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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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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開國
1.1. 신라 진흥왕 때의 연호
1.1.1. 연보
1.2. 조선 고종 때의 기년법
1.2.1. 개요1.2.2. 서기와의 환산 방법
1.3. KBS 대하드라마 개국
2. 開局3. 蓋國

1. 開國

나라를 엶, 즉 나라를 세운다는 뜻으로 건국(建國)과 같은 뜻이다.

쇄국의 반대말이기도 하다.

1.1. 신라 진흥왕 때의 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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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진흥왕릉 · 황룡사
연호 #s-1.1 · 대창 · 홍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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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연호
건원
建元
(536 ~ 550)
개국
開國
(551 ~ 568)
대창
大昌
(568 ~ 572)

이전에 법흥왕 때부터 사용한 건원에 이어 551년부터, 대창(大昌)/태창(太昌)으로 연호를 바꾼 568년까지 사용했다.

551년은 신라의 한강 유역 점령이 한창 진행되던 시점으로, 경상도 지역 국가이던 신라가 한반도 중부를 차지해 삼국시대 후반부의 주도권을 쥐기 시작하는 시기라는 점에서 개국이라는 의미의 연호를 채택한 것으로 보이며, 혹은 진흥왕이 고작 7살의 나이로 즉위했고 재위 초기에 지소태후 섭정이 있었다는 점에 착안해서 진흥왕이 10대 후반이 되는 551년부터 친정이 시작되었기에 이런 연호를 채택하지 않았나라고 추정하는 설도 있다.

그러나 반면 태후의 섭정은 즉위 초기에만 한정됐고 이미 친정을 시작한 상태였다고 보기도 한다. 원사료 삼국사기 금석문이나 섭정의 끝이 언제인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1.1.1. 연보

1.2. 조선 고종 때의 기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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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건원(建元) 개국(開國) 대창(大昌) 홍제(鴻濟) 건복(建福) 인평(仁平) 태화(太和)
고구려 영락(永樂) 연수(延壽) 연가(延嘉) 건흥(建興)
발해 인안(仁安) 대흥(大興) 보력(寶歷) 중흥(中興) 정력(正曆) 영덕(永德) 주작(朱雀) 태시(太始) 건흥(建興) 함화(咸和)
태봉 무태(武泰) 성책(聖冊) 수덕만세(水德萬歲) 정개(政開)
후백제 정개(正開)
고려 - 조선 - 대한제국
고려 천수(天授) 광덕(光德) 준풍(峻豊) 천개(天開)
조선 개국(開國) 건양(建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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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한민국 대한민국(大韓民國) | 단기(檀紀) }}}}}}}}}}}}

파일:청나라 국기.svg
대청국
연호
파일:조선 어기.svg
대조선국
연호
고종
[ruby(光緖, ruby=광서)][1]
[ruby(建陽, ruby=건양)]
1894. 6. 28. ~ 1895. 12. 31.
(1년 6개월 4일)

1.2.1. 개요

조선 고종 연간에 청나라에 대한 사대관계를 청산하고 갑오개혁을 진행하면서 기존의 중국 연호 광서를 버리고, 조선 왕조가 개창된 해인 서기 1392년을 원년으로 하는 개국기원을 도입하였고, 서기 1894년(개국 503년)부터 전면적으로 사용하였다.

즉, 사실 개국기원은 동양의 전통적인 방식의 연호와는 다르고, 엄밀히 말하면 기년법의 일종이다. 둘 다 큰 틀에서 기년법이라는 점이 공통적이지만 전통적인 연호는 해당 연호를 제정한 임금 때에만 쓰고 그 임금이 다른 연호로 바꾸거나[2] 아예 사망, 퇴위한 이후에는 원칙적으로 쓸 수 없다. 그러나 개국기원은 지속적으로 사용 가능하다.[3] 즉, 서력기원 예수의 탄생으로 여겨지는 시점[4]을 기점으로 잡아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연도를 표기할 수 있듯이. 개국기원을 사용하면 역시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연도를 표기할 수 있다. 이에 조선에서도 중국식 연호를 버리고 신식 기년법을 사용하고자 하였으나, 그리스도교에서 유래한 서력기원 유교 사상이 강하던 조선에서 사용하는데 아무래도 거부감이 있었으므로, 그 대체재로 등장한 것이 개국기원이다.

더구나 사실 개국기원을 1894년 처음 사용한 것도 아니고, 이전에도 사용되었음이 문헌과 유물을 통하여 확인된다. 당장 1876년에도 청나라가 싫었는지 “대조선개국 485년”이라고 표기된 서한을 일본에 보낸 사실이 있고, 이때 이후로도 청나라를 제외한 외국을 상대로 한 외교문서에는 개국기원을 사용하여 연도를 표기하여 왔다. 심지어는 근대식 주화를 1888년(개국497년) 처음 발행할때부터 개국연호를 쓴 연도를 연호가 광무로 바뀔때까지 계속 찍어냈다. 1894년부터 개국기원을 썼다는 말은, 같은 해 7월 군국기무처에서 모든 공문서에 개국기원을 쓰자는 의안을 상신하고 고종이 이를 윤허하면서 본격적으로 중앙과 지방의 공문서에서 일제히 개국기원을 쓰기 시작하였다는 것일 뿐이고, 건양이나 광무와 같은 일세일원 방식의 중국식 연호를 도입하여 칭원하면서 이를 선포하거나 기념하는 성대한 의식을 치른 사실도 없다. 개국기원의 전면적인 도입은 청나라 연호를 버린다는 의미가 컸던 행정적 조치이자, 예전부터 자체적으로 써 오던 방식을 좀 더 공식화한 것일 뿐이다.

서기 1896년 양력을 도입하면서 ' 건양'(建陽)이라는 연호를 도입하였으나, 이후에도 간혹 칙령 등에서 개국기원이 사용된 사실이 있다.

해방 후 대한민국에서도 간간이 사용된 적이 있다. 덕혜옹주가 별세한 1989년, 경기도 남양주시[5] 금곡동의 홍유릉 능역에 세워진 덕혜옹주의 묘비에, "開國五百二十一年五月二十六日生 五百九十八年四月二十一日卒 全州李后李旺載謹書(개국 521년 5월 26일 생 598년 4월 21일 졸 전주 이씨 후손 이왕재[6] 삼가 씀)""라는 비명이 새겨지기도 했고, 사이버 조선왕조라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이 기년법을 사용한다.

1.2.2. 서기와의 환산 방법

1.3. KBS 대하드라마 개국

개국(드라마)

2. 開局

1. 방송국이나 우체국과 같이 국으로 끝나는 기관을 설치하여 처음으로 업무를 시작함.
2. 바둑의 대국(對局)을 시작함.

3. 蓋國

蓋國在鋸燕南倭北
개국은 거연의 남쪽, 왜의 북쪽에 있다.
- 산해경 해내북경-

산해경 해내북경(海內北經) 편에서 등장하는 국가 혹은 정치집단. 산해경에 따르면 개국은 거연(鋸燕)[7]과 왜(倭)의 사이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아마 요동 ~ 한반도 지역에 있었던 국가나 세력집단을 일컫는 말로 추정되고 있다.

개마국의 약칭이라는 설이 있다. 혹은 한반도 중남부에 존재했던 진국(辰國)의 다른 이름이라는 설도 제기되었으나 등장 시기와 역사서가 서로 달라서 지지받지 못하고 있다.


[1] 독자적인 연호가 아닌 청나라 덕종의 연호다. 연호는 황제국만 제정할 수 있기 때문에 사대관계를 가진 제후국의 경우 공식적으로는 황제국의 연호를 사용했다. [2] 일세 일원제 도입 이전에는 한 임금이 여러 연호를 만들었다. 일세 일원제 도입 이후에는 대체적으로 한 임금이 재위기간 중 하나의 연호만을 만들었다. [3] 개국기원의 원년 이전 시점의 경우에는 개국전 등과 같이 쓸 수 있다. [4] 디오니시우스가 예수의 탄생시점으로 추론한 때가 서력기원 원년인데, 예수는 실제로는 이 시점보다 4년 전쯤에 태어났다고 여겨진다. [5] 당시로서는 미금시 [6] 1928~2001, 대한민국의 서예가. [7] 연(춘추전국시대)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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