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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11 23:41:07

더미의 역설

Sorites paradox (Paradox of the heap)

1. 개요2. 해결 논의
2.1. '더미'란 없다2.2. 이분법적으로 따질 게 아니다2.3. 우리가 '경계'를 모를 뿐이다
3. 비슷한 사례4. 관련 외부 문서

1. 개요

"더미", "대머리" 같은 모호 술어가 쓰임에 따라 발생하는 패러독스의 하나. 그 예시는 다음과 같다.
쌀 한 가마니를 앞에 쏟아놓자. 쌀 한 더미가 쌓여 있게 된다.
이중에서 쌀알 하나를 빼자. 더미에서 쌀알 하나를 빼도 여전히 쌀더미일 것이다.
계속 쌀을 한 알씩 빼도 여전히 앞에는 쌀더미가 있을 것이다.
이를 반복하면 결국 쌀알 하나만 남을 것이다.
앞선 논리에 따르면 쌀알 하나도 훌륭한 '쌀더미'다.
...라는 이야기. 즉, 쌀 한 가마니에서 엄청난 수의 쌀더미가 생긴다. 수학적으로는 "쌀알 n개가 한 더미라면 쌀알 n-1개도 한 더미이다."라는 말이다.

다음과 같이 수학적 귀납법을 쓴 방식으로 제안되기도 한다. 다소 현대적인(?) 수학적 귀납법이 쓰인 만큼 지문 내용도 현대화(...)되었다.
* 기초 사례: 머리카락이 0가닥인 사람은 대머리다.
* 귀납 단계: 임의의 음이 아닌 정수 k에 관하여 머리카락이 k가닥인 사람이 대머리라면, 머리카락이 (k+1)가닥인 사람도 대머리다.
* 머리카락 한 가닥 차이로 대머리 여부가 갈린다고 볼 이유는 희박하기 때문이다.
* 결론: 모든 사람은 대머리다.
* 모든 사람의 머리카락 개수는 당연히 유한하다는 점이 전제된다.

2. 해결 논의

더미의 역설은 (시각에 따라서) "더미의 본성이란 무엇인가?"라는 형이상학적인 문제로도, "더미를 더미로 파악하게끔 하는 요건은 무엇인가?"라는 인식론적인 문제로도 이해할 수 있다. 더미의 역설에 대한 해결책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법률이나 건축 등 실생활에서 분쟁을 막기 위하여 '더미의 기준'을 합의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를 테면 "쌀이 100알 이상 모여있으면 '쌀더미'로 정의한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왜 99알은 안 되냐?"라는 것. 즉 '더미의 역설'에 대한 해결책은, 이처럼 임의적인 기준이 아니라 보다 일반적인 설명을 필요로 한다. 그중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2.1. '더미'란 없다

"더미", "대머리" 따위의 모호한 술어는 수학이나 물리학 등에서 등장하는 엄밀한 개념이 아니다. 따라서 이상적인 언어에서 모호한 술어는 모두 제거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엄밀한 의미에서 "더미"란 존재하지 않으며, 곧 더미의 역설은 발생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쌀더미"란 말은 쓰지 않는 대신 무조건 "쌀 n알"이라는 말만 쓰게 하면 문제는 해소된다. 느슨한 의미에서는 환원주의와도 맥락을 같이 한다.

2.2. 이분법적으로 따질 게 아니다

다양한 비표준 논리 체계를 취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이 있다.

이를테면 우카셰비치(Łukaszewicz)나 클레이니(Kleene) 등이 개발한 3가 논리를 도입할 경우 x가 더미라고도, 더미가 아니라고 하기도 애매할 경우 "x가 더미다"가 제3의 진리치를 갖는다고 처리할 수 있다. 아니면 퍼지 함수를 도입하여 무한히 많은 진리치를 도입할 수도 있다.

초평가주의(supervaluationism)에선 초참(super true)이나 초거짓(super false) 등의 개념을 정의함으로써 더미의 역설을 처리할 수 있다.

2.3. 우리가 '경계'를 모를 뿐이다

"더미" 같은 술어를 제거하지 않으면서도 표준 논리를 유지할 수 있는 한 가지 방식은 "더미와 더미가 아닌 것을 나누는 객관적인 경계선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다만 "무수히 많은 후보 가운데서 정확히 어느 게 경계선인지를 우리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티모시 윌리엄슨(Timothy Willaimson)은 1994년 저작 Vagueness(애매함)에서 왜 우리가 그 경계선을 아는 것이 원리적으로 불가능한지를 논하는 논증을 제시한 바 있다.

3. 비슷한 사례

4. 관련 외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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