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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29 13:27:48

금령총 금제 허리띠

파일:금령총 금제 허리띠1.jpg

1. 개요2. 내용3. 외부 링크4. 국가문화유산포털(문화재청) 소개 글

1. 개요

金鈴塚 金製銙帶. 1924년 금령총에서 발굴된 삼국시대 신라의 황금 허리띠.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금령총 금제 허리띠는 '경주 금령총 출토 금제 허리띠'라는 명칭으로 2023년 12월 26일 보물로 지정됐다.

2. 내용

파일:금령총 금제 허리띠2.png

길이 74.1㎝.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일본인 우메하라(梅原末治) 등이 금령총을 발굴·조사하던 중 발견한 신라시대 황금 허리띠로, 금령총 금관,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 소형방제경(小形髣製鏡), 주형토기(舟形土器), 그림이 그려진 백화수피제(白樺樹皮製), 금동제신발, 은제허리띠, 띠드리개, 금동장안장틀(金銅裝鞍橋), 발걸이(鐙子), 금동장고리자루칼, 금은장소도(金銀裝小刀), 금동제합(金銅製盒), 쇠솥, 각종 그림이 그려진 칠기(漆器), 유리잔 등 약 만여점의 고신라시대 유물들과 함께 출토되었다.

제작 연대는 같이 출토된 다른 유물들과 마찬가지로 대략 6세기 초엽(서기 500년대 초)으로 추정된다.

파일:금령총 금제 허리띠3.jpg

파일:금령총 금제 허리띠4.jpg

금령총 순금 허리띠의 띠꾸미개는 모두 23매이다. 허리띠에 매달려 있는 드리개는 여러개의 황금판을 이어서 만든 것이 7줄, 연필 모양 장식 2줄, 곡옥 4줄 등 모두 13줄이다. 다양한 형태의 드리개는 당시 왕이나 제사장이 관장했던 여러 가지 일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파일:금령총 금제 허리띠5.jpg

금판을 이어서 만든 드리개들은 당시 신라인들의 생활용품 및 당시 왕이나 제사장이 관장했던 여러 가지 일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허리띠의 전체 길이는 74㎝ 정도로 다른 신라 무덤 출토품과 비교하면 작은 편인데 이는 금령총 금관과 함께 금령총의 주인이 어린 아이였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파일:금령총 금제 허리띠6.jpg

신라의 정교한 황금 세공 기술을 보여주는 유물로, 신라시대 금세공기술 및 금속공예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3. 외부 링크

4. 국가문화유산포털(문화재청) 소개 글

‘경주 금령총 출토 금제 허리띠’는 신라시대 고분인 금령총(金鈴塚)을 일제강점기인 1924년 조선총독부박물관이 발굴했을 때 출토된 것이다. 금령총은 무덤 내부에 직사각형의 구덩이를 파고 덧널[槨]을 설치한 신라 특유의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으로 발굴 당시 금관(보물),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국보), 금령 등 당시 신라 고분문화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유물들이 대거 출토된 중요한 무덤이다.

금령총 출토 금제 허리띠는 목관 안에서 피장자가 허리에 착용한 상태로 발견되었는데 원래 가죽이나 천과 결합된 허리띠였으나 오랜 시간을 거치며 이것들은 삭아 없어지고 금제 장식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금제 허리띠는 버클에 해당하는 띠고리[鉸具], 띠꾸미개[銙板], 띠끝꾸미개[帶端金具], 드리개[腰佩]로 구성되는데 금령총 출토 금제 허리띠의 드리개[腰佩]는 다른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금제 허리띠의 드리개[腰佩]보다 길이가 짧다. 이는 허리띠를 착장했을 때의 모습을 고려하면 착장자의 키와 관련될 수밖에 없어 고분의 피장자에 대한 단서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금령총 출토 금제 허리띠에는 다른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금제 허리띠의 드리개[腰佩]에서는 보이지 않는 금실이 감긴 연필형(원뿔형) 드리개[腰佩] 2점이 있어 주목된다. 더불어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금제 허리띠 중 드리개[腰佩]에 가장 많은 4점의 곡옥이 있는데, 곡옥의 모자 부분에 난집을 두르고 유리를 채워 넣어 장식하였다. 이는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금제 허리띠의 곡옥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장식기법으로 연필형(원뿔형) 드리개[腰佩] 2점과 세부 장식이 유사한데 정교하고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어 조형적으로도 매우 우수하다.

‘경주 금령총 출토 금제 허리띠’는 출토지가 명확하며, 전형적인 신라 금제 허리띠의 모습을 갖추면서도 다른 허리띠와는 구별되는 요소들이 있어 허리띠의 기원과 구성을 고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