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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비렉스 니가타 싱가포르 FC No. 8
다카하기 요지로
髙萩 洋次郎 | Yojiro Takahagi
<colbgcolor=#013f98> 출생 1986년 8월 2일 ([age(1986-08-02)]세)
후쿠시마현 이와키시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신체 183cm, 71kg[1]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주발 오른발
소속 학력 클락기념국제고등학교 히로시마 캠퍼스
선수 산프레체 히로시마 (2003~2014)
에히메 FC (2006 / 임대)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 FC (2015)
FC 서울 (2015~2016)
FC 도쿄 (2017~2022)
도치기 SC (2022 / 임대)
도치기 SC (2023)
알비렉스 니가타 싱가포르 FC (2024~)
국가대표 3경기 ( 일본 / 2013~2017)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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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colbgcolor=#fff,#191919>배우자 문리나[2], 딸 하루[3]
등번호 산프레체 히로시마 - 15번, 10번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 FC - 10번
FC 서울 - 2번
FC 도쿄 - 8번
도치기 SC - 8번
알비렉스 니가타 싱가포르 - 8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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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여담6. 수상
6.1. 대회 기록6.2. 개인 수상6.3.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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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국적의 도치기 SC 소속 축구 선수. 세르히오 에스쿠데로[4]의 뒤를 잇는 FC 서울의 두 번째 일본 국적 선수다.

2. 클럽 경력

2.1. 산프레체 히로시마

파일:external/footballk.net/%EB%8B%A4%EC%B9%B4%ED%95%98%EA%B8%B0.jpg

2002년 산프레체 히로시마의 유소년 팀에 입단하였다. 2003년 4월 5일 16세의 나이로 쇼난 벨마레와의 경기에 출전하며 산프레체 히로시마 팀 역사상 최연소 프로 경기 출전 선수가 되었다. 같은 해 11월에는 팀과 프로 계약을 체결하며 클럽 최초로 고등학생 프로 계약 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이후 부상과 이로 인한 컨디션 난조가 겹쳐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2006년 에히메 FC로 임대 이적하였다. 에히메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44경기에 나서 3골을 기록하였다.

2008년 팀의 J2리그 강등과 더불어 주전 선수들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후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주전으로 활약하기 시작하였고, J2리그에서 38경기 14골을 기록하며 팀의 주포로 맹활약, 1년만에 팀의 1부 리그 승격을 성사시켰다. 2012년에는 리그에서 2골 12도움을 기록하며 나카무라 켄고에 이어 도움 랭킹 2위를 차지하였고 시즌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2013년엔 등번호 10번[5]을 배정받았다.

2.2.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 FC

파일:external/www.a-league.com.au/yojiro-takahagi-walks-off-pirtek-stadium_18u210q7sth4k1lvatrxexx23j.jpg

2015년 1월 14일 2014 ACL 우승팀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 FC로 이적하였고 2015년 2월 25일 열린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2015 ACL경기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경기 MVP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11경기 2골에 그치면서 같은 해 6월 6일 재계약 제안을 거절하고 퇴단했다.

2.3. FC 서울

파일:external/images.fcseoul.com:8888/14567322305783.png

2015년 6월 16일 FC 서울 입단이 공식 발표되었다. 계약 기간은 2년 반. 등번호는 최효진의 이적으로 결번이었던 2번.

7월 25일 인천전에 교체로 투입되어 K리그 데뷔전을 치렀고 3경기만인 8월 19일 부산전에서 중거리슛으로 리그 데뷔골을 신고했다. 오스마르, 몰리나와 삼각편대를 이뤄 호흡을 서울의 중원을 책임지고 있는데 후방에서 수비와 패스의 뿌리 역할을 하는게 오스마르라면 다카하기와 몰리나는 패스의 줄기를 맡아 전방에 버텨선 박주영 아드리아노에게 패스를 뿌려준다. 하대성이 이적한 후 줄곧 서울을 괴롭혔던 중원에서의 빌드업 문제가 마침내 해결되어가는 모양새다. 영입 초기에는 급하게 영입되어 몸상태가 완전하지 못한 탓인지 90분을 완전히 소화하지 못했으나 몸상태가 올라오며 이 점은 개선되었다.

울산 현대와의 FA컵 4강 전에서 선제골을 기록해 준결승 MVP에 선정되었고 10월 31일 벌어진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FA컵에서도 멋진 드롭슛으로 선제골을 넣어 MoM을 받고 팀 우승에 기여했다. 이로서 준결승 MVP가 소속된 팀은 FA컵에서 우승하지 못한다는 징크스도 깨졌다.

11월 21일 제주 유나이티드전에서 환상적인 패스웍에 이은 발리슛으로 시즌 4번째 골을 터뜨렸다.

2016년 2월 23일 ACL 조별리그 1라운드 부리람 유나이티드 원정에서 선발 출장하여 아드리아노의 세번째 골을 어시스트하는 등 좋은 활약을 보였다.

3월 1일 ACL 조별리그 2라운드 자신의 친정팀인 산프레체 히로시마전에서도 선발출장하였다.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지는 못했으나 전체적으로 좋은 모습을 보였다. 서울이 4골을 넣었지만 친정팀에 대한 배려로 팀 세레모니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3월 16일 ACL 조별리그 3라운드 산둥 루넝 원정에서도 선발출장하여 아드리아노 선제골을 돕는 활약을 펼쳤다.

3월 20일 K리그 클래식 2라운드 상주 상무와의 홈 경기에서 선발 출장하여 후반 37분 데얀의 골을 도왔다.

주세종이 오른쪽에서 올린 크로스를 논스톱 슈팅으로 처리했으나 데얀의 발 맞고 굴절되어 골이 되었다. 데얀의 골로 인정되며 다카하기는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영상

4월 2일 K리그 클래식 3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홈 경기에서 선발 출장하여 환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전반 6분 묵직한 중거리 슛이 인천 수비수 몸에 맞고 굴절되어 골대를 맞췄고 후반 15분에는 요니치의 태클을 가뿐하게 뛰어넘은 뒤 멋진 패스로 박주영에게 완벽한 찬스를 안겨줬고, 박주영이 골을 성공시키며 다카하기는 리그 2호 도움을 기록하였다.

4월 20일 ACL 조별리그 5라운드 부리람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 선발 출장하여 전반에 정확한 크로스로 데얀 선제골 박용우 추가골을 돕는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후반 상대의 역습상황에서 반칙을 범하며 페널티킥을 허용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러나 이 실수를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훌륭한 모습을 보인 경기였고 입대한 신진호, 경고 누적으로 결장한 주세종을 대신해 처리한 프리킥에서 어시스트를 기록했다는 점이 고무적이었다.

4월 30일 K리그 클래식 8라운드 수원 삼성과의 원정 경기에서 선발 출장하여 거친 경기속에 고군분투하였다. 시종일관 위협적인 모습을 보이다 후반 12분 결국 아드리아노 골을 어시스트하였다.

5월 11일 FA컵 32강 대구 FC와의 홈 경기에 선발 출장하여 아드리아노와의 환상적인 콤비플레이로 3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어시스트 1, 어시스트 2, 어시스트 3 6월 A매치 기간에 일본 국가대표팀의 부름을 받을 것이라는 기사들이 나오자마자 환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자격이 있음을 증명했다.[6]

6월 12일 K리그 클래식 13라운드 수원 FC와의 원정 경기에 선발 출장하여 후반 2분 데얀의 패스를 받아 팀의 두번째 골이자 자신의 시즌 첫 골을 터뜨렸다. 그러나 이 날 경기에서는 바람빠진 공을 손으로 잡아서 경기를 중단시켰기 때문에 경고를 받았다. 심판이 경기를 중단시키기 전에 중단시켜서 받았다고 하는데... 경기가 끝난 후 연맹측에서는 이 장면을 두고 "주심의 옐로카드가 과했다."라고 했지만 사후징계 감면 논의는 '퇴장'의 경우만 한다는 이유로 경고 판정을 번복시켜주지는 않았다. 기사 이 경고 한 장을 추가하며 경고 3장 누적으로 1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최용수 감독이 떠나고 새로 황선홍 감독이 부임하면서 박주영과 데얀이 투톱으로 기용되고 있는데 중원에서 이들을 받쳐주고 볼을 공급해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다만 4백으로 전환을 마친 황선홍 감독은 중원에 패서들만 두기 보단 적극적인 드리블 돌파와 슈팅으로 상대 수비진을 흔들어 줄수 있는 미드필더를 두기 원하는지라 24라운드 상주전, 25라운드 수원전에는 이석현에 밀려 선발 명단에서 빠졌다. 26라운드 전남전에서 주세종이 선발에서 빠지고 그 자리에 들어가는 등, 황선홍 체제에선 최용수 체제에서처럼 무조건 선발 출전이 아니라 역할이 비슷한 이석현, 주세종 등과 로테이션으로 출장하며 총 32경기 1골 4도움이라는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하였고, 팀이 마지막 라운드에서 역전 우승을 하면서 본인의 커리어에 K리그 클래식 우승을 추가했다.

2.4. FC 도쿄

파일:다카하기 도쿄 2022.jpg
시즌 종료 후 하대성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FC 도쿄로 이적하면서 K리그 생활을 예정보다 빨리 마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트레이드에 대해서는 팀의 핵심 미드필더였던 하대성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은 반갑지만, 하대성이 이제 나이가 적지 않은데다가[7] 일본에서는 부상으로 제대로 활약을 하지 못했고, 거기에 하대성이 없는 동안 다카하기의 활약도 상당히 쏠쏠했기 때문에 굳이 트레이드 대상으로 다카하기를 골랐어야 했냐며 팬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 그리고 실제로도 이 트레이드는 서울의 압도적인 손해로 남았는데, 다카하기는 도쿄로 이적한 후에 대표팀에 다시 발탁되었을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반면, 하대성은 서울 복귀와 동시에 장기 부상을 끊으면서 팀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당 트레이드로 인해 FC서울 팬들은 극대노했고, 분노의 대상은 황선홍 감독과 FC서울 프론트였으며 이후 다카하기 본인이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황선홍 감독은 다카하기의 잔류를 원했고 본인도 한국 생활에 애착을 느꼈으나, FC 도쿄 측에서 자신의 해외 리그 경험을 높이 평가하고 적극적으로 영입 의사를 밝히자 고민 끝에 새로운 도전을 해보기로 결심하고 이적을 택했다고 한다. # 비록 팀을 떠나긴 했지만 한국에서의 삶에는 큰 만족감을 느꼈다고 밝힌 것을 생각하면 나중에 다시 K리그로 돌아올 가능성도 있을 듯. 그러나 2017 시즌이 끝난 뒤 도쿄와 재계약을 맺으면서 그 기대는 훗날로 미뤄지게 되었다. 덤으로 2018년 들어서 2018년 서울의 외국인 농사를 보고 있으면 황선홍 감독이 진짜로 붙잡았는지도 의문이며[8] 실제로 2016년 중반부터 최용수 체제가 끝나고 황선홍 체제가 시작되면서 출장이 많이 줄어들었다. 즉, 감독과 의견이 안 맞아서 FC 서울을 나갔을 확률이 매우 높다. 게다가 시즌이 끝난 뒤 도쿄와 재계약까지 맺으면서 서울로 돌아올 확률은 더욱 낮아졌다.

2019년 12월 26일, FC 도쿄와 다시 한번 재계약을 맺었다. #

2.5. 도치기 SC

2021년까지는 준주전급으로 자주 출장했으나 2022년에는 전반기 3경기 출장에 그치면서 주전 경쟁에서 밀렸고, 결국 출장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 여름 이적 시장에서 J2리그 팀인 도치기 SC로 임대 이적했다.

2022년 10월 9일, FC 마치다 젤비아 원정에서 전반 42분 데뷔골로 팀의 1-0 승리를 가져왔다. # 그리고 시즌 종료 후인 2022년 12월 2일, 도치기 SC로 완전이적이 발표되었다. #

2023년 3월 19일, 오미야 아르디자를 상대로 홈경기에서 74분 교체 출전, 81분에 시즌 첫골이자 역전골을 터뜨렸다. # 이 골은 핸드볼 파울이 분명하지만 상대팀 수비들도 눈치채지 못하고 다카하기 본인도 시치미 뚝 떼고 관중석으로 달려갔으며 J2리그에는 VAR이 없기 때문에 골로 인정되었다. #

2.6. 알비렉스 니가타 싱가포르 FC

시즌 종료 후 다시 계약 만료로 풀렸고, 싱가포르에 있는 알비렉스 니가타의 위성구단인 알비렉스 니가타 싱가포르 FC로 이적했다. #

3. 국가대표 경력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대표팀[9] 발탁을 시작으로, 2013년 동아시안컵에 출전하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고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으며 한일전에도 출전했다. 다만 한일전에선 하대성을 필두로 한 한국 중앙 미드필더들에게 일방적으로 제압당했다.

2015년 3월 발표된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의 일본 대표팀 감독 부임 후 첫 대표팀 명단에 예비 선수로 이름을 올렸으나 출전은 못했다. 기사 이후로는 한동안 대표팀과 인연이 없다가 2017년 3월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아시아 지역 예선을 앞두고 3년 8개월만에 다시 대표팀에 발탁되었다. # 다카하기와 함께 발탁된 선수들 중에는 기요타케 히로시, 우사미 타카시, 혼다 케이스케, 카가와 신지 등의 역할이 비슷한 선수들이 많지만, 이들이 최근 들어 대체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것을 생각하면[10] 다카하기의 역할이 한층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017년 EAFF E-1 챔피언십을 앞두고 다시 대표팀에 선발되었는데, 다카하기가 K리그 경험이 있는 만큼 한일전을 대비해서 한국 축구를 잘 알고 있는 다카하기를 크랙으로 쓰기 위해 선발한 것으로 보였으나, # 예상과 달리 한일전에는 출장하지 않았다. 이때 다카하기가 출전했다면 적어도 대패는 하지않았을거란 추측도 있다.

4. 플레이 스타일

“축구를 영리하게 하는 선수고, 거친 몸싸움이 오가는 K리그에서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경기 운영과 패스 능력 모두 뛰어나다.” - 최용수
"다카하기는 히칼도와 비슷하다." - 김진규

FC 서울 입단 인터뷰에서 자신에 장점에 대한 질문을 받고 "제 장점은 공격 시에 골로 연결될 수 있는 패스를 하는 것과 볼을 빼앗는 것입니다." 라고 답했다.

FC 서울에 입단하기 전에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되며 전형적인 공격형 미드필더의 면모를 보였으나 서울에 입단하여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되면서 좀 더 많이 뛰는 스타일로 변했고 자신의 장점인 볼 탈취능력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가끔 허를 찌르는 킬패스도 뿌리는데 간혹 이게 동료의 허도 찔러서 동료가 받지 못하면 상상으로 패스한다고 까인다. 하지만 그런 패스가 연결되면 그야말로 눈이 즐거운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공간 이해도가 높다. 가령 3백 중 센터백 한명이 오버래핑을 올라가면 자신이 내려가서 그 자리를 메우기도 하고, 빌드업을 위해 볼을 받기 편한 위치로 내려왔다가도 공격 진영에 빈 공간이 보이면 단숨에 침투해서 좋은 장면을 만들어낸다. 2015년 10월 14일 울산 현대와의 FA컵 4강전에서 선제골을 넣는 장면이 그런 면을 제대로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영상[11]

5. 여담

6. 수상

6.1. 대회 기록

6.2. 개인 수상

6.3. 관련 문서


[1] 도치키 SC 공식 프로필 [2] 재일교포 출신 작사가로 대한민국 국적자다. [3] 2013년생으로 대한민국-일본 복수 국적을 갖고 있다. [4] 에스쿠데로는 일본 국적 외에도 스페인 아르헨티나 국적 또한 갖고 있다. 즉 복수 국적. [5] 10번은 팀의 공격을 주도하는 주전 공격수나 공격형 미드필더들이 주로 받는 번호며, 다카하기의 포지션을 생각하면 아주 잘 맞는 번호인 셈이다. [6] 그러나 결국 일본 대표팀에 차출되지는 못하였다. 이후 있었던 우라와 레즈와의 경기에서 할릴호지치 감독이 보고있는데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추측된다. [7] 1984년생으로 2017년 기준으로 벌써 30대 중반이다. [8] 황선홍/지도자 경력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황선홍은 외국인 선수들과는 담 쌓은 사람이다. 다카하기뿐만이 아니라 아드리아노 데얀도 황선홍 체제에서는 자신들의 장점을 살리지 못했고, 결국 이들도 서울을 떠났다. [9] 여담이지만 이때의 대표팀 동기들로는 로버트 컬런, 마스다 치카시, 이에나가 아키히로 등의 前 K리거들이 있다. [10] 혼다는 2016년부터 AC 밀란에서 완벽한 전력 외로 분류된 상황이며, 카가와는 기량은 여전하지만 경쟁자들의 플레이가 워낙 뛰어나 빛을 발하지 못하는 중이고, 우사미도 지동원과의 경쟁을 이기지 못하고 벤치워머 신세, 거기에 기요타케는 아예 세비야에서 입지를 잃어버리면서 결국 일본으로 귀국했다. [11] 영상은 차두리가 횡으로 길게 온 롱패스를 잡는 장면부터 시작되는데 그 롱패스를 준 것이 화면 최하단에 보이는 다카하기다. 영상에서 다카하기의 움직임을 유심히 보면 최후방에서 패스를 뿌리자마자 공격 상황에 맞춰 전진을 하고 페널티 박스까지 단숨에 침투하는 일련의 과정을 볼 수 있다. [12] 히로시마에서는 가사가 '라라라라라라라 다카하기 요지로 / 카가야케 오레타치노 쥬방 요지로(빛나라 우리의 10번 요지로)'였다. 10번은 히로시마에서 달았던 등번호이다. 현재 FC 도쿄에서도 이 응원가가 쓰이는데 서울 시절과 가사가 동일하다. 히로시마 시절에는 데뷔부터 10년 넘게 같은 팀에서 활약했으나, FC 도쿄에서는 이적생이고 등번호도 달라서 히로시마 시절의 가사를 그대로 가져다 쓸 수는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13] 다카하기는 히로시마에 있던 2007년, 케이지로는 고베에 있던 2012년에 팀의 J2리그 강등을 경험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