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1-13 23:03:12
경주 이씨 중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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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소판(蘇判) 이거명 李居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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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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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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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년 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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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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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이씨(慶州 李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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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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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명(居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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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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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골(眞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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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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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판(蘇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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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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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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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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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이금현(李金現) - 신라
병부령(兵部令) 손자:
이금서(李金書) - 고려
삼한공신(三韓功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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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기의
소판.
경주 이씨의 중시조. 아들은 신라
병부령
이금현(李金現)이고, 손자는 고려
삼한공신 중원태수
이금서(李金書)이다.
거명(居明)의 관등은
소판(蘇判)이었는데, 소판은 신라 17관등 중 제3관등으로
진골만 오를 수 있었다. 아들
금현(金現)도 진골만이 오를 수 있는
병부령을 지냈다. 또한 손자
금서(金書)는 고려
삼한공신에 책록되고 신라
경순왕의 딸이자 고려
태조의 외손녀인 신란궁부인 김씨(神鸞宮夫人 金氏)와 혼인했는데, 이를 보면 그의 집안이 신라 왕실과 긴밀한 관계에 있었음은 분명하다. 경주이씨석탄공파세보에 의하면 일설에 금현(金現)이 신라 조정에서 김(金)씨 성을 받았다가 고려조에서 이(李)씨 성을 회복한 것이라고 하는데, 이에 따르면
이금현(李金現),
이금서(李金書) 부자의 성명은 김현(金現), 김서(金書)였던 것이 된다. 국성(國姓)인 김(金)이 부자의 이름에 모두 들어있는 것이 공교로운데 성(姓)이라고 본다면 이해가 가는 점이 있다. 신라 말기 혼란한 정국 속에서 김(金)씨 성을 받고 진골로 편입됐을 가능성이 있다.
3. 이제현 묘지명
1375년(우왕 1) 목은
이색(李穡)이 찬한 이제현 묘지명에
이제현(李齊賢)의 가계를 언급하면서 "...신라 시조인
혁거세의
좌명대신인
이알평(李謁平)의 후손인
소판 거명(居明)이
병부령
금현(金現)을 낳고, 병부가
삼한공신인 태수
금서(金書)를 낳았다. 신라왕
김부가 국토를 바치고 고려 조정으로 귀순한 뒤
태조의 딸인
낙랑공주에게 장가들어 딸을 낳았다. 그 딸이 금서에게 출가하여
윤홍(潤弘)을 낳았다..."라고 기록하였다. 2007년, 황해북도 개성시에 위치한 이제현 무덤에서 위 묘지명을 새긴 길이 1.65m, 너비 63.2cm, 두께 20.5cm, 무게 600kg 규모의 거대한 묘지석이 발굴된 바 있다.(
고려시대 사료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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