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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5f5f5><colcolor=#000> 노엘 레딩 Noel Redd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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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데이비드 노엘 레딩 David Noel Redding |
출생 | 1945년 12월 25일 |
영국 잉글랜드 켄트 포크스콘 | |
사망 | 2003년 5월 11일 (향년 57세) |
아일랜드 코크 클로나킬티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장르 | 하드 록, 포크 록, 사이키델릭 록, 블루스 록 |
키 | 175cm |
사용 악기 | 베이스, 기타, 보컬 |
활동 기간 | 1963년 – 200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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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의 베이스 연주자로 잘 알려진 영국의 음악가. 이외에는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다. 실제로 원래 기타리스트였으나,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의 가입과 동시에 베이스 연주도 겸하게 되었다고 한다.2. 생애
노엘 레딩은 1945년 12월25일 영국 켄트 주 포스크콘에서 태어나 형 안토니 레딩(1942.5.17~)과 여동생 비키 레딩 그리고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는 부모님과 함께 Seabrook의 Cliff Road에서 성장했다. 그는 초등 문법학교를 다니며 9살 때 바이올린을 연주한 것을 시작으로 기타와 만돌린을 연주하며 악기에 관심을 보였고 시간이 지나 지역 청소년 클럽과 그의 학교에서 처음 공개적으로 대중들 앞에서 악기를 연주하기 시작했다.17세가 된 레딩은 전문적인 뮤지션으로 성장하여 1962년 닐 랜던[1]과 Neil Landon and Burnettes 를 결성하고 이후에도 작은 밴드들에 합류하여 독일과 스코틀랜드 지역의 클럽들을 중심으로 순회공연을 하며 실력을 쌓아갔다. 1966년 지미 헨드릭스와 함께 결성한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에서 그의 일생중 최전성기를 맞이하고 1969년 익스피리언스를 그만두고 자신의 밴드인 팻 메트리스로 돌아가서 활동하다 "로드"[2] "노엘레딩밴드" 등을 결성하여 활동했지만 "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와 "팻 메트리스"에 비하면 그다지 괄목할만한 작품도 적고 인지도 역시 떨어지는 편.
1980년대 이후 밴드활동을 하지 않고 가정을 꾸려 고향에 정착한 후 아내 Carol Appleby와 함께 자서전을 집필했다. 노엘은 이 자서전에서 익스피리언스 시절 곡들의 수익이 자신에게 불공평하게 분배된 점에 대해 실망스런 점을 밝혔다.
1990년 노엘과 그의 아내 애플비는 콘서트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큰 교통사고를 당했고 이 사고로 그의 아내 애플비는 생명유지장치없이 생명을 영위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다. 레딩은 추후 4일 뒤에 기계를 끄며 17년 동안 함께했던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야 했던 비통한 일을 겪었다고 말했다. 그의 아내는 불과 사고 이틀전까지 그의 자서전 집필을 돕고 있었다.
1997년 Fender사에서 그의 시그니처 모델인 "노엘 레딩 시그니처 재즈베이스"를 그의 서명이 들어간 1000개 한정판으로 출시하였다. 노엘이 사용하던 1964 재즈베이스를 기반으로 제작했는데 노엘은 결과로 나온 그 품질을 아주 마음에 들어했다.
2003년 5월 11일 그의 어머니가 숙환으로 세상을 떠난지 3주 후 클로나킬티 소재 그의 자택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향년 57세로 비교적 이른 나이였다. 이틀 후 코크 대학 병원에서 수행된 부검을 통해 사인은 간경화에 반응으로 야기된 식도 정맥류 쇼크 출혈로 나타났다.
그가 사망한 후 Ardfield마을 주민들은 그를 기리는 명판을 세웠고 그의 고향 포크스톤의 어느 마을에 있는 광장은 "noel's yard"이란 이름으로 변경되어 영국의 상업, 엔터테이먼트, 예술을 홍보하는 채널 역할을 하며 사후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의 팬들이 자주 찾는 명소가 되었다.
2013년엔 그의 형인 안토니 레딩이 동생의 사망 10주기를 기리기 위한 미술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
3.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레딩은 상기한 바와 같이 기타리스트였지만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에서는 베이스를 연주하게 되었다.[3] 아주 희귀하긴 하지만, 노엘이 보컬을 맡은 곡도 두 곡 있었다.[4] 곡을 들어보면 알겠지만 지미의 굵직하고 저음인 목소리 톤에 비해 가볍고 높은 톤의 목소리를 가졌다. 존 레논과 상당히 비슷하게 들린다는 평이 있다.이외에는 베이스 연주자로서 색다른 시도를 여럿 했다. 피크를 쓴 것도 그렇고, 베이스에 드라이브를 걸어 쓰기도 했으며, 일반 기타에 베이스 현을 장착시켜 연주하기도 했으며, 지미의 스트라토캐스터의 기타 현을 거꾸로 달면서 생긴 각 현들의 헤드와 연결되던 거리가 바뀐 만큼 특이한 기타 소리를 얻은 것에서 착안하여 그도 마찬가지로 왼손잡이용 베이스 기타에 4개의 현을 오른손잡이용 위치로 바꿔서 끼우고 연주하는 방식으로 밴드의 정체성에 어울리는 신선한 사운드를 끌어내기기 위해 여러가지 시도를 해봤었다.
1969년 6월 29일, 지미 헨드릭스와의 의견차이로 인해 노엘은 미국 투어 도중 밴드를 탈퇴한다. 노엘은 파워 트리오 체제로 밴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싶었지만 지미가 그와 상의 없이 밴드를 확장할 계획이라고 발표하며 지미와 갈등을 겪게 되었던 것. 이후 재결합이 추진되었으나, 끝내 노엘의 자리는 지미와 연이 있던 빌리 콕스(Billy Cox)로 교체되었다.
4. 팻 매트리스
노엘 레딩은 베이시스트로 알려져 있지만 원래 기타를 치던 뮤지션이였다. 애니멀즈의 기타리스트로 오디션을 봤었지만 지미 헨드릭스와 함께 베이스를 연주하게 되었고 자신이 하고 싶던 기타연주와 작곡에 대한 갈증은 해결되지 않아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를 활동하던 중 1968년 팻 매트리스를 결성하게 된다.팻 메트리스는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와는 다른 성향의 밴드로 포크락을 다뤘고 가끔 사이키델릭 성향의 포크록도 다루었다. 노엘은 이로써 자신이 추구하고 싶던 기타 포지션과 작사 작곡을 지미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에서 베이시스트를 하며 동시에 누릴 수 있었다. 팻 메트리스가 대중들에게 알려진 건 지미 헨드릭스의 영향이 지대했는데 지미가 북미 투어를 돌때마다 오프닝 밴드로 팻 메트리스를 데리고 다녔기 때문이다. 즉 레딩은 한 콘서트장에서 두 그룹을 오가며 동시에 라이브를 했던 것. 헨드릭스의 대인배적인 면모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레딩은 오프닝 밴드로 무대에 설 때마다 기타를 연주 하거나 하모니카를 연주했는데 하모니카 연주는 지미가 놀랄정도로 수준급이였다고 한다.
지미 헨드릭스의 배려 덕분에 팻 메트리스는 Polydor Records와 계약을 맺을 수 있었고 1969년 셀프 타이틀 앨범인 "Fat Mattress"를 발매한다. 노엘이 작사 작곡한 노래들은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았으며 앨범에 수록된 곡중 "Magic Forest"은 네덜란드에서 히트를 치며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었다.
1969년 8월 밴드는 120,000명의 관중들이 운집한 Isle of Wight Festival[5]에 참가하고 동년 9월 27일 독일의 유명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입지를 다져갔지만 1970년 발매한 "Fat mattress II"는 전작보다 저조한 성적을 거두고 세번째 동명의 셀프 타이틀 앨범을 녹음하던 중 레딩은 베이스, 오르간을 담당하던 짐 레버튼과의 불화로 밴드를 탈퇴함으로써 밴드는 해체되었다.
그는 지미의 복잡하고도 빠른 기타리프의 박자를 전부 따라잡아 맞춰주며 묵직하게 베이스라인을 잡아주는 베이시스트로서의 뛰어난 실력도 물론이거니와 하모니카연주와 작사 작곡, 멤버들이 바쁠땐 혼자 베이스, 리듬기타, 리드기타, 보컬을 모두 스스로 녹음할 때도 있었던 만큼 그도 지미 헨드릭스의 엄청난 존재감에 묻힌 감이 있지만 나름대로 음악적 재능이 있던 셈.
5. 여담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의 멤버들 중 지미 헨드릭스는 불세출의 천재 & 괴물 기타리스트임이 당연하고, 미치 미첼 역시 지미 헨드릭스에게는 조금 밀리지만 드럼 커뮤니티에서는 신급의 드러머로 추앙받는 한편 노엘은 본직이 베이스 연주자가 아니기도 해서 그랬는지 묻히는 감은 있다. 허나 분명히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의 당당한 일원이었기에, 그 역시 밴드의 멤버로써 존재감이 강한 편이다. 하여 그의 사망 후에도 그를 기리는 행사 등과 기념 장소 등이 존재한다.주로 펜더사의 명기인 재즈베이스을 사용했다. 리드기타 포지션이였던 팻 메트리스에서는 Hagstrom 8 String를 사용했고 가끔 프레시전 베이스도 사용하곤 했다.
1970년 레드 제플린의 전설적인 베이시스트이자 키보디스트, 피아니스트인 존 폴 존스와 간접적으로 만난 적이 있었다. 존이 무대 뒷편에서 장비를 준비하던 중 레딩이 스쳐 지나갔던 정도..
유튜브 등지의 대부분의 지미 헨드릭스의 팬들은 노엘 레딩은 미치 미첼과 더불어 가장 지미와 어울리는 뮤지션이였다고 입을 모으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