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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06 12:33:56

니하완드 전투

니하완드 전투
아랍어: معركة نهاوند
영어: Battle of Nahāvand
시기 서기 642년
장소 이란 하마단 나하반드
원인 이슬람 제국의 가열한 정복전쟁.
교전국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50px-Flag_of_Afghanistan_%281880%E2%80%931901%29.svg.png 이슬람 제국 파일:faction_emblem_sassanid_256.png 사산 왕조
지휘관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50px-Flag_of_Afghanistan_%281880%E2%80%931901%29.svg.png 사아드 이븐 아비 와카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50px-Flag_of_Afghanistan_%281880%E2%80%931901%29.svg.png 알 누만 이븐 무카린†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50px-Flag_of_Afghanistan_%281880%E2%80%931901%29.svg.png 아므루 빈 마디 야크리브
파일:faction_emblem_sassanid_256.png 피루즈 호스로†
파일:faction_emblem_sassanid_256.png 마르딘샤
병력 30,000 명 100,000 ~ 120,000명[1]
피해 피해 규모 불명 38,000명
결과 이슬람 제국의 대승
영향 사산조 페르시아의 멸망.
조로아스터교의 쇠퇴와 페르시아의 이슬람화

1. 개요2. 배경3. 전개4.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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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642년, 엑바타나[2] 인근에서 벌어진, 이슬람 제국 라쉬둔 왕조(정통 칼리파)와 사산조 페르시아의 두 번째이자 최대 규모의 전투.

사아드 이븐 아비 와카스가 이끈 이슬람 군대가 페르시아군을 격파하며 페르시아의 이슬람화가 본격화 되었고, 이 전투의 결과로 결국 사산 왕조는 실질적으로 멸망한다.

2. 배경

633년부터 시작된 이슬람 제국과 사산 제국 간의 전쟁은, 636년의 카디시야 전투와 637년의 크테시폰 함락으로 메소포타미아가 이슬람화 된 후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3. 전개

사아드는 페르시아 진영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하여 칼리파 우마르[3]가 죽었다는 소문을 퍼뜨렸고, 이에 사기가 올라간 페르시아 기병대는 돌격하였다. 이슬람 군대는 거짓 후퇴로 카타프락토이[4]를 계곡으로 유인해 섬멸하였다.

4. 결과

전투 이후 사산 왕조의 마지막 황제 야즈데게르드 3세는 동쪽으로 도망쳤으나 결국 메르브에서 살해당한다.[5]


[1] 이들은 사산 왕조의 샤한샤 야즈데게르드 3세의 마지막 충성파 병력이였다. [2] 현재 이란 하마단 [3] 2년 뒤인 644년에 페르시아 출신 노예에게 암살된다. [4] 고대 이란의 중무장 기병 [5] 그의 후손들에 대해서는 야즈데게르드 3세 문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