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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1-19 17:12:54

노행석

대한민국의 前 축구인
파일:경주H노행석.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노행석
魯幸錫 | No Haeng-Seok
출생 1988년 11월 17일
전라남도 영광군
사망 2025년 1월 1일 (향년 36세)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86cm / 체중 82kg
포지션 센터백
학력 옥과초등학교 (졸업)
남대문중학교 (졸업)
광운전자공업고등학교 (졸업)
동국대학교 (졸업)
소속팀 광주 FC (2011~2012)
대구 FC (2013~2014)
부산 아이파크 (2015~2019)
화성 FC (2016~2017 / 군복무)
쿠알라룸푸르 시티 FC (2019 / 임대)
경주 한수원 (2020~2021)
지도자 대한민국 농아인 축구 국가대표팀 (?~2024 / 코치)

1. 개요2. 선수 경력3. 사망4. 플레이 스타일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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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축구선수로, 포지션은 센터백이었다.

2. 선수 경력

2.1. ~ 2019년

남대문중학교, 광운전자공업고등학교, 동국대학교를 졸업했다. 광운전자공고 시절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된 바 있다.

2011년 K리그 드래프트에서 6순위로 지명되어 광주 FC에 입단하였다. 광주에서는 이용과 같은 다른 수비수들에 밀려 2011 시즌 1경기 출장에 그쳤지만, 2012 시즌 후반기부터 1군 무대에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며 입지를 다졌다. 이후 2013년을 앞두고 광주가 강등을 당하자, 대구 FC의 제의로 이적하게 되었다.

대구에서는 2013 시즌 동안 한 경기도 나서지 못하며 팀의 강등을 지켜봐야만 했지만, 2014 시즌에도 대구와 재계약에 성공하며 잔류하였다. 이후 K리그 챌린지 무대에서 대구의 주전 수비수로 거듭나며 31경기를 소화하였다.

2015년을 앞두고 부산 아이파크로 이적하였고, 입단 첫 시즌에는 23경기에 출전하는 둥 준수한 활약을 보였으나 1년 만에 화성 FC에 공익근무를 목적으로 합류하였다. 2018년 시즌에 복귀한 후에는 팀에서 단 5경기밖에 뛰지 못했으며, 2019년에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시티 FC에 임대되기도 했다.

2.2. 경주 한수원

2020년, 새로이 개편된 대한민국 3부 축구리그인 K3리그에 참가하게 된 경주 한수원에 합류하였다. 2020 시즌 성적은 리그 16경기 1골, K3리그 챔피언십 3경기, FA컵 2경기로 총 21경기 1골. 2021 시즌에는 반시즌 동안 경기에 한 번도 나오지 못하다가 여름 이적시장에서 팀을 떠났다.

팀을 떠난 후 3년 동안 계약 소식이 들리지 않아 은퇴한 것으로 추정된다.

3. 사망

파일:한국농아인스포츠연맹 홈페이지 故 노행석 추모 팝업 메시지.png


그렇게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2024년 12월에 아시아 태평양(아태) 농아인게임의 축구 경기[1][2] 참가하였고, 그것이 노행석의 마지막 공식 일정이 되었다. 그리고 2025년 1월 1일 노행석이 세상을 떠났다는 부음 기사가 나왔다. # 생전에 암 투병 중이었다고 전해졌다. 생전 마지막 공식행사였던 농아인게임에서 찍힌 사진을 보면 노행석이 현역 시절일 때에 비해 많이 야위고 부쩍 수척해진 모습이 보여 안타까움을 안겨주었다.

4. 플레이 스타일

대인마크를 잘 했으며, 186cm라는 큰 키를 이용한 타점 높은 헤더 능력을 지녔고 수비는 물론 세트피스 상황에서 종종 득점을 할 정도로 득점력까지 겸비한 수비수였다.

5. 여담



[1] 농아인(聾啞人)은 청각장애인과 언어장애인을 모두 아울러서 부르는 말인데, 보통은 청각장애인만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고 농인이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아태농아인게임은 1984년 홍콩에서 처음 개최된 아시아 지역 농아 스포츠 선수들이 경쟁하는 농아인들의 아시안 게임 같은 것이다. [2] 농아인게임 참가 소식으로 인해 노행석이 부상으로 청각장애를 얻어서 프로 은퇴 후 농아인게임에 참가한 것이냐는 추측이 제기됐는데, 노행석이 사망한 후 한국농아인스포츠연맹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팝업 메시지에서 노행석을 '故 노행석 트레이너'로 소개하며 추모하고 있는 것을 보면 노행석이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농아인 축구 트레이너로 활동을 하며 아태농아인게임에 선수단과 동행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암 투병과 별개로 선수 본인에게 청각장애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