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본도 와키자시중 하나
나마즈오 토시로(鯰尾藤四郎) | |||
도공 | 아와타구치 요시미츠(粟田口吉光) | 도파 | 아와타구치(粟田口) |
제작 시기 | 가마쿠라 시대 | 종류 | 나가마키[1] → 와키자시 |
길이 | 39.1cm→38.5 ㎝ | 현존 여부 | 나고야 도쿠가와 미술관[2] |
명문 | 吉光 | 문화재 등록 | - |
나가마키를 재도한 검(長巻直し刀)으로, 위쪽은 쇼우부즈쿠리(菖蒲造り)[3] 아래로는 나기나타히(薙刀樋)와 소에비[4]가 있으며 무네는 미츠무네[5], 지하다는 이타메하다[6]이며 하몬은 스구하(直刃)에 가까운 코미다레(小乱れ), 코아시(小足)가 약간 섞여있다. 보우시(鋩子)는 둥글며, 나마즈오라는 이름이 붙은 만큼 킷사키의 형태가 나마즈오즈쿠리[7]로 되어있다.
나마즈오 토시로는 나기나타를 재도한 검이라는 설도 있으나, 명문의 위치[8]와 시노기스지(鎬筋)의 길이[9]가 짧다는 점 그리고 재도 전의 하몬(刃文)을 참고할 시에 나기나타를 재도할 경우 보이기 힘든 모양새가 되는 점을 들어 나기나타를 재도한 것이 아니라는 설도 존재한다. 나마즈오즈쿠리와 비슷한 쇼우부즈쿠리나 칸무리오토시(冠落とし)의 경우 야마시로덴이나 야마토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형태라는 점도 이 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소유측인 도쿠가와 미술관에서는 이 검이 나가마키를 재도한 검이라 정의하고 있다.
에도시대에 기록된 명검 목록인 '쿄호메이부츠초(享保名物帳)'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鯰尾藤四郎 裏ニ銘有長一尺二寸八分 無代 御物
(나마즈오 토시로, 검 도신 뒤에는 2자의 명문이 새겨져있다, 길이 1척 2촌 8분(약 38.5 ㎝), 무대, 어물)
長刀樋添樋コレ有、打チノケ多、大坂ノ御物ナリ
(나기나타히와 소에비가 있으며 우치노케가 많다. 오사카의 어물이다)
오다 노부나가의 아들인
오다 노부카츠가 사용했던 적이 있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소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후 1614년
오사카 전투 당시
오사카성과 함께 불탔다.(나마즈오 토시로, 검 도신 뒤에는 2자의 명문이 새겨져있다, 길이 1척 2촌 8분(약 38.5 ㎝), 무대, 어물)
長刀樋添樋コレ有、打チノケ多、大坂ノ御物ナリ
(나기나타히와 소에비가 있으며 우치노케가 많다. 오사카의 어물이다)
이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거두어 재도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리는 오사카 전투당시 요시미츠의 와키자시로 자결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옆에 나마즈오가 있었다 혹은 배에 꽂혀있었다 하여 히데요리의 시신을 확인하였다는 이야기도 존재한다.
2. 도검난무의 등장 캐릭터
나마즈오 토시로(도검난무)
[1]
나기나타로 알려져있으나, 소유측에서는 이를 부정,
나가마키를 재도하였다고 소개.
[2]
미토에 있는 도쿠가와 뮤지엄과 헷갈릴 수 있으니 주의
[3]
일반적인 일본도의 형태에서 요코테(横手, 킷사키와 도신의 경계선)가 없는 것으로, 창포의 잎과 닮았다고 하여 창포라는 이름이 붙었다.
[4]
添え樋, 검 옆면의 긴 일직선의 선
[5]
三つ棟, 소슈계통의 도검에 자주 보이는 형태로 위쪽 면이 3면으로 꺾여있어 이렇게 부른다.
[6]
板目肌, 나무판같은 모양과 닮아 이렇게 부른다. 가장 흔히 보이는 지하다이며 소슈덴 계통의 도공에게 자주 보이는 지하다이다.
[7]
鯰尾造り, 킷사키(切先)부분이 메기의 꼬리와 닮았기에 이 이름이 되었다. 킷사키가 나기나타와 같은 형태가 된 것을 이르기도 한다. 이것을 쇼우부즈쿠리와 같은 것이라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8]
본래 나기나타라면 타치와 같이 하키오모테(佩き表)에 그 명문이 새겨져 있어야 하나 나마즈오토시로의 명문은 하키우라(佩き裏)에 새겨져 있다. 또한 명문의 위치도 현재의 위치가 아닌 좀더 아래쪽에 적혀있어야 한다.
[9]
나기나타를 재도할 경우 나카고(茎)까지 시노기스지가 이어지게 된다.
호네바미 토시로의 사진을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