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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 비야/클럽 경력/발렌시아 C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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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 비야
2005-2010
파일:1274263061477_presentacion.jpg
▲ 2005년 계약 당시
소속팀 <colbgcolor=#ffffff,#191919> 발렌시아 FC ( 라리가)
등번호 7
기록
파일:라리가 산탄데르 은행 로고(가로형/화이트).svg
166경기
107득점 22도움
18경기
8득점 3도움
파일:UEFA 유로파 리그 로고 화이트.svg
16경기
8득점
파일:코파 델 레이 로고.svg
17경기
4득점 2도움
파일:Supercopa-de-España-RFEF.svg
2경기
1득점 1도움
파일:UEFA 인터토토컵 로고.svg
6경기
1득점
합산 성적
225경기
129득점 28도움
1. 개요2. 이적3. 2005-06 시즌4. 2006-07 시즌5. 2007-08 시즌6. 2008-09 시즌7. 2009-10 시즌8. 총평

[clearfix]

1. 개요

다비드 비야 발렌시아 CF 경력을 소개하는 문서이다.

2. 이적

레알 사라고사에서 성공을 거둔 후, 팀은 자금이 필요하게 되었고, 그 결과, 비야는 2005-06 시즌에 스페인 축구의 거함들 중 하나이며 신임 감독인 키케 산체스 플로레스가 취임한 발렌시아에 €12M의 가격으로 매각되었다.

3. 2005-06 시즌

발렌시아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나서의 첫 경기인 벨기에의 KAA 헨트와의 UEFA 인터토토컵 경기에서 비야는 발렌시아에서의 첫 골을 신고하였고, 팀은 2-0으로 이겼다. 그는 2005년 8월 27일, 1-0으로 승리한 레알 베티스와의 경기에서 교체 출전하며 리그 데뷔전을 치르었다. 그 다음 경기에서 친정팀 레알 사라고사의 경기에서 대체적으로 1-2로 끌려가는 와중에 비야는 루벤 바라하와 81분에 교체 투입되어 1분만에 동점골을 득점하였고, 경기는 2-2로 종료되면서, 발렌시아는 승점 1점을 챙겼다.

9월 21일, 비야는 FC 바르셀로나와의 캄 노우 원정경기에서 극적인 골을 득점하며 발렌시아에 또다시 귀중한 승점 1점을 안겼는데, 한때 빅토르 발데스의 걷어내기가 비야에 리바운드되어 골네트 안으로 빨려들어가면서 발렌시아가 리드를 잡기도 하였다. 10월 23일, 비야는 또다른 스페인 축구의 거함인 레알 마드리드 CF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결승골로 격침시켰다. 그리고 2006년 2월 12일에는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또다시 득점하였고, 그의 한 골로 1-0으로 승리하여 승점 3점을 쟁취하였다. 비야는 2006년 2월 4일,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와의 리아소르 원정에서 또다시 득점하였는데, 이 골을 ESPN에서는 "훌륭한"으로 묘사되었으며, 득점 과정의 "터닝"을 더욱 강조한 시드 뢰베는 "그의 최고 (골)"이라고 묘사하였다. 그는 볼을 중앙 부근 (45m 외곽) 에서 공을 찼고, 이 공은 키퍼의 머리를 지나 네트를 갈랐다. 2006년 4월 23일, 그는 아틀레틱 빌바오와의 산 마메스 리가 원정 경기에서 5분 간격 (80분과 85분 사이) 으로 첫 해트트릭이자 라리가 역사상 최단 시간 해트트릭을 기록하였다. 이 시즌동안 그는 발렌시아 소속으로 35번의 리그 경기에서 25번의 득점을 기록하였고, 이 시즌 득점왕에 오른 바르셀로나의 사무엘 에투에 이어 득점 2위에 랭크되었다. 비야가 이 시즌에 기록한 총 득점 횟수는 에드문도 수아레스가 60년도 더 전에 기록한 이래 발렌시아 선수로는 역대 최고이다.

2005-06 시즌: 47경기(선발 41경기) 28골 3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37 35 2 25 3
코파 델 레이 4 4 0 2 0
인터토토컵 6 2 4 1 0
합계 47 41 6 28 3

4. 2006-07 시즌

비야는 2006-07 시즌에도 훌륭한 활약을 계속하였고, 전 레알 마드리드의 거물 페르난도 모리엔테스와 공격 듀오를 구축하였다. 비야와 모리엔테스는 모든 대회를 통틀어 43골을 합작하였다. 같은 해, 비야는 UEFA 챔피언스 리그에 데뷔하였고 그의 첫 경기는 0-1로 패한 잘츠부르크와의 경기로 막판에 교체 투입되었다. 2차전에서는 선발로 출전해 득점을 기록하여 3-0 승리에 일조하였고, 발렌시아는 챔피언스리그 조별 리그 진출에 성공하였다. AS 로마 샤흐타르 도네츠크를 상대로 기록한 순도 높은 골은 발렌시아의 16강 진출을 도왔고, 인터 밀란과 맞붙게 되었다. 비야는 1차전 원정 경기에서 프리킥으로 득점하였는데, 인터 밀란의 수비수들 중 한 명은 비야가 "우리를 바보같이 보이게 만들었고, 그가 혼자 다 하였다."며 불만스러워 하였다. 발렌시아는 8강에 진출하여 첼시를 상대하였다. 비야는 1, 2차전에 모두 출전하였으나, 득점에는 실패하였다. 발렌시아는 결국 런던 연고의 팀에 합계 2-3으로 패해 탈락하였다. 2006년 10월, 그는 발롱도르 50인 후보 중 한명으로 선정되었다.

RCD 에스파뇰과의 경기에서의 천금같은 골, 세비야전의 결승골로 비야는 이 시즌에 16골을 기록하였고, 그는 이 시즌의 라리가에서 최다 득점 6위에 랭크되었고[1], 더 많은 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2006-07 시즌: 49경기(선발 46경기) 20골 8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36 35 1 15 5
챔피언스 리그 9 9 0 4 3
코파 델 레이 2 1 1 0 0
챔피언스 리그 예선 2 1 1 1 0
합계 49 46 3 20 8

5. 2007-08 시즌

2007-08 시즌은 비야나 그의 팀 동료에게 있어서 힘든 시즌이었다. 비록 그는 헤타페와의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 승리하며 발렌시아 소속으로 트로피를 한개 들어올렸으나, 시즌 초에 그들의 지도자였던 키케 산체스 플로레스가 해임되었고, 이후 4월 22일에 성적 부진으로 후임이자 최악의 운영을 보여준 로날드 쿠만이 경질당하였다. 쿠만의 뒤를 이은 감독은 알메리아 감독으로 높은 평가를 받은 우나이 에메리였다. 쿠만 감독 하에, 비야는 26경기에 출전하여 18번 득점하였다. 그는 발렌시아 이적 후 처음으로 트로피를 획득하였는데, 그는 개인 통산 두 번째 코파 델 레이 트로피를 준결승전에서 바르셀로나를 3-2로, 결승전에서 헤타페를 3-1로 이기면서 획득하였고, 팀은 이로 인해 UEFA 컵 진출권을 획득하였다. 시즌 종료 후, 그는 발렌시아와 6년 계약 연장을 하면서, 2014년까지 클럽에 남게 되었다.

이 시즌에, 비야는 또다시 챔피언스리그에서 활약하였다. 그는 1-0으로 이긴 샬케 04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득점하였고, 첼시와의 경기에서 1-0 선제골을 득점하였으나, 조 콜 드록바에게 연달아 실점하며 1-2로 패하였다. 발렌시아는 죽음의 B조에서 최하위로 탈락하였다. 발렌시아 리그 100호 출전 경기에서, 비야는 레반테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였는데, 이는 발렌시아에서의 54, 55, 56호 리그 골이었다. 그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시즌 최종전에서 2골을 추가하며 시즌을 통산 18골로 마무리하였다.

2007-08 시즌: 41경기(선발 37경기) 22골 7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28 26 2 18 6
챔피언스 리그 5 5 0 2 0
코파 델 레이 6 5 1 1 1
챔피언스 리그 예선 2 1 1 1 0
합계 41 37 4 22 7

6. 2008-09 시즌

유로 2008에서 득점왕을 차지한 후, 비야는 2008-09 시즌에도 그 기량을 유지하였는데, 그는 3-0으로 이긴 마요르카와의 시즌 개막 경기에서 시즌 1호골을 득점하였다. 베른트 슈스터 당시 레알 마드리드 감독이 비야 영입에 실패한 후 비야에게 "야망이 없다"라고 비판하였고, 비야는 이에 대해 "축구 야망은 입으로 꺼내는 것이 아니라, 발로 보이는 것이다. 당신은 많은 이유를 대어 가며 비판할 수 있다. 안 좋은 하루를 보내거나, 기회를 놓치거나, 많은 이유로. 그러나 나는 항상 야망을 가지고 있고 항상 그럴 것이다. 나는 그 이유를 사라고사, 스포르팅, 랑그레오, 그리고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필드 위에서 증명하였다고 생각한다."라고 대응하였다. 2008년 12월 2일, 비야는 2008 발롱도르 7위에 랭크되었고, 2009년 1월 12일에 비야는 국가대표팀 팀 동료이자 바르셀로나 선수인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와 더불어 2008 FIFA 올해의 선수 랭킹 공동 9위에 랭크되었다.

발렌시아는 UEFA컵 조별 리그를 2위로 통과하였으나, 비야는 이 대회에서 많이 출전하지 못하였고, 주로 미출전 교체 요원이거나 막판 교체 선수였다. 그는 CS 마리티무와의 경기에서 막판 결승골을 득점하였고, FC 디나모 키예프와의 32강전에도 출전하였으나, 득점하는데 실패하였다. 1, 2차전에서 합계 3-3으로 동률을 이루었으나,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다음 라운드 진출권을 FC 디나모 키예프에게 내주어야 했다.

시즌 중반에 꾸준히 득점을 기록한 비야는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전에서 득점하였으나 경기 도중에 다니엘 아란수비아에게 반칙을 하면서 두 번째 옐로카드를 받은 그는 경고 누적으로 퇴장 당하였다. 그 결과 레알 바야돌리드와의 다음 홈 경기에 결장했고 팀은 1-2로 패배하였다. 징계에서 복귀를 준비하는 과정에 비야는 왼쪽 무릎 연골에 부분 전위로 인한 염증에 시달리면서 보름 간 추가로 결장하였다.[2] 2009년 4월 5일, 그는 마침내 복귀하였고, 큰 문제 없이 기량을 회복하였으며, 4-1로 이긴 헤타페전에서 득점하였다.

4월 12일, 비야는 스포르팅 히혼의 홈그라운드이자 그가 프로 무대에 입문한 엘 몰리논으로 귀환하였다. 그는 이 경기가 그에게 있어서 감정적일 것이라 인정하였고, 팀의 두번째 골을 득점한 후 경기 전의 약속대로 골 세레머니를 펼치지 않으며 팀은 3-2 승리를 거두었다. 그의 비야레알전 골은 이 시즌의 리그 26호골이었고, 그는 이후 시즌 최종전인 아틀레틱 빌바오전에서 2골을 추가하며 시즌 통산 28골을 넣으며 마쳤고, 마리오 켐페스 프레드라그 미야토비치가 각각 1978년과 1996년에 세운 기록과 동률을 이루었다. 켐페스는 34경기 28골, 미야토비치는 같은 골 수를 40경기 출전으로 기록하였고, 비야는 결국 33경기 출장 28골의 기록으로 이들보다 높은 득점률인 경기당 0.84골을 기록하였다. 같은 시즌, 비야는 득점 횟수만으로 발렌시아에서의 최고 시즌을 보냈다.

이 시즌까지 합쳐, 비야가 발렌시아에서의 4시즌간 기록한 득점 횟수보다 더 기록한 선수는 에투 (6골차)가 유일했다. 영국의 칼럼니스트 시드 뢰베는 에투가 " 비야의 팀보다 129골을 더 넣은 팀에서" 업적을 달성하였고, "대체로 비야가 발렌시아의 코너킥과 프리킥을 담당하였으며, 요점은 좋은 선수일지라도 스스로 자신의 크로스를 헤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라며 관심을 환기시켰다. 비야는 28골로 디에고 포를란 (32골)과 에투 (30골)에 이어 라 리가 득점 랭킹 3위에 랭크 되었다. 발렌시아 선수로써의 최고 통산 골을 60년만에 기록한 그는 2005-06 시즌보다 2008-09 시즌에 3번 더 기록하는데 성공하였다. 28골과 타 대회에서 기록한 3골을 더해서, 비야는 180번의 발렌시아 공식 경기에서 101번 득점에 성공하였다.

2008-09 시즌: 43경기(선발 37경기) 31골 8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33 33 0 28 6
UEFA컵 5 1 4 1 0
코파 델 레이 3 1 2 1 1
수페르코파 2 2 0 1 1
합계 43 37 6 31 8

7. 2009-10 시즌

스페인 국가대표팀이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충격적인 탈락을 경험한 후인 2009-10시즌 7월 27일, 비야는 휴가를 마치고 언론들이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리버풀, 첼시, 그리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같은 거함 클럽들과 링크되었다는 보도를 연이어 내는 와중에 복귀하였다. 비야는 "여름 내내 보도 내용에 부인만 하고 보낼 수 없으므로, 조용히 보내고 싶습니다... 저는 발렌시아에 이득이 되기 위해 떠나야 한다고 들었고, 그 이후로 모든것이 바뀌었으며, 제가 클럽 바깥에서 활동하는 것을 상상도 못했습니다. 유로 2008 대회 전, 클럽은 제 값이 얼마면 좋겠냐는지, 그들이 저를 매각하려는 줄 알았으나, 휴가에서 돌아왔을 때, 비센테 소리아노는 제가 발렌시아를 떠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렇게 제 의혹을 모두 씻어냈습니다. 발렌시아와 스페인 국가대표팀에서 이룬 성과 덕분에 제가 놓친 열차는 한 대도 없었습니다." 라며 계약을 끝까지 이행하여 메스타야에 잔류하겠다고 이적성을 일축하였다. 발렌시아 팬들에게 사과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받자 그는 "저는 살인한 적 없고, 용서를 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라며 대답하였다.

2009년 8월 20일, 비야는 시즌 첫 공식 경기인 스타벡과의 UEFA 유로파 리그 예선전에서 1호골을 쏘았고, 팀은 3-0으로 이겼다. 그는 9월 13일 레알 바야돌리드와의 경기에서 멀티골이자 2009-10 시즌의 리그 1, 2호골로 흐름을 이어나갔다. 그는 일주일 후, 2-2로 비긴 친정팀 스포르팅 히혼과의 메스타야 홈 경기에서 2골을 추가하였는데, 이 경기에서 그는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에 임하였다. 경기 종료 후, 비야는 우나이 에메리 감독의 결정에 대해 "후반전의 접근 방식은 옳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방심하였고, 작년과 동일한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무엇이 발생했던간에, 이미 일어난 일이나, 상대 골키퍼가 잘 하였고, 그와 대조되게 우리는 잘 하지 못하였습니다." 라며 불만을 표출하였으나, 다음 날, "접근 방법에 대해 말하자면, 저는 팀에 이야기할 때 진심으로 말했는데, 승점 2점을 잃은 방식에 대해 짜증이 났었고, 제 생각에 대해 말했으나, 해명해야 할 것은 모두 해명했습니다." 라며 에메리를 비난한 것을 부인하였다.

2009년에 그는 스페인 국가대표팀과 발렌시아 소속으로 54번의 공식 경기에 출전하여 43골을 득점하면서 그 어느 선수보다 더 많은 골을 득점하였다. IFFHS는 그를 "2009년 세계 최고 득점자" 목록의 4번째에 올려놓았다.

10월 18일, 비야는 발롱도르 후보로 명명되었고, 약 2주 후인 10월 30일, 그는 FIFA 올해의 선수 후보로 선정되었다. 3번의 리그 경기에서 무득점으로 침묵한 후, 비야는 4-1로 이긴 2010년 1월 17일의 비야레알전에서 멀티골을 득점하였고, 이 중 첫 번째 골은 그의 발렌시아 리그 100호골이었다. 2010년 2월 22일, 그는 헤타페전에서 또 다시 멀티골을 득점하였는데, 두 번째 칩슛 골은 호르디 코디나를 상대로 한 "멋진 치핑" (ESPN의 묘사) 이었다. 3월 14일 발렌시아는 UEFA 유로파 리그에서 베르더 브레멘과 베저슈타디온 원정 경기를 치르었다. 비야는 해트트릭을 달성하였는데, 그의 3번째 골은 7m 밖에서 넣었다. 경기는 4-4 무승부로 끝나면서 발렌시아가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였다. 2010년 5월 4일, 발렌시아는 헤레스를 상대하였는데, 비야는 선발로 출전하지 않았으나, 62분에 교체 투입되었고, 경기는 3-1로 종료되었다. 발렌시아는 리그 2경기를 남겨 두었으나, 비야는 이 두 경기에 모두 결장하였고, 헤레스전은 그의 발렌시아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그리고 2010년 5월 19일, 현지 시간으로 1시 30분 경 바르셀로나로 이적이 완료되었다. 40m 유로(대략 34m 파운드)에 합의. 그리고 입단식까지 거치면서 완벽하게 바르셀로나행이 결정되었다.

2009-10 시즌: 45경기(선발 40경기) 28골 2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32 31 1 21 2
유로파 리그 10 7 3 6 0
코파 델 레이 2 1 1 0 0
유로파 리그 예선 1 1 0 1 0
합계 45 40 5 28 2

8. 총평

파일:20201022_185722.jpg
다비드 비야하면 무엇보다 빼놓고 설명할 수 없는게 귀신같은 라인 브레이킹, 치명적인 골 결정력, 그리고 외로운 공격 상황에서도 선봉장으로써 자신의 몫을 100% 다 해낸다는 신뢰를 주는 믿음직한 플레이였는데 이러한 장점들이 최고조에 달했던 것이 발렌시아CF 시절이다. 이 시절 그는 팀이 최고의 페이스를 달릴 때도, 감독의 해괴한 운영으로 팀의 조직력이 와해되는 상황에서도 꾸준히 최전방에서 공격을 이끌었고 심지어 키플레이어로써 전방에서 조율을 해주면서도 발렌시아 득점의 대부분을 완벽히 책임져주었다.


[1] 국가대표팀 동료 라울 타무도와 같은 횟수의 득점을 기록 [2] 누만시아, 레크레아티보 우엘바, 그리고 라싱 산탄데르전을 결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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