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조선로동당 국제부장
김영일 金永日 | Kim Yong Il |
|
|
|
출생 | 1947년 3월 17일 |
평안북도 정주군 | |
사망 | 2023년 9월 30일 (향년 76세) |
국적 |
[[북한|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정치가, 군인 |
정당 |
|
지역구 | 자강도 전천군 학무선거구(445호) |
[clearfix]
1. 개요
북한의 정치인, 외교관.외무성 부상 및 조선로동당 국제비서 겸 국제부장을 역임했다.
2. 생애
1947년 3월 17일, 평안북도 정주군(현 정주시)에서 출생했다. 해주혁명학원, 국제관계대학, 평양외국어대학 등을 졸업했는데, 국가검열위원장,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을 지낸 전문섭의 사위로 알려져 있다.학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외교 엘리트로 커리어를 시작하여 중앙위원회 국제부 지도원을 거쳐 1985년 주 알제리 대사관 참사관으로 발령받았으며 귀국 후 1990년 외교부 국장이 되었다. 9기 최고인민회의에서 외교위원회 고문이 되었으며 1993년 1월 정무원 외교부 부부장으로 승진했다. 1996년 1월 리비아 대사로 발령되었으며 1997년 몰타, 튀니지, 알제리 대사를 겸했다. 귀국 후 2000년 1월 다시 외무성 부상을 맡았다. 국내에도 어느 정도 얼굴을 알렸는데 2차 북핵위기 당시 6자회담의 북측 수석 대표를 맡은 것이다.
2009년 최고인민회의 12기 대의원 겸 법제위원을 맡았으며, 2010년 1월, 전임 국제부장 김양건이 국방위원회로 옮겨간 이후로 공석으로 남아있던 국제부장에 임명된 것이 확인되었다. 2010년 4월, 김중린 장의위원을 지냈다. 9월에 제3차 당대표자회가 개최되자 정치국 후보위원 겸 비서로 선출되었다. 2010년 11월, 조명록 장의위원, 2011년 1월, 박정순 장의위원을 지냈다. 아마도 김정일의 눈에 들어서 중용된 것으로 보이지만 김정은은 이 양반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김정일이 죽고 나서는 중용하지 않았다. 2011년 12월, 김정일 장의위원을 지냈으며, 2012년 2월, 김정일훈장의 1차 수훈자로 선정되었다.
2012년 4월 조선로동당 대표단장으로 중국을, 6월에 베트남, 미얀마, 라오스를 방문하였으며 2012년부터 조선-일본 친선우호협회 고문을 지냈으며 2012년 11월 14일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국가체육지도위원회가 설치됨에 따라 초대 위원이 되었다. 2013년 12월, 김국태 장의위원을 지냈다. 2014년까지도 어느 정도 행보를 보였으나 2014년 3월 북러 협조 의정서 조인식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시점상 2014년 4월 8일 정치국 회의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소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에서 발표한 강석주 략력을 보면 4월 8일 정치국 회의에서 국제부장 및 국제비서에서 해임되어 강석주에게 자리를 내준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정치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난 것은 아니라서 2014년 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2019년 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다. 물론 동명이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일부 증언에 따르면 국제비서 해임 후 외무성 중국과로 좌천되었으며 조용히 일하고 있다고 하는데, 2015년 7월 평양에서 열린 43차 대사회의에서 김정은과 같이 사진을 찍는 등 어느 정도 대접은 받고 지낸다고 한다.
이후 한참 소식이 없다가 2023년 9월 30일에 사망했다. 다음날 김정은이 애도를 표하며 화환을 보내주었으며, 조선중앙통신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김일성훈장,김정일훈장수훈자이며 공화국영웅인 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김영일동지의 서거에 깊은 애도의 뜻을 표시하여 화환을 보내시였다. 절세위인들의 품속에서 대외사업부문 일군으로 성장한 김영일동지는 당과 혁명,조국과 인민에 대한 무한한 충실성과 헌신성을 지니고 우리 당과 공화국정부의 자주적인 대외정책실현에 공헌하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보내신 화환이 1일 고인의 령전에 진정되였다."라고 그런대로 좋게 말해주었다. 사망후 발표된 화환전달 소식에서 공화국영웅 칭호도 가지고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80세도 못살고 죽은 것을 봐서는 건강 자체도 썩 좋은 편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3. 수훈목록
- 김일성훈장(2004? 혹은 2007?)
- 김정일훈장(2012)
- 공화국영웅(?)
4. 여담
최소 4년 4개월간 국제부장으로 재임하면서 별 인상을 남기지 못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2010년대 이후의 국제부장 중 최장기 임기 기록을 지니고 있다. 그의 후임인 강석주는 식도암으로 2년만에 사망했고, 그 후임인 리수용은 3년 7개월만에, 그 후임은 김형준은 13개월만에 은퇴했다.5. 경력
임기시작 | 임기종료 | 비고 |
조선로동당 국제부장 | ||
2010년 1월? | 2014년 4월 8일 |
3차 당대표자회에서 유임 2014년 4월 8일 정치국회의에서 소환 |
조선로동당 6기 정치국 후보위원 | ||
2010년 9월 28일 | 2014년 4월 8일 |
3차 당대표자회에서 선거 2014년 4월 8일 정치국회의에서 소환 |
조선로동당 6기 비서국 국제비서 | ||
2010년 9월 28일 | 2014년 4월 8일 |
3차 당대표자회에서 선거 2014년 4월 8일 정치국회의에서 소환 |
6. 참고문헌
- 통일부 정세분석국 정치군사분석과, 2017 북한 주요인사 인물정보(서울: 통일부, 2016).
- 전정환, 송봉선, 이영진, 서유석, 김정은시대의 북한인물 따라가 보기(서울: 선인,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