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10 17:11:28

귀뚜라미 싸움

파일:귀뚜라미 싸움.jpg

1. 개요2. 역사3. 지극정성의 사육4. 같이 보기

1. 개요

투실솔(鬪蟋蟀)은 귀뚜라미 두 마리를 한 곳에 가둬놓고 싸우게 하여 그 승패에 돈을 거는 중국의 전통 도박이다.

2. 역사


중국의 투실솔 대회. 베이징시 대표 vs 장쑤성 대표. 마치 e스포츠처럼 중계까지 하며, 복싱처럼 라운드와 휴식시간도 있다.

고양이 수염으로 귀뚜라미 뒷부분을 건드려 약을 올리면 귀뚜라미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흥분하는데 이렇게 약이 오른 2마리를 한 자리에 두면 서로 죽도록 싸우게 된다. 물론 닭싸움이나 소싸움에 비하면 박력도 스케일도 없는 작은 벌레 싸움 자체가 뭐가 그렇게 재밌겠냐마는, 그나마 가축으로서의 유용성이 상당해서 죽이기 아까운 닭과 소에 비하면 싸움에서 져서 죽어도 누구도 탓하지 않는 벌레끼리의 싸움이라, 승패 여부에 부담없이 돈이 걸리는 도박 거리가 되면서 수천년 동안 흥행하게 된다.

당연히 이 때문에 생기는 사회적 폐단이 심각했는데, 백전백승하여 살아남은 귀뚜라미는 그 값어치가 엄청나서 이런 일까지 있었다. 어느 내외가 빚까지 져가면서 싸움을 잘하는 귀뚜라미를 애써 샀다. 대륙의 영끌 대박의 꿈에 기뻐하던 이들은 실수로 문을 열어둔 틈에 귀뚜라미가 나가서 혼비백산하여 잡으려고 할 때, 기르던 닭이 그 귀뚜라미를 잡아채 낼름 먹어버렸고 망연자실하던 내외는 끝내 동반자살했다. 포송령의 요재지이에는 관리에게 바칠 귀뚜라미를 죽인 소년이 아버지를 위해 귀뚜라미로 변신해서 전국 귀뚜라미 싸움대회에서 우승하고 닭까지 싸워 물리쳐서 관리에게 엄청난 상금을 안겨주고 관리는 소년의 아버지에게 새 교실을 지어 주는 이야기가 실려있다.

북송 때 이 귀뚜라미 싸움도박은 너무나도 엄청난 피해를 줘서 온갖 조폭까지 연루하여 문제가 심각했다. 학자인 당안흠은 "사소한 벌레 싸움에 사람이 칼부림까지 하고 전재산을 걸어 일가를 알거지로 만드니 이 어찌 보통 일이 아닌가!"라며 한탄한 글까지 남겼다고. 김용 신조협려에 보면 양과가 위기상황에서 합마공을 사용하게 된 계기가 바로 이 귀뚜라미 싸움 때문으로 나온다. 곽부, 무돈유, 무수문 형제와 사이가 안좋던 차에 이 귀뚜라미 싸움에서 양과의 귀뚜라미만 계속 이기자 화가난 곽부가 밟아 죽여버린다. 이에 곽부의 뺨을 후려쳤던 것. 이에 형제가 협공으로 2:1의 싸움이 되자 황용에게 무공을 배우지 못해 얻어맞기만 하던 양과가 무의식중에 합마공을 펼치게 된것. 이 시기가 아래 가사도 때보다 20여년 전을 배경으로 하고있다.

게다가 고위 정치인까지 푹 빠졌으니 문제였다. 원래 간신이라 다른 점으로 개차반이었던 남송의 재상 가사도(1213~1275)가 그랬다. 자신으로선 못 상대할 명군일 쿠빌라이가 태자 시절 군을 이끌고 남송과 전쟁을 하다가, 1259년 칸이 위독하여 재위를 둘러싸고 싸움이 날 분위기라서 한 철군을 지가 몽골군을 물리쳤다고 거짓으로 알려 출세까지 하던 자였다. 끝내 쿠빌라이가 새로운 칸에 오르면서 내부 문제를 해결하자 대대적인 남송침공을 벌일 때, 가사도는 바로 귀뚜라미 싸움에 푹 빠져 정사를 일절 돌보지 않았으며 벼슬을 사고파는 일과 이 귀뚜라미 싸움만 관심을 가졌다. 싸움 잘하는 귀뚜라미를 천냥이 넘는 거액에 사면서 국고금을 썼으니 나라 사정은 두고 볼 것도 없었다. 끝내 남송이 몽골에게 무너지고 가사도는 목숨을 구걸해 살아남았지만 열터진 병사들이 지방으로 압송하는 그를 참혹하게 끔살해 인과응보로 삶을 끝냈다. 다만 가사도는 간신으로 욕먹고 남송 멸망에 이바지한 인물이지만 항목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정책적으로는 유능한 점도 있었다. 비록 귀뚜라미 싸움이니 여러가지로 말아먹어 나라 멸망에 기여하여 묻혔지만.

명나라 황제 중에서 몇 안되는 명군이었던 선덕제도 귀뚜라미 싸움에 미친 건 마찬가지라서 싸우는 귀뚜라미를 잡는 환관이 지방에 가면 무조건 우대하라는 명령을 내려 이들의 횡포가 장난이 아니었다. 위의 요재지이 이야기도 명나라 선덕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청나라때에도 귀뚜라미 도박이 크게 유행하여 황실 뿐만 아니라 상류층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귀뚜라미를 길렀다. 귀뚜라미는 싸움만 붙이는게 아니라 통에 넣어서 소리를 감상하기도 했다.[1]

또한 귀뚜라미가 잘 싸우길 기원하는 상류층들은 그 당시에 매우 귀한 보라색 염료로 귀뚜라미를 색칠하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행위는 귀뚜라미의 호흡활동이 곤란해지는 결과를 초래했고, 귀뚜라미를 형형색색 꾸미는 활동은 곧바로 사라졌다. 대신에 귀뚜라미에게 검은콩을 갈아 만든 특식을 주거나 생선을 갈아 주는 등 별의별 식단을 귀뚜라미에게 대접했는데, 어이없게도 귀뚜라미는 이게 웬 떡이냐 하고 주는 음식을 덥석덥석 집어먹어 무지막지하게 크기가 커졌고 상류층들 역시 거대해진 귀뚜라미를 싸움붙이는데 재미가 들려 나중에는 귀뚜라미에게 금가루를 주는 사람도 생기거나, 싸움용 귀뚜라미를 관리하는 귀뚜라미 관리인도 생겼다고 한다.

영화 용쟁호투에서도 귀뚜라미...는 아니고 사마귀를 싸움붙이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리( 이소룡)와 로퍼( 존 색슨)가 내기를 하여 결국 리가 승리하여 돈을 따낸다.

중국에서 귀뚜라미 싸움의 인기는 오늘날에도 그대로이다. 기사, 기사2, 기사3 작은 벌레끼리의 싸움이라 투견이나 투계처럼 동물학대로 단속되지 않는데다 전통문화 취급까지 받는지라 대놓고 도박으로 돈을 걸지 않고 순수하게 체급을 나눠서 토너먼트 대전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3. 지극정성의 사육

판돈은 도박을 거는 대상자들의 합의로 결정되기 때문에 한 판에 집 한 채를 날리는 경우도 허다했다고 한다. 그래서 강한 귀뚜라미를 만들기 위해 청도 소싸움에서 사육사들이 소한테 잘 먹이고 훈련까지 시키는 것처럼 귀뚜라미도 콩에 밥을 찧어 넣은 특식을 주고 잘 먹지 않을때는 지렁이 대변을 물에 타서 먹였다고 한다. 사람 피를 먹어야 강해진다고 일부러 모기에 물린 다음 그 모기를 밥으로 주거나 더 강한 귀뚜라미를 고르는 안목도 발전했다. 중국의 생물 분류학은 귀뚜라미를 50종으로 보지만 도박업계에서는 63종으로 본다고 한다. #

4. 같이 보기


[1]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도 묘사되지만 이쪽은 북경여치라는 여치종이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157
, 4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157 ( 이전 역사)
문서의 r ( 이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