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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13:35:16

곽개

郭開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생애3. 평가4. 대중매체에서
4.1. 심진기4.2. 킹덤(만화)에서의 곽개

1. 개요

중국 전국시대 조나라의 인물로 간신 매국노로 유명하다.

2. 생애

염파 위나라로 망명했지만 크게 쓰이지 못하고 있었는데, 도양왕이 진(秦)나라의 침공으로 염파를 기용할 생각이라 염파가 지금도 기용할 만한지 살펴보게 했다. 이 때 곽개는 염파와 원수지간이라 염파를 확인하러 가는 사신에게 많은 돈을 주어 염파를 모함하도록 했다. 그 사신은 염파가 열 근 고기를 먹고 한 말 술을 마실 정도로 건강한 것을 보고도 도양왕에게 '염파가 많이 먹기는 하지만 자주 소변을 보러 가는 걸로 보아 건강이 좋지 않은 것 같다'고 거짓으로 보고해 결국 염파는 기용되지 못했다.

기원전 229년에 진나라가 왕전을 보내 조나라를 공격하면서 이목, 사마상 등을 시켜 막게 했는데, 곽개는 진나라로부터 돈을 받고는 이목과 사마상이 반란을 꾀하고 있다는 거짓말을 했다. 이로 인해 이목이 체포되어 죽고 사마상은 해임되어 조총, 안취 등이 그들을 대신하는 등의 사태가 일어났으며, 3달 후에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해 멸망시켰다.

열국지에서는 진나라의 울료와 왕오에게서 뇌물을 받고 조왕에게 이목이 진나라의 군대와 내통해 왕위에 오를 것이라는 소문이 돈다며 모함한다. 조나라가 망하자 진시황의 신하가 돼서 함양으로 거주지를 옮긴다. 한단성을 떠날 때 모아둔 황금이 워낙 많아서 가져갈 수 없었기에 한단성에 있는 자기 집 마당에 황금을 묻어두고 함양으로 갔다. 나중에 진시황에게 청해 휴가를 얻어 옛 집에 묻었던 금을 여러 채의 수레에 나누어 싣고 함양으로 향하다가, 하필 산길에서 도적을 만나 금을 모두 빼앗기고 목숨도 잃었다고 한다. 야사에서는 이들이 도적이 아니라 실은 이목의 식객들이었다고도 하고 혹은 이용 가치가 없어진 곽개를 진시황이 토사구팽한 것이라고도 한다.

천자문에서 전국시대 용장으로 백기, 왕전, 염파, 이목 네 사람을 꼽는데, 그중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조나라 소속이었음에도 곽개는 기어코 조나라를 망하게 만들었다.[1] 앞의 두 사람이 소속된 진나라를 생각하면 춘추전국시대 중국 통일을 앞당기는데 어마어마한 공헌(...)을 했으며 진나라의 1등 공신이라고 해도 전혀 과언이 아니다.

3. 평가

여러모로 초의 비무기와 비슷하다. 단 망국력은 한 수 위인데, 조나라는 곽개 때문에 폭삭 망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비무기는 남을 해코지하는 것을 즐기다가 본인도 똑같이 당했지만 곽개는 나라를 망칠 때까지 끝끝내 살아남았다. 물론 부귀영화를 눈앞에 두고 길 가다가 도적을 만나 죽임을 당했으니 나름 벌을 받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말이다.[2][3]

4. 대중매체에서

4.1. 심진기

2018년 드라마 심진기에 등장한다. 여불위와 전서구를 주고 받으며 내통했다. 영정의 조나라 탈출을 도왔다. 이목을 모함해 반란죄로 참수당하게 했다.

4.2. 킹덤(만화)에서의 곽개

문서 곽개(킹덤) 를 참조


[1] 물론 실제로는 진나라에는 백기, 왕전 외에도 다른 명장들이 많이 있었다. 그에 비해 조나라는 염파외 이목이 전부였다. 또, 이들 외에 초나라의 명장 항연도 이들과 비교해도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2] 이목의 식객들이 복수를 위해 습격했다거나 진시황이 토사구팽한것이라는 설도 있는데 어느쪽이 됐건 나라를 팔지 않았으면 맞이하지 않을 수 있던 결말이니 결국 자업자득이다. [3] 애시당초 길 가다가 도적을 만난 것도 그동안 나쁜짓을 해서 긁어모은 금은보화를 싣고 빤스런치다 도적을 만난 것이니 더더욱 인과응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