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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위어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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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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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위어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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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5daa>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 | ||
Brighton & Hove Albion FC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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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데이비드 위어 David Wei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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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데이비드 길리스피 위어 David Gillespie Wei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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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70년 5월 10일 ([age(1970-05-10)]세) | |
폴커크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스코틀랜드|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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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키 191cm | |
직업 |
축구 선수 (
센터백 / 은퇴) 축구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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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colbgcolor=#005daa> 선수 |
에반스빌 퍼플 에이스[1] (1988~1992) 폴커크 FC (1992~1996) 하트 오브 미들로시언 FC (1996~1999) 에버튼 FC (1999~2007) 레인저스 FC (2007~2012) |
코치 |
에버튼 FC (2012~2013 / 아카데미·리저브 코치) 브렌트포드 FC (2013~2015 / 수석 코치) 레인저스 FC (2015~2017 / 수석 코치) 노팅엄 포레스트 FC (2017 / 수석 코치) |
|
감독 | 셰필드 유나이티드 FC (2013) | |
행정 |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 (2019~2022 / 임대 매니저)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 (2022 / 기술이사 대행)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 (2022~ / 기술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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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 69경기 1골 ( 스코틀랜드 / 1997~2010) |
[clearfix]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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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튼과 레인저스에서 전성기를 보낸 스코틀랜드의 살아있는 전설이며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한 실력으로 스코틀랜드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는 등 뛰어난 자기관리를 보여준 선수다.
2. 클럽 경력
스코틀랜드 출생인 위어는 1988년, 미국으로 건너가 에반스빌 대학의 축구팀인 에반스빌 퍼플 에이스에서 4년간 활약했다. 그는 수비수임에도 27경기동안 28골을 기록하는 충공깽스러운 활약을 보여주며 1990년, NCAA 올해의 팀과 중부 대학 컨퍼런스 올해의 선수를 석권, NCAA 최고의 수비수로 군림한다.1992년,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한 그는 셀틱 FC에서 트라이얼을 봤으나 프로계약까지는 도달하지 못했고 스코틀랜드 퍼스트 디비전의 폴커크 FC와 계약을 맺는다. 폴커크에서 4년동안 134경기 8골을 기록했고 1993-94년에는 스코티시 챌린지컵 결승에서 세인트 미렌을 만나 3:0으로 승리하며 트로피를 거머쥐는데 기여했다. 또한 1부리그 승격에도 지대한 공을 세우며 성공적인 클럽 생활을 보냈다.
이후 1996년 6월 30일, 스코티시 프리미어 리그의 하트 오브 미들로시언에 입단한다. 위어는 새 팀에서도 주전으로 자리잡으며 3시즌동안 활약했다. 그는 1996년 9월 14일, 레인저스 FC와의 경기에서 프로 통산 첫 퇴장을 경험하기도 했다. 1998년 5월 16일에는 셀틱 파크에서 열린 레인저스와의 스코티시 컵 결승에서 2:1 충격적인 승리를 거두고 생애 두번째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위어는 다음 시즌 중반, 25만 유로의 이적료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에버튼 FC로 이적한다.
1999년 2월 16일, 에버턴에 합류한 뒤 미들즈브러 FC와의 리그전에 교체 출전으로 첫 무대를 밟았다. 그리고 3경기동안에는 교체로 투입되며 적응기를 보내다가 27라운드 윔블던 FC전에서 처음으로 선발로 출장했고 시즌이 끝날때까지 매경기 주전으로 나왔다. 이후에도 위어는 주전으로 뛰며 수비진의 한 축을 담당했고 2001-02시즌에는 잡지 '플레닛풋볼' 선정한 에버튼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기도 했다. 8년동안 위어는 머지사이드 클럽에서 성공적인 생활을 보냈으며 269경기에 출전하여 10골을 득점, 월터 스미스와 데이비드 모예스 지휘 하에 클럽의 주장으로 활약했다. 2006-07시즌부터 위어는 젊은 수비수들에게 경쟁에서 밀리며 전력외로 구분되었고 이듬해 1월에 팀와 일찌감치 계약을 해지하게 된다.
무직이 된 그는 에버턴 시절 자신을 지도했던 월터 스미스의 부름을 받아 레인저스 FC와 6개월 단기 계약을 맺었다.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였지만 위어는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으로서 노련한 수비력과 발군의 리더십을 발휘하며 흔들리는 팀을 바로 잡아주었고 3위까지 하락하던 순위를 2위로 끌어올리며 무사히 시즌을 마쳤다. 이와 같은 위어의 활약에 팀은 시즌이 진행중이던 4월 19일, 일찌감치 그와 1년 연장 계약을 맺었다. 2007-08시즌에도 1경기를 제외하고 리그 전 경기를 출전하며 수비진의 핵심으로 활약했고 스코티시 컵과 스코티시 리그컵을 우승을 거머쥐었으며 팀을 UEFA 컵 결승까지 끌어올렸다.[2] 시즌을 마친 뒤 구단은 다시 한번 그와 연장계약을 채결한다.
2009년 4월, 전임 주장이었던 배리 퍼거슨이 A매치 기간 중 규율 위반으로 주장에서 박탈되자 대신 주장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여전히 나이를 잊은 발군의 활약으로 리그와 리그컵 우승으로 더블을 이뤄내는데 기여한다. 다음 시즌에도 위어는 팀의 주전으로 활약했고 리그 우승과 스코티시 리그컵 우승을 이끌어내며 2년 연속 더블을 달성함과 동시에 본인도 역대 최고령 나이에 SFWA 올해의 선수와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고 만 40세의 나이에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며 노장의 저력을 제대로 보여준다.
팀에서 활약한지 5년만에 레인저스 FC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는 영예를 누리며 클럽 계약 기간 동안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2011년 7월 17일, 위어는 다시 한번 재계약을 채결했으나 당해 시즌에는 한 경기도 나오지 못하고 주장직도 스티븐 데이비스에게 넘겨주었다. 7월 26일, 챔피언스리그 3차예선 1차전 말뫼 FF와의 경기에서 후반 16분 교체출전한 경기가 그의 마지막 무대였다.
2012년 1월 17일, 그는 42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경력을 계속하기 위해 레인저스를 떠날 것이라고 발표한다. 그리고 에버튼에서 몇 주 동안 함께 훈련했으나 선수 대신 코칭스태프로 합류하면서 길었던 선수생활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3. 국가대표 경력
1997년 5월 27일, 위어는 웨일스와의 친선전에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그리고 2001년 10월 6일, 햄던 파크에서 열린 라트비아와의 월드컵예선에서 첫 득점을 기록했고 이 골이 그의 유일한 대표팀에서의 득점이었다.그는 페로 제도와의 UEFA 유로 2004 예선 경기에서 베르티 포그츠 감독에게 비판을 들은 후 한동안 대표팀에 소집되지 않았다. 그러다 2004년 12월, 월터 스미스가 부임하면서 다시 복귀 할 수 있었다.
2006년 9월 6일, 리투아니아와의 친선전에서 그는 50번째 A매치 출전을 달성했고 주장으로 출전하였다. 그리고 스코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010년 8월 24일, A매치 2연전을 앞두고 40살의 나이에 국가대표팀에 소집됐다. 그리고 9월 3일에 치러진 리투아니아와의 유로예선전에 출전함으로써 그는(40살, 116일) 짐 레이튼(40살, 78일)이 가지고 있던 최고령 A매치 출전 기록을 경신했다.
4. 지도자 경력
2012년 1월, 에버튼으로 돌아와 클럽의 아카데미팀과 리저브팀에서 코치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리버풀과의 리저브경기에서 선수로 뛰기도 했다. 2013년 5월, 모예스 감독이 알렉스 퍼거슨 경의 은퇴로 공석이 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직에 부임함으로써 클럽을 떠났을 때, 그는 구단주인 빌 켄라이트와 에버튼의 감독직에 대해 얘기를 나눴지만 결국 그 자리는 로베르토 마르티네스에게 돌아갔다.그해 6월, EFL 리그 1의 셰필드 유나이티드 지휘봉을 잡았으나 팀이 부진한 경기력을 보이며 10월 11일 해고되었다.
이후 2013년 12월 16일부터 브렌트포드 FC의 감독이었던 마크 워버튼 밑에서 수석코치로 일했고 이후 2015년 6월에 워버튼과 위어는 레인저스의 감독과 수석코치로 부임하게 되면서 친정팀에서 지도자생활을 지속했다. 당시 팀은 재정파산으로 인해 4부리그까지 강등을 당했다가 여차 2부리그에 자리를 잡던 상황이었다. 둘은 팀을 성공적으로 1부리그에 안착시켰고 2016-17시즌 3위를 기록한 뒤 팀을 떠난다.
2017년 6월 15일에는 워버튼을 따라 노팅엄 포레스트의 수석코치 자리에 임명되었으나 별 다른 성과없이 워버튼과 함께 12월 31일 해임되었다.
2019년 4월부터 2022년까지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에서 외국 클럽으로 임대된 어린 선수들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2022년 2월 7일, 댄 애쉬워스가 사임하자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의 기술이사 대행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현지 시각 2022년 5월 31일,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의 기술이사로 선임되었다.
5. 수상
5.1. 대회 기록
- 폴커크 FC (1992~1996)
- 스코티시 챌린지 컵: 1993-94
- 하트 오브 미들로시언 FC (1996~1999)
- 스코티시컵: 1997-98
- 레인저스 FC (2007~2012)
- 스코티시 프리미어 리그: 2008-09, 2009-10, 2010-11
- 스코티시컵: 2007-08, 2008-09
- 스코티시 리그컵: 2007-08, 2009-10, 2010-11
5.2. 개인 수상
- PFA 스코틀랜드 올해의 팀: 2009-10
- SFWA 올해의 선수: 2009-10
- 스코티시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선수: 2009-10
- 스코티시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 2010년 2월
- 스코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공로자 명단: 2006
[1]
미국의 에반스빌 대학 축구단
[2]
결승에서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에게 0:2로 패하면서 아쉽게 우승을 놓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