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대체역사소설 조선에는 쿠데타가 필요해요의 주인공.빙의전 이름은 김민재. 역사학도 출신이며 졸업 후 ROTC로 복무한 경력이 있다. 돌아가신 외조부의 유품인 대한제국 군복을 정리하고 사랑방에서 잠이 들었는데, 깨어나보니 일본군의 경복궁 습격 당시 경복궁에 주둔하고 있던 평양 출신 군관 김시혁에 빙의해 있었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워 하다가, 이내 시대와 자신의 신분을 깨닫고는 외조부의 의지를 이어받아 치욕적인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 다짐한다.
1874년 생이며 최신화 기준 43세. 계급은 육군 원수.
2. 빙의전 김시혁
아버지대부터 군인인 무관 집안으로 하급 무관이었던 부친은 신미양요에 참전해 다리를 잃었다. 그때 사용한 환도는 동생 시진이 군인의 길을 걷기로 한 후 칼자루만 세이버로 바꿔서 사용 중.어린 나이에 담력과 무예가 빼어나다고 동네에 소문이 나서 평안도 관찰사의 추천을 받아 기영병 병정으로 군생활을 시작한다. 평안도 관찰사 민병석은 김시혁을 굉장히 좋게 평가해서 병정에서 비장까지 빠르게 진급시켰고 징상으로 한성에 올라간 김시혁을 장위영 대관들에게 추천, 홍계훈의 주선으로 연무공원에서 미군 교관들에게 수업받을 기회를 얻는다. 이때 영어가 어느 정도 가능해졌고 약관 스물에 소대 하나를 지휘하는 군관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주색잡기를 너무 좋아해서 민병석을 제외한 주변인들에겐 술주정뱅이 한량으로 평가가 매우 나빴다.
연무공원에 넣어준 홍계훈도 병서에 대한 조예나, 지휘력은 제법이라고 평했지만 어린 나이에 출세했다고 시건방 떨고 수시로 술로 사고치는 것 때문에 단단히 벼르는 상태였다.
이쪽 세계에선 사병 출신 장군으로 20대에 장군이자 총사령관이 되어 조국을 구함은 물론 현대전의 개념을 정립하고 해법까지 내어놓은 불후의 명장으로 기록에 남을 것이다.
3. 특징
쿠데타 자체가 기존 메타를 많이 거스르는 작품인만큼 주인공인 김시혁도 2020년대 대역물 주인공 추세와 제법 차이가 있다. 많은 대체역사물 주인공들이 그 시대와 적당히 타협한 '선택적 현대인' 혹은 '국가와 결혼한 철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반해 과거에 떨어진 '현대인'이란 점에 방점이 아주 제대로 찍혀 있는 인물.어떻게 보면 정말 전형적이고 재미없는 성격이지만 역사 스킨 씌운 이세계 사이다물, 안티 히어로, 파천황스러운 주인공들이 많은 최근 흐름속에서 김시혁만의 고유한 개성으로 자리잡는데 성공하였으며 이런 모범적인 인물이 시대의 격랑에 휘말려 몇번이나 쿠데타를 벌이게 된다는 점이 본작의 재미이자 아이러니.
제국주의 시대를 살아가지만 현대인이란 점이 작품 전반에 드러나는데 의화단 토벌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북경에 진입했을 때 현지 유물을 챙기자는 제안을 받자 그냥 약탈이 싫다도 아니고 '후손들에게 부끄러운 짓을 할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워 철저히 막았고, 남부 출신 미국인 고문 하코트가 인종적 성향을 드러내며 일본군과 마찰을 빚었을 때 한국 정부에 고용된 고문 신분으로 함께 의화단과 싸우는 타국 군대와 마찰을 빚어선 안 된다는 수긍할 수 밖에 없는 논리로 누를 수 있었음에도 남부 연합의 그릇된 도덕관과 인종관을 정면으로 지적해 한바탕 설전을 벌이고, 1차 대전에 참전했을 때 화학탄을 사용하자는 어담 참장의 제안에 역사에 죄를 짓지 말자는 말로 거부하는 등[1] 행동거지 전반에서 현대인 감수성이 강하게 묻어난다.
군인으로선 정말 우직하게 군인으로서 역할만 하려 애쓰는 성향으로 정치와 철저히 선을 긋다 못 해 아예 안 하려고 하며 문민통제에 대한 인식이 확고하다. 새로 도입한 무기가 세관에서 조사 받느라 장기간 대기하고 있었을 때 그들은 당연한 일을 할 뿐이라 강조했고, 예산 배정에 불만을 품은 원수부 장교들이 자신 앞에서 설전을 벌이며 은근히 조력을 요구했을 때도 위에서 정한 바를 따라야 한다며 일언지하에 잘라냈다. 장작림을 그토록 경계하며 숨통을 끊어놓으려 했음에도 내각이 종전 결정을 내리자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따랐다.
비누든 콜라든 무기든 미래지식으로 뭐 하나 만들어 별도의 돈줄을 꿰차는 진행이 대체역사물에 흔하지만 이쪽은 군인 외길 이외에는 눈 돌리지 않는 월급쟁이로 기껏 카빈 소총 만들어 놓고 십원 한장 안 챙겼다.
사생활에 있어선 그 시대 남성이라면 으레 하는 축첩은 일절 없고, 별 4개 달고 집안일 일일히 손수 할 정도로 가정적인 인물이다.[2]
이런 성향은 군인으로선 훌륭하나 전략적 모호함, 뻔뻔함, 책임 전가가 기본인 외교 방면에선 조언자 이상의 역할은 힘들다. 또 자신이 불러일으킨 나비 효과를 너무 가볍게 생각해서 사달을 내기도 했는데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이 자신이 만들어 낸 한국군을 모델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음을 알았음에도 너무나 가볍게 조력을 해줬고, 그래놓고도 원래 역사대로 러시아가 동부전선에서 우위를 점할거라 생각하고 있었다.[3]
더해서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의 불안정한 정치 구조에 우직함이 안좋은 의미로 영향을 끼쳤다. 헌정에 기반하지도 않고 황제의 신임에 기반하면서도 황제를 배제한 채 국정을 이끌어나가려는 내각의 집권 정당성이 미약함에도 불구하고 현 원수부는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일단 정부라는 이유로 내각을 지지하는 중인데, 이 탓에 실질적인 권력의 문제로 군부가 내각에 충성하는 게 아니라 협조하는 양상이 나타나며 내각이나 황제 둘 중 하나가 오롯이 권력을 장악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여 결국, 승전의 권위와 정의 분열 덕분에 군부의 독립성이 강화되기에 이르렀다.
4. 능력
"만주의 호랑이, 김시혁이라는 놈. 그놈이 여기에 온 것이 아닐까?"
지휘관의 표정이 급격하게 창백해지는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생각하지도, 하고 싶지도 않은 악몽이었다.
지휘관의 표정이 급격하게 창백해지는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생각하지도, 하고 싶지도 않은 악몽이었다.
김시혁이란 이름이 나오자 육군대신이 움찔거렸다. 그 자 하나가 일본 육군 10개 사단보다 강한 억지력을 갖고 있었다.
우리가 상대하던 것이... 정녕 나폴레옹의 환생이란 말인가, 아니면 한니발의 환생이란 말인가.
직접 군을 지휘해 눈앞의 적을 격파하는 것과 장기 계획을 세워 강군을 육성하는 것. 두 가지 모두에 탁월한 명장. 작중에선 전략과 전술에 모두 능하다는 서술로 표현된다.
작가는 자신보다 똑똑한 인물을 만들 수 없고, 등장인물은 명장이라도 작가는 아니라서 설정상 명장과 작품속 모습이 다른 경우가 많은데 김시혁은 우수한 교리와 신들린 전술 지휘로 열강 군대에 몇배의 교환비를 안겨주고 깨뜨려 버리는 모습을 독자에게 세세하게 보여줄 수 있는, 진짜 명장으로 냉철한 전략 수립과 돌발적인 작은 변수조차 포착해 활용하는 전술 지휘로 약점을 파고들어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최대한 적의 출혈을 강요하며, 대등 혹은 유리한 상황에선 일방적으로 두들겨 격파해버린다.
지피지기 백전불태라고 아군을 지휘하고, 기르는 것만 아니라 타국 군대와 군사 문화에 대한 이해도도 높다. 중국인보다 중국군을, 일본군보다 더 일본군을 잘 알아서 그들의 전략, 전술이 가진 약점을 철저히 후벼팠고 1차 대전에선 독일 군사사상가들의 과학적, 통계적 접근법이 생소한 아시아 군대인 대한군에겐 아직 통하지 않는다는 맹점을 찔러 쟁쟁한 독일군 장성들을 경악시켰다.
이런 특성은 관전무관단 등으로 접촉한 외국 장교들과 원활한 소통을 가능하다는 또 다른 장점으로 이어진다. 말이 잘 통하니 이것저것 도움을 구하는 것도 쉬워지기 때문.
경복궁 습격, 동학 토벌, 서남해안 해적 토벌, 의화단 진압 때는 모두 적의 총알에 맞아 죽을 수 있는 전장터에 직접 뛰어들어 용전분투해 승리를 이끌었고 의화단 진압 이후에는 징병제 같은 각종 군제 개혁안을 입안, 현대식 보병/포병 전술과 그에 맞는 무기를 도입한다. 극동 전쟁 개전시점에서 한국군은 2선급 지방군 여단조차도 각개전투간에 수류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중대급에서 척탄통을 능숙하게 운용하며, 정예 지방군 여단쯤 되면 중/소대급의 소부대에서도 능동적으로 전투에 임하는 정예 보병 운용국이었다. 보병은 기병을 알고, 기병은 보병을 알고, 포병은 둘 다 아는 완벽한 제병합동과 시대를 앞서간 화력전, 기동전 노하우는 덤. 보병 지휘관 출신임에도 포병을 정말 잘 활용한다.
빙의전 김시혁은 주색잡기에 찌든 한량이지만 무예 실력은 제법 인정받았는데 그 가락은 빙의 이후에도 남아 있어 검술과 승마 실력도 빼어나다. 동학 토벌 때는 일본군복으로 갈아입고 적의 후방을 쳐서 환도로 적들을 베어 넘겼고 극동 전쟁의 마지막을 장식한 한성 탈환때도 직접 기마대를 이끌고 전격전을 벌였다. 40대에 접어든 1차 대전 시점에서도 소총과 탄약을 상시 휴대하며 소총수로서 역량을 잊지 않고 있다.
이러한 빙의 후의 대단한 업적은 단순히 현대지식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다. 범인은 본래 살던 시대보다 100년 이상 거슬러간 시점에 필요한 지식을 적재 적소에서 꺼내고 적용하는 것부터가 난감하며, 전혀 생소한 과거인들에게 가르치고, 이해시키는 것은 더욱 어렵다. 사람을 휘어잡는 카리스마와 리더쉽은 미래지식과는 아예 별개다.
빙의 전에 이미 명장이 될 자질을 갖고 있었으나 시대와 장소를 잘못 타고 태어난 김민재가 과거에 떨어져 가진 재능을 100% 펼칠 수 있게 되었다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순수 미래지식과 주인공의 능력만으로는 독자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아 각종 치트나 이능력을 부여하는 근래 대역물에서 드물어진, 아주 성공적으로 독자들을 납득시킨 사례라 할 수 있다.
5. 고종과의 관계
불편한 동거. 서로가 싫지만, 서로가 필요하기에 삐걱대면서도 동행하는 관계. 의외로 처음에는 나쁘지 않았다. 을미사변을 대비해 김시혁이 알려준 3가지 계책을 고종이 모두 무시해버려 원 역사대로 사단이 나긴 했으나 당시 김시혁은 이제 갓 두각을 드러낸, 그러나 왕 입장에선 일면식도 없는 20대 초반 애송이에 불과해서 그런 사람 말만 듣고 군 지휘권이 달린 문제를 처리하는 게 오히려 비현실적이었다.1차 쿠데타 전후해선 김시혁에 신뢰를 보였고 김시혁이 건넨 반도전쟁론과 실패와 패배를 받아들일 용기가 필요하다는 조언도 기꺼이 수용해서 김시혁도 역시 군주는 군주구나하며 안심했었다. 그러나 고종은 권력을 쥐는 능력은 탁월한 반면 제국주의 시대에 열강 틈바구니에 낀 신생 국가를 꾸려갈 능력은 전무했기에 황제 즉위를 기점으로 크고 작은 충돌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김시혁은 고종의 자의적 황권 행사와, 총알 한 발이 아쉬운 나라에서 무턱대고 저지르는 낭비벽과 과시욕, 전국 문전옥답마다 내장원 알박기해서 자기 금고를 불리는 탐욕을 질색했고 고종은 젊은 나이에 출세해 나라의 주인이 행하는 권리 행사에 딴지거는 군인을 경계해 친일파와 민씨 척족을 키워주며 점점 거리가 멀어진다.
문민통제는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에 참고 참고 또 참았던 김시혁은 극동 전쟁을 코앞에 두고 갑자기 중립국을 선언하겠다는 망상에[4] 더 이상 참지 못하고 2차 쿠데타를 일으켜 고종의 권력을 빼앗았고, 고종은 와신상담하며 민의와 언론의 잠재력을 주목한 끝에 10년에 걸쳐 천천히 권력을 회수해 오는 한편 김시혁의 공신 책봉과 대장 진급에 의도적으로 뜸을 들이며 견제구를 넣었다.
이토록 감정이 상할대로 상하고 서로 정적이 되었지만 김시혁이 이끄는 원수부의 권위는 전승과 고종의 신하라는데 기반하며, 고종은 김시혁 없이 열강의 침략을 저지하는 건 불가능함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김시혁은 고종을 견제는 해도 제거할 생각은 하지 않으며, 고종은 군부를 분열시킬지언정 위급한 전쟁에는 언제나 김시혁을 보내고 찍어 누르기 보단 회유하길 택한다.
6. 위상
앞으로 벌어질
모든 전쟁의 아버지
한반도의 군신이자 현대전의 아버지. 조선 내에서도 김시혁의 정적은 있지만, 김시혁의 능력을 부정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5]적국인 일본에서는 더욱 심해서 김시혁을 전신으로 추앙하며 연구하고, 패배의 원인을 전적으로 김시혁 1인에게 귀결시킬 정도이며 뇌신, 군신, 메이지의 악몽 등으로 부르며 두려움과 존경심을 동시에 내비친다. 일본 육군 수뇌부가 내놓은 10개 사단 체제의 한국을 지상에서 맞상대하기 위해선 50만의 육군이 필요하다는 누가봐도 무리수인 전망이 그들이 김시혁에게 품은 두려움을 대변하며 1차대전 시점에선 극동 전쟁에서 김시혁을 직접 상대해보지 않은 군부 소장파들 사이에서 아예 우상격 존재가 되어 떠받들어지고 있다.[6]
장작림을 비롯한 중국 군벌들 역시 김시혁을 적대해보고는 그를 만주의 호랑이라 부르며 벌벌 떠는 모습을 보인다.
콧대 높기로 유명한 서양 지휘관들도 김시혁을 만났다 하면 그 능력을 극찬한다. 극동 전쟁 이전 군제 개혁시기부터 만났던 페르디낭 포슈는 김시혁 같은 장군 1~2명만 프랑스에 있어도 독일군을 충분히 막고도 남는다라 단언할 정도이며 프랑스로 돌아간 이후로도 꾸준히 편지를 주고 받으며 그와 논의한 성과를 프랑스군 교리에 반영시키려 노력한다. 별개로 프랑스 내에서 김시혁의 호칭이 극동의 나폴레옹이라 칭해지는 모양이다.
러시아 제국의 군인으로 극동 전쟁에서 김시혁과 함께 싸운 파벨 미쉔코 역시 감탄하며 한국군의 방식을 열심히 배워갔고 1차 대전 시점에선 그의 지휘하에서 싸우겠다고 했을 정도다. 차르인 니콜라이 2세도 한국에 원군을 청할 때 원정군 사령관으로 김시혁을 콕 집었으며 러시아 제국 최후의 명장 알렉세이 브루실로프는 김시혁의 조언에 착안해 초기형 스트라이크 패키지 전술을 도입했으며 어려운 상황에서 최대한 한국군의 편의를 봐줬다. 또한 브루실로프 공세 이후 러시아에서 줄 수 있는 최고의 영예 중 하나인 성 게오르기우스의 검을 하사하기도 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버차니는 아예 본인이 추진하던 군사 개혁의 롤모델로 김시혁을 삼아 일부러 한국까지 찾아가 조언을 구할 정도였고, 그것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어 러시아 제국군이 동부전선에서 원래 역사보다도 더 고전하는 나비효과가 일어나기도 했다.
소령 시절 잠깐 마주쳤던 독일 제국의 팔켄하인도 김시혁이 독일에 있었다면 자신이 아닌 그가 참모총장이 되었을 것이라 독백하며 힌덴부르크나 마켄젠이 직접 김시혁을 상대해도 독일군이 승리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김시혁 본인은 독일군과 맞서면 1개 사단은 몰라도 1개 군단을 상대해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고 했지만, 최신화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완전히 부정하며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를 직접 상대한 린징겐은 자신이 지금 환생한 나폴레옹이나 한니발과 싸우고 있냐며 허탈해 할 정도.
미합중국의 퍼싱도 김시혁을 만나고 자신의 구시대적 전술을 타파했으며 그가 하는 건 뭐든지 따라하려 하고 있다.
7. 참전 일지
- 1894년 경복궁 전투
- 1894년 동학 토벌
- 효포 가도 전투
- 신탄진 전투
- 1896년 서해안 해적 토벌
- 1900~1년 의화단 진압
- 1903~5년 극동 전쟁[7]
- 1913년 남만주 봉천군벌 토벌
- 1916년 제1차 세계대전 동부전선
- 브루실로프 공세
- 코벨 전투(다섯 군대 전투)
-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서부전선
[1]
몇 화뒤 오스트리아군의 화학탄 투발 요청을 받고 거절한 독일군은 화학탄이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운 동유럽 평야 지형과 궂은 날씨, 적에게 유리한 풍향, 부족한 수량, 한국군이 화학탄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 등 전황을 타개하는데 부적절한 이유를 잔뜩 늘어놓았을 뿐 인권은 전혀 생각하지 않아서 무척 대비된다.
[2]
고종이 김시혁의 위신을 떨어뜨리고 약점을 잡을 속셈으로 익문사를 시켜 김시혁의 사생활을 캐보게 했는데 모범적인 가장의 모습만 실컷 감상하다 몇달만에 포기했다.
[3]
다만 러시아도 한국군을 보고 배운만큼 상향 평준화 된 것일 수도 있다.
[4]
그 중립국이라는것도 일본에 망명중인 인원들을 내각으로 끌어들여 러시아와의 동맹을 파기하고 친일로 전환하는것이다
[5]
대표적인 정적인 고종조차도 김시혁의 능력을 신뢰하여
박제순의 김시혁 제거 제안을 반려시켰으며
박제순도 이 안을 제안한 것이 김시혁의 능력을 경계한 탓이 크다.
[6]
이쪽은 본디 가상적국으로서 한국군을 연구하다 김시혁의 활약상을 보고 거기에 경도된 케이스다.
[7]
김시혁이 전술 지휘까지 맡은 전투로는 평양공방전, 사창리 전투, 한성수복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