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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된 웅장 |
곰의 발볼록살. 예로부터 중화권과 관련 문화권의 왕후장상의 음식이자 진미로 유명했다. 그래서 고급스럽고 유명한 재료에 가깝다.
팔진 문서에도 나와 있지만, 웅장이 진미로 꼽힌 이유 중 하나는 야생동물의 기가 모이는 곳이니 귀중하다는 것[1]이고, 다른 하나는 야생 곰을 잡아서 그 발바닥으로 요리를 만드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다.[2]
실제로 흔치 않은 식재료인지라 숙련되기 쉽지 않은데다 워낙 두꺼워서 잘 익지 않기 때문에 조리하는데 긴 시간이 걸린다. 전통 가마솥에 끓이면 며칠은 걸렸고, 압력솥에 끓여도 하루는 걸린다. 아래에 나오는 초성왕 관련 일화가 대표적 사례이다.
지금도 중국 부자들이 찾는 진미이긴 하나 대부분의 곰이 보호종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합법적으로는 먹을 수가 없고, 동남아시아 쪽으로 여행을 가서 몰래 먹는다고 한다. # 사실 고기 정도면 양반이고, 샥스핀처럼 살아있는 곰의 앞발만을 잘라 술을 담그기도 한다고 한다. # 러시아에서 야생 불곰을 사냥해 곰발바닥만을 잘라 밀수하기도 하며, 2013년 기준 곰발바닥 요리 한 접시 가격이 100만 원이 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3] #
근래에는 돼지고기, 닭고기 등을 이용한 인조웅장이나 가짜 웅장이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곰 발바닥 모양은 호불호가 갈리기는 하지만, 맛 자체는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은 듯 하다. 다만, 진짜 곰고기가 아닌 만큼 특별하고 참신한 맛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웅장을 먹어 본 사람들에 따르면 돼지비계와 비슷한 맛이 난다고 한다. 실제로 체성분의 구성을 고려하면 족발보다 맛있기 어려운 재료이다.
2. 이야깃거리
-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 성왕은 태자를 교체하려다가 오히려 아들이 선수를 치는 바람에 사로잡히는 신세가 되었다. 이때 마지막 소원이라고 한 말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웅장을 먹고 죽고 싶구나." 성왕의 속내는 며칠씩 삶아야 하는 웅장의 특성을 이용해서 지방의 진압군이 달려올 때까지 시간을 벌려는 것이었는데, 태자가 바보도 아니고서야 바로 그 뜻을 알아챘고, "곰 발바닥은 익히기가 힘들지 않소!"라는 말로 대응했다. 결국 버틸 수 없게 된 성왕은 흰 비단으로 목을 매어 자살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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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춘추시대
진나라 영공은 성격파탄자로 악명이 높았는데, 어느 날 그의 요리사가 약간 덜 익혀진 웅장을 수랏상에 올렸다. 이에 영공은 요리사를 죽여 그 시체를 바구니에 담아 요리사의 아내가 궁궐 밖으로 지고 나가도록 했는데,[5] 마침 당시 진나라의
집정이었던 조둔[6]이 입궐하다가 웬 아낙이 이고 가는 바구니 밖으로 사람의 손이 튀어나온 것을 보고 기겁해 영공에게 달려가 앞으로 이런 포악한 짓을 그만두라고 했고, 영공은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끝났으면 당연히 이야기가 되지 않고 영공은 오히려 잔소리하는 조둔을 죽이려 들었다. 하지만 영공이 파견한 암살자는 조둔이 바른 사람인 줄 알고 차마 죽이지 못하고 자살했다. 훗날 영공은 술자리에서 조둔을 죽이려 했지만 조둔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있어서 필사적으로 호위한 덕에 가까스로 탈출했고, 이 사실을 듣고 분노한 조둔의 사촌동생은 진영공을 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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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도 웅장을 언급한 적이 있다.
孟子曰 魚我所欲也 態掌 亦我所欲也 二者 不可得兼 舍魚而取態掌者也 生亦我所欲也 義亦我所欲也 二者 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
맹자가 말하기를, 물고기는 내가 바라는 것이고, 곰발바닥도 역시 내가 바라는 것이다. 둘 다 가질 수 없다면 물고기를 버리고 곰발바닥을 취하겠다. 생명 역시 내가 바라는 것이고, 의로움 또 한 내가 바라는 것이다. 둘 모두를 얻을 수 없다면, 생명을 버리고 의로움을 취하겠다.
-맹자 고자편
"물고기도 먹고 싶고 웅장도 먹고 싶으나, 둘 다 먹을 수 없다면 웅장을 먹겠다."라고 했다. 물론 맹자가 먹방을 찍으려고 한 말이나, 물고기가 생명을 의미하고, 곰발바닥이 의로움을 비유하는 것이 아니라, 위 인용문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댓구 맞추려고 적은 글이다.[8] 물론 맹자의 개인적인 음식 취향은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나중에 허균은 이 말을 그냥 직역해서 "맹자도 웅장만은 탐했음. 식욕은 정상적임."이라며 자기 식탐을 변호했다.
- 조선시대 양반가 밥상의 요리법을 모은 음식디미방에 요리법이 실려 있다. 당시 곰 발바닥 요리는 귀하고 특이한 별식이었지만 양반가에서는 이를 조리해 먹을 기회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김정일이 샥스핀과 함께 매우 좋아한 음식으로 알려져 있으며, 북한을 방문한 고위 인사들을 대접하는 자리에도 곰발바닥 요리가 오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9] 심지어 탈북한 김정일의 전직 경호원의 말로는 곰발바닥도 앞발과 뒷발의 용도가 달랐다고 하는데, 정확히는 국민들이 일일이 찾아서 바쳐야 했던 곰의 발바닥 중 힘을 더 쓰고 활동량이 많아 칼로리가 풍부하고 탄탄한 앞발만이 김정일의 식탁 위에 올라갈 수 있었고, 비교적 칼로리가 떨어지는 뒷발은 북한을 방문한 외국 수반과 외교관들, 주변 측근들에게 돌아갔다고 한다. #
- 한국에서도 과거에는 특급호텔 중식당을 중심으로 곰발바닥요리가 판매된 적 있다. 당시에는 식용 곰사육이 합법이었고, 수입도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엄청난 고가[10]였음에도 재벌 총수를 위시한 부유층들 사이에선 엄청난 인기였다.[11] 1990년에 수입이 금지되면서 판매하지 않았다는 것이 공식적인 호텔 측 주장이었지만, 환경단체에서는 몰래몰래 판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3. 관련 문서
[1]
곰이 겨울잠을 자면서 왼쪽 발만 핥으면서 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왼쪽 앞발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런 형이상학적인 이유라서 표범 태반이나 매미 배 같은 것이 같은 진미 취급을 받았다. 물론 '곰이 꿀을 먹을 때 앞발로 먹으니까' 같은 이유를 붙이기도 하는데 어차피 조리과정에서 다 씻기 때문에 별 의미는 없다고 할 수 있다.
[2]
보통 곰발바닥 요리를 만드는 방법은 하루 정도 푹 삶고 털과 발톱을 제거한 다음에, 간장과 고량주로 만든 중화풍 소스를 끼얹는 식이었다고 한다.
[3]
한국 입장에서도 매우 비싼 음식이지만, 2013년 기준 중국의 1인당 GDP가 7020달러(약 741만 원) 정도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당시 평균적인 중국인의 두 달치 소득에 육박하는 엄청나게 비싼 음식이던 셈이다.
[4]
절묘하게도 비슷한 사례로 서양에서도 짐승 발바닥 요리때문에 죽은 왕이 있는데 바로
루이 16세의 죽음이다. 다만 이쪽은 마차를 타고 탈출하던 도중 중간에 지나가던 도시의 명물이 족발찜이라 이걸 맛보고 싶어서 조리시간을 기다린 탓에 본인이 시간을 끈게 아니라 시간을 허비한 셈.
[5]
이 부분에서 우리는 단순히 요리사의 목을 쳤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목을 치는 것도 나름 형을 집행하는 것이기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집행하고 뒷처리도 같이 해야 정상이다.
[6]
조둔은 영공의 아버지 진 양공 때부터 집정이었다. 아직 어리던 영공을 군주로 세운 것도 이 사람이다. 그러니까 아버지뻘 되는 사람을 죽이려 든 것이다.
[7]
낙타 발굽 요리 역시 춘추전국시대 팔진중 하나로, 꼽힌 이유는 곰 발바닥과 동일하다. 사막을 걸어가는 낙타의 에너지가 모이는 곳을 발굽으로 봤다. 동시에 귀하게 여겨진 것이 등 위에 있으면서 모양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낙타 혹이다. 물론 실제 낙타 혹은 사막에서 오랫동안 영양분을 섭취하지 않고도 버틸 수 있도록 지방이 저장된 것일 뿐이라서 사막에서 계속 영양분 공급이 중단되면 혹 크기가 줄어들고, 그쯤 되면 낙타의 생명도 위태로운 지경이 된다. 즉, 낙타의 혹도 낙타가 평소 잘 먹어야 계속 유지되는 것이다.
[8]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물고기와 웅장의 대비를 통해 둘 다 가질 수 없다면 (덜 값진 것을 버리고) 더 값진 것을 가져버려라는 가르침을 설명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웅장은 춘추전국시대 당시에도 대표적인 고급 식재료였기에 '물고기와 웅장 둘 다 맛있지만 둘 중 하나만 먹을 수 있으면 (값지고 귀한) 웅장을 먹지 않겠느냐?'라는 비유는 당대인 대부분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의로움에 대해서도 이처럼 누구나 죽기 싫어하고 자신의 목숨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당연하지만, 의로움이 더 값진 것이니 목숨과 의로움을 둘 다 얻을 수 없으면 (덜 값진 생명을 버리고) 더 값진 의로움을 택해야 한다고 가르친 것이다.
[9]
덤으로 김정일은
낙타 발바닥도 먹어봤다고 한다.
[10]
1989년 110월 17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곰발바닥 한 접시(300g) 가격이 70만 원이었으며,(
#)
1991년 9월 15일
동아일보 보도(
#)에 따르면 한 접시에 80만 원 가량이었다고 한다. 1989년/1991년 기준 대졸초임 월급이 각각 40만 원/55만 원 가량에 월 최저임금이 15만 원/20만 원을 밑돌던 시절이었으니 당시 대졸초임의 한 달치 봉급을 훌쩍 뛰어넘는 어마어마하게 사치스러운 음식이었던 셈.
[11]
이 시기 동남아에선 곰발바닥, 웅담, 뱀, 호랑이뼈 등의 보양식을 찾아다니는 한국인들이 극성이었고 국제적으로도 지탄을 받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