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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03 02:20:13

구미호: 여우누이뎐/명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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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1회3. 2회4. 3회5. 4회6. 5회7. 6회8. 7회9. 8회10. 9회11. 10회12. 11회13. 12회14. 13회15. 14회16. 15회17. 16회

1. 개요

구미호: 여우누이뎐에 등장한 인물들의 대사를 기록한 문서이다.

2. 1회

연이: 그 여인이 구미호 맞죠? 그렇죠 어머니?
구미호: 그래 맞다!
연이: 그 다음엔 어찌 되었습니까? 나무꾼을 잡아먹습니까?
구미호: 아니? 나무꾼의 아내가 되었지!
연이: 어째서요?
구미호: 원래 구미호는.. 착하고 믿을만한 사람을 만나 10년을 함께 살면 인간이 된단다. 그래서 그 날을 기다리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틴게지.
연이: 그럼, 그 나무꾼은 착하고 믿을만한 사람이었습니까?
(잠시 과거를 회상하는 구미호)
(자신에게 채소를 던지며 옥구슬을 가져오라고 구박하는 구미호남편.)
(남편에게 줄 옥구슬을 무덤을 파헤쳐 훔치는 구미호의 손.)
구미호: 세상에... 둘도 없는 착한 인간이었지...
연이: 그럼 그 구미호는.. 인간이 된 것입니까?
구미호: 글쎄다. 내일이면 알 수 있겠지. 오늘만.. 오늘만 잘 넘기면...[1]
남편: 여보! 내가 무서운 얘기 해 줄까?
구미호: (놀라며) 여보!
남편: 그게 한 10년 전이었구먼. 아이 우리 엄미가 한여름에 얼음 띄우는 콩국이 자시고 싶다지 뭐여? 그래서 내 고드름을 구하려고 금전골, 여우동굴에 들어갔는디 하이고 당신은 저거.. 천년묵은 구미호 못 봤지?
(급당황하는 구미호.)
(점점 변하는 구미호.)
남편: 그 때 죽었으면은 당신도 못 만나고.. 우리 연이도 못태어났을텐데. 여보, 안 그래? (구미호를 쳐다보며)
구미호: 당신이 원망스러워요. 왜.. 왜 언약을 깼어요? 약속을 지킨다고 말했잖아요!!
(목소리를 떨며 시선을 아래로 두는 남편.)
구미호: 내일이면.. 내일이면 10년이 되는 날인데..!
(점점 얼굴이 변하는 구미호.)
구미호: 하루만 참았으면.. 하루만!!
(치마 밑으로 꼬리가 나오며)
(다시 구미호를 보는 남편, 뒤로 놀라 자빠지며)
(화가 난 채 남편에게 다가가는 구미호.)
구미호: 너 역시 다른 인간과 다를 것이 없거늘. 너를 믿었던 내가 어리석구나! 네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바람에.. 나는 물론이고(자고 있는 연이를 내려다보며) 우리 연이까지도... 인간이 될 기회를 영영 잃어버렸구나...! (다시 남편을 노려보는 구미호.) 너는 약속을 어겼으니, 약속대로 너를 죽이고 말겠다...!!! (괴성을 지르며 남편의 목을 조르는 구미호.) (흐느끼며 남편을 놓아준다.)
참으로 더러운 게.. 정이라는 것이구나. 내 그동안, 쌓아온 미운 정, 고운 정 때문에.. 내 너의 목숨만은 남겨두고 간다.
(이내 사라지는 구미호.) [2]
(잠든 연이를 업고 있는 구미호.)
구미호: (마음속으로)미안하다, 연아. 석달 후, 네가 열 살이 되면 그땐 완전한 여우가 될 것이니, 그 때.. 그 때 어미가 널 데리러오마... (입 밖으로 말하며) 연아, 반드시.. 반드시 널.. 데리러오마...!
(동굴 속에서 잠든 연이, 연이를 바라보는 구미호.)
구미호: (마음속으로) 연아, 숲에서는 네가 살 길이 없고 이 어미는 더러운 인간세상에 섞이고 싶지 않으니.. 이를 어쩌면 좋으냐?
(잠에서 깬 연이).
연이: 어머니.
구미호: 연아.
연이: 전 어머니가 멀리 도망간 줄 알았어요...
(연이를 안는 구미호.)
연이: 꿈을 꿨어요.
(연이를 놓는 구미호.)
구미호: 꿈?
연이: 밤새 호랑이도 만나고, 여우 등에 업혀서 하늘도 날았어요! 근데, 참 이상치요? 여우 등이 어머니 등처럼 편키만 했어요! [3] 여기는 어디에요? 아버지는요? 아버지가 또 옛날처럼 어머니를 괴롭힌 거에요?
구미호: 연아... 아버지는...
(다시 연이를 안는 구미호.)
구미호: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셔..
연이: 네? 아버지가요?
구미호: 아랫 옆 댁골까지 역병이 퍼졋다 그랬지. 어젯 밤, 갑자기 그리 되셨다.
연이: (울먹이며) 아버지, 아버지....
(상처를 입고 누워 앓는 구미호.)
연이: 돈을 주지 않으면 오지 않겠데요. (물수건을 닦으며) 어머니, 혹시 가락지 가지신 거 없나요? 그거라도 팔아서...
(구미호의 손에 쥔 옥구슬을 발견한 연이.)
연이: (옥구슬을 잡으려 하며) 아니, 이게!
구미호: (다급하게)안 된다! 이건 안 된다!
연이: 아니, 왜요? 이거면 의원을 데려올 수 있어요!
구미호: 이건 안된다, 연아! 절대로! 연아, 어미하고 약속 하나만 하자. 나중에라도 행여.. 누가 이 구슬에 대해 물으면, 넌 모르는거다. 너는 본 적도 없는거다...! 이와 관련해서는 아.. 아무것도.. 아무것도 대답해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잠시 망설이는 연이)
구미호: (다그치며) 알겠느냐?
연이: 네..
구미호: 인간을 믿어선 안 된다! 천하에 믿지 못할 것이.. 인간이니라!
연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허면, 어머니도.. 아버지도.. 옆집 새돌이 언니도... 다 믿으면 안 돼요?
구미호: 믿지 마라, 절대로! 절대로...!

3. 2회

만신: 한 가지, 명심하실 것이 있습니다. 비방 날 전까진, 아무에게도 누설치 마십시오. 절대로.. 절대로 누설치 마십시오. 안방마님에게까지도 말입니다.
(의아한 표정으로 만신을 보는 윤두수)
하기에, 제가 이렇게 당부드리지 않아도, 나리 스스로 입에 올리시긴 힘들 겁니다.
윤두수: 그게.. 그게 무슨 소리냐?
만신: 석달 후, 열 살이 되는 아이의 간을 초옥아씨께서 먹는다면 초옥아씨는 살 수 있습니다.
구미호: (마음속으로) 그래... 석달 후, 연이 네가 여우의 기운을 차리는 그 날까지만 이곳에 있자. 이 어미는 더러운 인간 세상에 머물고 싶지 않았으나, 연이 너한테는.. 들짐승이 날뛰는 숲보다야 여기가 났겠지.
연이: 어머니, 우린 이제 여기 사는 것입니까?
구미호: 싫으냐?
연이: 모르겠습니다.
구미호: 이제 두 다리 쭉 뻗을 방도 생겼고, 네가 좋아하는 밥도 삼시세끼 먹을 수가 있는데?
연이: 그럼 우린 이제.. 팔자가 늘어진 것입니까?
구미호: (웃으며) 뭐?
연이: 아버지가 그러셨어요. 등 대고 누울 방에, 새끼 먹을 밥만 있으면.. 그게 바로 팔자 늘어진 거라고...
구미호: 연이야, 우리 노래 한 번 불러볼까?
(밖에서 두 모녀의 노래를 듣고 있는 윤두수.)
구미호: 어디까지 왔나?
연이: 아직아직 멀었다.
구미호: 어디까지 왔나?
연이: 개울까지 왔다.
구미호: 어디까지 왔나?
(계속 노래하는 모녀.) [4]
윤두수: 나를 원망해도 좋다. 허나, 이것이 너희 모녀의 운명이다...!
윤두수: (연이를 우물에 빠뜨린 초옥에게 회초리를 휘두르며) 아직도 네 잘못을 모르겠느냐?
초옥: (계속 울먹이며)
윤두수: 내가 너를 잘못 키웠다. 어려서부터 병칠이 가심하여 그저 오냐오냐 예쁘게만 키웠더니, 네가 이리 안하무인이 되었구나!
초옥: 전 그 아이가 싫습니다! 쓰디 쓴 약만 가지고 와서 아픈 데 눌러대는 그 어미도 싫습니다. 처음부터 싫었습니다. 아버지가 저 보듯이 그 아이를 보는 것도 싫습니다. 다 싫습니다! 그 모녀를 쫓아내십시오. 아버지가.. 그 아이를 감싸도는 것도.. 싫습니다!
윤두수: 뭐야? 내가 누구 때문에 그 아일 집에 들였는데...!
초옥: 저 때문이란 말은 하지도 마십시오! 그 아이 어미가 제 눈 뜨는데 뭘 했는지 몰라도 전 그 애만 보면 화병이 나 죽을 거 같습니다!!!
윤두수: 네가 아직 종아리가 덜 아픈가 보구나!! (다시 회초리를 휘두르며)
양부인: 그만하십시오!
(방으로 들어와 초옥을 안는 양부인)
윤두수: 놓으시오, 어찌 잘못된 일을 벌였는데 부인이 나서는 게요?
양부인: 초옥이가 잘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야단치셔도 좋습니다! 허나, 몸도 성치 않는 아이에게 이리 매질을 하시다니요?! 나리, 변하셨습니다.
윤두수: (당황하며)무슨 소리요?
양부인: 뿌리 없는 천 것이 들어와 집안을 흔들고 있습니다..! 수상쩍은 구석이 한 군데가 아닌데도 나리께서 초옥일 위하는 마음 때문에 저 또한 참았습니다! 허나, 병간 시키려다 우리 초옥일 잡겠습니다! 초옥이가 누굽니까?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정도로 애지중지하시던 아이 아닙니까? 저번엔 연이 때문에 충일이에게 손을 대시더니, 이번엔 초옥이 마저...! 다음엔 누굽니까? 다음엔, 저를 내치기라도 하실겁니까?
윤두수: 왜.. 왜 다들 내 마음을 몰라주는 거요...?
초옥: 아버지야말로 어찌 그리 초옥이 마음을 모르십니까?! 그 모녀를 쫓아내십시오! 그 애미 기술이 아무리 뛰어난다해도 싫습니다! 그 모년.. 내가 죽어나간다해도 싫습니다!!!! (방을 뛰쳐나가는)

4. 3회

윤두수:마지막으로 너희 모녀에게 대접을 하고 싶었다.
구미호: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윤두수: 연이를 내 딸로 들이면 구산댁 모녀로 머무는 밥상은 이것이 마지막일 것이다.
구미호: (의아한 표정으로) 네? 왜 갑자기 그런.. 게다가, 연이는 신분이 다르고 핏줄도 다른데, 어찌 나리의 딸이 된단 말씀입니까?
윤두수: 구산댁, 네가 내 사람이 되어준다면 연이도 내 딸이 되지 않겠느냐?
구미호: (놀란 표정으로) 네...?
윤두수: 더 이상 너희 모녀가 시달리는 모습을 보기가 싫구나. 내 후실로 들어오너라...!
(앓아누으며 어미를 찾는 연이.)
(연이를 일으키는 구미호.)
연이: 어머니, 저기... 저기 새들이!
구미호: 우리 연이가.. 꿈을 꿨구나.
연이: 아니요, 꿈이 아니었어요!
구미호: 꿈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소리니? 혹시 산에서 늑대를 봤니?
연이: 전에 어머니랑.. 산에 갔을 때, 짐승들이 저한테 막 덤벼들었잖아요! 이번엔 까마귀들이 덤벼들었습니다!
(당황하는 구미호.)
어머니가 그랬잖아요! 제가 힘없고 약해보여서 짐승들이 만만하게 여겨서 그러는 거라고.. 헌데, 헌데! 이번에 제가 화를 내니까... 새들이 도망을 쳤어요! 분명히 저를 무서워했어요!!
구미호: 그게 무슨 말이니? 너를 무서워하다니..
연이: 제가 무슨 맹수라도 된 것처럼.. 새들이 도망을 갔다고요! 어찌 된 일일까요, 어머니? 제가 이상해진 걸까요? 이젠 제가 무섭습니다!!
(얼굴이 변한 채 나무위에 올라가있는 연이.)
구미호: 연아, 어서 내려와라! 거기서 뭘 하겠다는 거냐? 뛰어내리기라도 하겠다는 것이냐?!
(대답은 하지 않은 채 가만있는 연이.)
연아, (소의 간이 든 그릇을 들며) 어서 내려와 이것을 먹자..!
연이: 싫어요, 제가 왜 그런 걸 먹어야 합니까?
구미호: 연아, 고집 피우지 마라.. 이것을 먹으면 금방 털도 없어지고 원래 네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니 어서 먹자. 어서 내려와라 연이야! 거긴 너무 위험하다.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이 애미는 지금.. 기력이 떨어져서.. 너를 구해낼 힘이 없다..! (뒤를 돌아보며) 게다가, 누가 널 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사람들이 널 보면 죽임을 당할 것이다, 제발 연아!
연이: 어머니.. 저는 괴물입니까?
구미호: 뭐라고? 괴물이라니.. 당치도 않다! 네가 어찌 괴물이란 말이냐?
연이: 사람들한테 발각되면 죽임을 당한다면서요. 제 모습을 보십쇼. 털이 나고, 귀가 뾰족하게 변해있습니다..! 괴물이 아니면 어찌...!
구미호: 아니다! 그런 게 아니다...!
연이: 그럼 다른 사람들도 그 이상한 가루에 맞으면, 저처럼 몸에 털이 납니까?
구미호: 그, 그건...
연이: 아니죠? 제가 괴물이라서 그런 거지요?
구미호: 연아, 때가 되면 이 어미가 다 설명해주마! 그때까진 절대로 남들한테 이런 말을 해선 안 된다, 알겠니 연아?
연이: 말해주세요, 어머니! 제가 무슨 병에 걸린 거에요, 네?
구미호: 때가 되면 다 말해주겠다 하지 않았느냐!
연이: 왜 도대체 말을 해주지 않는 거에요? 왜요!
구미호: 연아! (연이에게 다가가는)
연이: 가까이 오지 마세요! 저한테 가까이 오지 마세요!
구미호: 연아, 제발 이 어미 말 좀 들어보련. (다시 그릇을 들며) 이것만 먹으면 된다! 이것만 먹으면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다! 네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다!
연이: 이젠 어머니 말을 믿을 수가 없어요..!
구미호: 연아! 연아, 연아... 부탁이다.. 제발, 제발 내려와라. 대체 왜 이리 어미 속을 썩이는 거니? 대체 왜!!
연이: 어머니야말로 저한테 왜 이러세요? 어머닌 뭔가 알고 계시잖아요! 생각해보니, 전 전부터 남들과 달랐어요. 남들이 못듣는 소릴 듣고, 남들이 못맡는 냄새를 맡았어요! 산에만 가면, 늑대들이 달려들었고요! 게다가, 상처가 나면 저만 금세 아물고는 했어요. 다른 아이들은 몇 날 며칠 누워있는데요!
구미호: 연아!
연이: (가슴을 부여잡으며) 이제 생각해보니 모든 게 다 이상합니다. 말해주세요, 어서요!
구미호: 몇 번이고 말하지 않았니? 네가 몸이 아파서 생긴 일이라고..!
연이: 거짓말! 거짓말입니다!
구미호: 연아, 제발! 내려와서 얘기하자! 사람들이 널 보겠다! 지금 네 모습을 보면 사람들이 널 어쩐지 모른다, 제발 연아!!
연이: 어차피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습니다! (절벽을 내려다보는)
(절벽으로 향하는 구미호.)
(연이를 올려다보는 구미호.)
구미호: 이 애미가.. 네 앞에서 혀라도 깨물어야 이것을 먹겠느냐? 진정 그래야 말을 듣겠느냐!!
연이: 저야말로.. 어머니가 말씀해주시지 않는다면.. 여기서 뛰어내리겠습니다!! (발을 내딧는)
구미호: 안된다! 제발, 안된다!!
(그때 두 모녀에게 다가오는 윤두수.)

5. 4회

윤두수: 어찌 그랬느냐? 이집에서 사는 것이.. 그리 힘들었느냐?
구미호: (힘없는 목소리로) 나리...
윤두수: 자식을 둔 어미가 어찌 그리 모진 짓을 했단 말이냐?
구미호: 송구합니다.
윤두수: 너에겐, 내가 아무것도 아닌 모양이구나.
(서로를 쳐다보는 구미호와 윤두수.)
네가 떨어지는 모습을 봤을 때, 나는 내 살이 떨어져 나가는 듯했다! 네가 만약 잘못됐다면.. 내 너에게 다시 한 번 묻겠다. 내 사람이 돼줄 수 없겠느냐?
(대답을 피하는 구미호.)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오늘 너와 연이를 보니 더 이상 미룰 수가 없구나.
구미호: 나리!
윤두수: (구미호의 손을 잡으며) 내 울타리로 들어오너라. 너와 연이를 내가 지켜줄 것이다!
양부인: 구산댁을 첩으로 들이시는 것까진 좋습니다. 허나, 양녀라니요? 어찌 근본도 모르는 아이를 딸로 들인다 하십니까? 우리가 딸이 없습니까, 아들이 없습니까?
윤두수: 초옥이를 위해서라고 몇 번을 얘기했소?
양부인: 초옥이라니요?
윤두수: 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이니, 그때까진 잠잖고 내 뜻에 따라주시오.
양부인: (답답한 한숨을 쉬며) 저는 모르겠습니다. 나리의 속을 진정 모르겠습니다!
구미호: 연아, 그 도령은 안된다! 더 이상 가까이 지내면 안 돼!
연이: 허면, 어머니도 말해주세요. 저는 왜 그런 겁니까? 어머닌 알고 있죠?
구미호: 또 그 소리냐? 어째 아직도 그러느냐?
연이: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생각이 납니다. 허면, 이것만 대답해주세요. 앞으로 저는.. 죽는 것입니까?
구미호: 아니다, 네가 왜 죽느냐? (연이의 손을 잡으며) 네 답답한 심정은 이 애미도 잘 안다. 허나, 앞으로 보름달이 두번 떠 네가 열 살이 될 때까지만, 이 애미를 믿고 기다려줄 수 없겠니?
윤두수: 부인, 아직 어린아이들[5]이 풋정으로 그런 것이오.
양부인: 풋정이라뇨? 내방의 기강을 바로잡는 일입니다.
윤두수: 부인, 내가 구산댁 모녀에게 함부로 하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소? 내 명을 이리 어겨도 되는 것이오?
양부인: (어이없다는 한숨을 쉬며) 나리..!
윤두수: 내방의 기강을 바로잡는 일이 집안의 기강을 바로잡는 일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오?
양부인: 나리!
초옥: 아버지, 정말 너무하세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다 빼앗고 있지 않습니까? 아버지를 뺏어가더니 이번엔.. 정규도련님까지 뺏어갔어요! 제 가슴이.. 문드리는 것 같습니다..!
연이: 어머니, 제가 밉죠?
구미호: 밉다. 네가 미우면 얼마나 밉겠니?
연이: 어머니..
구미호: 네 속이 얼마나 지옥인지 알면서.. 그 마음마저 헤아리지 못한 내가 더 밉구나! 허나, 어미랑 약속 하나만 하자. 더 이상 그 도령은 안 된다. 그 이유는 네가 더 잘 알지? 연아, 그리 힘들었느냐?
연이: 네, 힘들고... 또 무섭습니다...
구미호: 연모의 마음이야..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을 것이고, 네 비밀에 대해서 말해주랴?
연이: 네?
구미호: 어미도 실은 너와 같은 병이 있었다.
연이: 네? 허나, 어머니는 얼굴에 털도 없고[6] 이렇게 이쁜데요? 어찌 고치신 겁니까?
구미호: 시간이 흘러서.. 저절로 그리 됐다.
연이: 그럼, 저는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합니까?
구미호: 한 달 있다가 네가 열 살이 되면, 그리 될 것이다.

6. 5회

(연이의 비방전을 손에 쥔 윤두수.)
윤두수: 이게 무엇이오? 대체 이게 무엇이요?!
양부인: 나리가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만신이 보낸 비방전입니다!
(만신이 했던 말을 떠올리는 윤두수.)
만신: 그리 걱정이 되십니까? 허면 이 놈이 수일 내에 아씨의 기운을 되차릴 수 있는.. 비방전을 하나 써서 보내드리지요...!
양부인: 나리가 한 일이 아니라고 하셔야 합니다! 뭐하십니까, 어서 잡으셔야죠!
(구미호에게 뛰어가는 윤두수.)
(연이가 없어진 것을 확인하고 나가는 구미호를 붙잡는 윤두수.)
윤두수: 이보게!
구미호: 놓으십시오!
윤두수: 진정하거라, 나도 놀랐다!
구미호: 어찌..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양부인: 이보게.
(뒤를 돌아보는 구미호.)
오해하지 말게. 그 그림은 어디선가 흘러들어온 것이네. 나도 지금 너무 놀라서..!
(양부인에게 가까이 오는 구미호.)
구미호: 우리 연이 어딨소? 대체 어디로 빼돌렸소? 어서 말하시오!!
양부인: 아니, 이 사람.. 아무리 놀라도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네!
구미호: 우리 연이한테 그리 모질게 구는 것도 모자라, 어린 것의 숨통을 끊는 비방까지 쓰다니.. 두고 보시오, 연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내 똑같이 갚아줄 것이오!!
(악몽을 꾸다 잠에서 깬 연이를 안으며 눈물을 흘리는 구미호.)
구미호: 연아, 연아! 다 괜찮다, 어미 여기 있다. 괜찮다!
연이: (안도하며) 어머니…!
구미호: 그래.. 얼마나 무서웠니? 이제 괜찮다. 이제 괜찮어.
연이: 그 사람들이.. 저를 또 잡으러 오는 것 같아요..!
구미호: 걱정 마라. 이제부턴 어미가 널 지킬 거다! 아무도 널 건드리지 못하게 할 거다!
연이: (울먹이며) 대체 사람들이 저한테 왜 그러는 거에요..? 제가 이상한 병 나서 그런 거에요?
구미호: (역시 울먹이며) 아니다, 그런 게 아니야!
연이: 그럼.. 제가 얼굴에 털이 나고, 코가 썩고, 뾰족이가 나는… 축축한 괴물이라.. 그래서 그런 거죠?
구미호: 연아!
연이: 제가 없어져야… 모두가 편해지는 거에요?
구미호: 연아,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너 없으면… 너 없으면 이 애미는 죽는다! 더 이상 살 이유가 없어!
연이: 어머니…
(다시 연이를 안는 구미호.)
구미호: 넌 괴물이 아니다. 넌 정금보다 귀한… 이 어미의 새끼다..!
(연이의 배게 속에서 양부인이 넣어둔 비방전을 발견한 구미호.)
(화가 나 양부인에게 오자마자 비방전을 들이미는 구미호.)
양부인: (급당황하며) 자.. 자네.
구미호: 이게 무엇입니까?
양부인: 아니, 자네 지금.. 나를 의심하는 겐가?
구미호: 대체 내 새끼한테 무엇을 하려는 짓이오?
양부인: 이런 종이쪼가리 하나 나왔다고.. 그리, 험한 소리를 하는 겐가? 하긴.. 연이가 죽을 고비를 넘겨왔으니…
구미호: 종이쪼가리요? 아무것도 모른다면서요. 이 흉칙한 비방전은 어디선가 흘러들어온거라면서요!
양부인: 그리 화내지 말고, 내 얘기를 좀 들어 보게.
구미호: (더는 참지 않고) 이 천벌 받을 년! 내 당장이라도 네년을 죽이고 싶지만.. 내 딸 연이를 구한 나리를 봐서 이번만은 살려 주마. 허나, 내 이런 흉악한 집안에 더 이상은 내 새끼를 놔둘 수가 없다!! [7]
(바닥에 떨어진 옷을 줍는 만신, 다가오는 연이.)
만신: 네가 연이냐? 옷 만드는 것이 어렵지 않더냐?
(연이의 몸에 옷을 맞춰보는 만신.)
연이: (당황하며) 왜 이러세요?
만신: 너한테 좀 큰 것 같구나.
(마침 뒤에서 우연히 만신과 연이를 본 윤두수.)
연이: 제가 입을 옷이 아닙니다. 초옥 아씨 옷입니다.
만신: 누가 그러듯? 나리께서 그러시듯?
윤두수: (뛰어오며) 지금 뭐 하는 것이냐?
연이: 나리! (윤두수에게 뛰어가 안기는)
(연이를 뚫어지게 보는 만신.)
(연이에게 다가가는 만신.)
만신: (연이에게 옷을 주며 손에 노잣돈을 쥐어준는) 착한 아이라서 주는 것이다.

7. 6회

윤두수: 네 이놈! 내 너를 부른 적이 없거늘, 어찌 함부로 온 것이냐?
만신: 아니, 제가 어디 못 올 데를 왔습니까?
윤두수: 무슨 수작이냐? 아이한테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만신: (웃으며) 그저 노잣돈 몇 벌 쥐어준 것 뿐입니다. 저승 갈 때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윤두수: 목소리 낮추거라!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만신: 왜요? 애기씨 비방일 잦을 일 있을까봐 그러십니까?
윤두수: 너 이놈, 지금 어느 안전이라고 요망한 입을 함부로 놀리느냐? 더 이상 네 놈 얼굴 보고 싶지 않으니 어서 돌아가거라!
만신: 그나저나, 비방일에.. 그 어미는 어찌 하실 겁니까?
윤두수: 또 무슨 소리냐? 뭐가 잘못되기라도 했다는 말이냐?
만신: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제 자식이 죽는다는데.. 어떤 어미가 가만있겠습니까?
구미호: 왜 그러느냐?
연이: 피 냄새도 나고, 짐승 썩은 내도 납니다. 아주 쭈삣하고 욕한 냄샙니다. 저한테도 옮았나봐요. 왜 저를 그런 눈으로 봤을까요? 꼭 저를.. 오래전부터 알고있는 사람같았습니다!
초옥: (겨우 눈을 뜨며)아버지..
윤두수: 그래, 그래 초옥아. 애비 여기 있다.
양부인: 초옥아...
초옥: 큰아버지[8]가..
윤두수: 뭐?
초옥: 큰아버지가 자꾸 저한테 배타고 어디 가자고 하세요...
양부인: 아니, 그게 무슨 소리냐? 돌아가신 큰아버지께서 어찌하여 너에게...
윤두수: 꿈을 꾼 게로구나.
초옥: 아버지, 저.. 이제 죽는 겁니까?
양부인: 초옥아!
윤두수: 그게 무슨 말이냐? 이 애비를 두고 네가 어찌 죽는단 소리를 하느냐?
초옥: (윤두수의 뒤를 쳐다보고는 웃으며) 들으셨지요?
윤두수 형: 초옥아, 어서 배를 타자!
초옥: 배는 나중에.. 아주 나중에 타겠습니다..!
윤두수 형: 아니야, 어서 배를 타야 한다!
초옥: 나중에...! (소리를 지르며 몸부림치는)
(연이의 방으로 향하는 양부인)
양부인: 옷은 어찌 됐느냐? 아직 멀었느냐? (그대로 있는 천을 확인하며) 아니, 어제 그대로 아니냐? 아직 소매도 안 만들다니..! 지금 초옥이가 죽어간다..! 넌 어찌하여 이렇게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냐? 어찌하여!!!
윤두수: 다 미친 짓이오. 그 어린 것에게 자기 수의를 만들라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이었소!
양부인: (차갑게 쏘아보며) 그래서, 안 하실 겁니까? 우리 초옥이..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두실 겁니까? 이 모든 게 나리가 시작한 일입니다..! 나린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전 할 겁니다! 우리 초옥이를 위해서라면, 우리 초옥이를 살릴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한 것도 전 할 겁니다!

8. 7회

연이: (뒤에서 정규를 바라보며) 도련님, 저는 갑니다. 좋아하는 마음도, 보고싶은 마음도.. 다 두고 떠날 것입니다..!
윤두수: (연이의 방에 들어오며)연이야!
(방 안에 목줄에 걸린 지푸라기 인형을 칼로 베며 마당에 던지는 윤두수.)
(동시에 집으로 돌아와 윤두수와 마주친 양부인.)
양부인: 나리.
윤두수: 연이를 어쨌소?
양부인: 모릅니다.
윤두수: 내 지금 무슨 짓을 할 지 모르니, 어서 대답하시오, 부인!
양부인: 차라리 저를 배십시오!
윤두수: 감히 날 감쪽같이 속인 것도 모자라 이젠 내 손에 피까지 묻힐 작정이오?
양부인: 죽을 각오도 없이 제가 감히 나리를 속였겠습니까?
윤두수: 부인이 정 이렇게 나온다면, 나 또한 부인을 용서할 수 없소. (검을 손에 잡으며)
(눈을 감는 양부인, 칼을 빗겨나가게 내리치는 윤두수.)
윤두수: 이 집에서 나가시오. 지아비를 배신한 부인과.. 더 이상 한 집에서 살 수 없소.(발걸음을 옳기는)
양부인: 허면 나리는요? (멈춰선 윤두수를 향해 뒤돌아보며) 나리께선 정녕 우리 초옥이를 배신하실 참이십니까?
윤두수: 뭐요?
양부인: 남의 새끼 살리자고, 내 새끼 죽는 꼴을 꼭 보시게야 말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윤두수: (양부인을 향해 뒤돌아보며) 둘 다 살리겠다는 것이오! 어찌 그리 내 마음을 모르시오?!
양부인: 우리 초옥이가 살려면 연이가 죽어야 합니다! 대체 나리는 누구의 어버이십니까? 이렇게 유약하게 나오실 참이면, 처음부터 구산댁 모녀를 들이시질 말았어야죠! 소첩을 내치신다 해도 달게 받을 것입니다. 허나, 우리 초옥이를 살리는 다음의 일입니다…!
윤두수: (배를 타고 떠나려는 초옥을 붙잡으며) 초옥아! 초옥아, 안된다!
초옥: 아버지..
윤두수 형: 네 이놈! 네 어찌 하늘의 뜻을 거스리려 하느냐?
윤두수: 혀, 형님!
윤두수 형: 초옥인 내가 데려간다, 그리 알아!
윤두수: 형님, 이럴 순 없소! 우리 초옥이는 안되오! 절대로 안되는 일이오! 초옥아, 이리 오너라...! 아비한테 오너라!
초옥: 이제 와서 왜 이러세요? 아버지는 절 버리지 않았습니까? (윤두수의 손을 놓으며)
윤두수: 그게… 그게 무슨 소리냐? 내가 언제 널 버렸단 말이냐?
초옥: 연이가 만든 수의를 태울 때.. 이미 저를 포기하신 것이 아닙니까?
윤두수: 아, 그.. 그건!
양부인: (뒤에서 다가오며) 초옥이 말이 맞습니다! 모든 게… 다 나리 탓입니다!
윤두수: 아,아니오! 그건 아니오!
초옥: 맞습니다! 아버지는 저 대신 연이를 살리고 싶으신 겁니다!
윤두수: (울먹이며)아니다! 아가, 아니다!
윤두수 형: 못난 놈, 어째 네놈은 하나도 변한 게 없구나! 가자!
(초옥을 데리고 가려는 윤두수 형.)
(다시 초옥을 붙잡는 윤두수.)
윤두수: 형님! 형님, 이러지 마시오! 차라리.. 차라리 날 데려가시오! 제발, 제발 나를 데려가시오!
양부인: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주버님! 차라리 저를 데려가십시오! 저는 저 양반과는 다릅니다. 저는 초옥이를 위해서라면.. 저는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차라리 저를 데려가십시오, 네?
윤두수 형: 나도 그러고 싶소만, 두 사람 다 때가 되지 않았소. 가자!
(눈물을 흘리며 떠나려는 초옥.)
(마지막 심정으로 초옥을 붙잡는 윤두수.)
윤두수: 그럼 무엇이오?! 그럼... 그럼 무엇이면 되겠소? 그럼... 연이면, 연이면 되겠소? 연이를 데려가면... 되겠소..?
연이: 어머니, 나리께서도 절 버리시려는 모양입니다...[9]
(연이가 사라졌음을 알고 식칼을 들고 양부인의 방으로 뛰쳐들어온 구미호.)
(구미호 손에 쥔 칼을 보고 움찔한 양부인.)
구미호: (양부인에게 다가가며) 내 새끼 어딨어? 내 새끼 어딨어!!!
양부인: 모르네.
(양부인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구미호.)
양부인: 자네, 자네 지금 감히 누구한테 칼을 겨누는 겐가? 어서 이거 내려놓지 못하겠는가?
구미호: (칼을 더욱 들이밀며) 분명 연이가 호숫가에 왔었다. 집에 있어야 할 아이가 거기까지 제 발로 걸어올리가 없다! 바로 네 년 짓이다! 어서 말해라! 대체 우리 연이를 어디로 빼돌렸느냐?
(때마침 양부인에 방에 들어와 칼을 겨누는 구미호를 보고 놀란 계향.)
(계향을 쏘아보는 구미호.)
계향: 아, 아니, 구산댁! 왜 이러나? 진정하게.
구미호: (다시 양부인에게 칼을 들이밀며) 네 년은 알고있다! 어서 말해라! 네 년의 숨통을 끊기 전에 어서!!
(목에 피가 흐르는 양부인.)
계향: 마님, 말씀하십시오. 이러다 죽습니다!
양부인: 자넨 가만있게!
계향: 구산댁, 내 말하겠네.
양부인: 이보게!
계향: 연이는...
양부인: 자네 지금 무슨 말을...?
계향: 연이는.. 바라산으로 갔네!
(구미호 눈치를 살피는 양부인, 계향을 다시 쏘아보는 구미호.)
계향: 참말이네. 자네 기도하러 간다고 했다며? 연이가 그리 말했네. 그래서 어미 찾는다고 바라산으로 간 것이네.
구미호: (거짓임을 알아채고) 잘도 둘러대는구나? (다시 양부인을 보며) 아무래도 네 년들은.. 피를 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양부인을 향해 칼을 치켜올리며)
계향: (다급히) 나리도 같이 가셨네!
구미호: 뭐?
계향: 그래, 나리가 연이를 데리고 나가셨네, 자네 찾으러.
구미호: 허튼 소리 하지 마라. 나리는 지금 초옥아씨 약을 구하러 가지 않았느냐?
계향: 그러니까, 그게.. (양부인에게 눈짓을 주며)
양부인: 약은 구하지 못했네.
(다시 양부인을 노려보는 구미호.)
양부인: 자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알고는 있는 겐가? 지금 초옥이 약을 구하지 못해서 집안이 뒤숭숭하네. 이 경황에도 어린 것이 하도 지 어미를 찾길래 나리가 따라나서신 거네. (일부러 언성을 더 높이며) 지금 화낼 사람이 누군데! 자네가 지금 이 행패를 부리는 겐가?!
구미호: (열불나지만 칼을 내려놓고) 내 아이에게 혹여 무슨 일이 생긴다면... 네 딸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9. 8회

(윤두수에게 문서[10]를 건네는 만신.)
윤두수: (문서를 탁 내려놓으며) 지금 나를 못 믿겠다는 것이냐? 대체 이런 걸 받아서 어디다 쓰겠다는 것이냐?
만신: 뭐든 분명히 해두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나리야말로 저를 믿지 못하시겠습니까? (붓을 건네며) 이곳에 나리 한자를 쓰시지요.
윤두수: (이름의 한자를 쓰며) 이제 됐느냐?
만신: (의미심장한 미소로 천으로 감긴 것을 내밀며)
(비방용 칼임을 확인하고 경악한 윤두수.)
윤두수: 이것을... 이것을 어찌 나한테 주느냐? 지금 나한테 이 아이 몸에 칼을 대라는 것이냐?
만신: 나리의 손으로 직접 이 아이의 배를 가르고, 간을 꺼내십시오.
윤두수: (경악하며 만신에게 칼을 대는) 너 이놈! 지금와서 이러는 까닭이 무엇이냐? 이제 와 손을 놓겠다는 이유가 무엇이냐 말이다!
만신: 목소리 낮추시지요?
윤두수: 뭐, 뭐라?
만신: 아이가 깨면 어쩔려고 그러십니까? 이 아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숨통을 끊으실 자신이 있으십니까?
소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이리 길게 얘기했겠습니까? 초옥아씨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은.. 나리 뿐입니다.
(도망치는 연이 앞을 가로막는 윤두수.)
윤두수: 연이야!
연이: 나리,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나리!
윤두수: (당황하며) 그.. 그게 무슨 소리냐? 내.. 내 이제껏 너를 돌봐주지 않았느냐? 너를 집에 호.. 혼자 두는 것이 불안해서 이리 데려온 것 뿐이다!
연이: 그럼..(자신이 입은 수의를 보며) 제가 왜 초옥아씨 옷을 입고 있는 것입니까?
윤두수: 그.. 그건!
연이: (울먹이며) 더 이상 절 속이려 하지 마십시오! 제가 초옥아씨랑.. 같은 날 같은 시에 태어나서 이러시는 거시지요? 애기씨 살리려고.. 그동안 저한테 그리 잘해주신 겁니까? 그래서, 제 목숨을 구해주신 겁니까? 다른 사람들이 저를 괴롭혀도... 제 편이 되어주신 겁니까?
윤두수: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니다! 아니다, 그건 아니다!
연이: 제 그림 솜씨를 보고 칭찬해주시고, 종이와 붓을 주신 것도.. 그런 것이옵니까?
윤두수: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내가.. 내가 널 내 딸로 여겼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정하는 연이.)
윤두수: 진정.. 내 딸로 여겼다. 그건.. 그건 진심이었다! 연이야, 그것만은 진심이었다!
(계속 부정하는 연이.)
연이: 그렇다면 나리, 이대로.. 저를 보내주시겠습니까?
초옥: 어머니, 저.. 이렇게.. 가는 것입니까?
양부인: 어찌 그리 험한 소릴 하느냐? 조금만 참아라. 조금만 참으면, 아버지가 너를 살릴 약을 갖고 오실 것이다.
초옥: 정말.. 그 약만 먹으면 살 수 있는 겁니까?
양부인: 이를 말이냐?
초옥: 그럼, 그 약만 먹으면.. 옛날처럼 어머니랑 가마타고 단풍구경도 갈 수 있는 겁니까?
양부인: (울먹이며)그럼...!
초옥: 다른 날엔, 냇가에 내려가 머리도 감겨주실 거지요...?
양부인: 그럼! 그럼, 어미가 다 해줘야지..!
초옥: 어머니가 만든.. 설기떡도.. 먹을 수 있는 겁니까?
양부인: 병만 나아봐라. 이 어미가 초옥이 원하는 건 다 해줄 것이다..!
초옥: 저.. 아버지가 사다주신 설당과자도 먹고 싶어요... 아버지도 그러셨어요. 제가 설당과자 먹는 걸 볼 때가.. 제일 행복하시다구요...

10. 9회

초옥: 아버지, 아버지!
(악몽에서 깨어난 윤두수.)
아버지, 나쁜 꿈을 꾸셨습니까?
윤두수: (멀쩡한 초옥을 보며) 초, 초옥아!
초옥: 아버지, 아버지가 가져오신 약이 무엇이옵니까? 그 약을 먹고 났더니 힘이 펄펄 납니다! 아버지께서 초옥이를 살리셨습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윤두수를 꽉 껴안는 초옥.)
윤두수: 그래, 우리 초옥이가 살았다. 그럼 된 것이다. 그럼... 된 것이다...!
초옥: (음식을 씹어먹으며) 아버지, 제가 먹은 약이 진짜 호랑이 간입니까?
(양부인에게 눈짓을 하는 윤두수.)
양부인: 그렇대도!
초옥: 그럼, 아버지가 호랑이를 잡으신 겁니까?
윤두수: 어.. 그래.
초옥: 우와, 그 무서운 호랑이를 어떻게 잡으신 겁니까, 네?
양부인: 자, 이것도 좀 먹어보거라.
초옥: (달걀찜을 씹으며) 근데, 연이는 어디 갔습니까? 왜 연이는 안 보이는 겁니까?
(순간 표정이 어두워지는 윤두수.)
양부인: 갑자기 연이 얘기는 또 왜 꺼내느냐?
초옥: 제가 자리에서 일어났는데도 눈 앞에서 터지 않는 게 괘씸합니다!
윤두수: (수저를 내려놓으며) 이만 들겠소. 초옥이 넌, 천천히 많이 먹어라. (자리를 뜨며)
양부인: 초옥아, 앞으로 아버지 앞에서 연이 얘기는 꺼내지 말아라.
초옥: 왜요? 연이가 혹시... 아버지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겁니까? (수저를 탁 내려놓으며) 연이 어딨습니까? 내가 당장 가서 버르장머릴 고쳐줄 겁니다!
양부인: 연이는 없다!
초옥: (당황하며 다시 자리에 앉는) 네?
양부인: 산에 지 어미 찾으러 갔다가 사라졌다. 허니, 앞으로 더 이상 연이 얘기는 꺼내지 말거라. 알겠느냐?
(만신에게 돈자락을 건네는 양부인.)
양부인: 그동안 고마웠네. 이것이면 사례는 충분할 걸세. 허니, 앞으로 다시는 보는 일이 없었으면 하네.
만신: (우습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양부인: 뭘 하는가, 받지 않고?
(돈자락을 다시 밀어넣는 만신.)[11]
만신: 마지막으로 알려드릴 것이 있어 왔습니다.
(마당에서 연이의 물건들을 모조리 불태우는 양부인, 만신의 말을 떠올리며)
만신: 그 아이의 것이라면, 모든 것을 다 없애셔야 합니다.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건드린다면, 초옥아씨께서 큰 화를 입으실 겁니다...! [12]
(연이의 시체를 업고 폐가에 도착한 구미호.)
구미호: 너도 기억나지? 여기서 네가 버섯먹은 걸 토하지 않았느냐? (바닥에 있는 흔적을 보며) 아직도 자국이 남아있구나. 그러게.. 버섯은 함부로 먹지 말았어야지.. (방 안에 있는 자신의 그림을 발견하며)
(방 안에 연이를 눕히고 자신의 초상화를 어루만지며 가슴저려지는 구미호.)
구미호: 아니.... 아니, 연이 네가...! (연이를 보며) 이곳에 왔었느냐? 연이 네가 이곳에 왔었느냐?!
(전에 자신이 윤두수를 폐가까지 데려다주고 온 일을 생각하며 윤두수가 범인임을 깨닫고 절규하는 구미호.)

11. 10회

(부모 앞에서 재롱을 보이는 초옥.)
양부인: 아이고, 잘했다 내 새끼! 아주 기운이 펄펄 나는 구나!
초옥: 진짜 제가 언제 아팠나 싶습니다. 집 한 채도 번쩍 들 것 같습니다!
윤두수: (웃으며)아이고, 이 녀석!
초옥: 아, 근데 아버지, 그 때 그 약이 말입니다?
윤두수: 응?
초옥: 제가 아팠을 때 아버지가 구해다주신 약 말입니다.
양부인: 초옥아, 아니 그 얘기는 왜 또 꺼내는 것이냐?
초옥: 너무 궁금해서요.
양부인: 대체 뭐가 궁금하다는 것이냐? 잊었느냐, 호랑이 간이라 하지 않았느냐?
초옥: 그러니까요, 그 호랑이 간 말입니다. (윤두수를 보며) 아버지, 다음에 제가 또 아프면 구해다 주실 거죠, 그죠?
윤두수: (헛웃음을 치며 대답을 피하는)
초옥: (눈치를 살피는) 안 구해다.. 주실.. 겁니까?
양부인: 왜 안해 주겠느냐? 아버지가 못 구해다주시면, 이 어미라도 구해줄 것이다, 알겠느냐?
윤두수: 아니다, 이 아비가.. 반드시 구해줄 것이다! 우리 초옥이를 위해서라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구해다 줄 것이다!
양부인: 세상에 어떤 어미가 제 자식을 잃는단 말입니까? 분명 나리를 속이고 있는 겁니다!
윤두수: 그럴 리 없소. 구산댁이 모든 걸 알고 있었다면 어찌 들짐승한테 물려 쓰러져가는 나를 구해냈겠소? 마음만 먹는다면 그간 몇번이고 내 목을 칠 수 있었소. 허나, 구산댁은 내 목숨을 빼앗기는 커녕 오히려 나를 간호하고 보살펴주었소.
양부인: 좋습니다. 백 번 양보해서 사실이라 칩시다. 허면, 기억이 돌아오면요? 그 땐 어찌 하실겁니까?
윤두수: 그건... 그 때 가서 내 알아서 하겠소.
양부인: 예? 아뇨, 아니 어찌 그리 무책임한 말씀을 하십니까? 나린 우리 초옥이 생각은 안 하십니까? 만일 구산댁이 기억을 되찾으면 우리 초옥이한테 무슨 짓을 할 지 걱정도 안 되십니까?
윤두수: 힘 없고 가여운 여인이오. 우리에게 무슨 해가 된단 말이오? 게다가, 연이 덕분에 우리 초옥이가 살았으니 우리도 구산댁을 거둬주는게 도리 아니오?
양부인: 도리요? 지금 도리라고 하셨습니까? 연이가 누구 손에 죽었는지.. 잊으셨습니까? 대체 나리가 이러시는 이유가 뭡니까? 혹여 아직도, 구산댁을, 품고 싶으신 겁니까?
윤두수: 부인, 그 무슨 막말이요?! 내, 초옥이에게도 부인에게도.. 할 만큼 하지 않았소? 초옥이를 살리려고 내 무슨 짓을 했는지.. 잊은 게요? 그때 누가 날 구해주었소? 내 손에 칼자루를 쥐어주고 모두 사라지지 않았소? 이제 뭐든 내 뜻대로 하겠소. 내가 판단하고, 내가 결정하겠소. 알아듣겠소? (손을 내리치며 방을 나가는)
양부인: (혼자 허공을 향해) 나리...
조현감: 내 다시 한 번 묻겠다. 그 연이라는 계집아이를 어찌 한 것이냐?
만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조현감: 네 놈 하나가 입을 다문다고 일이 더 퍼질 것 같으냐? 동굴에서 그 아이가 입던 피 묻은 수의에, 오작인 시체까지 나왔다.
만신: 나리께서 증작 알고 싶으신 것이 무엇입니까?
조현감: 뭐라? 이런 건방진.. 네 놈 모가지를 쳐야 바른대로 고할 것이냐?
만신: 지금 소인을 죽이신다면, 나리께서도 득이 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옥에 갇힌 만신을 상대로 심문을 하는 조현감.)
조현감: 네가 이런다고 윤영감이 너를 비호해줄 것 같으냐? 사실대로 말하면, 네 목숨은 살려줄 것이다. 허니, 어서 말해라. 그 아이를 죽인 자가.. 윤영감이냐?
만신: 소인의 입을 열어 윤영감을 잡고 싶으십니까? (조현감을 쏘아보며) 윤영감을 그리도 쓰러뜨리고 싶으십니까?
조현감: 아니, 이 놈이.. 지금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점쟁이 노름을 하려는 게냐?
만신: 아니라면, 나리 눈에 어찌 그리 원한과 증오가 가득하십니까? (고개를 가로저으며) 때가 아닙니다. 허나, 후일 제가 나리한테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윤두수: 초옥이의 목숨을 살려준 공을 생각해서라도 내 너를 반드시 꺼내주겠다. 걱정 말고 있거라.
만신: 제 걱정은 마시고 나리 자신을 돌보시지요. 미색에 빠지면, 판단이 흐려지는 법. (윤두수를 보며) 무슨 말씀인지 잘 아시겠지요?
윤두수: 아이를 잃은 불쌍한 여인 아니냐? 내 그저 인간 된 도리로써 거둬준 것 뿐이다.
만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가시면 그 여인에게 전해주세요. 죽은 아이를 곧 만날테니.. 몸 조심하라고요.
윤두수: 그게 무슨 소리냐? 구산댁이... 죽기라도 한단 말이냐?
(대답은 하지 않고 썩소만을 날리는 만신.)
양부인: 나리는 '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신다. 허나, 나는 그 말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구나. 하여 내 너에게 몇 가지 물어볼 것이니, 한 치의 거짓도 없이 대답해야 한다, 알겠느냐?
구미호: 네.
양부인: 정녕 네 딸 연이가 기억나지 않느냐?
구미호: 그러합니다.
양부인: 네 딸 연이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고?
구미호: (잠시 망설이며) 네.
양부인: 그럼 어쩔 수 없구나. 내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얘기해주마. 네 딸 연이는.. 들짐승한테 죽은 것이 아니다.
구미호: (대답을 알면서도 긴장하는 얼굴을 한 채)
양부인: 나리의 손에 죽었다. 그것도 아주 갈갈이 찢겨져 죽었다
(구미호의 치마 밑으로 꼬리가 슬그머니 나오며)
양부인: 뿐이냐? 네 딸 연이의 간이 우리 초옥이의 병을 고치는 약으로 쓰였다. 어미라는 것이.. 지 새끼가 어찌 죽어가는지도 모르고, 네 새끼 죽일 궁리나 하는 사내한테 빠져서 결국은 네 새끼를 사지로 내몰았단 말이다! 그러고도 네가 어미라 할 수 있느냐?
구미호: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리며)
양부인: 왜? 기억이 돌아오는 것 같으냐? 기억나지 않는다 해도 할 수 없다. 네가 모든 사실을 알았으니, 더 이상 나리 곁에 붙어있기는 힘들 것 아니냐? 너는 네 새끼를 죽였지만, 난 내 새끼를 지켰다. 그리고 앞으로도, 무슨 일이 닥친다 해도, 난 우리 초옥이를 지킬 것이다! 알아들었으면 당장 나가라. 어미로써 양심이 있다면, 나가서 자결이라도 하란 말이다!!
(온 몸이 재단 위에 묶인 채 깨어난 양부인, 그녀에게 다가오는 구산댁.)
양부인: 이 요망한 것! 드디어 네 년이 발톱을 드러내는구나!
구미호: 네 딸 초옥이가.. 지금 어디 있는 줄 아느냐?
양부인: 뭐?
구미호: (관 속에 초옥을 보여주며)
양부인: 초옥아, 초옥아! 네 이년, 우리 초옥이 몸에 손 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네 년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구미호: (무표정으로 천천히 양부인에게 다가와) 내, 너에게 말하지 않았느냐? (정색하며) 내 딸 연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내 똑같이 갚아주겠다고!
양부인: 이보게, 구산댁! 내가... 내가 잘못했네.. 그러니, 차라리 날 죽이게! 제발 우리 초옥이 좀 살려주게! 우리 초옥이 좀 살려주게, 제발...!
구미호: 가만 생각해보니 네가 내게 한 말이 다 맞더구나. '어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새끼를 지켜야 한다.' 헌데 지금 어찌 내게 사정을 하는가? 너도 어디 한 번 네 새끼를 잘 지켜보거라! 새끼가 위험에 처하면, 물불 안가리고 지켜내는 게 바로 어미 아니겠느냐?
양부인: 나리, 어찌 제 말을 믿지 않으시는 겁니까?
윤두수: 듣기 싫소!
양부인: (손목의 상처를 보여주며) 이거 보십시오! 그 년이 묶어놓은 밧줄을 밤새 푸느라 이렇게 상처가 생겼습니다! 이래도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윤두수: 구산댁 하나 몰아내기 위해.. 이제 자해까지 하는 것이오?
양부인: 뭐라구요?
윤두수: 자식을 잃고 기억까지 잃은 가여운 여인이요! 부인, 혹시 지금 투기를 하는 것이오? 투기에 눈이 멀어 구산댁을 아예 없애려는 것이오?
양부인: 투기라니요? 저는 단지 우리 초옥이를 위해서...!
윤두수: 부인이 어찌..?
양부인: 나리..!
윤두수: 부인은 이미 한차례 나를 기망하고 능멸했소. 세상에 있지도 않은 만년삼황 이야기를 만들어 감쪽같이 나를 속이지 않았소? 그 일을 벌써 잊은 것이오?
양부인: 그건... 그건 우리 초옥이를 살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윤두수: 뜻이 좋으면 어떤 일이라도 한단 말이오? 그렇다면 사람이 금수와 다른 것이 무엇이냔 말이오? 내, 그 때 부인을 내치려 했으나, 그냥 넘어갔었소. 허나, 나도 이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소. 이 집에서 나가시오..!
양부인: 예...?
윤두수: 다시 한 번 말하겠소. 이 집에서 나가시오!
양부인: (눈물을 흘리며) 나리... 나리..! 왜 이러십니까? 대체 저더러 어딜 가란 말씀입니까..? 우리 초옥이가 이곳에 있는데... 제가 이 집을 어찌 나간단 말씀입니까? 우리 초옥인 어찌하구요!
윤두수: 초옥이는... 걱정할 것 없소. 내가 알아서 하겠소.
양부인: 안됩니다, 초옥이가 위험합니다! 제가 하루종일 눈을 부러뜨고 지켰는데도 오늘같은 일이 생겼습니다! 헌데, 제가 이 집을 나가면요, 우리 초옥인 어찌 되는 것입니까?!
윤두수: 부인,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것이오? 어찌 초옥이가 위험하단 말이오? 나가시오, 더 이상 부인 얼굴 보고싶지 않으니 어서 이 집에서 나가시오!
양부인: 나리...!
초옥: (연이를 향해) 너.. 대체 어디 있다 이제 나타난 게냐?
연이: 아씨, 제가 가르쳐드릴까요?
초옥: 그, 그게... 무, 무슨 소리냐?
연이: 아씨가 진짜로 뭘 드시고 병이 나았는지.. 제가 말씀해드리겠습니다.
(집 주위를 계속 맴돌기만 하는 연이, 뒤따르는 초옥)
초옥: 어딜 자꾸 가는 것이냐? 같은 곳을 벌써 몇 차례나 돌고 있지 않느냐?
(갑자기 뒤돌아 초옥의 양쪽 뺨을 때리는 연이. 천우가 나타나 초옥을 들쳐업고 우물에 빠뜨린다.)
연이: (물 속에서 버둥대는 초옥을 향해 썩소를 날리며) 어디 한 번 실컷 발버둥 쳐봐라. 네 년이 죽을 때까지... 내가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초옥: (물속을 나와) 왜 이러느냐?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느냐? 대체 왜!!
연이: 네가... 내 간을 먹었잖아? (여우로 변하며) 내 간 내놔! 내 간 내놔!!!!!!!
(비명을 지르는 초옥의 절규가 우물 속에 퍼지며)

12. 11회

(깨어나자마자 연이를 찾는 초옥.)
초옥: 여.. 여,여... 여.. 연이는.. 어디있습니까?
양부인: (애써 침착하며) 연이는 갑자기 왜 찾는게냐?
초옥: 여.. 연이가.. 집에 아까 왔습니다.
양부인: 그럴리가 있겠느냐? 네가 헛 것을 본 게지.
초옥: (부정하며) 아닙니다! 아버지, 연이가.. 저를 막 때리더니 우물에 처 넣었습니다.
윤두수: 초옥아, 연이가 어찌 그럴 수가 있겠느냐? 벌써 오래전에 사라진 아이 아니냐?
초옥: (몸부림치며) 아닙니다..! 누.. 눈이 노랗고 송곳니가 났지만, 연이가 틀림없습니다! 여.. 연이가.. 제, 제게.. 가, 간을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초옥의 말에 경악하며 서로를 쳐다보는 윤두수, 양부인)
(마침 초옥의 방에 약을 가지고 들어온 구미호.)
초옥: 제, 제게.. 제, 제가.. 자기 간을 먹었다고 했습니다!
(당황하는 구미호, 가슴이 철렁하는 윤두수, 양부인)
초옥: 자기 간을.. 빨리 내놓으라고 하면서.. 저, 저를 무섭게 노려보았습니다..!
(뒤에 구산댁을 발견하고 애써 침착하게 약을 받는 양부인, 당황하지만 내색하지 않는 윤두수.)
(나가려는 그녀를 붙잡는 초옥.)
초옥: 아, 아까! 혹 연이를.. 보지 않았느냐? 너는 그 아이 어미 아니냐?
구미호: (모르는 척하며) 무슨 말씀이신지..?
초옥: 바른대로 대라! 연이를 보았느냐? 보지 못했느냐?
윤두수: 초옥아, 그만하거라.
(초옥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나오는 구산댁.)
구미호: (속으로) 새끼 간을 먹고 온전할 줄 알았느냐? 미쳐가는 것이 당연하지..!
(초옥에게 칼을 휘두른 구미호.)
(순간, 초옥의 얼굴이 연이의 얼굴로 보이며[13])
연이: 어머니, 저에요! 저 연이에요! 어머니, 왜 그렇게 보십니까? 설마 저를 몰라보시는 겁니까? 그런 겁니까? (구미호에게 다가가며) 보세요, 어머니. 저 연이에요. 어머니 딸, 연이라구요!!
(현실을 부정하며 고개를 휘젓는 구미호.)
연이: (다시 초옥의 얼굴로 보이며) 어머니...
구미호: 우리 연이 이름을 네 년이 함부로 네 입에 올리다니, 그런다고 내가 널.. 살려둘 성 싶으냐?!
연이: (가슴을 탁탁 치며) 저에요, 어머니! 어찌 저를 몰라보십니까?
구미호: 수작 부리지 마라. 내 새끼는.. 내 새끼는... 네 년 때문에, 네 년 때문에!
연이: 어머니, 저 지금 어머니 앞에 있어요. 아니, 전 항상 어머니 곁에 있었어요! 어머니가 그러셨잖아요. 바늘 가는데 실도 따라간다고요. (구미호의 옷고름을 칭칭 감으며) 어머니, 저.. 어머니 딸 연이에요...! 이렇게.. 어머니 앞에 서있잖아요!
구미호: 아가, 아가...!

13. 12회

연이[14]: 어머니! 어머니, 이제 저를 알아보시는 겁니까?
구미호: 어디보자! 정말 네가... 정말 네가 우리 연이가 맞느냐?
(고개를 끄덕이는 연이.)
구미호: 정말 네가... 내 새끼 연이란 말이지?
연이: 예.. 어머니 딸 연이입니다!
구미호: (연이를 껴안으며 오열하는) 아이고, 내 새끼! 아이고, 내 새끼! 우리 연이가 돌아왔구나..! 내 새끼 연이가 돌아왔어! 어찌 돌아왔을꼬? 구천을 떠돌던 우리 연이가.. 어찌 돌아왔을꼬?
연이: 저는 한시도 어머니 곁을 떠난적이 없습니다..! 제가 어찌 어머니를 떠날 수 있겠어요?
(마당에 태워진 연이의 물건들을 보며 슬픔에 잠긴 구산댁을 옆에서 쓸쓸히 바라본 연이.)
연이: 어머니가 슬퍼하실 때에도..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실 때에도.. 저는 늘 곁에 있었습니다..!
(양부인으로부터 자신의 죽음의 진실을 듣고 오열하는 구산댁을 옆에서 함께 오열하며 얼굴을 어루만졌던 연이.)
구미호: (여전히 눈물을 흘리며) 아이고, 그래..! (다시 연이를 안으며) 가자, 연아! 이 애미랑 여길 떠나자. 어미는 아무것도 필요없다! 어미는 그냥... 너와 내가.. 새끼와 어미로 사는 것 뿐이다...! 그게 내 소원이다, 연아!
연이: 그럼, 이제 제 옆에 꼭 붙어계시는 거시지요?
구미호: 그럼..! 바늘 가는데 실도 가는 것이다! 이 애미는 이제부터 네 옆에서 꼭 붙어있을 것이다!
(미소를 짓는 연이, 다시 서로를 껴안으며 재회의 눈물을 터뜨리는 모녀.)
연이: (눈물을 흘리며)이런 것이었습니까?
구미호: (구미호로 반 변한 채) 제발, 연아!
연이: 어머니도 저랑 똑같은 병을 앓고있다던 말이..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까?[15] 그럼, 어머니의 어머니도..
구미호: 그래, 어미의 어머니도.. 여우였다...!
연이: 그럼, 어머니가 매일 밤 해주시던 구미호 얘기가.. 바로 어머니 얘기였습니까? 그럼 저도 보름달이 떠 열 살이 되면... 여우가 되는 것이었습니까? 어머닌 왜 인간이 되고 싶으셨던 겁니까?
구미호: 연아, 못난 어미에게 태어나 너까지 모진 병을 물려줄 생각을 하니.. 내가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처음엔, 그저 인간이 되고 싶었다. 허나, 내 너를 낳고 나서, 내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였다. 너의 어미가 되고 싶었다! 어여쁜 네가 자라는 걸 보면서 너와 함께 행복하고 싶었다! 내 진정 바라는 것은 그것 뿐이였다!
연이: 어머니.. 허나, 어머니는 이미 저의 어머니십니다.
(연이를 쳐다보는 구미호.)
연이: 어머니가 사람이건 여우이건 상관없습니다! 제게 어머니는.. 한 분 뿐입니다!
(구미호의 방에서 연이의 노잣돈을 유심히 보는 양부인.)
구미호: (뒤에서 말하며)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얼른 뒤를 돌아보는 양부인, 서로 다가가는 두 어미.)
양부인: (노잣돈을 올리며) 이것이 무엇이냐?
구미호: 그걸 어째서 나한테 물어보는 것이오?
양부인: 네 이년, 어서 대답하지 못하겠느냐?
구미호: 그리 알고 싶으시오? 왜요? 그것이 우리 연이.. 저승가는 노잣돈이었을까봐 그래서 물어보는 것이오?
양부인: 역시.. 역시 네 년이 한 짓임이 틀림이 없구나. 어서 말해라.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우리 초옥이가 저렇게 이상하게 변했단 말이냐?
구미호: 그럼, 안 변할 줄 알았드냐?
양부인: 뭐?
구미호: 남의 새끼 간을 도려내먹이고, 네 새끼가 제정신으로 살길 바랬단 말이냐? 대체 뭐가 그리 겁나느냐? 왜? 초옥이가 이상하드냐? 초옥이가 내 딸이라도 된 것 같아서 겁이 나냔 말이다!!
양부인: 네 이년, 네년이 어찌 감히 내게..! (다시 팔을 올리며)
구미호: (양부인의 팔을 낚아채며) 나를 때린다고 해서.. 네 년 딸이 돌아올 것 같으냐?
양부인: 허면, 우리 초옥이한테.. 이 물건을 만지게 한 것이냐? 대체.. 우리 초옥이한테 이 물건으로 무슨 짓을 한 거야?!?!
구미호: (침착한 표정으로) 난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허나, 네 년이 그리 믿고 싶다면 하는 수 없지. 그리 믿으라고 할 수 밖에!!!!!!
구미호: (수인형으로 변한 상태에서 죽은 퇴마사를 향해) 대체 나와 연이가 너희 인간들에게 무슨 죄를 저질렀느냐? 죄를 지은 자는 오히려 너희 인간들이 아니더냐?!!
만신: (뒤에서 말을 하며) 아직도 모르겠느냐? 너희가 왜 그렇게 핍박과 고통을 받는지 진정 모르겠느냐? 너희는... 다르다. 너와 네 새끼는 인간과 다르다. 그게 이유야!
구미호: 고작 그 이유로? 인간과 다르다는 이유로 나와 내 새끼한테 그런 것이냐? 인간들이란 그런 것이냐? 자신과 다르다고 해서 찢고, 찌르고, 죽여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족속이란 말이냐? 자신과 다르다고 해서 내 새끼를 잡아 그리 처참하게 밟은 것이냐!!!!!!! 이 천벌받을 놈! 내.. 오늘은 널 그냥 보내지 않겠다!!!

14. 13회

연이: (악몽에서 깨어나며) 어머니!
구미호: 연아! 어미 여기 있다, 어미 여기 있어!
연이: 어머니…
구미호: 그래, 아가. (연이를 안고 쓰다듬어주며)
연이: (품에 안긴 채) 나리가… 나리가 또 저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구미호: (연이를 보며) 어미가 옆에 있지 않느냐? 이제 괜찮다, 이제 괜찮어.
연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닙니다! 그때처럼 또 이상한 약과를 주면서 그 무서운 동굴로 가자고 했습니다! 초옥아씨가 아프다고.. 제 간이 있어야 초옥아씨가 나을 수 있다고..!
구미호: 그 인간이.. 그리 했단 말이냐? 그 금수만도 못한 인간이.. 너한테 그리 했단 말이냐?!
연이: 나리가.. 조금만 참으라고 아프지 않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과거의 회상)
윤두수: 아프진 않을 것이다. (숨죽이는 연이를 어루만지며) 조그만.. 조금만 참아라...!
연이: 저는 칠성판에 꽁꽁 묶여있었습니다! 아무 의미 없었습니다! 방울노리개도 잃어버리고.. 이상한 약초 냄새때문에 어머니 냄새도 맡을 수가 없었습니다! 노래를 부르면 어머니가 오실 것 같아서 노래를 불렀는데...
(과거의 회상)
연이: 청이 하나 있습니다. 노래를.. 불러도 되겠습니까?
(다시 현재)
연이: 어머니는 오시지 않았습니다!
(또다시 자신을 자책하는 구미호.)
연이: 그리고..! (흐느끼며) 제 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습니다...!
(연이의 말을 들으며 흐느끼는 구미호.)
연이: 나리가 제 간을 꺼내고 있었습니다! 아팠습니다, 무서웠습니다! 어머니가 그런 제 모습을 볼까봐 너무 슬펐습니다..!
구미호: (흐느끼며) 연아...!
연이: 어머니가 인간을 믿지 말라고, 천하에 믿지 못할 것이 인간이라고 그리 말씀을 하셨는데도 나리를 믿었던 제가.. 너무나 바보 같았습니다!
(과거의 회상)
윤두수: (연이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보며) 나를 그린 것이냐?
연이: 부족하지만.. 나리께 드리고 싶었습니다.
(다시 현재)
연이: 너무나 싫었습니다!
구미호: (함께 울음을 터뜨리며) 아니다, 네 잘못이 아니다! 너를 지키지 못한.. 이 어미의 잘못이다! 다 이 어미 잘못이다, 아가! 미안하다, 아가! 미안해!
(서로를 껴안는 모녀)
연이: 어머니, 어머니!!
구미호: 아가, 미안하다! 미안해!
양부인: 나리도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그 아이는 우리 초옥이가 아닙니다! 저도 처음엔.. 아이가 충격을 받았다보나 하고서 넘어갔습니다. 헌데, 가면 갈수록 이상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구산댁을 자꾸 어머니라고 부르질 않나.. 연이처럼 그림을 그리질 않나.. 게다가, 설당과자라면 사족을 못썬 아이가.. 설당과자를 먹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양부인의 말에 초옥의 행동을 의심하기 시작하는 윤두수.)
양부인: 나리, 오늘 일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초옥이가 어떤 딸이였습니까? 자다가 나리 발소리만 들어도 벌떡 일어나던 아이 아니었습니까? 어미인 저보다도 나리를 더 따르던 아이였단 말입니다! 헌데, 그런 초옥이가.. 어찌 아버지를 찌르는 패륜을 저질렀겠습니까? 이는 필시... 연이의 원혼이 쓰인 것이 분명합니다! 초옥일 찾아야 합니다! 우리 딸, 초옥이를 찾아야 합니다!
윤두수: 차라리 죽자! 차라리 하고 나, 같이 죽어버리자! 내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너를 살리려고 어떤 짓을 했는데! 고작 돌아온 댓가가.. (초옥이 찌른 상처를 어루만지며) 고작 이런 것이냐? 세상에 어떤 아비가 제 자식에게 칼을 맞는단 말이냐? 세상에 어떤 자식이 제 아비에게 칼을 댄단 말이냐? 짐승도 제 부모는 해하지 않는 법이거늘. 어찌 네가 네 손으로 아비에게 칼을 찌른단 말이냐? 내 너에게 이런 일을 당하고, 아비로서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 허니, 같이 죽자. (초옥에게 다가가며) 아비하고 같이 죽자!
구미호: (연이를 보호하며) 나리, 어찌 이러십니까?
양부인: 초옥아, 뭘하느냐? 어서 잘못했다고 빌지 않고!
구미호: (잠시 주저하다) 아씨, 마님 말씀대로 하십시오!
연이: 싫습니다. 저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윤두수: 뭐?
연이: 저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순간 칼로 겁박하는 윤두수. 기겁한 연이,구산댁,양부인)
윤두수: 네 진정.. 잘못한 것이 없다고 했느냐?
양부인: 나리, 왜 이러십니까? 아픈 아이입니다..
윤두수: 가만히 계시오! 초옥아, 말해보거라. 네, 정말로 잘못한 것이 없느냐?
(구미호의 눈치를 보는 연이)
구미호: (속으로) 연아, 제발! 어미는 너 없으면 죽는다..! 제발, 제발 연아!
연이: (할 수 없이 무릎을 꿇으며) 용서해주세요, 아버지! 쇈내가 잘못했습니다!
구미호: (연이를 안은 채 양부인을 향해) 여긴 어쩐 일이냐? 우리가 어찌 지내는지 보러왔느냐? 네가 그리워 울고 있을 줄 알았드냐? 잘 보아라, 아무도 네가 이 집에 있는 걸 원치 않는다. 아랫것들은 물론, 작은 댁도, 나리도, 네 새끼라고 믿고 있는 내 딸 마저도 이젠 너를 아무도 원치 않는다! (가소롭게 미소를 지으며) 이제 알겠느냐? (연이의 손을 잡고 양부인을 뒤돌아서며)
양부인: 이게 끝인 줄 아느냐! 네가 이겼다고 생각하느냐? 형체도 없는 죽은 자식 품었다고 이리 방자해도 되는 것이냐? 악귀가 된 네 새끼가.. 천년 만년, 내 아이 몸속에서 살 수 있을 것 같으냐? 내가 그리 놔둘 성 싶으냐!!
구미호: (굴하지 않고) 색경이라도 있으면 지금 네 모습을 보여주고 싶구나. 지금 네 모습이 진정 악귀의 모습이구나!

15. 14회

(여우의 눈을 하고 있는 구미호를 보며 놀라 자빠진 윤두수.)
구미호; (재빨리 눈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며) 나리. 나리? 어찌 그러십니까?
윤두수: 아니다, 내.. 헛것을 보았다. (계속 구미호를 빤히 쳐다보며)
구미호: 어찌 그런 눈으로 보십니까?
윤두수: 오늘따라 네가 참 낯설어 보이는구나. 헛깨비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무슨 야담에서 튀어나오는 요물 같기도 하고...
구미호: (당황하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으며) 요물이라니요?
윤두수: 이리 자세히 보니, 더더욱 요물 같아 보이는구나.
(숨죽이는 구미호.)
윤두수: 네가 사람이라면...
(가슴 철렁이는 구미호.)
윤두수: 나를 이렇게 홀릴 수가 있겠느냐?
양부인: 딱해서 못보겠구나.
(여우피를 마시고 주저앉은 구미호.)
양부인: 칠성판에 나를 묶었던 그 기세는 다 어디로 갔느냐? 주제 넘게 날뛰더니, 꼴 좋구나! 흉측한 괴수 주제에 감히 인간 행세를 하다니... 한 순간이지만, 네 딸년에게 동정심을 품었던 내 자신이 다 우스워지는구나! 그래, 네 딸년은 또 어떤 흉측한 모습을 지녔느냐? 그간 우리 초옥이가 네 딸년 같은 괴물의 간을 먹은 것이 아니냐? 허니, 한 시라도 집안이 편할 일이 있었겠느냐? 골라도 어찌 이런 것을 골랐는지... 네가 나를 쫓아내고 내 자리를 차지했을 때까지만 해도, 일이 이리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네 뜻대로 될 줄 알았을 것이다! 허나, 어찌하면 좋으냐? 초옥이는 돌아왔고, 너는 이 자리에서 죽을 것이다. 어찌 보면 내가 너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다. 너는 네 새끼 곁으로 가면 되는 것이다! 이제 모든 게.. 다 제대로 되는 것이다. 아니 그러하냐?
구미호: (수인형으로 변한 채) 어쩌면 좋으냐? 이제 보름달이 떠버렸구나...!
(구미호를 보며 놀라 뒤로 자빠진 양부인.)
구미호: (양부인에게 성큼 다가오며) 이 금수만도 못한 년! 사람의 껍데기를 쓰고 인간 행세를 하다니, 너야말로 하늘이 무섭지도 않드냐?!
양부인: 거.. 거기.. 거기, 누.. 누구 없느냐? 거기! 거기 누구 없느냐!!!
구미호: (양부인의 입을 틀어막으며) 떨리느냐? 진정 네 모습이 딱하구나. 좀 전에 내게 호령하던 그 기세는 어디로 갔느냐? 바로 내 심장에 칼을 꽂았으면, 이런 일을 당하지도 않았을 텐데... 공연히 시간을 끌어 이런 꼴이 되었구나! 허나, 난 너처럼 시간을 끌지 않겠다. 바로 지금, 네 년의 길고 긴 숨통을.. 바로 끊어놓을 것이다!!! (양부인의 목을 조르며)

16. 15회

(초옥의 방에 들어온 양부인, 수인형으로 변한 채 잠든 초옥을 안는 구미호를 보며 기겁한다.)
구미호: (다가오는 양부인에게 조용하라고 손짓하며) 네 새끼가 깨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내 정체를 알면, 네 새끼는 이 자리에서 바로 죽어야 한다!
양부인: (겁먹었지만 애써 침착하며) 이 요망한...! 어서, 어서 이리 초옥이를 내놓지 못하겠느냐? (조용히 소리지르며) 어서!
구미호: 소리치고 싶으냐? 어디 한 번 소리쳐보거라. 사람들 앞에서 내가 모습을 들어낼 듯 싶으냐? 이젠 아무도 네 말을 믿지 않는다. 지아비란 놈도 네가 실성을 했다고 생각한다. 네가 그리 매달렸던 박수무당 조차도 너에게 등을 돌렸다! 허면 이제 네 년 딸의 간을 밥상 위에 올릴 일만 남았구나? 아비란 놈은 그게 지 딸의 간인줄도 모르고, 오독오독 씹어먹겠지? 생각만 해도 재미나질 않느냐? (깔깔깔 웃고는 초옥을 내려놓으며)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구나! 허니, 살아있는 동안에[16] 실컷 안고 있거라!
만신: (백색가루에 대해 캐묻는 윤두수에게) 마님도 알고 계시지만, 그 가루는 제가 내어드린 것이 아니라, 마님께서 제 몸을 뒤져서 가져가신 것입니다.
윤두수: 네 놈은 대체 누구 편이냐?
만신: 저야 그저, 천하디 천한 박수무당일 뿐이죠.
윤두수: 즐거우냐? 그렇게 뒷짐을 쥐고 서서 우리가 허둥대둥대는 꼴을 지켜보는 것이 그리도 재미나느냐? 현감에게 내어준 문서는 무엇이냐? 내 처음엔, 그것이 거래문서인 줄 알았다. 허나, 현감이 거래문서를 쥐고 있다면, 지금 이 시간까지 움직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17]
만신: 나리의 말씀대로, 사또 나리께 그 거래문서를..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윤두수: 허면, 네 놈의 속셈은 무엇이냐? 거래문서를 꼭 쥐고 앉아 애간장을 녹이는 이유가 무엇이냔 말이다! (만신에게 칼을 겨누며) 내놓아라. 지금 당장 거래문서를 내놓으란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 지금 당장 네 놈의 목을 베고야 말겠다!
만신: 제가 언제 소인이 갖고 있다고 했습니까? 사또 나리께 거래문서를 내어주진 않았지만, 소인의 손을 떠난지 이미 오랩니다.
윤두수: 이건 또 무슨 소리냐? 조현감 손에도 없고, 네 놈 손에도 없다면, 거래문서는 대체 누구의 손에 있단 말이냐? 안되겠다. 내 지금 당장 네 놈의 목을 차서..
만신: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지요.[18]
양부인: 거래문서라뇨? 전 그런 거 모릅니다. 저는 단지,
윤두수: 긴 말 하지 않겠소. 당장 찾아오시오.
양부인: 싫습니다!
윤두수: 뭐요?
양부인: 이제 조금 있으면, 나졸들이 올 것입니다.
윤두수: 이렇게까지 나를 능멸하는 이유가 뭐요? 어찌 반가의 여인이 이런 식으로 지아비를 배신한단 말이요? 어찌 조현감과 손을 잡고 이리 나를 궁지에 몰 수가 있소? 우리 가문에 어찌 이리 먹칠을 할 수가 있단 말이오?!
양부인: 초옥이를 살리는 일입니다!
윤두수: 뭐요?
양부인: 나리만 믿고 있다가는 우리 초옥이가 죽겠습니다! 저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백 번, 천 번이라도 똑같이 할 겁니다! 우리 초옥이를 위해서라면, 그 요물을 잡기 위해서라면 저는 몇 만 번이고 그렇게 할 것입니다![19] (울먹이며) 따지고 보면 다 나리 탓입니다! 구산댁 모녀를 데리고 온 것도 나리였습니다. 이제 우리 초옥이가 살았는데, 어쩌자고 또 구산댁 그 요물을 집안에 끌어들이신 겁니까?! 연이를 죽였을 때, 구산댁도 같이 죽였더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아니, 연이보다 구산댁을 먼저 죽였어야 했습니다![20]허니, 나리가 다 책임지십시요! 솔직히 나리가 한 일이 뭐가 있습니까? 우리 초옥이 어떻게 살린 아입니까? 번뇌하고, 주저하고, 망설이는 나리를 제가 몇 번 씩이고 일으켜 세웠습니다! 헌데, 어찌하여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십니까? 어찌하여 요물의 미색에 빠져 아직도 허우적대십니까? 제발, 정신 좀 차리십시오... 눈을 좀 뜨십시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구산댁을 죽이십시오!
윤두수: 그러니까, 부인 말은 우리 초옥이를 위해서 이번엔 구산댁을 죽이란 말이오? 연이를 죽인 내가, 이제 구산댁을 죽이란 말이오..? 자식을 죽인 내 칼로, 이제 그 어미의 피를 묻히란 말이오?!
양부인: 죽여야합니다. 그래야 초옥이가 삽니다. 그래야 초옥이뿐만이 아니라, 나리와 저, 우리 가문 모두가 삽니다!(윤두수에게 칼을 내미는 양부인)이 길로 바로 별당으로 가십시오. 그리고 구산댁의 목을 베십시오! 어서 가십시오! 나리는 하실 수 있습니다! 구산댁은 요물입니다. 허니, 조금도 가책을 느끼실 필요는 없습니다. 연이도 괴수였으니, 지난 일은 다 잊으십시오. 생각해보면 정말 기가 막힌 일입니다. 초옥이가 요물의 간을 먹었으니, 어찌 집안이 편했겠습니까? 우리 불쌍한 초옥이가 괴수의 간을 먹다니...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집니다. 허니, 이제는 바로 잡아야 합니다...! 한시라도, 빨리 바로 잡아야 합니다! 어서 찌르십시오!
양부인: (칼에 맞아 누운 채) 사.. 살려다오..!
구미호: (양부인을 비웃으며) 지금 누구한테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이냐? 참으로 딱하구나. 이리 죽어가는 데도 아무도 오질 않는구나.[21] 그래, 기분이 어떠냐? 지아비 칼을 맞고 저승으로 가는 기분이... 심장이 찢어질 것 같으냐? 하긴, 네 년이 아무리 고통스럽다고 해도, 새끼 잃은 어미 심정을 피할 수 있겠느냐? 어미를 부르면서 죽어간 내 새끼 고통보다 더하겠느냐! 네 년과 나, 그리고 우리 연이 악연은... 이것으로 끝이다! 이제, 지옥으로 가거라!!!

17. 16회

윤두수: 이것이 네 년의 정체였더냐? 넌 대체 누구냐? 어서 말해라, 넌 누구냐? 인간이냐, 짐승이냐? 아니면 나와 이 집안을 삼키려고 들어온 요물인 것이냐?!
구미호: 내가 누군지 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않느냐? 난 어미다. 네 놈 손에 새끼를 잃은, 그 어미다!
윤두수: 내 숨통을 끊으려고 들어온 요물인 줄도 모르고, 내 그동안 미친 놀음을 했구나. 이 사람도 아닌 요물의 치마폭에 쌓여 조강지처를 죽이고, 내 새끼까지 잃을 뻔 했구나!
구미호: (비웃다가 다시 정색하며) 왜? 내게 속은 것이 그리 원통하고 분하느냐? 네가 아무리 분해도 새끼를 잃은 나보다 더 분하겠느냐? 내 몇 번이나 피가 거꾸로 솟는 걸 참아가며, 네 놈의 숨통을 끊을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연이: 저를 죽이는 것도 모자라, 어찌 어머니까지 죽이려 하십니까?
윤두수: 너... 너는..!
연이: 맞습니다! 나리께서 그리 아끼시다던, 그래서 딸처럼 여기시다던... 연이입니다. 나리 손에 죽임을 당한 연이입니다!
윤두수: 그래, 내 너에게 못할 짓을 했다. 허나, 나 역시도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연이: 왜 그런 짓을 하셨습니까?
윤두수: 내 딸 초옥이가, 죽어가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세상 어느 부모가 자식을 포기할 수 있단 말이냐? 미안하다. 허나, 난 다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나는 그리 했을 것이다. 그래서, 더 미안하구나...
연이: 제게 그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 설마 제게 이해를 구하시는 겁니까? 아직도 나쁜 사람이 되기 싫으신 겁니까? 허나, 그 어떤 말도 절 설득하지 못합니다. 저는 그저, 억울하게 죽었을 뿐입니다! 도저히 저는, 나리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1] 이 날이 바로 구미호모녀가 인간이 되기 하루 전날 밤이었다. [2] 이 장면의 대사는 임충 극본의 전설의 고향 구미호 편(1997)의 대사와 동일하다. [3] 꿈의 내용은 모두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4] 이 노래는 어느순간부터 불운의 상징이 되어버린다. [5] 연이, 정규 [6] 연이는 어머니 구산댁이 수인형으로 변한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7] 구미호가 처음으로 양부인에게 반말을 한 장면이다. [8] 작중 시점에선 고인 [9] 윤두수에게 약물이 묻은 약과를 건네받고 속으로 한 말. [10] '딸 윤초옥의 치병을 위하여 윤두수가 살생을 하였음을 이 문서에 기록하는 바이다.' [11] 양부인이 초옥의 일로 다시 자신을 찾을 것을 미리 알아차린 모양이다. [12] 하지만, 기어코 이 일은 일어나고야 마는데... [13] 초옥의 몸속에 연이의 혼이 빙의된 상태다. [14] 연이의 혼이 빙의된 초옥은 계속 '연이'로 기재한다. [15] 좀 전에, 윤두수 일행의 눈을 피하기 위해 여우의 힘을 쓴 채 나무위로 올라간 구산댁이 아래로 내려왔을 때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오기 전, 연이가 이미 구미호의 얼굴을 봐버린 것. [16] 초옥이 살아있는 동안 실컷 얼굴 봐두라는 의미 혹은 양부인이 살아있는 동안 초옥을 실컷 안아두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17] 조현감이 거래문서를 가지고 있다면 연이를 죽인 진범으로 자신을 잡으러 올 것임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 [18] 윤두수의 주변인들 중 누군가 거래문서를 쥐고 있다는 뜻. [19] 자식인 초옥을 위해서 남의 아이를 희생하는 것. [20] 참고로 당시에 구산댁은 퇴마사가 받은 만신의 부적때문에 물 속에 봉인당한 상태였기 때문에 행방이 묘연했다. [21] 구미호의 딸 연이가 죽어나갈 때,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았던 상황이 양부인에게 돌아온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