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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10 17:54:45

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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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불부 초대 수령
거비 | 去卑
<colbgcolor=#26619c> 시호 없음
난제(欒提) / 유(劉)
거비(去卑)
부친 호징(추정)
형제 강거
생몰 170년대생(?) ~ 272년(향년 90세 ~ 100세) [1]
재위 제1대 철불부 수령
? ~ 272년

1. 개요2. 생애3. 관련 기록 논란4.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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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한 말기와 삼국시대 흉노족의 일원이었다.

성은 난제(欒提)로 강거의 동생이었으며, 조카로는 어부라 호주천이 있었다.

2. 생애

188년 형인 강거가 반란으로 살해당한 후에 수복골도후, 어부라, 호주천 등이 차례로 선우 자리에 올랐다. 195년에 일어난 삼보의 난 때 우현왕으로 있었던 거비는 동승 양봉의 요청으로 이락, 한섬, 호재와 함께 헌제 유협을 위한 호위군에 참가해서 이각을 공격해 수천 명의 수급을 베었다. 그 후 호재, 양봉, 한섬과 함께 뒤에서 어가를 호위하며 갔지만 이번에는 이각군에게 대패했다.

216년 7월에 호주천이 그의 명왕을 데리고 오면서 조조에게 항복한 후 업성에 자리잡고 살면서 빈객의 예우를 받았는데, 이때 호주천이 우현왕 거비에게 자신을 대신해서 나라를 통치하도록 했다.

그 후 병주에서 유표가 흉노를 합병할 때 등애가 올린 상소에서 언급되었다.
거비는 이전의 조대(무제 시대)에 공적이 역력했지만, 그의 자손은 사업을 이을 수 없었으므로 그의 자손들에게 고귀한 칭호를 더해 주어 안문에 거주하도록 하십시오. 흉노의 나라를 분리해 세력을 약하게 하고, 옛날의 공훈에 대해서 추적해 기록하는 것, 이것이 변방을 제어하는 장기간의 계책입니다.
사마씨의 서진 시기에 여러 차례 변경에 침입했다가 위관이 계략을 통해 선비 탁발부와 이간시키자 거비는 서진에 귀부했다. 이후 북하를 건설하는 혁련발발은 원래 철불부 출신이었는데, 이 철불부의 시조로 여겨지는 것이 거비이다. 혁련발발은 거비의 아들 유고승원(원황제)의 현손자였다.

3. 관련 기록 논란

195년에 헌제 유협을 도울 때, 《효헌황제기》에는 좌현왕으로 되어 있지만 강거가 죽은 후 좌현왕은 유표였고, 이때의 거비는 《 자치통감》에 따르면 우현왕이었다.

성씨인 '난제'의 경우도 《자치통감》에서는 195년에 우현왕 거비라고 나오고, 216년에는 난제거비라고 나오는데, 이 난제는 흉노 선우의 성씨로 앞에 우현왕때는 안 붙인 것 뿐이다.

4. 미디어 믹스

파일:attachment/sam6_geobi.jpg
삼국지 6 일러스트

코에이 <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 삼국지 6>에서만 등장한다. 능력치는 통무지정매 순으로 48/66/37/47/56이다.

소설 《삼국지 조조전》에서는 조조가 허현으로 천도하고 천자를 옹립한 후 조정을 갖추자 평양현으로 돌아가 호주천을 보필하기 위해 조조의 막사로 들어가면서 연회를 하게 되었는데, 조조에게 평양현으로 돌아갈 것을 이야기하려다가 조조가 양봉, 한섬과 백파적들을 토벌하고 돌아가야 한다는 뜻을 비추자 이를 받아들였다.


[1] 기록들이 확실하다면 그는 이리 오래산 것이 된다. 조카인 어부라가 150년생이라 그와 비슷한 나이로 볼 가능성도 있지만 188년 처음 기록에 나오니 최소한 나이를 적게잡아도 90~100살이 되어서야 죽었다고 봐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