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47a0> 출생 | 1909년 |
평안도 선천도호부 신부면 원리 (현 평안북도 동림군 청강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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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45년 8월 |
도쿄형무소 |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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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김덕순은 1909년생이며 평안도 선천도호부 신부면 원리(현 평안북도 동림군 청강리) 출신이다. 그는 1937년 4월 일본 도쿄에서 메지로(目白)상업학교(현 메지로대학)를 거쳐 니혼대학 전문부(專門部) 법과에 입학하여 1940년 3월 졸업하였다. 1940년 3월 9일 도쿄에서 이해룡(李海龍)· 안종식·안병익(安秉翊)·이봉하(李鳳夏)·김사복(金思宓) 등이 죽마계를 조직하자, 구철회(具喆會)와 함께 창립총회에 참석하여 죽마계에 가입하고 계장(楔長)으로 선임되었다.1940년 3월 13일 안종식·안병익의 졸업 귀국 송별회에서 죽마계원들과 긴밀한 연락과 목적 수행에 매진할 것을 결의하였다. 귀국 후 1940년 7월 서울 정릉(貞陵)에서 이창덕(李昌德) 등 죽마계원 5명과 만나 창씨개명을 하지 않을 것을 결의하였다.
1941년 4월 죽마계원 6명과 서울 청량리 청량사(淸凉寺)에서 제1회 임시총회를 열고 도쿄에는 연구본부, 서울에는 사업부를 설치할 것을 결의하고, 김사복을 연구부 책임자, 안병익을 사업부 책임자로 선임하였다. 이때 안종식 등과 함께 사업부 부원으로 배치되어 독립운동자금 모집에 노력하였다.
1941년 8월 9~10일경 일본 경시청으로부터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1942년 3월 17일 송치되었다. 1942년 11월 9일 도쿄형사지방재판소(東京刑事地方裁判所)에서 예심종결 결정을 받고 공판에 회부되었다. 1943년 3월 20일 도쿄형사지방재판소에서 안종식 등과 함께 징역 2년을 받고 도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8월경 8.15 광복을 앞두고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김덕순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