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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데일 범퍼스 Dale Bumpers |
|
|
|
본명 |
데일 리언 범퍼스 Dale Leon Bumpers |
출생 | 1925년 8월 12일 |
미국 아칸소 찰스턴 | |
사망 | 2016년 1월 1일 (향년 90세) |
미국 아칸소 리틀록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NNNcm, NNkg, 혈액형 |
가족 | 이름 (관계) |
학력 | 학교명 학부명 (학과명1 · 학과명2 / 재학 여부) |
종교 | 종교 |
직업 | 정치인 |
소속 |
|
서명 |
|
[clearfix]
1. 개요
미국의 정치인. 제 38대 아칸소 주지사 및 연방상원의원을 지냈다.2. 생애
1925년 8월 12일 아칸소주 찰스턴에서 태어났다. 2차 대전 동안 미군에 복무했고, 그 뒤 아칸소 대학교에서 법학 학위를 취득했다. 정계 입문 이전에는 변호사로 활동했다.3. 활동
범퍼스는 1970년 아칸소 주지사 선거에 출마, 전직 주지사인 오벌 포버스를 꺾고 민주당 후보로 선출됐다. 이후 현직 공화당 주지사 윈스롭 록펠러를 물리치고 주지사에 당선됐다. 범퍼스는 이전 남부 민주당원과는 달리 일부 진보적인 성향을 띄었는데, 이는 이후 빌 클린턴과 같은 신남부 민주당원과 비슷했다. 주지사직에선 공교육 개선, 주 정부 개혁, 노인, 장애인을 위한 복지 프로그램 개선 등의 치적을 쌓았다. 1972년 재선에 성공하였다.이후 1974년에는 3선 출마를 포기하고 대신 연방상원의원직에 도전했다. 당시 상원의원은 무려 5선의 J. 윌리엄 풀브라이트가 맡고 있었는데, 1974년엔 그의 지나친 반전 성향으로 인해 지역에서 사실상 찍힌 상황이였고, 덕분에 범퍼스는 경선에서 풀브라이트를 쉽게 꺾을 수 있었다. 본선에서는 공화당 상대 후보를 상대로 압도적으로 이겼다.[1]
상원의원으로선 4선 고지까지 올랐다. 환경 정책, 농업 정책에서 주로 두각을 드러냈으며, 군사적으로는 전임 풀브라이트 의원보단 덜했지만 군비 축소를 지지했다. 이를 문제삼아 1980년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가 집요하게 공격했지만 여유롭게 재선에 성공했다. 다만 1978년 노동법 개혁을 무산시켰는데, 이는 노조 지지층에게 범퍼스가 찍히는 요인이 됐고 훗날 1988년 대선 경선에서 물러나는 원인 중 하나로도 작용했다. 이후 말년인 1998년에는 빌 클린턴 대통령 탄핵에서 변호인 역할을 맡았고, 열정적인 반대 연설로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1999년 퇴임과 동시에 정계에서 은퇴했고, 이후 그의 이름을 따 세계 소아마비 퇴치를 위해 세워진 데일 앤 배티 범퍼스 백신 연구소가 세워지기도 했다. 2016년 9월 10일, 지병 악화로 인해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4. 여담
5. 선거 이력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1970 | 미국 주지사 선거 | 아칸소 |
|
375,648 (61.66%) | 당선 (1위) | 초선 |
1972 | 미국 주지사 선거 | 488,892 (75.44%) | 재선[2] | |||
1974 |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 461,056 (84.90%) | 초선 | |||
1980 |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 477,905 (59.09%) | 재선 | |||
1986 |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 433,122 (62.28%) | 3선 | |||
1992 |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 553,635 (60.18%) | 4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