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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08-21 21:54:38

뇌음신

惱音信

(? ~ ?)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

1. 개요

고구려 말기의 장수로 신라의 북한산성을 공격한 북한산성 전투에서 고구려군의 지휘관이었다.

2. 생애

661년( 보장왕 20년) 5월, 왕명을 받들어 말갈의 장수인 생해(生偕)와 함께 신라의 술천성(지금의 경기도 여주시)을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자 군사들 돌려 북한산성을 20일 동안이나 포위하여 공격하였다. 온달장군 때와 달리 이 때 신라 주력군은 작년에 멸망한 백제 땅에서 한창 귀실복신의 백제부흥군과 싸우고 있었으므로 북부 전선이 비어있어 고구려 입장에선 영토를 늘리기 좋은 타이밍이었다.

이때 뇌음신은 포차를 이용해서 돌을 날려 북한산성의 건물과 성벽을 파괴하였으나, 북한산성 성주였던 대사(大舍) 동타천(冬陁川)은 마름쇠[1]를 바닥에 깔아서 적의 침입을 막고 성 안에 있던 사찰 안양사를 헐어서 거기서 나온 목재로 대충 급조한 망루와 노포를 설치하는가 하면 성안의 주민 남녀 2,800여명을 모두 동원하여 적과 싸우게 하는 등 격렬하게 저항하였다. 어린이와 노약자까지 격려하여 20여 일을 버텼다고 한다.

북한산성은 점차 식량이 떨어져 곧 뇌음신에 의해 함락될 것처럼 보였으나 때마침 고구려군의 진영을 향해 큰 별이 떨어지고 천둥과 비가 내리자 고구려군 역시 사기가 떨어져 싸움을 멈추고 돌아갔다. 이런 재난이 일어난 것에 대해 삼국사기 신라본기에서는 북한산성 성주 동타천이 하늘에 빌었기 때문에, 삼국유사 태종춘추공조와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서는 김유신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 일어난 일이라고 하고 있다.

꼭 누구 기도 때문이 아니라도 미신적 믿음이 중요시되던 고대라 기상현상에 병사들의 사기를 고려해 퇴각했을 수도 있고, 혹은 악천후로 공성전 지속이 힘들다고 합리적으로 판단했을 수도 있다. 이 전투가 있던 음력 5~6월경은 딱 초여름 장마철 시즌이다. 동서고금 장마철은 쳐들어가기 좋지 않은 계절이지만 고구려 입장에선 백제 흡수에 신라군이 시선이 쏠린 타이밍을 노린 빈집털이였으므로 어쩔 수가 없었다.

3. 대중매체


[1]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땅에 깔아놓는 큼지막한 쇳바늘을 말한다. [2] 애초에 워낙 불리한 싸움이었기에 배신이나 투항을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참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