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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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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2063><colcolor=#ffffff> 문서 | 역대 스쿼드 · FIVB 랭킹 · 한일전 ( 선수별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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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 대회별 기록 · 연도별 득점 · 경기별(20득점 이상) | |
대한민국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 | 역대 감독 | 역대 주장 |
1. 요약
<rowcolor=#FFF> 연도 | 순위 | 감독 | 엔트리 |
1962 자카르타 | 은메달 |
주방자 · 김군자 · 이춘일 · 김주환 · 김영봉 · 최명자 서춘홍 · 이재순 · 이영자 · 조동령 · 유명자 · 유춘자 |
|
1966 방콕 | 은메달 |
양진수 · 김군자 · 문경숙 · 유명자 · 유춘자 · 이근수 이춘일 · 서희숙 · 최정숙 · 허수옥 · 홍남선 · 황규옥 |
|
1970 방콕 | 은메달 |
양진수 · 서현숙 · 서한숙 · 이경선 · 김경자 · 김혜숙 최덕경 · 강미화 · 이순복 · 조혜정 · 윤영내 · 이인숙 |
|
1974 테헤란 | 은메달 | 석태환 |
이경선 · 이순복 · 이경숙 · 이효순 ·
조혜정 · 노창희 유경화 · 유정혜 · 박정혜 · 정순옥 · 최은희 · 박인실 |
1978 방콕 | 동메달 | 이창호 |
윤영내 · 유경화 · 김화복 · 곽선옥 · 심순옥 · 김애희 백명선 · 변경자 · 임해숙 · 양순덕 · 김인숙 · 신상순 |
1982 뉴델리 | 동메달 | 전호관 |
김영숙 · 이은경 · 김정순 · 김송은 · 정금선 · 남명례 한경애 · 이운임 · 이영선 · 곽선옥 · 박미희 |
1986 서울 | 동메달 | 전호관 |
이은경 · 곽선옥 ·
이운임 · 김정순 · 이영선 · 이명희 유애자 · 임혜숙 · 제숙자 · 김경희 · 지경희 · 선미숙 |
1990 베이징 | 은메달 | 이창호 |
박미희 · 장경희 · 문효숙 · 지경희 · 염정미 ·
김경희 주선진 · 남순옥 · 김귀순 · 장윤희 · 유연수 · 강주희 |
1994 히로시마 | 금메달 | 김철용 |
이도희 ·
강혜미 ·
장윤희 · 주순란 · 정은선 ·
정선혜 홍지연 · 장소연 · 김남순 · 박수정 · 이진영 · 오윤경 |
1998 방콕 | 은메달 | 김형실 |
정선혜 ·
장윤희 · 박수정 ·
홍지연 ·
구민정 ·
장소연 박미경 · 정은선 · 강미선 · 이명희 · 강혜미 · 김창헌 |
2002 부산 | 은메달 | 류화석 |
3
강혜미 · 4
구민정 · 5
김사니 · 6
최광희 · 7 박미경 · 8
구기란 9 정선혜 · 11 이명희 · 13 김미진 · 15 장소연 · 16 정대영 · 17 김남순 |
2006 도하 | 5위 | 김명수 |
4
김사니 · 5
남지연 · 7
한유미 · 9 김지현 · 10
김연경 · 11
한수지 12 한송이 · 13 정대영 · 14 황연주 · 15 김세영 · 16 김해란 · 18 배유나 |
2010 광저우 | 은메달 | 박삼용 |
1
오지영 · 4
김사니 · 8
남지연 · 9
임명옥 · 10
김연경 · 11
한유미 12 한송이 · 13 정대영 · 14 황연주 · 15 김세영 · 16 이소라 · 17 양효진 |
2014 인천 | 금메달 | 이선구 |
3
이효희 · 4
김희진 · 5
김해란 · 7
이재영 · 8
남지연 · 9
이다영 10 김연경 · 12 한송이 · 13 박정아 · 14 양효진 · 16 배유나 · 19 백목화 |
2018 자카르타·팔렘방 | 동메달 | 차해원 |
1
박은진 · 2
이주아 · 3
정호영 · 4
황민경 · 5
이효희 · 8
임명옥 · 10
김연경 11 김수지 · 13 박정아 · 14 양효진 · 15 강소휘 · 17 이재영 · 19 이다영 · 20 나현정 |
2022 항저우 |
2. 역사
여자 배구는 1962년 자카르타 대회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첫 대회에서는 6인제와 9인제로 나뉘어 진행되었는데, 대표팀은 두 종목에서 모두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이후 1966년 방콕 대회부터는 현재의 시스템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1974년 테헤란 대회까지 4개 대회 연속 은메달을 획득하였다.2.1. 1994 히로시마
대표팀이 아시안 게임에서 첫 금메달을 획득한 것은 1994년 히로시마 대회에서였다. 아직도 명승부로 회자되고 있는 대회이다.이 대회를 위해 슈퍼리그 최강이었던 호남정유의 감독 김철용과 주전 선수들이 주축이 되어 엔트리를 구성하였다. 오른쪽에서 큰 공격을 맡아주었던 한일합섬의 김남순을 제외하면 호남정유라고 해도 무방하다.
6개 팀이 참가하여 풀리그로 진행되었는데, 당시 태국·대만·몽골 대표팀은 우리의 상대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중국 대표팀에게만 승리를 따낸다면 사실상 금메달이 확정된다고 볼 수 있었다. 2경기 중국전에서 1·4세트를 내주고 2·3세트를 따낸 대표팀은 마지막 5세트에서 정선혜의 연타 공격이 성공하며 21-19로 경기를 가져온다. 당시 배구 규칙은 지금의 랠리 포인트제가 아닌 서브권을 가지고 있는 팀이 득점하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엄청난 혈전이었다는 것은 당연한 일. 4경기 일본전에서는 1·2세트를 내주고 내리 3·4·5세트를 따내며 리버스 스윕 성공. 5경기 대만전이 남아있었으나 사실상 금메달을 확정지었다.
2.2. 2006 도하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이후 주축 선수들이 은퇴하면서, 대표팀은 암흑기를 맞게 되는데 기점이 바로 2006년 도하 대회였다. 8강전에서 다크호스 태국에게 1-3으로 패하며 아시안 게임 도전 역사상 최초로 메달 획득에 실패한다. 직전 열렸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대만에게 당한 패배와 함께 엄청나게 까였다.[1] 김명수 감독은 태국전 패배에 대해 " 김연경의 몸이 무거웠다"면서 "자세한 패인은 자신이 잘 알 것"이라며 말을 남겨 수술 직후 재활도 다 하지 못하고 대표팀에 합류한 어린 선수에게 책임을 전가하였다. 심지어 세터 김사니 때문에 후배들이 눈치를 보고 공을 달라는 말을 하지 못해 몸이 굳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황당한 기사도 나왔다. # 남자대표팀은 금메달을 따고 돌아왔기 때문에 더더욱 비교가 되었고, V-리그 여자부 흥행에 크게 찬물을 끼얹었다.2.3. 2010 광저우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서 일본은 2진을 파견하였고,[2] 중국은 자국에서 열리는 대회였기에 1진이 세계선수권대회를 마치고 바로 이 대회에 참가하였다. 아시안 게임의 전초전이었던 세계선수권 1차 예선에서 대표팀은 김연경과 황연주의 활약 속에 중국에게 3-0 셧아웃 승리를 기록했기에 기대감이 높아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결승전에서 중국에게 먼저 1·2세트를 따내고도 3·4·5세트를 내주며 다시 한 번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특히 5세트 14-12로 먼저 매치 포인트를 가져왔음에도 오지영의 통한의 서브 리시브 범실로 듀스를 허용한 것이 컸다.2.4. 2014 인천
앞서 열린 AVC컵에서 펼쳐진 두 번의 맞대결에서는 중국 2진에게 모두 0-3 완패를 당하며 모두를 걱정시켰다.[3] 그러나 정작 본 대회에서는 무실세트 우승을 차지하며 히로시마 대회 이후 20년 만에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주장 김연경은 물론이고 마무리 득점을 한 김희진이 경기를 지배했으며, 5-11까지 밀렸던 3세트에서 이효희와 교체 투입된 이다영의 겁없는 토스와 블로킹도 볼만한 부분이었다.
2.5. 2018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기간 : 2018년 8월 18일 ~ 2018년 9월 2일8년 만에 우리 대표팀은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게 되었고, 이전에 비해 세계랭킹의 중요성이 더 커졌기에 이번엔 오히려 배구팬들 사이에서 아시안게임 대신 세계선수권에 집중하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하지만 엔트리 발표 결과 1진으로 출전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으며, 차해원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엔트리는 세계선수권에서도 비슷하게 운영하되 플레잉코치 역할을 맡고 있는 세터 이효희를 제외한 나머지 세터 한 자리를 이나연으로 바꿔서 일본으로 갈 듯.[5] 그리고 이후 들려오는 소식으로는 중국, 일본, 태국 대표팀 모두 1진으로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기로 하였다고 하니 미리보는 세계선수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발생했는데 파괴력 좋은 김희진 이 팔 전체를 걸쳐 전치 4주의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대표팀 명단에 넣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결국 김희진은 국가대표에서 하차했다.
이전 대회들과 달리 처음으로 14명 엔트리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고등학생 3인방(박은진, 이주아, 정호영)이 엔트리에 포함되며 평균 연령이 엄청나게 낮아졌는데, 이를 두고 주전 선수들의 체력을 제대로 안배할 수 있을지, 괜한 엔트리 낭비가 아닌지 우려섞인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2018 아시안게임 시작 후 조별리그에서 인도와 카자흐스탄을 상대로 가볍게 승리를 따냈지만 올림픽 디펜딩 챔피언에 1군을 내보낸 중국에는 0-3으로 완패하였다. 이후 베트남과 대만에 3-0으로 승리하며 분위기 전환에 성공, 조 2위로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이후 8강에서 아시안게임 개최국인 인도네시아를 상대로 3-0으로 완승하며 준결승에 진출했으나, 준결승에서 태국에 1-3으로 패하여 결승 진출에는 실패한다.
하지만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을 상대로 3-1 승리를 거두며 동메달을 따내는데 성공한다. 전 대회에 이어 2연패를 노리던 대표팀은 아쉽게도 2연패에는 실패했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숙적 일본을 꺾으며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된다. #
2.6. 2022 항저우
1차전 베트남에게 2-0 앞서다 역전패하는 충격적인 참패를 기록하면서 모두가 충격에 빠졌다. 중계를 하던 김연경 역시 할 말을 잃어버렸을 정도. 2차전 네팔전에서도 1세트 졸전을 보이다가, 겨우 반등해 3:0 셧아웃 승리했다. 이로 인해 1패를 안고 8강 리그에 올랐고 첫 경기 중국전 패배와 함께 메달이 좌절되었다. 그리고 한국 아시안 게임 역사상 처음으로 남녀 배구팀 모두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하지만 이와 별개로 6•7위 결정전과 5•6위 결정전에서 지난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 셧아웃 당했던 카자흐스탄에 3:0 완승, 대만과의 경기도 아슬아슬하게 3:2 따오던 지난 경기와는 달리 3:0으로 압승하며 설욕전에 성공했다.
[1]
대만 팀은 2006년 세계선수권대회 1차 예선에서 우리 대표팀과, 일본·폴란드를 차례로 꺾으며 5승으로 2차 예선에 진출하였다. 비록 2차 예선에서는 전패를 기록했지만, 이 기세를 몰아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그런데 그 후로 세계 대회에서 자취를 감췄다. 2006년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지?
[2]
1진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위 입상
[3]
사실 중국의 경우 1진과 2진의 기량 차이가 그리 크지 않으며, 이 때 주전으로 뛰었던 딩샤, 장창닝, 옌니가 다음 해에 모두 1진으로 올라와 월드컵과 리우 올림픽 우승의 주역이 되었기에 1.5진 정도로 보는 것이 맞을 듯 싶다.
[4]
대한배구협회가 20년 만에 금메달을 획득한 대표팀에게 김치찌개 회식을 하게 하여 대차게 까였다.
[5]
2018년 6월 20일 오마이뉴스 "김연경 옆에서 배울 날이..."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의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