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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5 10:50:22

국립한국해양대학교/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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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2020년대
2.1. 2022년 해양대 승선실습 남학생 선호, 인권위 성차별 관행 지적2.2. 2021년 해사대학 똥군기 논란2.3. 2020년 해외 실습 학생 사망 사건
3. 2010년대
3.1. 2018년 대학기본역량진단 역량강화대학 선정3.2. 2016년 태풍 차바 피해3.3. 2015년 웅비관 천장 붕괴 사고3.4. 2015년 동삼동 원룸 화재 사망사고3.5. 2011년 폐교 논란
4. 2000년대
4.1. 2008년 해상교육장 초등학생 익사 사고4.2. 2006년 한국해양대학교 맨홀 변사 사건4.3. 2003년 태풍 매미 피해4.4. 2002년 울산 이전 논란4.5. 2002년 해사대 병역 특례 제외 집단 반발
5. 1990년대
5.1. 1998년 무동력 목선 운항 학생 사망사고5.2. 1997년 기숙사 화재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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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국립한국해양대학교에서 발생한 각종 논란 및 사건 사고를 정리한 문서.

2. 2020년대

2.1. 2022년 해양대 승선실습 남학생 선호, 인권위 성차별 관행 지적


2.2. 2021년 해사대학 똥군기 논란

2021년 4월, 에브리타임을 통해 해사대학 똥군기가 고발되었다. # 해사대학 신입생을 위한 적응교육훈련 중, 팔굽혀펴기 1200개를 시켰는데, 그 사유가 어처구니없게도 화장실 수도꼭지 좌우 오와열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물론 지적받은 당사자가 1200개를 다 하진 않았고, 연대책임으로 각자 80개 정도를 하면서 다 같이 채웠다고 한다. 관련 기사. 더욱 놀라운 것은 앞선 기사에서 볼 수 있듯이 학생간 분쟁을 해결해야 하는 학교 교직원이 학생간 똥군기 행위를 위생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가르침으로 미화했다는 것이다.

2.3. 2020년 해외 실습 학생 사망 사건


3. 2010년대

3.1. 2018년 대학기본역량진단 역량강화대학 선정

파일:한국해양대학교 심볼.svg 한국해양대학교의 역대 대학구조조정 결과
<rowcolor=#005baa> 평가명 선정년도 선정결과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2010년 해당 사항 없음(정상)
대학구조개혁평가 2015년 B등급(정원 4% 감축 조치)
대학기본역량진단 2018년 역량강화대학 선정
2019년 역량강화형 선정
2021년 일반재정지원 선정
경영위기대학 2023년 결과 발표 예정

3.2. 2016년 태풍 차바 피해

2016년 10월 5일 제18호 태풍 차바의 해일성 파도로 인해 강의실 유리창이 깨졌고, 학교운동장에 파도가 넘어와 쑥대밭이 되었다. 이날 운행하던 시내버스는 파도에 맞고 문이 열릴 정도로 타격을 맞고 바닷물이 차 내부로 들어왔다. 관련 영상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3] 그리고 보도블럭과 경계석이 뽑혀 나뒹굴기까지 했다. 하다하다 학보사에서 바람에 관한 분석 기사까지 쓸 정도이니 참고 바람. 한국해양대신문사 기사

3.3. 2015년 웅비관 천장 붕괴 사고

2015년 4월 6일 오후 11경, 웅비관 4층 405호 기숙사에서 가로 30㎝, 세로 15㎝ 크기의 철골 콘크리트 덩어리가 아래로 떨어졌다. 지어진 지 40년이나 지났고 시설의 노후화로 6년 전 평가에서 D등급을 받았는데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아 불만을 사고 있다. 뉴스 링크 게다가 2015년 여름계절학기에 아라관 배정에서 해사대 남학생들이 선착 상관 없이 누리사로 배정되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한국해양대 신문사 기사 아라관 개관한 지 2년도 지나지 않은 때 일어난 일이라 해사대 학생들의 불만이 말이 아니었다고.

2015년 11월에도 계속하여 웅비관의 천장 콘크리트가 무너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해사대학의 학사일정을 일주일 앞당겨서 해사대학생들을 조기퇴실시켰다. 재학생의 증언에 따르면 웅비관에는 금이 안간 방이 없으며, 심지어 어느 방은 비가 올 때마다, 기둥 옆으로 빗물이 새서 바닥에 이끼가 자란다. 이로 인해 학사일정이 1주일이 당겨져서 몇몇 학과들은 하루에 시험을 4~5개씩 보기도 했다. 재학생들의 육두문자는 덤. 2015년 학사일정 종료 이후 신학기부터 해사대생들은 모두 신축 생활관으로 이주했다. 남겨진 건물은 축제 때 공포체험 등으로 활용하다가 현재는 철거를 하고 공터 및 드론 비행장으로 쓰고 있다.

3.4. 2015년 동삼동 원룸 화재 사망사고

2015년 3월 12일 동삼동 원룸건물에 불이 나서 2학년 학생 2명이 숨지는 일이 있었다. 사고 기사

3.5. 2011년 폐교 논란

2011년 당시 한나라당(現 국민의힘) 출신 박희태 국회의장 주도로 '한국해양대학교', ' 한국해양수산개발원' 그리고 '한국해양연구원'[4]을 통합하여 ' 한국해양과학기술원'으로 재편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격렬한 반대로 백지화되었다.[5][6]

4. 2000년대

4.1. 2008년 해상교육장 초등학생 익사 사고

2008년경 여름 초등학생 1명의 익사 사고가 발생한다. 공학1관 옆 해상교육장에서 물놀이 교육이 여름방학을 맞아 구명조끼를 입혀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는데 교육중에 사망자가 발생하여 지역 뉴스에서 한때 시끄러웠다.

4.2. 2006년 한국해양대학교 맨홀 변사 사건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한국해양대학교 맨홀 변사 사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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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2003년 태풍 매미 피해

2003년 9월 태풍 매미가 부산을 지날때 해양대 우체국을 제대로 때렸다. 당시 50주년기념관 1층에는 해양대 우체국과 농협이 이웃하고 있었는데, 우체국 사무실의 바닷가 쪽 창문으로 큰 파도가 그대로 내부를 덮친 것이다. 당연히 우체국 창문들은 모두 파손되었고 우체국 사무실 안은 집기류들이 제법 파손된 바닷물에 젖은 상태로 며칠을 출입문이 잠긴채로 방치되었다. 이웃한 농협은 피해가 조금도 없이 완전히 멀쩡해서 바로붙은 우체국은 유리 출입문이 잠긴채로 조용한데 농협만 아무렇지도 않은듯 정상 영업을 하는 상황이 계속 되었다.

4.4. 2002년 울산 이전 논란

2002년 6월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둔 한나라당 박맹우 울산광역시장 후보는 공약으로 국립대학교 울산 유치를 내걸었고, 부경대학교, 한국해양대학교, 창원대학교 등 부산·경남지역 대학들에 유치의사를 내비쳤다. 박맹우는 결국 울산광역시장이 되었고, 울산에 국립대 설치를 약속한 노무현도 대통령에 당선된 상황이었다.

2003년 부경대학교 울산 이전 떡밥이 돌고 부경대와 울산광역시 측이 추진의사를 밝혔지만 부경대학교 내부 진통이 거세지자 결국 철회되었다. 2년이 지난 2005년 한국해양대와 울산광역시청은 해사, 기계소재, 통상행정 등 6개 단과대학 중 해사대학 등을 제외하고 3개 단과대학을 울산에 이전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었다. 한국해양대 부산·울산 캠퍼스 추진 기본계획[7]에 따르면 울산캠퍼스 신입생은 2009년부터 모집하는데

등의 계획이었다. 2005년 2월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성경륭 위원장은 대통령비서실 사회정책수석비서관·교육인적자원부 차관 등 9명으로 구성된 ‘울산국립대학설립추진위원회’를 열어 공식적으로 한국해양대 울산 이전을 제시하였다. 이런 흐름에 한국해양대 일부 동문들이 한국해양대살리기동문연합이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어 사이버 연판장까지 모으며 울산 이전을 반대하였다. 동문들 중에는 찬성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해사대학 등 해양관련 학과를 제외한 나머지 단과대학을 울산으로 옮겨 부산캠퍼스를 명실상부한 해양특성화 대학으로 집중 육성해야한다며 부산권 국립대 통폐합의 현실상 울산이전은 모교의 장기발전을 위해 최선이라고 주장했다.

부산 쪽에서도 이 소식을 듣고, 영도구민 300여명이 '지역 주민 동의 없는 해양대의 울산 이전 철회하라'는 구호를 외쳐댔다. 부산광역시 측은 정부와 해양대측이 추진하고 있는 부산・울산 2개 캠퍼스체제는 부산의 특화산업인 항만물류산업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며 반대했다.[9]

한국해양대 재학생들도 대형 떡밥에 대학 자유게시판에서 키배를 벌이며 교육환경이나 대학명칭 변경[10], 혹은 향후 부산대와의 통합[11] 등에 관해 논쟁을 벌였다. 부산대와의 통합 논의는 당시 부산을 잠시 시끄럽게 했는데 부산대 측에서 거부하였고 부산대는 해양이 아닌 자동차 특성화 대학으로 결정이 된다.

결과적으로 울산 이전은 흐지부지되었고, 울산에는 2007년 울산과학기술대학교[12]가 신설된다. 그리고, 부산·울산캠퍼스추진 기본계획에서와 비슷하게 2캠퍼스가 동삼동에 건설된다. 이 문제로 해양대가 아닌 울산과학기술대로 연구시설 확충이 결정되며 해양 수조 1등 대학의 지위는 잃게 된다.

4.5. 2002년 해사대 병역 특례 제외 집단 반발

2002년 가을 해사대학 재학생 모두의 병역 특례 혜택이 사라진다. 해사대 학생들은 4년제 학교를 군대처럼 다녔는데 군대를 또 가야 하냐며 초가을부터 반항을 하였으나 몇달만에 집단 반발을 접게 된다. 여학생들한테도 제복입었다고 인정사정 없더니, 졸업 예정자들이 제일 불쌍했음 집단 반발때에도 현수막이 교내에 조금 걸리고 약간 시끄러웠는데, 반발이 사라지고도 나서는 겨울이 오기전에 놀라운 변화가 생긴다. 도서관 앞에 중앙공원은 잔디밭이었지만 매년 항상 70~80%는 잔디가 벗겨져 흙밭이 띄엄띄엄 눈에 띄게 드러나 있었는데, 조경을 하시는 분들이 며칠을 그 곳에서 열심이더니 100%로 흙땅이 안보이는 잔디가 풍성한 앞뜰로 돌변한 것이다. 그리고 해사대 재학생들의 각들도 과거에 비해서 상당히 풀어진다. 당시 혜택 박탈의 원인은 해운 업계에 대형 선박들의 브릿지에서 대대적인 디지털화로 인한 해기사들의 운항 피로도 감소임이 명백하다.

5. 1990년대

5.1. 1998년 무동력 목선 운항 학생 사망사고

1998년 쯔음 해양대 재학생 1명이 무동력 목선으로 조류와 돛의 힘으로만 고대 국제 항로를 따라 바닷길을 항해하는 모험에 나선다. 해협을 횡단하는 험난한 항해가 시작되고 틈틈이 운항 소식이 국내 언론을 통해 전해지고 소식이 학내에도 조금 알려지며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목적지 일본을 어느 정도 남겨둔 해상에서 배가 침몰하고 학생은 사망한다. 며칠후 학내에서 그 항해와 관련한 조촐한 추모 사진전이 학생회관 앞 도로변에서 조용히 열리고 그 모험은 묻힌다.

5.2. 1997년 기숙사 화재사고

1997년 아치사 내항측 꼭대기층 제일 안쪽에서 2번째 방에 화재가 발생한다. 중간 고사 기간을 앞두고 도서관에 가고 고향집에 내려가고 해서 늦은 밤에 그 방은 비어 있고, 기숙사 전체도 거의 비어 있었는데 벽에 콘센트 부근에서 전기 누전으로 의심되는 불이 난 것이다. 바로 옆방에 학생이 방의 복도 반대쪽 계단실 소화기를 가져와서 불을 완전히 진화했으나 신고를 받고 소방서에서 소방차가 다녀갔다. 화염이 얼마나 거셌는지 방에 침대, 책상, 옷장, 창틀, 출입문틀까지 모두 남김 없이 타버렸고 방의 천정과 벽이 모두 검게 그을렸다. 다행히 복도와 다른 방들에 피해는 전혀 없었으나 며칠후 수업을 마친 기숙사 인원들이 거의 있을 무렵에 소화기를 실제로 터트리며 화재 진압 요령 교육이 진행되었다.


[1] 부실대학이란 말 자체가 정의된 개념이 아니기에 이런 오해가 잦다. 딱히 명확한 기준은 없지만 보통은 역량강화대학 이하 등급부터 부실대학이라고 한다. [2] 2018년 대학기본역량진단으로 치러진 역량강화대학과, 2019년 역량강화대학을 대상으로 치러진 역량강화형은 이름이 비슷하여 혼동하기 쉬우나, 둘은 구분해야 한다. 2019년의 대학혁신지원사업에는 자율협약형(Ⅰ), 역량강화형(Ⅱ), 후진학선도형(Ⅲ)으로 나뉘는데, Ⅰ과 Ⅲ은 2018년 진단된 자율개선대학에 한해서, 한국해양대가 속한 Ⅱ, 역량강화형은 2018년 진단된 역량강화형대학에 한해서 선정되는 것이다. 즉 역량강화형은 역량강화대학에 선정된 대학에 한해 선정되는 것으로, 위기에서 도약할 수 있는 발판과도 같은 것이 역량강화형이라고 볼 수 있다. [3] 그 차량은 대우 NEW BS106 좌석형이었다. [4] 현재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의 전신 [5] 한국해양대신문 "우리대학 폐교위기 사건의 전말은?" [6] 법안내용이 '해사대학뿐만 아니라 일반대를 전부 폐지하고, 그 대학 내에서 2013년 기준으로 남아 있는 재학생은 타 대학에 편입하거나 해양과기원에 편입 한다.' 라는 내용. 이때 당시 박희태 국회의장은 막말로 해양대학교 전 구성원 + 졸업생들에게 하리 앞 횟집의 오징어보다 더 씹혔으며, 이어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한국해양연구원, 심지어 당시 국토해양부마저 이 안에 반대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무산되었다. [7] 한국해양대에서는 소위 투캠퍼스 전략이라고 불렀던 듯 하다. [8] 한편, 경상대학교에서는 경상대 총동문회가 2004년 초 울산에 분교를 만들어 공대·해양대 등을 이전시키고 본교에 약대, 한의대 신설하자는 안을 교육인적자원부에 건의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했다. [9] 국립대를 무려 4개나 보유한 부산시의 속내는 기본적으로 자기몫 빼앗기기 싫다는 입장에다 울산에 일부 단과대학이 이전하면 향후에 죄다 이전해버릴까 하는 걱정인 것이었다. [10] 사실 한국해양대학교가 지역명칭을 쓰지 않는 특성화 성격의 대학교이고, 울산에 이미 울산대학교라는 지역 명칭 쓰는 학교가 있는 상황에서 명칭 변경은 쉽게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상황이었다. [11] 당시 교육인적자원부가 국립대학이 너무 많다고 국립대 통합 등 구조조정이나 정원 축소 등을 추진하던 기조였기에 부산에 있는 4개 국립대들도 경남에 있는 국립대까지 포함해서 통합 떡밥이 돌았다. [12] 울산대학교가 이름을 선점해서 이것저것 검토하다가 과학기술을 첨가하게 되고, 이후 서울산업대학교(현 서울과학기술대학교)와 진주산업대학교(현 경남과학기술대학교)가 교명 변경할 때 따라하게 된다. 그리고 2015년 울산과학기술원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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