절한 보호를 제공하는 것으로 입증되었습니다. 또한, 한 장의 강철 시트로 제작되어서 튼튼하고 견고했을 뿐 아니라 제작 비용도 저렴했습니다.
The Brodie helmet was the original design for the Mark I British Helmet and the M1917 U.S. Helmet. Compared to many early styles of helmets during World War, the Brodie helmet had proven to give adequate protection against modern shrapnel and gunfire. It was also crafted from a single sheet of steel, which meant that it was not only strong and solid but also cheap to manufacture.

2.2. 존 레오폴드 브로디의 철모

John Leopold Brodie's Helmet
1차 세계 대전 통계에 따르면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의 병사들이 일종의 머리 부상을 입었습니다. 영국인들은 새로운 프랑스 디자인의 강철모를 평가했으나 생산 비용에 비해 충분한 보호를 해주지 못한다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존 레오폴드 브로디는 브로디 철모를 만들어 특허를 낸 발명가이었습니다. 브로디 철모는 머리 위로 날아오는 유탄에 특히 유용한 것으로 입증된 충격 흡수를 위한 패딩이 덧대져서 특별히 튼튼했습니다.

Mk. I 영국 투구와 M1917 미국 투구를 최초로 설계할 당시 브로디 철모의 디자인이 사용됐습니다. 세계 전쟁 기간 동안 많은 초기의 투구 스타일과 비교해 볼 때 브로디 철모는 유탄과 총격에 대해 적절한 보호를 제공하는 것으로 입증되었습니다. 또한, 한 장의 강철 시트로 제작되어서 튼튼하고 견고했을 뿐 아니라 제작 비용도 저렴했습니다.
Early World War I statistics showed that an unusually high number of soldiers suffered from some kind of head injury. The British evaluated the new French-designed steel helmet but found them to not provide enough protection when compared to their production cost. John Leopold Brodie was an inventor who took it upon himself to create, and patent, the ‘Brodie helmet.’ This new design was particularly strong and was lined with a padding for shock absorption that proved especially useful against overhead shrapnel.

The Brodie helmet was the original design for the Mark I British Helmet and the M1917 U.S. Helmet. Compared to many early styles of helmets during World War, the Brodie helmet had proven to give adequate protection against modern shrapnel and gunfire. It was also crafted from a single sheet of steel, which meant that it was not only strong and solid but also cheap to manufacture.

3. 방탄복

Body Shield

3.1. 부르스터 방탄복

Brewster Body Shield
브루스터 방탄복은 유탄과 총격으로부터 사용자를 보호하기 위한 실험용 방탄복이었습니다. 미군은 방탄복의 개발자에게 이 방탄복을 입히고 여러 군사들이 기관총알 한 세트를 쏘도록 하는 테스트를 했습니다. 이 방탄복의 효과는 현저히 좋았지만 부피가 크고 무게가 무거워서 병사들이 전쟁터에서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군은 결국 초점을 바꿔 병사들을 머리 부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강철 투구 개발에 나섰습니다.
The Brewster Body Shield was an experimental suit of body armor aimed to protect the user from shrapnel and gunfire. The U.S. military tested the body shield by having several soldiers fire full clips of machine gun ammo at the suit while its inventor was still inside. Although the suit performed remarkably well, due to its bulky size and heavy weight it was deemed too difficult for soldiers to use effectively on the battlefield. The Army instead shifted its focus to creating steel helmets to protect their soldiers from head injuries.

3.2. 카지미르 제글렌의 부르스터 방탄복

Casimir zeglen's Brewster Body Shield
카자미르 제글렌은 폴란드의 수도승이자 최초의 방탄 조끼를 개발한 발명가이었습니다. 시카고 시장에 대한 수 차례의 (결국은 성공한) 암살 시도에 대한 얘기를 듣고서 제글렌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씁니다. 그의 목표는 경량의 방탄 초끼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실크를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짜면, 근접 거리에서의 권총 사격을 멈추는데 성공적임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이 조끼를 대량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과 기술은 제글렌이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높았습니다. 결국 제글렌은 저명한 발명가이자 기업가인 얀 슈체파니크를 만나 협업했습니다. 이들은 함께 최초의 상용 방탄 조끼와 방탄복을 개발했습니다.

브루스터 방탄복은 유탄과 총격으로부터 사용자를 보호하기 위한 실험용 방탄복이었습니다. 미군은 방탄복의 개발자에게 이 방탄복을 입히고 여러 군사들이 기관총알 한 세트를 쏘도록 하는 테스트를 했습니다. 이 방탄복의 효과는 현저히 좋았지만 부피가 크고 무게가 무거워서 병사들이 전쟁터에서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군은 결국 초점을 바꿔 병사들을 머리 부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강철 투구 개발에 나섰습니다.
Casimir Zeglen was a Polish Christian monk and inventor who created the first bulletproof vest. Upon hearing about the multiple attempted (and eventually successful) assassination attempts on the then Chicago Mayor, Zeglen searched for a new way to help save lives. His goal was to create a lightweight bullet-resistant vest. He discovered that a very particular way of hand sewing silk proved to be successful at stopping close range pistol fire, but the cost and skill required to mass produce these vests were too high for Zeglen alone. Eventually, Zeglen met and collaborated with renowned inventor and entrepreneur Jan Szczepanik. Together they created the first commercially available bulletproof vest and body armor.

The Brewster Body Shield was an experimental suit of body armor aimed to protect the user from shrapnel and gunfire. The U.S. military tested the body shield by having several soldiers fire full clips of machine gun ammo at the suit while its inventor was still inside. Although the suit performed remarkably well, due to its bulky size and heavy weight it was deemed too difficult for soldiers to use effectively on the battlefield. The Army instead shifted its focus to creating steel helmets to protect their soldiers from head injuries.

4. 케피 군모

Kepi

4.1. 프랑스 케피 군모

French Kepi
케피는 19세기 초 프랑스 군이 착용한 기본 군모이었습니다. 원래 1850년대에 제공된 부피가 큰 샤코 군모가 있었고, 이에 더해 가볍고 편안한 천으로 된 케피 군모가 제공되었습니다.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많은 병사들은 무거운 샤코 군모를 착용하기를 거부하며, 케피 군모를 쓰고 전투에 나섰습니다. 이에 따라 1870년에 프랑스 정부는 현역 장병을 위한 공식적인 군모로 샤코 대신 케피를 지정했습니다. 하지만, 1차 세계 대전 중 프랑스 군에게는 총격과 유탄으로부터 보호해 줄 투구가 필요했고, 케피는 전투용 강철 전투 투구로 교체되었습니다.
The Kepi was the standard headgear for early 19th century French military. These light and comfortable cloth caps were issued in addition to the older bulky Shako military caps in the 1850s. During the Franco-Prussian war, many soldiers refused to wear their heavy Shako caps and instead wore a Kepi into battle. Therefore, in 1870, the French government replaced the Shako and made Kepi caps the official headgear for active service members. However, during World War I, the French needed helmets that protected against modern gunfire and shrapnel, and the Kepi was replaced with steel combat helmets for use in the battlefield.

4.2. 외인부대의 케피 군모

The French Foreign Legion's Kepi
프랑스 외인 부대는 외국의 용병이 프랑스군에 징집되는 것을 허용한 프랑스 부대이었습니다. 1차 세계 대전 중 외인 부대는 현재 독일이 점령하는 곳의 많은 난민들을 징집해 독일에 반격해 싸우도록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프랑스 외인 부대는 1831년에 만들어졌으며 오늘날에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케피는 19세기 초 프랑스 군이 착용한 기본 군모이었습니다. 원래 1850년대에 제공된 부피가 큰 샤코 군모가 있었고, 이에 더해 가볍고 편안한 천으로 된 케피 군모가 제공되었습니다.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많은 병사들은 무거운 샤코 군모를 착용하기를 거부하며, 케피 군모를 쓰고 전투에 나섰습니다. 이에 따라 1870년에 프랑스 정부는 현역 장병을 위한 공식적인 군모로 샤코 대신 케피를 지정했습니다. 하지만, 1차 세계 대전 중 프랑스 군에게는 총격과 유탄으로부터 보호해 줄 투구가 필요했고, 케피는 전투용 강철 전투 투구로 교체되었습니다.
The French Foreign Legion is a branch of the French army that allows recruits from foreign countries to enlist in the French Armed Forces. During World War I, the Foreign Legion played a critical role in the fight against Germany by enlisting many refugees from now German-occupied lands to fight back. The French Foreign Legion was established in 1831 and is still active to this day.

The Kepi was the standard headgear for early 19th century French military. These light and comfortable cloth caps were issued in addition to the older bulky Shako military caps in the 1850s. During the Franco-Prussian war, many soldiers refused to wear their heavy Shako caps and instead wore a Kepi into battle. Therefore, in 1870, the French government replaced the Shako and made Kepi caps the official headgear for active service members. However, during World War I, the French needed helmets that protected against modern gunfire and shrapnel, and the Kepi was replaced with steel combat helmets for use in the battlefield.

5. 마스크

Mask

5.1. 스플래터 마스크

Splatter Mask
전차는 1차 세계 대전에 새로 나온 무기로, 이 때문에 해결되지 않은 이슈가 많았습니다. 그 중 일부 이슈 때문에 전차의 탑승병이 '총탄 스플래시'와 같은 위험에 처했습니다. 총탄 스플래시는 주포가 발사될 때마다, 혹은 전차가 총격을 입은 경우, 전차 내 작은 금속 조각이 강제로 떨어져 나갈 때 발생합니다. 이 조각들 때문에 탑승병의 피부와 눈에 손상이 가곤 했습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파편으로부터 얼굴을 보호할 수 있도록 각 전차의 탑승병이 금속 스플래터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이후의 전차는 시간 제약이 더 적은 상태에서 구축되었기 때문에 탑승병의 안전을 더 중시했습니다.
Tanks were new weapons during World War I, and as such, they had many issues that had yet to be resolved. Some of these issues put its own tank crew at risk, such as ‘bullet splash.’ ‘Bullet splash occurs when tiny metal fragments inside of the tank get forcibly knocked off whenever the main cannon fires or if the tank was hit with gunfire. These fragments would cause damage to the skin and eyes of the crew. The solution was to have each of the tanks’ crew members wear metal splatter masks to protect their face from shrapnel. Future tanks were built with fewer time constraints and making the crew's safety a higher priority.

5.2. 존 모나쉬 경의 스플래터 마스크

Sir John Monash's Platter Mask
존 모나쉬 경은 역사 상 가장 유명한 호주의 지휘관입니다. 그의 전술은 혁신적이었으며 지휘관으로서의 명성이 높았습니다. 모나쉬는 그의 병사들의 안전과 편안함에 신경 쓴 친절하고 유쾌한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보병의 진정한 역할은 영웅적인 물리적 노력을 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기계적 자원을 최대한 보호하면서 진군하는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1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 모나쉬는 자국에서 뿐만 아니라 많은 연합국에서 높게 평가되었습니다. 그는 영국의 대십자 기사로 임명되었으며, 프랑스와 벨기에의 무공십자훈장을 받았고, 미국으로부터 공로훈장을 받았습니다.

전차는 1차 세계 대전에 새로 나온 무기로, 이 때문에 해결되지 않은 이슈가 많았습니다. 그 중 일부 이슈 때문에 전차의 탑승병이 '총탄 스플래시'와 같은 위험에 처했습니다. 총탄 스플래시는 주포가 발사될 때마다, 혹은 전차가 총격을 입은 경우, 전차 내 작은 금속 조각이 강제로 떨어져 나갈 때 발생합니다. 이 조각들 때문에 탑승병의 피부와 눈에 손상이 가곤 했습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파편으로부터 얼굴을 보호할 수 있도록 각 전차의 탑승병이 금속 스플래터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이후의 전차는 시간 제약이 더 적은 상태에서 구축되었기 때문에 탑승병의 안전을 더 중시했습니다.
Sir John Monash is the most renowned Australian commander in history. His tactics were innovative and his reputation as a commander was highly regarded. Monash was also known to be a kind and pleasant man who cared for the safety and comfort of his men. He wrote: ‘...the true role of infantry was not to expend itself upon heroic physical effort… but on the contrary, to advance under the maximum possible protection of the maximum possible array of mechanical resources’. By the end of the Great War, Monash was highly decorated not only by his own country but by many allied nations. His foreign honors include being appointed as a Knight Grand Cross by the British, receiving the Croix de Guerre by France and Belgium, and earning a Distinguished Service Medal from the U.S.

Tanks were new weapons during World War I, and as such, they had many issues that had yet to be resolved. Some of these issues put its own tank crew at risk, such as ‘bullet splash.’ ‘Bullet splash occurs when tiny metal fragments inside of the tank get forcibly knocked off whenever the main cannon fires or if the tank was hit with gunfire. These fragments would cause damage to the skin and eyes of the crew. The solution was to have each of the tanks’ crew members wear metal splatter masks to protect their face from shrapnel. Future tanks were built with fewer time constraints and making the crew's safety a higher prior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