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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4 21:16:23

가보르 키라이

가보르 키라이의 역임 직책
{{{#!folding ▼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벨라 일레스
(1998~2001)
가보르 키라이
(2002~2003)
졸탄 게라
(2004~2005)
졸탄 게라
(2007~2012)
가보르 키라이
(2013)
벌라주 주자크
(2014~2019)
}}} ||
가보르 키라이의 기타 정보

{{{#!wiki style="margin: -1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CC0E11 0%, #e10f14 20%, #e10f14 80%, #CC0E11)"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e10f14> 파일: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000,#ddd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fff> 순서 선수 이름 출전 횟수 첫 경기 마지막 경기
1 벌라주 주자크 109회 2007.06.02 2022.11.20
2 가보르 키라이 107회 1998.03.25 2016.11.15
3 요제프 보지크 101회 1947.08.17 1962.04.18
}}}}}}}}}}}}}}} ||
Hertha, Berliner Sport-Club e.V Fahnenträger
파일:키라이.jpg
<colbgcolor=#004d9e> 이름 가보르 키라이
Gábor Király
본명 키라이 가보르 페렌츠[1]
Király Gábor Ferenc
출생 1976년 4월 1일 ([age(1976-04-01)]세)
헝가리 인민공화국 솜버트헤이
국적
[[헝가리|]][[틀:국기|]][[틀:국기|]]
신체 190cm | 체중 85kg
직업 축구선수 ( 골키퍼 / 은퇴)
소속 <colbgcolor=#004d9e> 유스 솜버트헤이 헐러다시 (1982~1993)
프로 솜버트헤이 헐러다시 (1993~1997)
헤르타 BSC (1997~2004)
크리스탈 팰리스 FC (2004~2007)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2006 / 임대)
아스톤 빌라 FC (2006~2007 / 임대)

번리 FC (2007~2009)
바이어 04 레버쿠젠 (2009 / 임대)
TSV 1860 뮌헨 (2009~2014)
풀럼 FC (2014~2015)
솜버트헤이 헐러다시 (2015~2019)
국가대표 108경기 ( 헝가리 / 1998~2016)


[clearfix]

1. 개요

헝가리의 前 축구선수. 포지션을 골키퍼였으며, 후술할 회색 추리닝으로 유명한 선수였다.

2. 클럽 경력

2.1. 솜버트헤이 헐러다시

솜버트헤이 태생으로, 솜버트헤이 헐러다시 소속이던 아버지 키라이 페렌츠(Király Ferenc)의 영향을 받아 헐러다시 유스팀에 입단해 축구를 시작했다. 1993년에 처음 1군 무대로 승격되었다. 이후 1994년 3월 5일에 데뷔전을 치렀고,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면서 만 17세의 나이로 헐러다시의 주전 수문장으로 자리매김했다. 1994-95 시즌은 병역 의무 수행[2]을 위해 잠시 이탈했다가 1995-96 시즌부터 헐러다시로 돌아와 활약했다. 1996-97 시즌부터는 다시금 확고한 주전으로 자리잡으며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동시기에 헝가리 연령별 대표팀에도 꾸준히 차출되는 등 잠재력을 보이면서 유럽 빅리그 클럽들이 키라이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2. 헤르타 BSC

1997년, 분데스리가의 승격팀 헤르타 BSC로 이적하며 독일 무대에 첫 발을 내딛었다. 당초 주전 골키퍼 크리스티안 피들러가 건재했기에 키라이는 백업으로 출발했지만, 개막 이후 팀이 7경기동안 2무 5패를 거두자 위르겐 로버 감독이 피들러 대신 키라이를 주전으로 기용했고, 1. FC 쾰른을 상대로 한 데뷔전에서 안정적인 경기력으로 팀의 시즌 첫 승리에 기여하며 주전골키퍼로 자리매김했다.

이듬해인 98-99시즌, 미하엘 프레츠를 주축으로 한 베를린은 승격 2년차 팀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기세로 3위를 기록, 차기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성공했으며, 99-00시즌에도 6위를 기록해 UEFA컵 진출권을 확보했다. 챔피언스리그에서도 플레이오프를 무난히 통과한 뒤, 조별리그에서 AC 밀란을 밀어내고(!) 16강 조별리그[3]까지 진출했다. 2000-01시즌 DFB-포칼 우승으로 전성기 기록에 한 줄을 더 새긴 베를린은 마르셀리뉴 파라이바 영입으로 전력을 보강하고 팔 다르더이가 본격적으로 자리잡으며 꾸준히 중상위권을 유지했다. 이러한 황금기 속에서 키라이는 헤르타의 주전 골리로 매 시즌을 소화했고,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당당히 주전으로 나서며 커리어 최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2002년 초 로버 감독이 팀을 떠난 헤르타는 휘프 스테번스를 감독으로 선임한 후 02-03시즌 5위를 기록해 여전한 모습을 보이나 했으나, 03-04시즌들어 급격히 추락하며 강등권에 근접하자 결국 스테번스를 경질, 겨울 이적 시장 때 한스 마이어가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리고 마이어는 키라이에게 밀려 6년동안 벤치를 달구던 피들러를 다시 중용하기 시작했고, 키라이는 결국 자리를 잃었다.

2.3. 크리스탈 팰리스 FC

결국 주전으로 뛰기를 원한 키라이는 2004년 여름, 크리스탈 팰리스 FC로 이적하며 잉글랜드 무대에 첫 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키라이가 수정궁에 가기 이전에 수정궁은 훌리안 스페로니[4] 골키퍼를 미리 영입한 상태였고, 키라이는 여기서도 백업으로 출발한다. 그러나 스페로니가 부진하자 키라이가 주전자리를 얻어냈고, 04-05 시즌 리그 32경기에 출전한다. 팀이 2부리그로 강등된 05-06 시즌에도 주전직을 유지하며 팀을 이끌었지만, 2부리그 생활이 탐탁지 않았던 키라이는 새로운 골키퍼 스캇 플린더스가 이적해오자 이적을 요청했다. 하지만 성사되지 않은 가운데 플린더스를 밀어내고 다시 주전자리를 유지했고, 중간에 2주동안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로 임대를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던 12월, 주전 골키퍼 토마스 쇠렌센과 백업 스튜어트 테일러가 모두 부상으로 빠진 아스톤 빌라 FC가 긴급 임대를 요청해 1개월간 단기임대를 가게 되었다. 그리고 키라이는 빌라에서 맹활약하며 본인이 2부리그에서 뛸 선수가 아님을 보여줬으나[5], 완전이적은 성사되지 못하고 수정궁에 복귀했다.

2.4. 번리 FC

이후 시즌이 끝나고 계약만료로 방출되었고, 번리 FC에 입단했다. 그러나 한시즌 반동안 27경기만 출전하며 입지를 다지지 못했고, 2009년에는 반년동안 바이어 04 레버쿠젠으로 임대를 가기도 했으나, 백업키퍼 역할이라서 출전은 0회에 그쳤다.

2.5. TSV 1860 뮌헨

임대가 종료됨과 동시의 번리와의 계약도 종료되며 새 팀을 찾던 키라이는 독일 2부리그의 TSV 1860 뮌헨과 계약했고, 5시즌동안 부동의 주전으로 뛰며 168경기에 출전했다. 그러나 14-15 시즌 2번째 경기에서 팀 동료 게리 카겔마허와 다툼이 있었고, 여기서 카겔마허를 공격하면서 2군팀 강등 징계를 받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풀럼 FC로 이적하며 다소 불미스럽게 팀을 떠나게 되었다.

2.6. 이후

이후 풀럼에서 1시즌동안 백업으로 뛴 뒤, 2015년 여름 고향클럽인 솜버트헤이 헐러다시로 돌아갔다. 그리고 2018-19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3. 국가대표 경력

유소년 시절부터 기대받는 유망주였기 때문에 헝가리 연령별 대표팀을 전부 착실하게 밟은, 이른바 청소년 대표팀 엘리트 코스를 완벽히 탄 선수다. 그리고 1998년 3월 25일, 오스트리아와의 친선경기에서 A대표팀 데뷔전을 치렀으며, 경기는 3:2로 승리했다.

처음 성인 대표팀에 소집될 당시만 해도 22세 정도의 어린 선수다보니 경쟁에 직면하기도 했으나, 얼마 안가 분데스리가에서의 훌륭한 활약으로 경쟁자들을 전부 밀어내고 대표팀의 주전 수문장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월드컵 예선이나 유로 예선같은 중요한 경기에서는 무조건적으로 키라이가 출전하는 등, 헝가리 대표팀 부동의 No. 1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키라이 본인이 슬럼프에 빠졌을 때는 대표팀에 소집되지 않거나 벤치로 밀려나기도 했으며, 2010년대 들어서는 키라이 본인이 노쇠화를 겪는 사이 볼턴 원더러스 FC의 주전으로 자리매김한 아담 보그단이 성장하면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 듯 했다. 그러나 결국 돌고돌아 헝가리의 골문을 지키는건 회색 추리닝을 입은 키라이였다.

그렇게 키라이는 10년을 훌쩍 넘어 30대 후반에 접어드는 나이까지 헝가리의 주전 수문장으로 활약했지만, 조국인 헝가리가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한동안 침체에 빠진 탓에 월드컵이나 유로같은 메이저 국가대항전 경력은 없다. 하지만 키라이의 나이가 불혹에 다다른 UEFA 유로 2016을 앞두고 예선전에서 멋진 활약을 선보이며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에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노르웨이를 상대한 플레이오프에서 센추리클럽 가입과 동시에 맹활약하며 헝가리의 기적적인 유로 본선 진출에 크게 일조하게 되었다.

UEFA 유로 2016 본선에서도 당연히 주전으로 낙점되면서 키라이는 40세의 나이로 메이저 국가대항전 첫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조별리그 1차전 상대는 자신의 국가대표 데뷔전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전 출전으로 로타어 마테우스가 가지고 있던 유로 역대 최고령 출전기록을 경신했다.[6] 팀도 예상외의 좋은 경기력으로 2:0 승리를 거두었다. 앞으로 유로에서 헝가리가 오래 살아남을수록 키라이 골키퍼의 기록 경신도 지속될 예정.

아이슬란드와의 2차전에도 출전하며 유로 최고령 출전기록 재경신과 함께, 헝가리 국가대표 최다출전 기록도 경신했다. 기존 기록 보유자는 101경기에 나섰던 보지크 요셰프. 이날 캐칭실수로 PK를 내주며 아쉬운 모습을 보이긴 했으나[7], 이 실수를 제외하면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며 팀의 무승부에 기여했다. 이후 포르투갈과의 3차전에서는 난타전 속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게 백힐골을 허용하는 등 3실점했지만, 결과적으로 3:3 무승부를 거두면서 팀은 1승 2무 조 1위(!)로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16강에서 벨기에를 상대했는데, 케빈 더 브라위너의 골이나 다름없는 프리킥을 막아내는 등 여러 차례 슈퍼세이브를 시전하며 분투했지만, 전력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1:4로 패하며 유로에서의 여정을 마감했다.

유로 탈락과 함께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과거의 영광이 사라지고 축구 변방이 된 헝가리 대표팀을 거의 20년 가까이 묵묵히 지탱해온 노고를, 선수 생활 말년의 첫 메이저 국제대회 출전으로 보상받고 유종의 미를 거두며 떠나게 된 셈. 그리고 키라이의 빈자리는 페테르 굴라치라는 훌륭한 후배 골키퍼가 물려받았다.

4. 여담

4.1. 회색 츄리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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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키라이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다.

골키퍼는 규정상 긴 바지가 허용되지만[9] 보통 골키퍼들은 유니폼 그대로 반바지를 입고 경기를 뛰는데, 키라이 키퍼는 긴바지, 그것도 통 큰 회색 츄리닝을 입고 뛴다. 사실 골키퍼들은 다이빙이나 슬라이딩을 할 때 아프고 쓰라리다보니[10] 종종 긴바지를 입는 키퍼들이 있지만, 대개 타이트한 바지를 입고 색깔도 흙이나 땀이 잘 티가 안나는 검은색을 고르는 걸 감안하면 확실히 특이한 케이스. 키라이 본인에 의하면 다이빙이나 슬라이딩 할때 편할 뿐더러,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믿는다고 한다.

이후 유로 2016에서 헝가리가 뜻밖의 활약으로 16강에 진출하며 국가대표팀에 대한 헝가리 국민들의 인기도가 자연스레 증가했고, 그 과정에서 키라이의 추리닝은 더더욱 컬트적인 인기를 끌면서 헝가리 패션의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잡기까지 했다.

뛸 때의 윤곽을 자세히 보면 추리닝 바지 안엔 노팬티일 가능성이 높다.[11]

참고로 크리스탈 팰리스 시절에는 반바지를 입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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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그 외

예능인 기질이 있다. 실수를 자주 한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경기중에 기행을 종종 선보이기 때문. UEFA 유로 2016에 이 기질이 대폭발했는데, 아이슬란드와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는 가랑이 사이로 공을 던져주고 포르투갈과의 조별리그 3차전에서는 후반 막판에 볼을 돌릴때 디딤발 킥을 시전했다.

사실 추리닝을 비롯한 개그 이미지에 가리는 부분이 있지만, 가진 실력만큼은 훌륭했던 선수다. 만 17세의 나이로 프로 클럽 주전 골키퍼 자리를 먹고, 헤르타의 황금기 가운데서 주전 골리로 활약해 헤르타 BSC 창단 111주년 기념 올스타 팬투표에서도 많은 지지를 받아 베스트XI 골키퍼로 선정되기까지 했으며, 국가대표팀에서는 아담 보그단이나 페테르 굴라치같은 후배 골키퍼들이 치고 올라오는데도 불구하고 유로 2016까지 녹슬지 않은 실력으로 주전 자리를 놓치지 않으며 헝가리 대표팀 역대 최다 출장 선수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클럽 커리어가 어째 불운한 요소들이 많아서 꼬이다 보니 조금 별볼일 없어보이지만, 결코 폄하할 수 없는 기량을 지녔던 선수.


[1] 헝가리는 일반적인 서양권 국가들과 달리 성이 앞에 오고 이름이 뒤에 온다. 다만 유럽 클럽에서 등록할 때는 다른 나라들의 방식대로 성을 뒤에 적는다. [2] 헝가리는 당시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었으며, 이후 2004년에 모병제로 전환되었다. [3] 당시에는 32강 조별리그를 통과한 16개팀이 다시 한번 조별리그를 치르고, 8강부터 넉아웃 토너먼트로 진행했다. [4] 이 당시 25세의 나이로 수정궁에 영입된 스페로니는 이후 수정궁에서만 15년을 뛰며 명실상부 크리스탈 팰리스의 레전드 골리로 꼽히게 된다. [5] 이 기간에 맨유전에서 폴 스콜스에게 2006-07 시즌 올해의 골의 허용 키퍼가 되기도 했다. [6] 기존 기록은 마테우스가 UEFA 유로 2000 때 세운 39세 91일. 키라이는 40세 74일의 나이로 오스트리아전에 출전했다. [7] 심지어 이 PK는 오심이었다! [8] 위 사진부터 순서대로 헤르타 BSC 시절, TSV 1860 뮌헨 시절, 그리고 UEFA 유로 2016 플레이오프 때 찍힌 사진이다. 거의 2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바지 하나는 변함없음을 볼 수 있다. 물론 머리숱은 갈 수록 적어지고 있다. [9] 다른 선수들은 허용되지 않는데 그 이유는 긴 바지를 입고 뛰면 상대 선수와의 격렬한 몸싸움에서 바지 밑단이 밟히며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10] 오랫동안 골키퍼 생활을 해온 잔루이지 부폰 슛 포 러브와 인터뷰 하면서 20년 이상 골키퍼 생활을 해왔지만 아직도 다이빙하면 아프다고 말한 바 있다. 당장에 동네 축구에서 잔디구장에서 다이빙하거나 슬라이딩해도 상처만 잘 안 날 뿐 생각보다 아프다. 운동장 흙바닥처럼 자갈이 있는 모래밭이라면 아픈 정도가 아니라 그냥 다친다. [11] 사실 사전적 의미로 따지면 대다수의 축구선수들이 노팬티 상태로 경기를 뛴다. 축구선수들이 입는 유니폼 쇼트 자체에 속옷 역할을 하는 언더팬츠가 내부에 2중으로 붙어 있기 때문에 팬티를 입으면 더 불편하다. 그러니 유니폼 쇼트 대신 추리닝바지를 입은 키라이도 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