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Sergeant
1.1. 개요
언어별 명칭 | |
라틴어 | Serviens |
영어 | Sergeant |
프랑스어 | Sergent |
이탈리아어 | Sergente |
독일어 | Sergeant |
오늘날 군대의 병장 및 하사, 또는 부사관 전반의 약칭, 그리고 경찰의 ' 경사'를 의미하는 말. 과거에는 하층 지배계급으로서 기사(miles)나 ministerialis 등과 유사하게 유력자의 가신 중 하나였다.
고대 라틴어 Servino에서 기원한 단어이다. 원래의 뜻은 '봉사하다.'이다. 이 Servino에서 유래한 동원어로서 servant가 있다. 'ser-'라는 철자여서 '서-'로 읽는가 싶겠지만, 영미권 모두 '사-'(미국 : [sɑːrdʒənt])로 발음하고, 프랑스어나 독일어에서는 '세-'로, 라틴어, 이탈리아어에서는 '세르-'로 발음한다. 그래서 발음대로 한글로 적을 때는 '사전트'라고 해야 하지만, 보통 '서전트'쪽 표기가 압도적이다. 중세 영어처럼 좀 더 오래된 철자법에서는 serjeant라고 쓰기도 한다. 줄여서는 'Sgt.'라고도 쓴다.
1.2. 역사
중세 유럽에서는 영주에게 특정한 봉사를 하는 대신 토지를 받아 보유하는 존재였는데, 그 유형이 다양했다. 그렇기에 상기 라틴어 단어를 보듯, 그 어원이 봉사(service)와 같았다.사전트는 보통 군사적 봉사도 하였는데, 당시의 다른 기사(miles)나 직속봉신 등과 마찬가지로 주군하고 밀접한 유대관계를 맺은 까닭에, 오늘날의 부사관처럼 일반적인 농민 징집병보다 경험 많고 잘 훈련된 전업군인으로서 평시에는 자기 주군인 귀족을 보좌하고, 전시에는 역시 그 곁에서 각종 조언과 호위를 하는 등 보조적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사전트든 기사든 간에 군주의 봉신인 유력 제후나 그에 준하는 대영주의 배신(陪臣), 또는 가신(家臣)이기는 하지만[4] 사전트는 그 신분 상 자유민보다는 농노 등 부자유민인 경우가 더 많고 그 의무도 더 가볍기도 하였으므로[5] 자연히 기사보다 그 격이 낮게 취급되었다.[6][7]
이 계층은 노르만 왕조 성립 이래 대륙의 영향을 받게 된 잉글랜드 왕국에도 그대로 도입되었고, 이후 이 용법은 토지보유권에 관하여 마그나 카르타의 'grand serjeanty'와 'petty serjeanty' 개념으로도 이어졌다. 전자는 군주의 직속봉신으로서 일반적인 기사보다 사회적 지위가 더 높은 토지보유자였고, 후자는 일반 봉신의 봉신으로서 차지농민(socage)보다 나을 게 없는 위치였다. 이는 전자가 담당한 의무들이 왕과 직접적으로 관계되면서 명예롭게 여겨진 것들이었던 반면, 후자는 좀 사소한 의무이거나 그 주군이 제후인 경우에 해당하였던 까닭이었다. 그래서 'petty serjeanty'는 곧 다른 토지보유권과 구분되지 않고 사라졌으나, 'grand serjeanty'는 봉건군역적 토지보유권 등이 폐지된 17세기 이후에도 명예직으로서 살아남게 되었다. 이들 사전트 계층은 대륙의 여러 배신이나 ministerialis 등 부자유민 신분 가신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특권과 경제적 실력으로써 신분상승을 꾀하였고, 영국에서나 프랑스에서나 차츰 자유민으로 전환되었다.
한편으로는 군사적 개념으로서도 봉건제 이후로 계속 이어졌는데, 중앙화로 말미암아 상비군이 발전하게 된 근대에 이르러서는, 이 용어가 원래 지닌 "섬기는 자", "봉사하는 자"라는 의미를 살려 전통적인 (고위)귀족 출신 장교를 보좌할 선임병 개념으로 변화하였고, 곧 일반 병 출신으로서 비록 통수권자(군주)에게서 직접 임관받지 못하였으나(Non-commissioned) 간부(officer)의 일종으로서 임관된 장교(Commissioned Officer)를 보좌하는 부사관이 되었다. 또한, 이후 장교에 준하여 이들보다 더 많은 권한을 부여받은 준사관(Warrant Officer)도 등장하였다.[8] 여기서 파생한 각종 직책, 즉 참모부사관(staff sergeant), 포술부사관(gunnery sergeant), 수석부사관(first sergeant), 부사관장(master sergeant), 포술부사관장(Master gunnery sergeant), 주임부사관( sergeant major) 등은 오늘날 여러 군사 계급으로 변모하기도 하였다.
1.3. 대중매체 속 등장
이 문서에서는 현대 부사관 개념이 아닌, 상술한 중세 종사 개념만을 다룬다. 현대 부사관으로서의 사전트에 가까운 캐릭터나 집단은 부사관 및 관련 군사 계급 문서들을 참고할 것.중세 개념에 관해서는, 실제 대중매체에서 이것을 부각하는 경우는 매우 찾아보기 어렵다. 중세 서유럽사에 대한 지식과 심상이 부족한 동아시아권은 물론이고, 서구측 매체에서도 비슷하다. 이미 역사적 연구나 창작상 문법이 뚜렷하게 자리잡은 기사 심상을 다루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독립적으로 다루느냐와 그 개념이 언급되느냐와는 별개로, 중세에 중보병이나 경기병 다수, 심지어 일부 중기병은 상기한 사전트였다. 대중은커녕 작가들조차 거의 인지는 못하고 있으나, 엑스트라로서는 매우 많이 등장한다고도 할 수 있는 셈(...).
그나마 중세 군사사나 사회사를 다루는 매체라면 등장 가능성이 높은데, 대표적으로 토탈 워: 미디블2에서는 중보병이나 경기병으로서 복무하는 종사 병과들이 등장한다.
1.3.1. 별도 문서가 존재하는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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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피니티(게임) -
기사단 종사
22세기를 다루는 공상과학 미니어쳐 게임인데, 드물게도 중세적 종사 개념으로서 다루고 있다. 이는 이들이 소속된 판오세아니아 사관사제 집단 밀리터리 오더가 중세 기사단 구조를 그대로 따왔기 때문이다. - F.E.A.R. 시리즈 - 서전트(F.E.A.R. 시리즈)
- Warframe - 서전트(Warfr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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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hammer 40,000 -
서전트(Warhammer 40,000)
상기 문서들은 중세적 개념보다는 현대적 개념에 가까우나, 본 문서가 현대적 개념과의 연속성도 다루고 있으며, 대상 문서명이 서전트이기에 특별히 서술하였다.
2. Sargent
서전트 점프 문서 참조.
[1]
이 경우는
집사나 집사장, 가령(家令) 등으로 번역되고는 하는 세네샬(Seneschal)이나 스튜어트(steward), 메이어(major; maior) 등과 비슷하게 쓰였다.
[2]
특히 주군의 사적·인간적 업무에 관하여 특수한 기술이나 역할을 담당하는 경우. 예컨대 왕의 사냥꾼이라든가,
대전사라든가, 의복이나 술잔 등의 관리자 같은 부류가 그렇다.
[3]
일반적으로는 급양이나 대금이 아닌, 봉토 보유권을 받는 점에서 일반적인 용병과는 구별되었다. 물론 종종 봉토가 부족하여
후스카를처럼 땅 없이 주군의 집에서 숙식하는 사례도 있었다.
[4]
배신(陪臣) 및 프랑스어로 vavasour 라는 개념에 대하여 종종 오해하는 경우가 있으니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일단 배신(陪臣)은 '봉신의 봉신'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조선은 한번도 봉건제를 시행한 적이 없긴 하지만 한국인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국의 지리 개념에 빗대어 설명한다면 '충청 공작'은 '조선 왕'의 봉신(封臣/vassal)으로써 충청도를 다스리고 충주나 청주, 아니면 대전이든 어딘가
충청도의 주요한 지역을 자신의 직할령으로 삼는다. 그리고 충청도의 그 외 지역은 다시 다른 소영주들을 자신의 봉신으로 삼아 다스리게 한다. 따라서
공주를 다스리는 '공주 백작'은 충청 공작의 봉신이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조선 왕의 입장에서 보면 공주 백작은 자신의 봉신인 충청 공작의 봉신, 즉 봉신의 봉신이 되는데, 이를 가리키는 표현이 바로 '배신'인 것이다. (역으로 공주 백작의 기준에서 본 조선 왕은 주군의 주군, 즉
대군주이다.) 따라서 배신의 영지가 충분히 크다면 배신 아래에도 봉신은 있을 수 있다. 위의 사례에 또 빗댄다면 공주 백작 아래에도 '사곡 남작', '월송 남작', '우송 남작'등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봉건제 지배구조의 층위가 3층이 넘기만 하면 오히려 배신의 봉신은 당연히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프랑스어 vavasour 역시 풀어서 쓰면 '봉신의 봉신(vassal of the vassals)'이라는 뜻이고 본래는 위의 '배신'과 같은 뜻이었던 것이 맞다. 다만 시대와 상황의 변화에 따라 그 의미 역시 조금씩 변화하다가 '자신의 아래에 가신을 두지 못하는, 겨우 자신과 자기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정도의 최소 규모 토지 보유자'를 뜻하는 의미로도 흔하게 사용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변화에 대해서는
위키피디아에도 대략 설명되어 있으니 참고하면 좋다. 즉 봉건제도 지배구조의 최하단, 현대인 기준에서 보면 영주라기보다는 오히려 직업 관료나 전문 장교와 더 가까운 성격으로 보이는
서전트 같은 이들을 가리키기 위해 vavasour 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맞다. (물론 vavasour를 다른 의미로 사용한 경우도 찾아볼 수 있지만, 현대인 독자가 현대의 언어 사용 습관으로 해석한 경우라면 딱히 틀렸다고 트집잡을만한 용법은 아니다.) 하지만 vavasour의 역어로 제시된 '배신(陪臣)'을 위의 vavasour와 같은 의미, 즉 '자기 아래에 신하를 거느리지 못하는 최소 토지(영지)보유자' 라는 의미로 사용한다면 그것은 틀렸다. 봉건제를 설명하는 용어에서 배신(陪臣)은 vassal of the vassals 개념을 설명하는 용어로 흔히 사용되고, 이것은 '최소 영지 보유자'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며 가신은 물론 봉신을 거느린 배신이라는 개념도 대국에서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기 때문.
[5]
여러 의무 중 가장 귀하게 여긴 것은 단연 군사적 봉사였고, 그 다음으로는 주군과의 밀접성이나 기술에 관한 사회적 인식 등이 영향을 주었다.
[6]
이와 유사한 비자유민 가신 계급으로 ministerialis가 있다. 이에 관해서는
농노제 문서 참고.
[7]
다만
기사(역사) 항목에도 써 있듯 기사, 미니스테리알리스, 서전트의 구분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12세기 이전에는 계급화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아예 말 탄 군인은 다 기사였고, 12세기 무렵부터야 '귀족 기사'와 '평민 기사'를 법적으로 구분 짓기 시작하면서 기사를 작위로 만들었는데, 필요와 수요에 따라서 그 구분마저도 무시 당하는 일이 빈번했다.
[8]
특히나 이 무렵에는
매관매직으로써 장교 인력을 충당하다보니 전문성을 확보하기에는 그 효율성을 희생한 면이 있었고, 오늘날에도 마친가지지만, 오랜기간 복무하면서 숙달된 부사관이 갓 부임한 장교보다는 아무래도 적응성이나 전문성이 좋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