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국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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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ACD32> 노(魯)나라 14대 국군 은공 隱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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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 희(姬) | |
씨 | 노(魯) | |
휘 | 식고(息姑) | |
아버지 | 노혜공(魯惠公) 희불녈(姬弗涅), 희불황(姬弗湟) | |
어머니 | 성자(聲子) | |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712년 |
재위 기간 | 음력 | 기원전 722년 ~ 기원전 71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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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노나라의 14대 군주. 노혜공의 아들. 노환공의 형. 이름은 식고(息姑) 또는 식(息)이고, 혜공(惠空)의 서자(庶子)다. 노나라 사람이 혜공의 적자 윤(允)이 어리다고 여겨 함께 그를 세워 섭정을 하게 하고 동생 윤(允)은 태자로 삼았다. 11년 공자휘(公子翬)가 백성들이 군주를 가볍게 여긴다면서 윤을 죽이고 정식으로 즉위하라고 하면서 자신을 경(卿)으로 올리라고 요청했다. 공이 허락하지 않고, 윤이 장성하면 당연히 정권을 돌려주겠다고 말했다. 휘가 거꾸로 윤에게 참언을 하자 공을 살해했다. 11년 동안 재위했다.사서오경 중 하나인 춘추는 이 노은공 때부터 기록된다.[1] 정나라와 우호를 맺고, 송나라와 허나라를 치는 등으로 활약했으나, 전쟁 중 공자 휘가 공을 세워 권력이 커져 그에게 어이없이 최후를 맞이한다.
2. 재위 기간
노은공 5년( 기원전 718년), 당 땅에서 고기 잡는 것을 지켜보았다.[2]노은공 8년(기원전 715년), 노은공은 정나라의 군주 정장공과 함께 천자[3]가 보는 앞에서 방 땅과 허전을 교환하였다.[4]
노은공 10년(기원전 713년), 노은공은 제나라, 정나라와 함께 송나라와 허나라를 쳐서 공자 휘가 공을 크게 세워 노나라의 권력을 장악했다.
노은공 11년(기원전 712년), 공자 휘는 공자 윤과 짜고 노은공을 시해할 뜻을 품었고, 결국 11월에 종무의 제사를 지내고 사포에서 제계한 뒤, 위씨의 집에 머물렀는데, 바로 이때 공자 휘가 그를 죽이고 공자 윤을 노나라의 군주로 추대하니 그가 바로 노환공이다.
[1]
공자와 그의 제자가 왜 이때부터 기록했는지는 불명. 다만 노 은공 원년에 처음으로 주(邾)나라와 결맹을 했는데, 각종 주석에 따르면 이때가 바로 제후들이 주나라의 허락 없이 사사롭게 결맹을 맺은 시초라고 한다. 그래서 이 시기부터 주나라 왕실이 주도하던 기존 질서가 무너지고 제후들의 전횡이 시작되었기에 이때부터 춘추를 기록한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이 있다.
[2]
이것도 당시에 식량을 구하는 일이기 때문에 중요해서 지켜본 듯 하다. 그러니까 후대 황제들이 농사짓는 쇼를 한 것과 약간은 비슷한 맥락으로 민심을 돌아본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3]
바로
주환왕이다.
[4]
그리고 이것이 주환왕이 정나라를 치는 결심을 하는 계기 중 하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