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북미 식민지가 개척되던 초창기 노예제도는 아니지만 노예와 비슷하게 지위가 열악한 제도가 있었다. 전근대에 일반적이었던 '연한 계약 하인(indentured servitude)'이 그것이다.2. 구대륙
계약제 하인은 구대륙의 채무자를 대상으로 빚을 돌려받는 제도 혹은 소작농을 착취하는 제도를 근간으로 한다. 채무자를 노예화하는 고대의 관습에서 발달했기 때문. 지주에게 예속된 소작농도 이 제도의 일종이다.3. 신대륙
미국의 사례를 보면 영국 본토나 아일랜드[1]에서 온 가난한 백인들이 계약제 하인으로 일했고 그 중에서는 탐욕스러운 투기꾼들에 의해 납치되어 강제로 끌려온 사람들도 있었다. 투기꾼들에 의해 납치되어 강제로 끌려온 사람들의 수는 찰스 2세(Charles II)의 집권 기간에만 10만 명이 넘었다.연한 계약 하인들은 미국 땅에 도착하자마자 훗날의 흑인 노예들처럼 상품으로 입찰되었고, 가장 비싼 값을 낸 지주나 부자 같은 권력자들한테 팔려나갔다. 이들은 과로에 혹사당하는 것은 물론 하인으로 지내는 계약 기간이 소유주의 마음대로 늘어나는 부당함을 일상적으로 겪었다.
연한 계약 하인들이 만약 지주한테 진 빚을 다 갚지 못하고 죽으면, 그 하인의 아내나 아이가 죽은 남편이나 아버지를 대신하여 지주에게 봉사하는 하인이 되어야 했다. 또한 연한 계약 하인들은 가구나 가축처럼 소유주의 재산으로 취급받아서 소유주가 죽으면 그의 상속자에게 유산으로 넘겨졌다. 또한 연한 계약 하인들은 주인의 허락이 없이는 결혼을 하거나 다른 주인을 선택할 자유가 없었고, 지주들의 학대와 폭행에 자주 시달렸으며[2], 그래서 지주들한테서 도망을 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도망을 가다 연한 계약 하인들이 붙잡히면, 하인으로 일하는 계약 기간을 4년 더 연장한다는 식의 처벌을 받았다. #
심지어 1630년대부터 미국의 독립전쟁까지의 기간 동안 미국으로 온 백인 이민자의 절반에서 3분의 2가 연한 계약 하인이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연구도 있다. 17세기 말에는 연한 계약 하인의 수가 식민지 인구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아졌다.
미국의 연한 계약 하인 제도는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을 하고도 계속 이어졌는데, 법률적으로 연한 계약 하인 제도가 폐지된 때는 무려 1917년에 가서였다. 하지만 이 제도는 노예랑 다를 것 없는 처우이기는 해도 당대의 법으로는 머슴에 가깝지 엄연히 노예 제도와는 달랐다.
본질적으로 연한 계약 하인 제도가 노예 제도와 다른 것은 사인간의 "계약"에 따른 경제적 상행위로 하인이 받은 체제비, 교통비 등 금품에 대한 보상행위였다는 점이다. 하인이 자신의 노동으로 충분한 비용을 확보하면 채무가 변제된다는 점이 종신으로 자식까지 영원히 귀속되는 노예 제도와 달랐다. 물론 위에 서술한 대로 본질과 현실은 또 달랐으므로 현재 구미권 학계에서 기술할 때는 단호히 노예의 일종으로 취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