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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너새니얼 매튜스 주니어 Gary Nathaniel Matthews J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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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74년 8월 25일 ([age(1974-08-25)]세) |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포지션 | 외야수 |
투타 | 우투양타 |
프로입단 | 1993년 드래프트 13라운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지명 |
소속팀 |
샌디에이고 파드리스(1999) 시카고 컵스(2000~2001) 피츠버그 파이리츠(2001) 뉴욕 메츠(2002) 볼티모어 오리올스(2002~2003) 샌디에이고 파드리스(2003) 텍사스 레인저스(2004~2006)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2007~2009) 뉴욕 메츠(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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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동했던 외야수.2. 커리어
1999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시작으로 여러 팀을 돌아다니다 2004년부터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뛰기 시작했고, 2004년 OPS .800을 넘기며 발전의 실마리를 잡는가 했지만 2005년엔 다시 부진하더니 2006년 커리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타율 3할을 기록, 올스타에 선정되며 역대 14번째 父子 올스타라는 기록을 세운다. 194안타와 44개의 2루타는 그가 일급 타자로 발전했다는 징표나 다름없었다. 거기에 사이클링 히트까지 달성하기도 했다.[1] 그렇게 어영부영 서비스 타임을 채운 그는 FA가 되었다.FA 대박의 이정표가 된 수비 |
문제는 이런 그가 FA가 되자[2] LA 에인절스가 5년 5000만 달러라는 당시로는 상당히 큰 규모의 계약을 안겨주며 영입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계약은 계약 당시에도 이미 현지 야구 패널들 사이에서 오버페이라는 소리가 많았다.
그리고 재앙은 시작되었다. 2007년에 .252의 타율과 18홈런에 그친 것부터 불안하더니 미첼 리포트에서 성장호르몬 복용자로 이름이 오르며 약쟁이로 낙인찍혔다.[3] 그 다음 완전히 무너져 2008년엔 8홈런, 2009년엔 4홈런에 그치면서 버논 웰스 뺨치는 먹튀짓을 자행하였다.[4] 결국 2006시즌은 FA로이드임이 드러났다.
이에 분기탱천한 에인절스는 2010년을 앞두고 뉴욕 메츠로 그를 트레이드[5]했지만 2010년 메츠에서도 말 그대로 망했다.[6] 결국 시즌 중에 DFA 후 최종 방출까지 당하며 신시내티 레즈와 계약하지만 메이저리그로의 복귀는 실패하였다.
그가 강렬한 활약 남기고 떠난 이후로 에인절스는 토리 헌터와 마이크 트라웃을 제외한 대형계약 외야수는 족족 망하는 잔혹사를 이어가고 있다. 2011년 2월부터 2년간 버논 웰스가 보여준 맹활약은 보는 이로 하여금 할 말을 잃게 만들었고, 2013년에 간신히 버논 웰스를 처분하니 이번엔 5년 계약으로 텍사스에서 모셔온 조시 해밀턴이 그에 못지 않은 활약으로 에인절스 팬들은 계약 1년차부터 해밀턴 이야기만 나오면 뒷목을 잡았을 정도였다. 이 정도면 가히 매튜스의 저주인데,[7] 이 여파로 에인절스 팬들은 거액의 FA 선수에 대한 트라우마를 현재까지도 이어가고 있으니 말 다한 셈이다.[8] 이후에도 저스틴 업튼에게 1억 달러가 넘는 계약을 주었다가 또 망했다.
참고로 fWAR로 따져도 해밀턴, 푸홀스, 웰스 모두 여유롭게 양수를 기록했는데 매튜스는 에인절스 소속으로 통산 fWAR -0.1. 돈값을 떠나 정말 못쓰느니만 못했다.
3. 여담
- 매튜스 주니어의 아버지인 게리 매튜스 시니어는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했던 외야수로, 1973년 내셔널리그 신인왕을 수상했으며 통산 2011개의 안타와 234홈런 978타점, .281 .364 .439의 성적을 기록한 타자다. 은퇴 이후엔 시카고 컵스에서 마이너리그 타격 코디네이터로 일했으며 메이저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타격코치로 일했다.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라디오 해설자로 있다가 현재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방송 해설자로 일하고 있다. 방송 시작 때는 톰 맥카시와 크리스 윌러가 해설하다 4회부터 갑툭튀하여 특유의 목소리로 3~4이닝 동안 입담을 과시한다.
- 은퇴 후 현재는 골프를 취미로 즐기면서 부동산 투자자 등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텍사스 레인저스의 객원 해설과 시구 등으로 출연하기도 하는 등 유유자적한 삶을 살고 있다.
- 한국 한정 별명은 매뚝이, 메뚝스. 또한 GMJ라는 약칭으로 많이 불린다.
4. 관련 문서
[1]
2022년 현재까지 마지막 내츄럴 사이클링 히트 주인공이다.
[2]
텍사스 레인저스는 그의 2006년을 플루크로 판단하고 잡으려 하지 않고 깔끔하게 내보냈고, 이후 텍사스 레인저스는 매튜스가 나간 빈 자리를 2007년 한 시즌 동안에는 당시 40세였던
케니 로프턴을 스탑갭으로 영입해서 써먹고 로프턴을 트레이드한 이후에는 데이빗 머피 등으로 중견수를 땜빵하면서 보냈다. 그리고 2008 시즌부터 매튜스가 나간 중견수 자리를 대체한 선수가 다름아닌 똑같이 텍사스에서 전성기를 보내고 에인절스에서 먹튀가 되는
조시 해밀턴.
[3]
이때 에인절스는 그의 5년 계약을 백지화할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물론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겠지만...
[4]
물론 연봉에는
넘사벽의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결국 2008년에 매튜스가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에인절스는 일찌감치 중견수
토리 헌터를 5년 9000만달러에 계약했다. 다행히 헌터는 받는 만큼은 해 줬다.
[5]
$23.4M의 잔여연봉 중 $22.3M을 에인절스가 보조.
[6]
메츠도 무릎부상으로 시즌아웃된
카를로스 벨트란의 땜빵으로 데려온 거라 기대치는 별로 안 컸지만, 그럼에도 망했다는 평가일 정도면 굉장히 심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7]
그나마 성공한 대형계약 외야수
토리 헌터와 계약할 때는 아직 매튜스가 팀에 남아 있었다는 점이 에인절스의 FA 잔혹사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알 수 있다.
[8]
결국 그 해밀턴도 2014년 시즌 종료 후 잔여연봉 83M 가운데 63M을 에인절스가 보조하고, 남은 20M 가운데 14M는 주세 차이와 디스카운트로 커버한다는 조건으로
텍사스 레인저스로 반품을 해 버렸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해밀턴은 2015년을 제외하고는 남은 두 시즌을 부상으로 드러눕고 완전히 먹튀가 되어버리면서 그대로 선수 커리어가 종료되었으며, 은퇴 이후에는 아내와 이혼하고 말다툼 끝에 큰딸에게 폭행과 폭언을 한 혐의로 긴급 체포되는 등 순탄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