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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18 05:59:42

달곡마을



파일:달곡마을.png

1. 개요2. 지리3. 역사4. 물당기기놀이5. 주요 시설
5.1. 교육5.2. 관광,문화
6. 교통
6.1. 도로6.2. 버스
6.2.1. 급행6.2.2. 일반6.2.3. 지선

1. 개요

울산광역시 북구 강동동( 법정동 상 무룡동)에 위치한 자연촌(自然村)이다. 동대산~ 무룡산 산줄기 동방으로 흐르는 무룡천(舞龍川)이 이 마을의 젖줄로, 그 유역의 충적평야를 따라 길게 조성된 달곡마을은 한때 인근에서 가장 큰 공동체를 이뤄 주변의 장등마을, 주렴마을 등과도 활발히 교류했다.

마을은 학성 이씨와 아산 장씨의 집성촌이며 17세기 초에 두 성씨가 이 지역에 들어온 이후 마을이 형성되어 발전하였다. 이후 역사서에 자주 기록되어 구체적인 정보를 알 수 있는 마을로서, 이에 대해 연구한 민속학 논문[KCI]도 존재할 정도이다. 이외 국립민속박물관 '민속현장조사' 웹 사이트에 달곡마을의 생활상을 담은 사진/영상 자료들이 다수 등재돼 있다.[민속박물관]

2. 지리

정자천의 제1지류인 무룡천에 의해 무룡산 자락 동편으로 넓게 나 있는 충적평야에 동서로 길쭉하게 위치하고 있다. 거의 사방이 산림으로 둘러싸여 있는 지역이므로 무룡천이 흘러 나가면서 정자천과 합류하는 지점을 하나의 마을 입구로 볼 수 있을 정도이다. 여기서 정자천을 따라 더 내려가면 정자항 인근의 어촌이 나오고 동해 바다로 통한다.

마을 서편은 산지가 출현하기 이전에 정자저수지(큰골저수지)가 가로막고 있어 마치 무룡천이 이곳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무룡산의 깊숙한 골짜기에서 발원한 냇물이 저수지에 흘러들 때까지 무룡천의 상류를 형성한다.

마을 내부는 나름의 기준에 따라 명촌[3]-아랫마을-윗마을-사당골-큰골로 구분된다.[KCI] 31번 국도의 정자항 방면 진출로와 신현교차로가 있는 근방을 명촌이라 부르고, 큰골로 갈수록 산 근처로 깊숙이 들어가 있는 지명이다. 그 중 사당골은 큰골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 있는 골짜기이고 이쪽으로 무룡천의 지류 격인 작은 개울이 흐른다.

무룡천 및 정자천 수계에 같이 구성된 마을로 신전마을, 장등마을, 주렴마을 등이 있다. 달곡마을은 역사적으로 이들 마을과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했다.

3. 역사

울산의 시가지에서 동해안으로 가고자 할 때 방어진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무룡산 고개를 넘어야 하므로 예부터 '달령길'이라 하는 고갯길이 나 있었고 달곡마을은 탄생 이래 항상 그 중심지로 기능했다. 마을의 탄생에 영향을 끼친 학성 이씨 입향조 이득곤(李得坤, 1583~?) 역시 농소(農所)[5] 출신이었다가 달곡으로 넘어온 것이다. 여러 자료에서는 이득곤과 아산 장씨 입향조인 장희춘(蔣希春, 1556~1618)[6]의 이전에도 제주 고씨 위주의 가문이 달곡에 거주했음을 언급하지만 이 두 명이 이곳으로 전입해 온 것을 사실상 달곡마을의 기원이라고 보고 있다.

'달곡마을'과 유사한 지명은 1672년(현종 13) 〈경상도울산부을유식호적대장(慶尙道蔚山府乙酉式戶籍大帳)〉에서 '달동(達洞)'으로 최초 언급된 이후 18세기 19세기에 출판된 〈울산부호적대장〉 판본들에서 꾸준히 등장한다. 호적대장에 따른 마을의 인구는 1729년(영조 5)에 286명을 기록했지만 그 뒤 대체로 감소하여 1867년(고종 4)에는 85명으로 나타난다.[KCI]

정확히 '달곡'이라는 지명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용되었다. 일제는 달곡마을과 다른 방면에 울산과 동해를 잇는 신작로를 개통했지만 달령길의 수요는 꾸준해 이 지역은 광복 후 1970년대까지도 울산 지역민들이 동해로 진출하는 주요 통로였다. 1930년에는 마을 최초로 저수지가 건설됐다.[KCI]

1965년 1975년 각각 사당골저수지(사당곡저수지)와 큰골저수지(정자저수지)가 축조되면서 용수 문제가 해결되고 경지가 확장되었다. 2000년대 이후로도 벼를 주로 재배하는 전형적인 농촌이지만 부추, 단감, 블루베리와 같은 새로운 상품 작물이 도입되어 비중을 늘리고 있다.[KCI]

4. 물당기기놀이

달곡마을은 생활용수가 자주 부족했는데, 이로 인해 생겨난 마을 풍습이 물당기기놀이이다. 매년 정월 대보름 해 뜰 무렵 동제(洞祭)가 끝나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마을 사람들 모두가 물당기기놀이에 참여해 양질의 물을 빌었는데, 그 개략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았다.
  1. 무룡산 줄기에 있는 계곡인 복해용소로 간다.
  2. 복해용소에서 산신제를 지낸 뒤 그곳의 물을 10여 개의 물병에 담는다. 이때 제주(祭主)가 "무룡산에 산신령님 복해용소 용왕님요/ 내내 보살펴 올해도 성수를 내리소서" 하면서 주문을 외면, 풍악꾼들이 풍악을 울리고 물줄꾼들이 물을 담으며 「물당기기노래」[10]를 부른다.
  3. 물줄을 이고 달골 윗마을에 있는 공동 우물로 향한다. 풍악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으자, 이으자" 하며 「이으기노래」[11]를 부른다.
  4. 우물에 도착하면 「우물노래」[12]를 부르고 병의 물을 우물에 붓는다.

울산역사문화대전의 '물당기기놀이' 페이지에서는 물당기기놀이의 방법을 세 마당에 걸쳐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또 유사한 성수 기원 의식이 전국 곳곳에 존재했음에도 이들은 공동체적인 '놀이'보다 제주가 주도하는 의식의 측면이 강하다는 점에 집중해 이와는 다른 달곡마을 물당기기놀이의 특수성을 강조하고 있다.

5. 주요 시설

5.1. 교육

5.2. 관광,문화

6. 교통

강동동 행정복지센터까지 가려면 2~3km는 이동해야 한다.

6.1. 도로

31번 국도로 쉽게 진입할 수 있는 위치이다.

6.2. 버스

산하동의 아파트 단지를 경유하는 버스 노선들은 대개 이곳의 신현교차로를 통해 31번 국도로 진입하므로 달곡마을 정류장이 존재하고 다수의 노선이 정차한다. 마을 내부에 있는 달곡마을회관 및 달곡당수나무 정류장에서는 지선버스 노선인 울산 버스 943을 타고 산하동 진장동으로 갈 수 있다.

6.2.1. 급행

6.2.2. 일반

6.2.3. 지선


[KCI] 「울산 무룡동 달곡마을의 역사민속학 연구」 [민속박물관] # [3] 울산 북구 명촌동과는 관계 없다. [KCI] [5] 현재 매곡동, 호계동 등으로 구성. [6] 임진왜란 때 유명한 영남 지역 의병장이기도 하다. [KCI] [KCI] [KCI] [10] 여루여루 들건산 무룡산신을 울리자/ 여루여루 용소에 용왕님을 울리자/ 은하수를 땡기고 천지수를 땡기자/ 복해용소 땡기고 무룡산물도 땡기자/ 용당골물도 땡기고 서당골물도 땡기자/ 진산의 산신님 무룡산의 산신님/ 이어주소 이어주소 새미물로 이어주소/ 이어주소 이어주소 새미물로 이어주소. [11] 이으자 이으자 은하수를 이으자/ 이으자 이으자 천지수를 이으자/ 이으자 이으자 동해수를 이으자/ 이으자 이으자 천년수를 이으자/ 이으자 이으자 남해수를 이으자/ 이으자 이으자 만년수를 이으자/ 이으자 이으자 동천물을 이으자/ 이으자 이으자 서천물도 이으자/ 이으자 이으자 용당소물 이으자/ 이으자 이으자 물청치물을 이으자/ 이으자 이으자 백룡담물을 이으자/ 이으자 이으자 복해용소물 이으자. [12] (선창)이새미를 채워주소 달골물로 채워주소/ (후창: 아낙들, 이하 같음)비나이다 비나이다 이새미에 비나이다/ 냉수청청 채워주소 옥수청청 채워주소/ 출렁출렁 채워주소 남실남실 채워주소/ 사시장철 채워주소 천년만년 넘쳐주소/ 생명수가 넘쳐주소 불로수가 넘쳐주소/ 천년새미도 여기로다 만년새미도 여기로다/ 감로수가 넘쳐나네 불로수가 넘쳐나네/ 부귀수가 넘쳐나네 영화수가 넘쳐나네/ 잡귀잡신 물러가고 천복만복 점지하소. [13] 캠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