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공식능력치 | ||||
시기 | 무력 | 지휘력 | 지력 | 기타 |
가이드북2 | 20 | 75 | 83 | 요주의 인물 |
가이드북3 | 40 | 75 | 83 | 교활함 95 |
킹덤의 등장인물로 조나라의 대신이자 도양왕의 측근이다.
성우는 후쿠마츠 신야. 캐릭터의 모티브는 당연히 곽개
2. 작중 행적
369화에서 첫등장 요가가 자신의 귀걸이를 보고 보통 보석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면서 조나라에서는 본 적이 없다고 하자 요가에게 여불위에게 제공받은 것을 이야기하면서 진에서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503화에서 오랜만에 등장. 호주라는 대신이 이목의 전서구를 받고 도양왕에게 진군이 열미에 도착하기 전에 한단군을 움직여 열미를 방어할 것을 간언한다. 그런 호주의 목을 조르거나 구타를 한다.
639화에서는 업을 빼앗기고 투옥된 이목 앞에 등장해 참수형이 결정되었다고 전한다. 이목이 업은 아직 육지의 고도이며 진은 열미와 업을 이어야 되므로 이를 실행에 옮길 것이기 때문에 저지하기 위한 책략을 곽개에게 전하나 곽개는 무시해버리고 아무에게도 전하지 않는다.
643~644화에서는 이목을 구하려는 수하들을 처형 전날까지 성공적으로 차단한다. 그러나 도양왕이 독살을 당하며 왕위 승계 절차에 따라 태자 가가 왕위에 오를 정당성을 확보하며 큰 위기에 몰린다. 하지만 영 서기관과 강희에게 다음 왕을 천에게 넘겨준다는 기록이 발견되어 위기를 넘긴 뒤, 이목과 태자 가를 지지하는 일파를 깔끔하게 숙청해버린다.
이후 647화에서는 지하 감옥에서 이목에게 들은 바대로 한단군을 호첩에게 지원해 진나라군을 막아세운다.
이후에는 양단화, 환기, 왕전과 위나라 방면에서 지원온 등군을 막아내는 괴력을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 몽념, 왕분, 이신도 이 전선에 참전중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대장군 급 장수 네명과, 대장군급 잠재력을 가진 세 명을 상대로 공세를 막아내는 엄청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호첩이 전사하고 10만이나 되는 조군이 포로로 잡혀 참수당한 소식에 창백해하며 골똘히 생각에 젖는다.[1]
701화에서 주위의 신하들과 함께 땀이 흐를 정도로 고민한다. 여차하면 한단에서 탈출하자는 말에 기뻐하는 신하들을 책망한다.
바보 같은 걸로 기뻐하지 말아라. 그 때는 목숨이 붙어있어도 지금의 지위도 권력도 없이 패주하는 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병사야 어떻게든 마련할 수 있지만 총대장을 맡을 만한 장수가 없기에[2] 고민하다가 초나라에서 온 급보를 받는다. 염파가 복귀 의사를 전해오자 염파의 성질[3]을 염려하여 염파의 복귀를 막는다. 이후엔 분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이목을 복귀시켜 군을 맡긴다.
이목이 환기를 쓰러뜨리고 온나라가 이목을 칭송하자 불쾌해하여 유목왕을 찾아간다.
3. 곽개 명장설과 명재상설
춘추 전국 시대가 끝난지 2000년 이상이 지났는데 그 오랜 기간 동안 곽개가 가장 높게 평가된 작품이 바로 이것
일본 독자들의 곽개 평가
일본 독자들의 곽개 평가
도양왕 명군설처럼 이목의 밑도 끝도 없는 추한 행태 때문에 이제 독자들 사이에서는 곽개 명재상설까지 나오고 있다. 그런데 곽개 명재상설의 문제는 버기 최강설과 같은 대놓고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킹덤의 꼬인 스토리와 이상한 연출 때문에 독자들에게 설득력이 높은 설이라는 것. 읽다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오죽하면 이 정도까지 노력했지만 주변사람들이 알아주지 못해서 절망에 빠져 흑화해서 나라 팔아먹어도 인정해줄만 하지 않냐는 말까지 나온다. 일본 독자들의 평가도 다르지 않다. 이목이 킹덤의 허술한 묘사와 연출에 의한 최대 피해자라면 곽개는 최대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4]
이하는 곽개 명재상설의 근거들.
-
무리한 도박수로 왕도권을 함락당하게 만든 무능한 이목이 조언이라며 올린 방책은 무시당해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곽개는 패장의 군사적 조언을 귀담아 들었고 이를 작전에 반영했으며, 6개월동안 육대장군 세 명의 왕도권 공세를 막아내는 구체적인 성과로 이끌어냈다. 구체적인 전술을 정리해서 인수인계한 것도 아니고 "평양과 무오를 방어 거점으로서 강화하라" 라는 말 정도였는데 이걸 반영해서 큰 전과를 낸 것이다.
이는 매우 힘든 일인데, 겉만 보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성곽을 증축하고 병력을 증강시키면 끝나는 일처럼 보인다. 실제로 작중에서 작가는 "모두 곽개의 수완에 놀랐지만, 이는 사실 이목이 감옥에서 간언한 작전이다" 라는 나레이션을 통해 마치 "곽개는 이목의 플랜을 그대로 배낀 것에 불과하다" 라고 말 하는 듯한 늬앙스를 풍기고 있다. 하지만 성곽을 증축하면 기존의 동선에 익숙해진 해당 주둔지 장병들에게 혼동이 올 것이 뻔하며, 새 병력이 도착하면 호흡도 다시 맞춰야 하는 등의 부작용이 있다. 그냥 단순히 '방어 거점을 새롭게 설정하고 강화한다' 라는 그 짧은 표현 하나에 일선 장교와 행정가들에게 수많은 노고가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난관들을 극복하여 이목은 해내지 못 한 왕도권 수비를 해냈으니, 이는 당연히 곽개를 비롯한[5] 조나라 신하들의 뛰어난 수완을 칭찬해야 할 일이다.
- 이후에 호첩의 패배로 병사를 지휘할 장수가 부족하게 된다. 물론 조총이 있긴 했으나 조총마저 당하면 한단을 지키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다. 그래도 자기 목숨을 생각하면 조총에게 군을 맡겨야 하지만 국가를 위해 정적이었던 이목을 다시 불러들여 군을 맡기는 등 굉장한 오픈 마인드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도양왕 사후 조가와 이목이 정권을 잡는 바람에 도망자 신세가 되었지만, 유언장에 기록된 선왕의 유훈이라는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여 이를 바탕으로 조천을 옹립해 빠르게 권력을 되찾는다. 또한 조정의 역적인 이목 일파를 몰아내고, 반대 파벌을 하룻밤만에 숙청해버리는 등 엄청난 정치력을 보여준다. 정치적 처신과 모략에 있어 거의 무심하다시피 한 이목과는 달리 정치질 면에서도 유능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뚱뚱하여 게을러 보이는 용모와 곽개라는 이름값 때문에 저평가받는 것이지 실질적으로 조나라 충신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
- 무능한 이목이 업전에서 대다수의 장수를 잃고[6], 그나마 남아있는 장수들은 곽개와 정치적으로 대립하거나[7], 히든 카드인 사마상은 청가에서 올라오지 않는 상황에서[8] 곽개는 무려 왕전, 환기, 양단화를 상대로 6개월간 조나라를 지켰을 뿐만 아니라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아 오기까지 했다! 심지어 업을 빼앗겨 수도권인 한단까지 고속도로가 개통된 상황에서! 킹덤에서 등장한 재상 중 이 정도로 큰 활약을 한 인재는 없다.[9]
- 사실 엄밀히 말하면 곽개는 최근까지 재상이 아니었다. 투옥되기 전까지는 이목이 삼대천 겸 재상이었다. 근무기간의 상당수를 도양왕 옆에서 보좌만 하다가 도양왕의 갑작스런 붕어에 미처 대책도 못세우고 긴급하게 재상에 갑자기 올라가서 크게 활약하는 것을 보면 창평군도 곽개 앞에서는 한 수 접어줘야 할 지경이다.
- 설사 이목의 작전 때문에 곽개가 진나라 군을 막을 수 있다 하더라도, 15일만에 업을 날려 먹은 이목의 처참한 무능력을 보면[10] 이목이 계속 조나라군을 지휘했다면 한단을 지키지 못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작가는 이목의 작전을 곽개가 날로 먹은 것처럼 묘사하고 싶은 모양인데, 이목이 무슨 상세한 작전 계획서를 내놓은 것도 아니고 말 몇 마디 전한 것뿐인데 그걸 갖고 반 년 동안이나 조나라 전군을 지휘한 것을 날로 먹은 것으로 표현하는 것은 어떻게 봐도 무리수다. 굳이 말하자면 큰 틀은 이목이 잡고 세세한 틀은 곽개가 잡았다고 할 수 있겠다만 그것만 해도 대단한 것은 틀림없다.
- 인성 면에서도 이목보다 한 수 위인 모습을 보여준다. 도양왕이 독살당한 이후 곽개는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정황상 왕위 계승에도 월권을 행사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 역사에서 곽개의 쓰레기 행보와는 달리 최소한 자신을 기용해준 도양왕에게는 충성하는 모습인데, 이는 수많은 실책에도 불구하고 몇 번씩이나 자신을 삼대천으로 삼아주고 많은 지원을 해준 도양왕을 어둡다고 비난하며, 사병을 동원하여 쿠데타까지 기도하는 이목[11]과는 차원이 다른 빛나는 인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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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 전투를 전후한 시점으로 이목이 평양, 무성의 뒤쪽에 있는 장성들을 이어모으는 계획을 입안했는데, 업 전투 이후 수감 - 망명 생활을 하는 3년간 곽개가 이를 이어받아 250리(100km)에 달하는 길이로 완성시켰다. 말이 쉽지 장성 만들기전에는 업에서 한단까지 군대의 행군속도로 겨우 2일거리이며 그 사이에 성 한둘 있는것뿐 아무것도 없었다. 게다가 상대는 업을 점령하여 사기가 올라갈대로 올라간 왕전-환기-양단화군이고 하려들면 얼마든지 방해할수 있는 악조건이었다. 그런데도 축성작업을 바로앞에 진치고 있는 왕전조차 모를정도로 완벽히 비밀리에 진행시키고 적이 침입하지도 못하게 한거다.게다가, 계획을 세운게 이목이라고 왕전은 이목의 장성 운운하고 있지만, 쿠데타로 도망가있는 동안 그 모든 작업을 담당한 것은 하라 스스로 언급했듯 곽개이며 진나라는 진작 첩자까지 파견해놓고 3년간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했다. 심지어 곽개는 한참 전에 이미 진나라의 첩자에게 뇌물을 받아먹는 모습이 나왔는데, 이를 조합하면 진나라와 밀통하는 척하면서 3년간 적을 완벽하게 기만한 교활한 책략가의 면모를 갖추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진작 진나라의 첩자인 요가가 파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체를 알았든 몰랐든 그에게 정보가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이런 대규모 공사를 완벽한 보안 하에 통제한 것이다. 참고로 축성은 염파가 장군 중에서도 극소수의 재능있는 자들만이 보유했다고 극찬한 특기로 백기, 그리고 왕전이 이를 가졌음을 언급하는데, 곽개의 능력은 이 둘에게 전혀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 사건을 통해 증명되었다. 참고로 진나라군이 점령한 업과 한단 사이의 거리는 50Km도 채 되지 않는다!
- 조 북부에서 의안 전투가 벌어질 때 반년동안 이목 혼자서 무려 31만의 대군을 동원한데다가 해당 군대의 주요 지휘관들이 모조리 이목 파벌로 조나라 조정에는 병력의 존재부터 비밀로 하고 있다는 점이 밝혀졌다. 사실상 조나라 북부가 이목의 사유지가 된 셈이다. 안그래도 업 공방전에서 이목이 왕도권 반토막 만들어놓고 호첩이 그나마 남은 지역도 상당수 날려먹은 상태에서 조나라 북부까지 저 지경이면 조나라 조정에 남은 땅은 거의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족한 국력만으로 여기까지 끌어온 곽개의 능력이 엄청난 것이다.
4. 관련 문서
[1]
사실 이것도 곽개의 잘못은없다. 호첩에게 환기군의 세배씩이나 되고 훌륭하게 무장된 총 24만대군을 주고 필승의 태세를 갖춰줬으나 호첩이 너무 자만한것과 환기의 비상식적인 계략탓에 그리 됐을뿐, 호첩이 허무하게 죽지만 않았어도 조군이 대승하고 업까지도 위험했던 상황이었다
[2]
영걸이라 불리는
조총이 있지만 조총이 없으면 그야말로 끝인 상황이라 이목의 복귀까지 고려하고 있던 상황이다.
[3]
염파는 암군인 도양왕이 싫어 위나라로 망명했는데 현재의 유목왕은 도양왕 이상의 암군이라 염파와 대립할 가능성이 농후하며 염파가 돌아와서 군권을 잡으면 자신을 비롯한 신하들의 목을 벨 수도 있다.
[4]
작가가 얼마나 캐릭터 활용을 못 하는지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이다. 실제 역사에서도 온갖 민폐를 끼친 인물인만큼, 이목이나 다른 조나라 장수들이 실패하는 이유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데도 그러지 못했다. 대표적인 예로, 작중에서 이목은 진나라 군을 조나라 내부에 끌어들이기 위해서 열미성을 일부러 약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도박수를 던지고 패배까지 함으로서 업전의 책임은 오롯히 이목만의 패착이 되었으며, 이를 징치하는 곽개는 정치적 정당성을 지니게 되는데 작가는 오히려 곽개 쪽을 악역처럼 묘사하고 있으니 이는 이상한 일이다. 곽개가 열미성 보강 예산을 착복하는 바람에 조나라군이나 진나라군도 방어하기 괴이하게 되었다고 하면 훨씬 개연성이 있다. 금은보화로 몸을 치장하는 모습도 애국 반란 당시에 등장했으니 과한 물욕에 대한 작중 근거도 충분하다. 그런데 작가는 이렇게 본인이 스스로 설정해놓고 써먹지 않는다.깜빡하고 있었어
[5]
더 정확하게는 이목 파벌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
[6]
독자들에겐 악평을 받으나 암울한 조나라 장수진에서 그나마 강력했던 방난이 죽고,
인상여의 직속 부하였던 요운, 조아룡을 시작해서 부하들에게 신임을 얻는 금모 같은 부장급 인재들도 여럿 죽었다.
[7]
기혜와 호첩, 특히 호첩은 조왕이 아닌 이목 개인에게 충성하는 발언까지 했다.
[8]
연나라를 막기 위하여 사마상이 동부전선에 배치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긴 하다.
[9]
그나마
창평군 정도가 곽개의 활약에 비빌 수 있는 수준이다.
[10]
심지어 소설이긴 하지만 『삼국지연의』에서 졸장의 대명사로 묘사되는 하후무조차 장안은 내주지 않았다.
[11]
물론 이목이 경내 무력 소동을 직접 일으킨 것은 아니다. 파벌의 우두머리를 살리기 위해 막하의 부하들이 멋대로 무력 시위를 벌인 것이고, 경내에서 태자도 포함되어 있는 일행을 화살로 공격했으니 어찌 보면 자위 차원에서 반항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도주하는 과정에서 태자를 데리고 나왔다는 것이 결정적이다. 그냥 도망만 쳤다면 단순히 무능한 패장 정도였을텐데 태자를 자기의 영지에 직접 데려간 시점에서 빼도 박도 못 하는 역적 수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