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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6 09:47:37

강재식

1. 원산시 출신 독립운동가, 강재식2. 청도군 출신 독립운동가, 강재식

1. 원산시 출신 독립운동가, 강재식

<colbgcolor=#878787><colcolor=#ffffff> 성명 강재식(姜在植)
생몰 1919년 2월 6일 ~ 1991년 2월 23일 (향년 72세)
출생지 함경남도 원산시 명사리
사망지 서울특별시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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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2월 6일 함경남도 원산시 명사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본군에 징집되어 1944년 9월 중국 호남성 장사지구에 주둔하다가 1944년 12월 일본군 진영을 탈영했고, 1945년 4월 광복군 총사령부 경위대에 입대하고 종전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군으로서 특수 임무를 수행했다. 8.15 광복 후 국내로 귀환하여 서울에서 평범하게 지내다가 1991년 2월 23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강재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으며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2. 청도군 출신 독립운동가, 강재식

<colbgcolor=#878787><colcolor=#ffffff> 성명 강재식(姜在植)
생몰 1895년 4월 20일 ~ 1963년 4월 20일 (향년 68세)
출생지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사망지 경상북도 청도군
추서 대통령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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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4월 20일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5일 밤 손기현, 김재화(金在華) 등이 격문을 만들어 붙인 사건에 연류되어 김진효(金鎭孝), 김상구(金相久), 김종태(金鍾台), 손한조(孫漢祚), 김종식(金鍾軾), 홍용팔(洪龍八), 홍해성(洪海性), 김대선(金大善) 등과 함께 운문 주재소로 연행되었다. 조사 후 혐의 없음 판정을 받고 풀려난 그들은 집으로 돌아오던 중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결정하고 운문면 사무소로 이동하여 각각 1자씩 '대한 독립 만세'라고 쓰고 여기에 ‘독립회(獨立會)’라고 써서 ‘대한 독립 만세’ 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김진효의 선창으로 ‘대한 독립 만세’를 열창하고, 운문면 사무소를 비롯하여 운문면 각 동리를 누비며 다함께 만세 시위를 벌였다.

3월 19일 운문면 만세시위의 주동자를 체포하기 위해 청도 경찰서 일본인 순사 및 조선인 순사보 5인이 신원리로 출동하였으나 동민들에게 구타당하고 퇴각했다. 이어 3월 20일 대구 헌병 분대 헌병 3명과 청도 경찰서 서장 이하 5명의 경찰이 출동하여 대대적인 검거 작업을 벌였는데, 이때 강재식도 체포되었다. 이후 그는 1919년 5월 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요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공소를 제기했지만 7월 5일 대구 복심법원과 9월 2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 청도군에서 조용히 지냈고 1963년 4월 2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강재식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