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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2 23:12:56

다마 맨홀 변사 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개요2. 사건 경위
2.1. 발견되기 전의 행적
3. 의문점
3.1. 사라진 통장과 일기3.2. 6번의 무언전화3.3. 왜 맨홀에 시신을 유기했나?
4. 나타난 유력 용의자, 그러나...5. 끝내 미제 사건으로 남다6. 관련 문서

1. 개요

多摩保母殺人マンホール死体遺棄事件[1]

1997년 일본에서 발생한 의문의 변사 사건.

2. 사건 경위

1997년 1월 14일 오전 8시경 도쿄도 다마시 시청에 카이도리(貝取) 1번가 65번지의 슈퍼마켓 주차장 앞 맨홀에서 오수가 넘친다는 민원 전화가 걸려왔다. 오전 10시 30분경 시청 위탁 하수도 관리업체 직원이 맨홀을 확인하던 중 일반적으로 오수관에서 나는 냄새와는 다른 뭔가 이질적인 악취가 진동하는 것을 감지하고 이상하게 여겨 맨홀 뚜껑을 열어 안을 확인했다. 그러자 오수관 아래 바닥에 무언가 마네킹 같은 것이 보여 더 자세히 확인한 순간 직원은 경악하고 말았는데 가까이서 본 그것은 마네킹이 아니라 부패한 사람의 시신이었다. 오수가 넘친 원인은 바로 시신이 부패하면서 떨어져 나온 살점이 쌓이면서 오수관을 막았기 때문이었다.

발견 당시 시신은 부패가 상당히 심한 상태로 바닥에 걸터앉은 자세를 하고 있었다. 대략 신장 150~155cm 가량의 20대에서 40대로 추정되는 여성으로, 원피스와 스웨터를 입고 있었으며 신발은 신지 않았으며 정수리와 코 부근에서 골절이 발견되었다. 워낙 상태가 좋지 않아 신원 파악에 한동안 난항을 겪었으나 치과에서 시신의 치아 치료흔 대조를 실시한 결과 시신이 발견된 맨홀에서 약 200m 거리에 거주하던 보육교사 야기하시 토키코(八木橋富貴子, 당시 39세)로 판명되었다.

야기하시는 그동안 행방이 묘연하여 가족들이 실종신고를 한 상태였는데 실종된 지 약 10개월 후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그러나 전술했듯 시신의 부패가 심해 정확한 사망 원인은 규명하지 못했다.

2.1. 발견되기 전의 행적

야기하시 토키코는 아오모리현 출신으로, 1977년 아오모리의 전문대학을 졸업한 후 다마시내의 한 어린이집에 보육교사로 취직했는데 이 어린이집에서 14년 동안 근무한 뒤 1991년 3월에 결혼을 이유로 퇴직했다가 바로 다음 달인 4월에 키타구의 다른 어린이집으로 이직했다.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야기하시는 평소 근무 태도가 착실했고 지각이나 결근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1996년 2월 27일 퇴근한 후 오후 17시 30분경 미타선 모토하스누마역에서 동료와 헤어졌고 18시 50분경 다마 시내의 슈퍼에서 장을 본 뒤 자택으로 돌아갔으며 밤 21시경 야기하시의 자택을 방문한 신문 수금원이 그녀를 목격한 것을 마지막으로 야기하시의 생사는 시신이 발견되기 전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다음날이 되어도 어린이집에 출근하지 않자 3월 1일에 아오모리에서 상경한 야기하시의 부친이 실종신고를 했다.

다만 모토하스누마역에서 동료와 헤어졌을 때와 시신으로 발견되었을 때 입고 있던 옷이 달랐다는 점에서 누군가에게 불려 나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되었다. 당시 야기하시에게는 교제 중이던 남성이 있었는데 발견 당시 원피스를 입었던 것을 보면 이 남성을 만나러 갔던 것으로도 추측된다.

3. 의문점

3.1. 사라진 통장과 일기

야기하시의 자택에는 누군가가 침입해서 물건을 뒤지거나 다툼이 벌어진 흔적은 없었으나 그녀가 항상 가지고 다니던 파우치가 없어진 상태였다. 이 파우치에는 지갑과 750만엔이 들어있는 통장, 그리고 일기장 등이 들어 있었지만 통장에서 돈이 인출되지 않은 점으로 보아 금전 목적의 범행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바로 함께 사라진 일기장으로, 야기하시는 평소 매일 일기를 쓰는 습관이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그녀의 실종 일시로부터 5~6년 전인 1990년에서 1991년까지의 일기만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 점으로 보아 범인은 금전을 목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은 아니며 사라진 일기에는 범인에게 불리한 내용이 적혀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3.2. 6번의 무언전화

야기하시가 실종된 지 3일 후인 3월 1일 전술된 바와 같이 그녀의 부친이 상경하여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고 그대로 딸의 자택에서 4월 6일까지 머물렀는데 이 약 1개월 사이에 야기하시의 자택 전화로 무언전화가 6차례나 걸려온 일이 있었다. 6차례에 걸친 무언전화가 범인의 소행인지는 알 수 없으나 1개월 남짓한 기간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누군가가 부친의 동향을 캐내려고 한 시도일 가능성이 있으며 야기하시가 생전에 다른 사람과 인간관계 등으로 갈등을 빚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실제로 야기하시는 실종되기 전 여러 남성과 교제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불륜 관계인 남성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그녀와 교제한다는 소문이 있었던 남성들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동의 부친, 동료 보육교사의 남편, 자영업자, 공무원 등 여러 부류의 남성들이었다. 야기하시는 1991년 결혼을 이유로 한 차례 퇴직했으나 실제로는 결혼하지 않고 불과 1개월 후에 키타구의 어린이집으로 이직했는데 이 어린이집은 야기하시의 집에서 출퇴근에 1시간 30분이 걸리는 곳이었다.

게다가 야기하시는 실종 직전에 머리를 짧게 자른 상태였다. 당시 그녀가 담당한 반의 아이들이 졸업하는 대로 자신도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고향인 아오모리로 돌아가겠다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 이로 미루어 보아 야기하시는 퇴직을 계기로 그 동안 교제하던 남성들과의 관계도 모두 청산할 생각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앙심을 품은 누군가가 범행을 저지르고 자택에 무언전화를 걸었다고 가정하면 개연성은 충분하지만 역시 진실은 알 수 없다.

3.3. 왜 맨홀에 시신을 유기했나?

일반적으로 맨홀 뚜껑은 무게가 40kg 이상으로 무겁기 때문에 어지간한 힘으로는 쉽게 여는 것이 불가능하다. 야기하시의 시신이 발견된 맨홀은 슈퍼마켓 주차장과 인접한 도로에 있었기 때문에 시신을 유기하던 중 누군가에게 목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시신이 발견된 오수 맨홀은 3년에 1번씩 정기점검이 있기 때문에 일단 여기에 시신을 유기하면 당분간은 발견이 쉽지 않겠지만 결국 점검 시기가 되면 언젠가는 발견되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인이 왜 굳이 시신 유기 장소로 맨홀을 선택했는지 알 수 없으며 사건 발생으로부터 [age(1997-01-14)]년이 지난 현재도 의문으로 남아 있다.

4. 나타난 유력 용의자, 그러나...

당시 경찰에 따르면 용의자로 거론된 사람이 무려 10명에 달했고 야기하시의 동료들은 실종된 그녀를 찾는 모임을 결성하고 경찰 측에 그녀의 불륜 상대들을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동료들은 시신이 발견되기 전부터 야기하시가 여러 사람과 불륜 관계에 있었던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불륜 상대와의 갈등 끝에 사건에 휘말린 것으로 추측했다. 10명 중 다시 추리고 추려낸 끝에 경찰은 그녀의 불륜 상대로 지목된 40대 시청 직원(이하 A)과 40대 자영업자 남성(이하 B), 그리고 동료 보육교사의 남편(이하 C)의 3명을 유력 용의자로 보고 이들을 상대로 조사를 시작했다.

이 3명 중 B와 C에게는 명확한 알리바이가 있었으나 유일하게 A만 알리바이가 애매했기 때문에 경찰은 이 사람을 범인으로 잠정 추정하고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공교롭게도 A는 직무상 맨홀 뚜껑을 열 때 사용하는 전용 도구를 소지하고 있어 맨홀을 열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A는 야기하시가 상경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교제하다가 2~3년만에 한 번 헤어졌으나 A가 다른 여성과 결혼한 시기부터 다시 교제를 시작하면서 불륜 관계를 지속했다.

여기서 야기하시와 A가 재결합한 시기가 1991년이고 이 시기에 그녀가 결혼을 이유로 어린이집을 한 차례 그만둔 데다 1990년부터 1991년까지의 일기가 사라진 점, 평소 야기하시가 결혼을 강하게 원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아마도 A는 아내와 이혼하고 야기하시와 결혼하려고 했으나 결국 없던 이야기가 되었고 당시의 일기에 A에게 불리한 내용이 적혀 있기 때문에 은폐 내지는 없애 버릴 목적으로 가져갔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여러 정황들을 고려할 때 A가 조만간 유력 용의자로 체포될 가능성이 점쳐졌으나 뜻밖에도 그는 체포되지 않았는데 경찰이 "단순히 맨홀 뚜껑을 열 수 있는 기구를 소지하고 있다는 점만으로는 재판을 유지할 수 없다"는 이유로 체포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A는 각 언론사 기자들 앞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한다.
"저는 도망치지도, 숨지도 않겠습니다. 하지만 저를 지목해 놓고 자신은 안전지대에 있는 줄 아시는 분들도, 의심스러운 점이 없다고 말하실 수 있겠습니까?"

5. 끝내 미제 사건으로 남다

결국 유력 용의자를 지목해 놓고도 이 사건은 끝내 미제로 남고 말았다. 그나마 법이 개정되면서 공소시효가 폐지됨에 따라 수사는 계속 진행 중이지만 좀처럼 진전은 없는 듯하다.

공교롭게도 고베 아동 연속 살상 사건과 같은 해에 연이어 벌어진 사건이다.

6. 관련 문서


[1] 다마 보모 살인 맨홀 사체유기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