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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1 00:45:20

데날리산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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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데날리산 참사.jpg
당시 피해자들이 찍은 단체 사진

1. 개요2. 등산을 위해 모인 12명3. 등산, 그리고 예기치 못한 상황4. 사고 이후

1. 개요

1967년 6월부터 7월 사이, 미국 알래스카 데날리산에서 일어난 등산 사고.

2. 등산을 위해 모인 12명

맥킨리 산 국립공원에 있는 데날리산은 해발고도 6,190m로, 북미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고도가 높고, 등산로도 험한데다, 화이트아웃 크레바스도 종종 일어난다. 거기다 훨씬 더 높은 에베레스트 셰르파를 비롯해 등산을 돕는 사람이 많고, 주변에 공항도 있어 실질적으로 등반하는 높이는 상대적으로 낮다. 거기다 주변에 마을도 많다. 반면에 데날리산은 미국 주 중에서 사람이 굉장히 적은 알래스카에 위치, 그 알래스카에서도 인구 밀집 지역과 먼 외딴 곳에 혼자 떨어져있고, 산에 불어있는 공항도 없어 등반 난이도가 굉장히 높다. 직접 등산으로 올라야 하는 높이도 에베레스트보다 높다. 그래서 국립공원에선 등산을 하는 사람을 받을 땐 전문가만 받았다.

1967년 중순, 브리검 영 대학교 출신의 조 윌콕스(Joe Wilcox. 당시 25세)는 알래스카에 있는 데날리[1] 산에 같이 오를 사람을 구했다. 이미 미국 전역의 3천미터를 넘는 산은 전부 오른 경력이 있던 윌콕스는, 친한 등산가 제리 클락(Jerry Clark. 당시 31세), 마크 맥로린(Mark McLaughlin. 당시 23세)과 같이 오르기로 했다. 제리는 등산 계획을 짰다. 여기에 지역 신문에도 공고를 올려, 식비 겸 장비 비용과 교통비까지 해서 300달러를 참가비로 받는다고 썼다. 공고를 본 6명, 스티브 테일러(Steve Taylor. 당시 22세), 데니스 루처핸드(Dennis Luchterhand. 당시 24세), 안셀 시프(Anshel Schiff. 당시 30세), 행크 제인스(Hank Janes. 당시 25세), 존 러셀(John Russel. 당시 23세), 그리고 월트 테일러(Walt Taylor. 당시 24세)가 참가했다.

이들은 모두 등산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이었으나, 해발 4,600m를 넘는 산을 올라가 본 사람은 없었다. 국립공원 관리인은 이들이 위험해지지 않게, 같은 날 등산을 신청한 콜로라도 출신 등산 전문가 하워드 스나이더(Howard Snyder. 당시 22세)가 같이 오를 것을 권했다. 여기에 스나이더와 함께 할 제리 루이스(Jerry Lewis. 당시 31세), 스티브 루이스(Steve Lewis. 당시 22세), 그리고 폴 슈리히터(Paul Schlichter. 당시 22세)가 합류할 예정이었으나 스티브가 도중 교통사고를 당해 팔과 코에 골절상을 입어 퇴장했다. 스나이더 일행이 3명이 되면서, 공원에서 정한 등산 할때 최소한의 인원 4명에 못미치게 되어 이들은 윌콕스 일행과 같이 오르기 됐다.

공원에선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공원과 연락이 가능한 라디오 무전기를 구입 후 올라갈 것, 등산경력이 더 많은 스나이더 일행이 콕스 일행과 반드시 함께 할 것, 그리고 등산로가 높고 울퉁불퉁하니 반드시 대비할 것을 경고했다.

3. 등산, 그리고 예기치 못한 상황

이들은 산 북쪽에서 출발해, 멀드로우 빙하(Muldrow Glacier)와 카스텐스 마루(Karstens Ridge)를 지나는 경로를 택했다. 먼저 이들은 가장 가까운 도로에서 하차, 툰드라 지대를 3일간 걸어서 건너 멀드로우 방하 인근의 맥고나걸 패스(McGonagall Pass)에 도착했다. 여기에 캠프 1을 세웠다. 그리고 6월 22일, 공식 등산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은 친하던 사이가 아닌, 공고를 보고 만난 사이인지라 의견 충돌이 다소 있었다. 원래는 산 위에 캠프를 차린 뒤 더 위에 캠프를 차린 뒤, 아래 캠프의 물건을 위로 챙겨가고, 그걸 여러번 반복하는 식으로 할 예정이었다. 등산이 시작되고 며칠 뒤, 비가 오면서 물건을 옮기기 힘들어졌다. 등산 팀은 스토브, 그리고 톱을 놔두고 가기로 결정했다. 도중 눈사태를 만나 등산로가 막히는 일을 겪기도 했으나, 7월 14일에 이들은 정상 근처에 도달하는데 성공했다.

여기서 팀은 2 그룹으로 나뉘었다. 콜로라도 팀과 조 윌콕스가 정상 근처 해발고도 5.4km 지점 캠프 7에서, 나머지 등산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인원들은 좀 더 아래의 해발 5km 지점 캠프 6에서 머물었다. 날씨는 화창했으나 폭풍이 예고됐기에 라디오로 하산할거면 늦어도 2일 안에는 내려가야 한다 통보를 받았고, 7월 15일 오후 6시 30분, 콜로라도 팀과 조 윌콕스는 정상에 도달했다. 이들은 기념 사진을 찍고 플레어를 휘두르며 축하를 했다. 그리고 내려가 캠프 7로 갔다. 캠프 6의 인원들도 이때 7로 올라와 서로 만났다. 안셀 시프는 이때 고산병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16일이 되자, 강풍이 불었다. 당시 풍속은 무려 시속 110km나 됐다. 강풍이 하루종일 불자 이들은 어쩔 수 없이 하루 내내 캠프에서 버텼다. 하필 밑에 스토브를 두고 와 스토브가 2개 밖에 없어 이들은 추위에 떨어야 했다. 다음 날인 17일, 아직 정상에 도달하지 못했던 그룹은 안셀 시프와 스티브 테일러를 제외하고 정상으로 향했고, 콜로라도 팀과 조 윌콕스는 하산을 시작했다. 고산병 증세를 보인 안셀 시프도 이들과 합류했다. 스티브 테일러는 고산병 증세가 나타나 혼자 캠프에 머무르기로 했다.

오후 8시, 안개가 심하게 끼어 바로 앞도 안보이게 되자 정상으로 향하던 그룹은 다음 날 까지 텐트 없이 침낭에서 쉬기로 했다. 다음날 7월 18일, 그룹 중 존 러셀을 제외한 5명이 정상에 도달했고, 라디오 무전기로 하산하겠다고 알렸다. 그런데 이때 데날리 산에 유례없이 강한 폭풍이 닥쳤다. 풍속이 16일의 2배를 넘는 시속 240km에 달했다. 기온도 영하 섭씨 30도까지 내려갔다. 강풍과 함께 이들의 무전도 끊겼다.

무전이 끊기고 2일 째 도착하지 않자, 먼저 내려가던 콜로라도 팀 일행 중 윌콕스와 스나이더, 슈리히터는 다시 올라가 수색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도 폭풍을 만나게 됐다. 윌콕스 일행은 국립공원 측에 사람들이 실종됐다며 구조요청을 했다. 이들은 며칠간 해매다가 데날리 산을 오르던 알래스카 산악 동호회(Mountaineering Club of Alaska) 회원들에게 구조돼 따뜻한 음료와 옷을 받고 무사히 베이스캠프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산에 있는 7명과는 여전히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결국 7명은 동사한 채로 발견됐다. 이들의 시신은 너무 높은 곳에 있는데다 오래되어 수습할 수 없었다. 사고는 알래스카 주 역사상 등산 도중 가장 많은 사람이 사망한 사고로 기록됐다.

4. 사고 이후

조 윌콕스는 자기 탓에 7명이 사망했다며 자책했다.

연방해양대기청에서는 당시 폭풍이 너무 거세, 어떤 전문가가 왔어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 결론내렸다.

참사 이후 국립공원에선 데날리 산의 등산을 아예 금지할지에 대한 논의가 오고갔다. 하지만 금지는 보류됐다.

미국에서 워낙 악명 높은 참사라 관련 책도 많이 나왔다. 하워드 스나이더는 1973년에 데날리 산 참사를 다룬, "산속 마왕 동굴에서: 비극이 된 등산(In the hall of the mountain king: the true story of a tragic climb)라는 책을 출간했다. 1981년, 조 윌콕스가 "흰 바람들: 미국 최악의 등산 비극(White winds: America's most tragic climb)" 라는 책을 출간했다. 2008년엔 제임스 M. 테이볼(James M. Tabor)이 데날리 산 참사를 다룬 책 "산 속에서 영원히: 등산 역사상 가장 논란적이고 불가사의한 참사 속 진실(Forever on the Mountain: The Truth Behind One of Mountaineering's Most Controversial and Mysterious Disasters)" 을 출간해 세계 산악문학상을 받았다. 2012년엔 사고 당시 구조에 나섰던 알래스카 산악 동호회 회원 제프리 밥콕(Jeffery Babcock)이 "난 돌아가지 말아야 하나: 북미 역사상 가장 논란있는 등산 비극(Should I Not Return: The Most Controversial Tragedy in the History of North American Mountaineering!)을 출간, 2014년엔 당시 국립공원 관리인의 아들인 앤디 홀(Andy Hall)이 윌콕스와 스나이더의 인터뷰를 실은 책 "데날리의 비명: 미국의 야산에서 일어난 치명적인 등산 참사(Denali's Howl: The Deadliest Climbing Disaster on America's Wildest Peak)" 를 출간했다.
[1] 엄밀히 따지자면 맥킨리(Mckinley)산. 당시 이름이고 이후 바뀐 이름이 데날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