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2-01-03 21:14:42

노재석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노재석
魯在石[1]在石으로 표기되어 있다.]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이재석(李在石), 노재진(盧載珍, 魯載珍)
출생 1899년 7월 30일
경상남도 밀양군 부내면 서부리
(현 경상남도 밀양시 내일동 서문안)
사망 1957년 4월 8일
경상남도 밀양군
상훈 대통령표창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200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노재석은 1899년 7월 30일 경상남도 밀양군 부내면 서부리(현 밀양시 내일동 서문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윤세주, 윤치형, 전홍표 등이 주도한 독립만세운동계획에 가담하였다. 전홍표의 주도로 밀양면 읍내 장날인 3월 13일이 거사일로 정해지자, 윤세주와 윤치형이 경기도 경성부에서 가져온 독립선언서를 밀양면사무소와 부북면사무소 등지에서 등사판을 몰래 가져온 뒤 아북산(衙北山)에서 밤을 새워 수백매를 인쇄했고 수백 장의 태극기도 제작했다.

이윽고 3월 13일 오후 1시 30분경, 노재석 등은 윤세주의 독립선언서 낭독에 이어 미리 준비한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군중들에게 배포하면서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때 장터에는 수천의 군중이 운집하여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후 그는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부산에서 출동한 일본 헌병에 의해 체포되었고, 1919년 4월 14일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태형 90대의 판결을 받았고, 형벌에 처해진 뒤 석방되었다.

석방 후에는 밀양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7년 4월 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노재석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1] 1919년 집행원부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