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83f8f> 제5·8·9대 서울특별시의회 의원 김동욱 金東旭 | Kim Dong-Woo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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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6년 11월 29일 ([age(1966-11-29)]세) |
전라북도 정읍군 | |
학력 |
홍익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졸업) 원광대학교 ( 사학 / 학사)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과학대학원 (도시행정학 / 석사) |
병역 | 해병대 병장 만기전역 (병 572기) |
가족 |
아버지, 어머니 부인 최미선, 슬하 1남 |
종교 | 기독교 |
소속 정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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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
노무현 대통령 후보 국민참여 서울본부 부본부장 제5,8,9대 서울특별시의회 의원 (민선 2,5,6기) 유인태 국회의원 보좌관 서울특별시의회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한국감정평가사협회 대외협력단장 지역경제 활성화 중앙회 이사 (전)제8대 서울특별시의회 행정자치위원회 위원장 (전) 서울특별시의회 더불어민주당 대표의원 더불어민주당 전국광역의회의원협의회 회장 |
수상 |
한국 정신장애인 인권상 문재인대통령후보 대선승리 공로자 1급 포상 서울 사회복지대상 2017 '매니페스토 약속대상' 좋은조례부문 최우수상 2017 대한민국을 빛낸 한국인상 2018 우수 의정 대상 |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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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서 현재 서울특별시 도봉구청장에 출마한 예비후보다. 이전에는 서울특별시의회 의원으로 3선을 보냈다.2. 생애
1960년 전라북도 정읍시에서 태어났다. 홍익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원광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과학대학원에서 도시행정학과 석사를 수료했다.3. 정치활동
3.1. 정치입문
대학을 졸업한 이후 자주대오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인해 전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 대학시절 학생회 활동을 하며,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것이 연루된 이유였다. 반성문을 쓰면 내보내준다는 회유도 있었지만 본인의 인터뷰에 따르면 거짓반성문을 쓰면 자신을 믿고 따른 후배들의 청춘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 쓰지 않았다고 한다.[1] 100일 가량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당시 국회의원이던 설훈의원의 제안을 받아 정치에 입문하게 되었다.이와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2000년도에 출마한 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서울특별시의회 시의원으로 당선되었고, 당시 최연소의원으로 정치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3.2. 서울시의원
이후 5대 서울특별시의회의 최연소 의원으로 시작한 의정활동은 8대, 9대에 선거에서도 당선되며, 3선에 이른다.서울시의원 의정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눈 여겨 볼 점은 크게 두 가지로, 다양한 상임위원회를 거쳐 의정활동을 했다는 점과, 현장에서 답을 찾는 것을 중요시 여긴다는 점이다. 5대 서울시의회 의원으로서 활동할 때는 예결산위원회와, 교통위원회. 8대 서울시의회에서는 행정자치위원회(위원장)와 교통위원회, 9대 서울시의회에서는 보건복지위원회와 교육위원회를 거쳤다.[2]
이와 같이 다양한 상임위원회를 거쳤다는 점은 본인 지역구에 필요한 민생현안이 무엇인지 깊은 고민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도봉구의 경우 많은 구민들이 교통시설에 다소 불편함을 겪어 GTX를 비롯해 교통 인접도에 대한 필요도가 높고, 서울외고나 선덕고를 제외하면 외고나, 자사고가 존재하지 않아 고교 입시를 비롯해 노원구나 타 지역으로 고등학교 진학을 하는 경우가 빈번히 존재한다. 또 노인거주비율이 높기 때문에 노인복지에 대한 수요 역시 존재한다.이와 같은 점을 고려해보았을 때, 의정활동 당시 단순히 예산 끌어오기를 위한 의정활동이 아니라 지역주민들을 위한 의정활동을 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김동욱이 자기 지역주민만 챙기는 서울시의원은 또 아니었다. 김동욱은 시정질문이나, 여러 설문조사를 통해 강남북 균형발전에 대한 인식을 조사하고, 그에 대한 해결방안에 대해 고민한 시의원이었다. 정확하게는 강남과 강북이 모두 발전해야 서울시가 발전했다고 볼 수 있고, 그 중에서 도봉구의 발전이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보는 입장이다.
두번째로는 의정활동을 하는 동안 현장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인 점이다. 몇몇 인터뷰에서 현장을 강조하고, 지역의 현안이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현장을 잘 살펴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실제로도 머리를 잘 쓰기 보다는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해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소통하고, 직접 현장에 방문해 문제를 관찰하고 겪어보며 판단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메르스 특위 위원장을 맡았을 때, 현장에 직접 방문해 본다 거나 , 교통이나 안전과 관련된 시설물을 점검하는 것도 직접 가보고 판단하는 것을 좋아한다.[3]
물론 서울시의원을 하면서 순탄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6회, 7회 지방선거에서 연달아 낙선한다. 6회 지방선거의 경우 한나라당의 윤학권, 새천년민주당의 차상일후보에 밀려 3위에 그쳐 낙선, 7회 지방선거의 경우 마찬가지로 한나라당의 윤학권 후보에 밀려 낙선한다.
해당 선거의 낙선의 이유는 6회 지방선거의 경우 무소속으로 출마해 13.94%에 그쳤기 때문이고, 7회 지방선거의 경우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막판 레임덕에 걸린 상황으로, 열린우리당의 정당지지율이 낮았기 때문이다. [4]
그러나 절치 부심하여 8년의 공백기를 버텨낸다. 초기에는 정치를 그만둘 마음도 있었는지, 생선가게를 열어 장사를 했고, 매일 가락시장에서 생선을 떼어 팔았다. 김동욱이 서울시의원으로 일하던 시절 보인 서민 친화적인 성향과 현장 중심적인 성향은 이 당시 매일 같이 시장에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고충을 가까이서 봤기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국회의원 유인태를 만나 보좌관일을 하기도 한다.
8년의 공백기를 버티고 서울시의원으로 복귀한 김동욱은 서울시의원으로서 더욱 발전된 모습을 보인다. 처음 시의원 의정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최연소의원으로서의 미숙한 모습도 조금은 있었다면, 8대 서울시의원으로 일할 때는 행정자치위원장으로서, 9대 서울시의원으로 일할 때는 더불어 민주당 원내대표, 전국광역의회의원협의회장에 당선되며, 당내외적으로 활동반경을 넓혔다.
3.3. 시의원 이후
2018년 서울시의회 의원직을 사퇴하고, 도봉구청장 출마를 선언한다. 이에 따라 경선에서 현직 구청장인 이동진(1960)과 경선을 치렀다. 처음에는 이동진 구청장에 단수공천을 줘, 경선이 이뤄지지 않을 뻔했으나, 재심 절차를 거쳐 이뤄진 경선이었다는 것이 눈에 띈다. 보통 현역 구청장에 프리미엄을 보태, 무난하게 단수공천이 주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지만, 재심 결과가 경선 시행으로 뒤집어졌고 이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가지로 이루어질 수 있다.첫번째는 이동진 구청장에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당시 창동 지역에 흉물로 남겨져 있던 민자 역사 문제부터 시작해, 이동진 청장을 비판하는 세력이 많았던 점을 당에서 의식해 경선을 하게 해주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김동욱 당시 도봉구청장 예비후보를 지지하는 지지세가 많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김동욱 예비 후보가 경선조차 하지 못하게 되자,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경선을 진행할 수 있도록 당에 탄원서를 제출했고, 그 수가 많았기 때문에 당에서 이를 외면하지 못해 경선을 진행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김동욱 예비후보는 이동진 구청장에 밀려 낙선한다. 김동욱 예비 후보는 45.4% 이동진 구청장은 54.5%로 약 10%가량의 차이었지만, 경선조차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가 그 경선을 하는 것으로 결정된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결과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상당히 선전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후 2020년 총선에서 도봉을 지역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려는 의사를 표명했으나 돌연 불출마한다.
그렇게 선출직을 다시 하지 않고 잊혀 지나 했으나, 2022 도봉구청장에 도전한다는 출마의사를 밝혔다. 현직 구청장인 이동진이 연임제한으로 인해 출마할 수 없기 때문에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똑같이 서울시의원 출신인 김용석 시의원과 경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경선 끝에 김용석이 도전했으나 윤석열 정부 임기 초반이었던 만큼 근소한 차이로 패하며 다음 지선에서도 다시 도전할 가능성도 있다.
4. 선거 이력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2000 |
상반기 재보궐선거 (광역의회의원) |
서울 도봉 4 |
[[새천년민주당| |
4,976 (46.1%) | 당선 (1위) | 초선 |
2002 |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5,354 (13.94%) | 낙선 (3위) | ||
2006 |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열린우리당| |
13,203 (29.23%) | 낙선 (2위) | ||
2010 |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민주당(2008년)| |
22,935 (48.18%) | 당선 (1위) | 재선 | |
2014 |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새정치민주연합| |
25,833 (50.81%) | 3선 |
5. 기타
2000.06. ~ 2002.06. 제5대 서울특별시의회 의원 (최연소)2000.07. ~ 2002.06. 제5대 서울특별시의회 교통위원회 위원
2000.09. ~ 2001.02. 제5대 서울특별시의회 장묘문화개선특별위원회 간사
2001.03. ~ 2001.09. 제5대 서울특별시의회 지방자치발전특별위원회 위원
2001.10. ~ 2002.06. 제5대 서울특별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2014.07. ~ 2016.07. 제9대 서울특별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
2015.06. ~ 2015.12. 서울시의회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확산방지 대책 특별위원회 위원장
2016.09. ~ 2016.12. 제9대 후반기 서울시의회 의회역량강화 TF 단장
2016.07. ~ 2018.04. 서울형 혁신교육지구 운영위원회 운영위원
2016.07. ~ 2018.04. 서울특별시의회 교육위원회 위원
2017.08. ~ 2018.04. 더불어민주당 중앙위원
2019.11. ~ 2020.05.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정무특별보좌관
2019.12. ~ 2021.12. 서울시교육감 민주시민 교육특보
2021.12. ~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2022.01. ~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평화경제연대위원회 도봉구지역위원장
[1]
http://www.siju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2313해당 인터뷰에서 수감생활과 자신에 정치인생에 관련된 이야기를 알 수 있다.
[2]
서울특별시의회에는 총 11개의 상임위원회가 존재한다. 상임 위원회 중 5개를 경험했다는 것은 자신이 잘하는 부분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며, 다방면에서 넓은 시각이 있어야 가능하다. 특히 행정이나 예결산위원회, 운영위원회와 같이 행정이나 예산과 관련된 상임위원회와 달리 교육이나, 보건복지, 교통과 관련된 부분은 주민들의 실제 삶과 직결되는 부분이다.또한 서울시의회는 4년 임기 중 전반기 후반기로 나눠 2개의 상임위원회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해보았을 때, 이와 같은 특징이 눈에 띈다. 한번은 보궐선거를 통한 당선이니 사실상 매 반기마다 다른 상임위원회를 경험한 것과 다름이 없다.
[3]
박래학 서울특별시의회 의장과 함께 서울의료원에 방문해 현장을 확인했다.
[4]
정당지지율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선거에서 승리하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 개인의 역량이나 노력이 따른다면, 이기는 선거도 가능하지만 대부분 전국적으로 유명한 수준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정치인의 경우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