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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9 10:29:18

가짜 알렉시오스 2세

1. 개요2. 첫번째 가짜 알렉시오스 2세3. 두번째 가짜 알렉시오스 2세4. 세번째 가짜 알렉시오스 2세

1. 개요

동로마 제국 앙겔로스 왕조의 반란자들. 총 3명이 알렉시오스 2세를 사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가짜 드미트리의 동로마 제국판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가짜 드미트리보다 먼저 활동한 인물들이니 원조라고 할 수 있다.

2. 첫번째 가짜 알렉시오스 2세

1192년, 자신을 폭군 안드로니코스 1세에게 살해되었다고 알려진 어린 황제 알렉시오스 2세라고 주장하는 이가 등장했다. 니키타스 호니아티스에 따르면, 이 청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출신으로, 외모가 알렉시오스 2세와 매우 닮았는데, 특히 붉은 머리가 매우 유사했으며, 알렉시오스 2세처럼 말을 더듬었다고 한다. 그는 안드로니코스 1세가 보낸 사형 집행관이 차마 어린 황제를 죽이지 못하고 비밀리에 탈출하게 해줬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코니온에 도착한 뒤 룸 술탄국 술탄 클르츠 아르슬란 2세와 접견했다. 마누일 1세와 안면이 있었던 술탄은 눈앞에 죽은 황제가 살아돌아온듯 하여 크게 놀랐다고 한다. 그는 마누일 황제가 그동안 베푼 은혜를 상기시키면서, 어찌 마누일의 아들인 자신을 돕지 않느냐고 나무라듯 말했고, 술탄은 그를 지원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술탄으로부터 8천 가량의 병력을 지원받은 그는 소아시아를 전격 침략했다.

당시 동로마 제국의 황제 이사키오스 2세 페터르 4세 이반 아센 1세 불가리아 반군을 상대로 연이어 패전한데다 전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어서 백성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게다가 그의 외모가 생전의 알렉시오스와 무척 닮았기 때문에, 수많은 이들은 어린 황제가 돌아왔다고 굳게 믿었다. 이사키오스로부터 반란 진압을 의뢰받고 출동한 알렉시오스 앙겔로스 마저 병사들이 동요하자 반란군과 싸우기 전에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가짜는 곧 본색을 드러냈다. 그는 자기를 따르는 용병들이 진군로에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백성을 노예로 삼고, 곡식을 약탈하는 걸 방관했으며, 교회를 습격하여 이콘을 도끼로 찍고 성경을 짓밟는 것도 막지 않았다. 결국 한 사제가 고용한 암살자에 의해 살해되었고, 그의 수급은 알렉시오스 앙겔로스에게 전해졌다. 니키타스 호니아티스에 따르면, 알렉시오스 앙겔로스는 말채찍으로 수급을 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이 남자에게 도시가 이유없이 함락되었다!"

3. 두번째 가짜 알렉시오스 2세

니키타스 호니아티스에 따르면, 두번째 가짜 알렉시오스 2세는 첫번째 인물이 죽은지 며칠만에 팔라고니아에서 나타났다고 한다. 그는 알렉시오스 2세와 별로 닮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사키오스 2세 황제에게 반감을 품고 있던 이들은 개의치 않고 그를 따랐다. 그러나 얼마 안가 토벌대에게 사로잡혀 처형되었다.

4. 세번째 가짜 알렉시오스 2세

1195년, 킬리키아에서 세번째 가짜 알렉시오스 2세가 등장했다. 그는 앙카라 시의 아미르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니키타스 호니아티스에 따르면, 아미르는 이 자가 가짜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동로마 제국을 침략할 구실로 적당하고 여기고 장단을 적당히 맞춰줬다고 한다. 알렉시오스 3세는 앙카라 시에 환관을 보내 황제 사칭자를 보내달라고 청했지만, 아미르가 500 데나리온을 선불로 주고, 매년 300 데나리온과 비단 40필을 공물로 바치라고 요구했다. 황제는 요구가 지나치다고 판단해 받아들이지 않았다.

알렉시오스 3세는 다른 작전을 쓰기로 하고, 국경 도시를 돌면서 사칭범에게 속지 말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말라기나인들은 알렉시오스 2세가 살해되었다는 절대적인 증거가 없지 않느냐며, "당신이 사칭범이라고 부르는 분은 전 황제와 닮은 면이 많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말라기나 주민들과 알렉시오스 3세의 대화 기록으로, 호니아티스의 역사서에 실렸다.
주민: 당신께서도 그를 본다면 기뻐하실 겁니다, 저의 군주이신 황제 폐하. 그의 길고 노란 빛을 띤 붉은 머리칼은 금가루와도 같이 빛이 납니다. 그 사람은 키가 훤칠하며 안장에 단단히 고정된 것마냥 흔들림 없이 말을 잘 타는 기수였습니다.

알렉시오스 3세: 마누일 대제의 아들인 알렉시오스는 이미 오래 전 안드로니코스의 명령에 의하여 처형되었다. 그렇기에 이제 출현한 저 자는 콤니노스 가문의 사람이 아니다. 설사 그가 살아있다고 해도 이제 와서는 짐이야말로 이의의 여지가 없는 권리를 가진 황제가 아니겠느냐?

주민: 말씀이야 그렇습니다만 폐하, 폐하께서는 그 소년의 정체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시고 그 소년의 죽음에 대해서도 확신을 내리지 못하시지 않습니까? 제국을 3세대 동안 상실했고 제위와 국가로부터 불의한 방식으로 격리되었던 소년을 긍휼히 여기는 저희에게 청컨대 노여워 하지 마십시오.

결국 알렉시오스 3세는 이들을 완전히 설복시키지 못한 채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돌아갔고, 마누일 칸타쿠지노스가 황제를 대신하여 민심을 수습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 결과 한때 사칭범에게 쏠렸던 민심은 겨우 수습될 수 있었고, 사칭범은 1197년 자객에 의해 암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