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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8 16:59:28

대악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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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내용3. 구성4. 의의5. 보물 제1291호

1. 개요

大樂後譜. 조선 영조 35년, 1759년에 서명응(徐命膺)이 세조 때의 음악을 모아 편집한 악보. 총 7권 7책. 국립국악원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의 보물 제1291호로 지정되어 있다.

2. 내용

영조 대의 문신인 서명응은 역학 등에 통달했으며 실학 연구에 전력한 북학파의 시조로 일컬어지며 학자로서 명망이 높았던 인물이다. 서명응 자신은 고사신서, 본사, 고사십이집, 보만재총서 등을 저술했으며, 서명응의 동생인 서명선 식목실총을, 훗날 아들인 서호수 해동농서를, 손자인 서유구 임원경제지를, 손자 며느리인 빙허각 이씨가 규합총서를 짓는다.

이런 서명응이 그동안 내려져오던 우리나라의 기보법과 악보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한 결과 우리나라의 풍류와 음악이 가장 발전했던 시기를 세종대와 세조대 2대 왕 시기로 꼽게 되었다. 이에 두 시기의 음악에 대한 모든 자료와 내용을 전국에서 모으고 분석하여 세종대의 음악을 세종조악(世宗朝樂)이라 하여 대악전보(大樂前譜) 9권으로 편찬하였고, 세조대의 음악인 세조조악(世祖朝樂)을 대악후보라 하여 7권으로 편찬한 것이다. 하지만 세종조의 대악전보는 청일전쟁이 일어나던 1894년에서 1895년 사이에 사라져버렸고 지금은 세조대의 음악인 대악후보 7권만이 남아 전하고 있다.

대악전보의 경우 증보문헌비고에 아악악가(雅樂樂歌), 정대업(定大業), 취풍형(醉豊亨), 치화평(致和平), 봉황음(鳳凰吟), 여민락만(與民樂慢), 보허자(步虛子), 낙양춘(洛陽春), 전인자(前引子), 후인자(後引子), 여민락현(與民樂絃), 여민락관(與民樂管), 보허자관(步虛子管), 환환곡(桓桓曲), 수룡음(水龍吟), 억취소(憶吹簫), 하운봉(夏雲峰), 소포구락(小抛毬樂), 오운개서조(五雲開瑞朝), 회팔선(會八仙), 천년만세(千年萬歲), 절화(折花), 중선회(衆仙會) 등 대악전보에 수록됐던 악곡의 명칭만이 전해지고 있다.

3. 구성

4. 의의

1400년대 세조대의 우리나라의 음악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특히 대악후보의 기보법은 세종이 창안한 정간보(井間譜)와 세조가 직접 창안한 오음약보(五音略譜)를 함께 채택하고 있어 세종과 세조가 지녔던 높은 음악적 소질과 기보법 연구능력에 대해서도 알아볼 수 있다.

또한 세조는 진평대군 시절부터 절대음감이라 할 만큼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어린 세조의 음악성을 알아본 세종이 "악을 아는 자는 우리나라에서 오로지 진평대군 뿐이니, 이는 전후에도 있지 아니할 것이다"라는 극찬을 내렸다. 이에 대군시절부터 세종의 예악정비사업에 참여하며 세종의 음악정신을 공유했던 세조는 왕위에 오른 후 "선대왕께서 제정한 보태평과 정대업은 그 음악의 성대함과 용장함에도 불구하고 종묘에 쓰이지 않고 있으니 애석한 일이다" 라며 종묘제례악을 직접 정리했다.

세조대에 용광(龍光), 귀인(歸仁), 영관(永觀), 집녕(輯寧), 희문(熙文), 기명(基命), 선위(宣威), 융화(隆化), 혁정(赫整), 분웅(奮雄), 형가(亨嘉), 신정(神定), 순응(順應), 정세(靖世), 현미(顯美), 역성(繹成), 개안(凱安), 탁령(濯靈), 대유(大猶), 소무(昭武), 탁정(濯征), 독경(篤慶) 등의 수많은 음악들이 개작되어 종묘제례악에 추가되었고 태조 이성계의 무공을 노래한 총유(寵綏), 세종대왕이 제정한 보태평(保太平), 정대업(定大業) 또한 종묘제례악에 수록되었다. 숙제(肅制), 진요(震耀)와 같은 곡들은 세조의 까다로운 심사에 걸려 종묘제례악에 추가되지 못했지만 역시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노랫말과 악보 등이 전해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세조 이전까지는 종묘제례악이라는 개념 자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지만 이때부터 사실상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빛나는 우리나라의 종묘제례악이 완성되어 쭉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것 또한 대악후보를 통해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5. 보물 제1291호

조선 영조 35년(1759) 서명응이 세조 때의 음악을 모아 두꺼운 종이에 편집한 7권 7책의 악보이다. 크기는 가로 31.4㎝, 세로 44.5㎝이며, 세종 때의 음악 22곡을 모아 수록한『대악전보』는 청일전쟁(1894∼1895) 때 없어져 전하지 않는다.

이 책의 권1에는 세조 때의「속악보서 」외 8곡이, 권2에는「시용보태평도」외 1곡, 권3에는「시용향악보」외 2곡, 권4에는「시용향악보」외 1곡, 권5에는「시용향악보」외 4곡, 권6에는「시용향악보」외 5곡이, 권7에는「동동」외 3곡이 실려있다. 특히 권5에서 권7까지에 수록된 것은 고려 후기 또는 조선 전기의 악보로 귀중한 것이다.

이 책은 18세기 간행된 악보이기는 하나,『조선왕조실록』과 별개로 독립되어 최초로 관에서 편찬한 악보이며, 세조 때의 음악을 비롯하여 여러 시기 음악을 담고 있다는 점과, 고려에서 전래된 정읍 등 다양한 향악곡 및 조선후기까지 다양한 변화와 생성과정을 거친 정악곡의 초기형태를 수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는 역사적인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