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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야스 앗 딘 무함마드 | 무이즈 앗 딘 무함마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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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샨베에 남아있는 기야숫딘의 기마상
1. 개요
페르시아어: غیاث الدین محمد بن سام영어: Ghiyath al-Din Muhammad
생몰: 1140년 ~ 1203년 3월 13일 (향년 63세)
구르 왕조의 초대 술탄이자 제12대 군주. 이름이 같은 동생 무함마드 고리와 공동 통치하였고, 그가 인도 부왕을 맡는 동안 호라산의 패권을 두고 호라즘 제국과 대결하여 승리하였다. 그의 치세를 거치며 구르 왕조는 아프간 지역의 중소 국가에서 대제국으로 변모하였다. 1203년 사망한 후 40년간 충실한 동지였던 무함마드 고리가 계승하였다. 비록 인도에서 활약한 동생의 명성에 가려져 있지만, 사실 단 한번도 패배하지 않은 기야스 앗딘이 군사적 재능이 더욱 탁월했다고 평가된다.
2. 생애
1140년 구르 왕조의 9대 군주 바하 앗딘 삼 1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어두운 피부로 '에티오피아 인'이란 의미인 하브쉬라 불렸고, 왕자 시절에는 샴스웃딘이라 불렸다. 당시 구르 왕조는 셀주크 제국에 복속한 아프간 산간의 중소국에서 점차 강국으로 부상하려 기상하던 단계에 있었다. 당대 군주이던 백부 사이프 앗딘 수리는 동생 쿠툽 앗딘을 살해한 가즈니 술탄 바흐람샤를 격파하고 가즈니를 점령했으나, 이듬해 후자의 반격으로 사로잡혀 잔혹히 처형되었다. 뒤를 이은 부친 삼 1세는 형제들의 복수를 위해 대군을 모아 가즈니로 진격했으나 도중 사망하였고, 계승한 숙부 알라 앗딘 후세인이 2년간의 대전쟁 끝에 1151년 가즈니를 함락하고 대학살과 파괴를 자행하며 복수를 이루었다.자신감을 얻은 알라 앗딘은 셀주크 제국의 봉신에서 독립을 선포하며 술탄을 칭했으나, 1152년 아흐마드 산자르에게 패배하고 재차 복속해야 했다. 가즈니 역시 후자의 압력으로 가즈니 술탄 바흐람샤에게 반환해야 했고, 이후 알라 앗딘은 토하리스탄이나 바미얀 등을 점령하며 셀주크 조를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영토를 넓혔다. 다만 숙부 알라 앗딘에 의해 감금되어 있던 기야스 앗딘, 무이즈 앗딘 무함마드 형제는 1161년 부친을 계승한 사촌 사이프 앗딘 무함마드에 의해 석방되었다. 이후 기야스 앗딘은 (당시 가즈니를 점령하던) 오우즈 튀르크에 대한 사이프 앗 딘의 원정을 도왔는데, 1163년 후자가 메르브 근처에서 이전에 처형했던 장수 와르메쉬의 동생에게 암살당하자 귀족들의 지지와 함께 술탄에 올랐다.
2.1. 치세 초반
즉위 후 기야스 앗딘은 친족들의 도전에 직면해야 했다. 우선 구르 부족장 중 하나인 아불 압바스가 반란을 일으켰다가 살해되었고, 뒤이어 숙부 파르크 앗딘 마수드가 제위를 주장하며 셀주크령 헤라트- 발흐 총독 일디즈와 동맹하여 진군해왔다. 기야스 앗딘과 무이즈 앗딘 형제는 라기 자르 전투에서 그들을 격파, 일디즈를 전사시킨 후 반격에 나섰다. 이로써 자민다와르, 바드기스, 가르치스탄, 구즈간 등이 점령되었다. 한편 사로잡힌 파크르 앗딘은 사면되어 바미안 총독으로 복권되었다. 얼마후 후자가 사망하자 계승한 아들 샴스 앗딘 무함마드는 카라키타이로부터 발흐, 차가니얀, 바크쉬, 자룸, 바다흐샨, 쉬그난 등지를 점령하였다. 이에 기야스 앗디는 그를 술탄 칭호를 내려 인정하였다.2.2. 정복 전쟁
1173년 기야스 앗딘은 가즈니를 침공, 10여년간 도시를 지배하던 오우즈 튀르크 인들을 축출하고 동생 무이즈 앗딘을 총독으로 봉하였다. 1175년 그는 셀주크 제국 최후의 호라산 지배자 중 하나인 바하 앗딘 토그릴로부터 헤라트와 푸샹을 점령하였다. 이에 시스탄의 군주 타즈 앗딘 하르브와 케르만의 오우즈 튀르크 부족이 복속해왔다. 그 무렵 호라즘 왕조의 계승 분쟁에서 밀려난 술탄 샤가 군사 원조를 청하였으나 기야스 앗딘은 거절하였다. 대신 카라키타이의 지원을 얻어낸 술탄샤는 메르브 등을 근거지로 하여 바드기스 등 구르 조의 북부를 공격하였다.1186년 기야스 앗딘은 인도 방면의 무이즈 앗딘을 도와 라호르를 함락하여 가즈니 조를 멸망시키고, 마지막 군주 쿠스라우 말리크를 처형하였다. 1190년, 이번에는 기야스 앗딘이 무이즈 앗딘과 바미안 및 시스탄 제후들의 도움으로 10여년간 종종 북쪽 변경을 침공하던 술탄샤를 마르브 알-루드에서 패배시켰다. 술탄샤는 남부 호라산의 영지 대부분을 잃었고, 더이상 구르 조에 맞서는 대신 1193년 마지막으로 호라즘 점령을 시도하다 병사하였다. 이로써 내부를 통합한 호라즘샤 테키쉬는 종주국인 카라키타이와 함께 구르 조와의 전쟁에 나서 각각 헤라트와 구즈간을 침공하였다.
기야스 앗딘은 두 침공을 모두 격퇴하는 위엄을 보인 후, 1200년 테키쉬가 사망하자 몇주 후 무이즈 앗딘과 함께 호라산으로 출정하여 니샤푸르를 점령하였다. 이후 무이즈 앗딘은 라이 점령에 나섰는데, 군대를 제대로 통솔하지 못하여 고르간에서 회군해야 했다. 그러자 기야스 앗딘은 좋은 기회를 놓쳤다며 비판했는데, 이는 형제 간의 유일한 다툼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 기야스 앗딘은 파크르 앗딘의 아들 타즈 앗딘 장기를 사락스, 다른 왕족 나시르 앗딘 무함마드 카르나크를 메르브 총독에 봉하고 회군하였다. 그후 1203년 헤라트에서 사망하자 무이즈 앗딘이 인도에서 돌아와 계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