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국 | |
출생 | 1939년 8월 1일 |
사망 | 2016년 11월 27일 (향년 77세) |
학력 |
김일성군사종합대학 프룬제군사대학 |
1. 개요
북한의 군인, 정치인.2. 생애
1939년 8월 1일에 출생했다. 14세의 나이로 입대, 6.25 전쟁에 참전했다.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소련의 프룬제군사대학 유학을 다녀왔다고 한다.1989년 6월, 6기 16중전회에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보선, 1990년 4월, 9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으며 1991년 12월, 6기 19중전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승진하였다. 1992년 4월 23일, 최고사령관 명령 제0024호에 따라 상장으로 진급하였다. 1994년 2월, 총참모부 작전국장 임명이 확인되었으며 1994년 4월, 대장 진급이 확인되었다.
1994년 7월, 김일성 장의위원, 1995년 2월, 오진우 장의위원, 1995년 7월, 김봉률 장의위원, 1997년 2월, 최광 장의위원을 지냈다. 1994년 7월,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겸임이 확인되었으며, 1995년 2월,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보선된 것도 확인되었다. 1997년 9월, 5군단장, 1998년 4월, 108기계화군단장을 역임하였으며 1998년 9월, 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다.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에 따르면 원래 김정일의 큰 총애를 받았으나 1996년 초 술자리에서 김정일을 위한 지하 핵벙커가 건설되고 있다는 것을 취중에 떠버렸다가 김정일에게 미운털이 박혀서 사적인 연회에 초대되는 빈도가 확 줄어버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2003년 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탈락하였고 한동안 잘 보이지 않았으나, 2007년 4월, 총참모부 작전국장에 돌아온 것이 확인되었고, 2009년 4월, 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2010년부터 김정일의 현지지도를 부지런하게 수행하였다. 2010년에 상장 강등이 확인되어 대청해전의 책임을 문 것이 아니냐는 말이 있었으나, 얼마 안가서 다시 대장으로 복귀했다. 2010년 9월, 3차 당대표자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에 재선되었으며 2010년 11월, 조명록 장의위원, 2011년 12월, 김정일 장의위원을 지냈다. 2012년 2월, 김정일훈장의 1차 수훈자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나이가 문제였는지 김정은 집권 이후에 총참모부 작전국장에서 해임되었다. 2012년 중순에 김정은의 현지지도를 수행한 것을 마지막으로 두문불출하였으며, 다만 2015년 11월, 리을설 장의위원을 지냈다. 김정은 시대에 제작된 선전물을 보면 이후 은퇴하여 원로로 대접받으며 지냈던 것으로 보인다. 2016년 5월, 7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에서 탈락하였으며 몇달 후인 11월 27일에 77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부고 발표는 따로 없었으나 김정은이 화환을 보내주었으며, 조선중앙통신은 "김일성훈장,김정일훈장수훈자인 조선인민군 륙군대장 김명국"이라고 짤막하게 그의 이름을 언급했다. 이후 시신은 애국렬사릉에 조선인민군 장령 직함으로 안장됐다.
3. 참고문헌
- 2015 북한 주요인사 인물정보(서울: 통일부,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