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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00:48

Maggot baits/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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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1.1. 도입1.2. 배드 엔딩1.3. 전개1.4. 피의 수확1.5. 재와 다이아몬드
2. 연표 및 정리

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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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도입

과거 이 도시에서 모든 것을 잃은 남자--츠누가 쇼고(角鹿 彰護)는 이 지옥으로 돌아왔다. 지켜야 할 신념이 있어야만 인간이 될 수 있고, 그것이 없으면 한낱 벌레에 지나지 않다고 독백하며 7년 전 지옥의 광경에서 원래의 츠누가 쇼고라는 인간은 죽었음을 이해했다. 다만 그 잿더미 속에서 유일하게 남은 목표를 위해서라면 벌레까지 추락해서라도 완수하기로 차가운 결의를 다졌다. 무참히 짓이겨진 얼굴의 누군가가 가는 숨을 토해내며 원망의 저주를 내뱉는 플래시백의 고통을 과거와 함께 파묻은 츠누가는 앞으로 나아갔다.

'관동사법가(関東邪法街)'. 일본의 기타칸토 지방에 위치한 예전 카죠우 시(架上市)로 불리던 도시는, 7년 전의 재해로 정부로부터 국외 취급 선언을 받은 뒤 무정부 상태가 되었다. 그 후 법망의 울타리를 벗어난 범죄자들은 이 도시로 모여들어 온갖 범죄와 악행이 도시 전체에 만연하게 되었다.

그러나 무법가(無法街)가 아닌 사법가(邪法街)로 불리는 이유는, 범죄가 횡행하는 이 도시가 사실상 일본 정부에 의해 묵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나 전기, 통신망이 그대로 공급되고 있으며, 사회 각계의 고위층들은 뒤로 관동사법가를 방문해 밖의 세계(娑婆)에서는 얻을 수 없는 범죄의 꿀을 맛보고 있다. 도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슬럼 빌딩(スラムビル)', 과거 '노스 이스트 그랜드 힐즈'라는 이름으로 건조되던 첨탑을 중심으로 범죄의 권력 피라미드가 형성되어 외부 권력과 유착된 점도 하나의 이유였다.

7년 전, 도시 상공에 이계와의 연결 통로가 나타나 "재화의 마녀(災禍の魔女/ディザスターズ・ウィッチ/디재스터즈 위치)"들이 내려왔다. "마녀"들은 여성의 외관을 지녔으나 몸에 두른 척력장으로 가공할 육탄전 능력을 자랑했고, 현대 화기가 전혀 통하지 않는 등 현실의 물리 법칙에서 일탈해 있었다. "마녀"를 격퇴하기 위해 국가는 모든 물리력을 동원했지만, 시도는 전부 무위로 돌아갔다. 전투의 여파로 도시 여기저기는 폐허가 되었다.

"마녀"들은 도시 여기저기를 활보하며 파괴의 권화로서 내키는 대로 행동했다. "마녀"끼리 전투를 벌일 때도 있어 여파로 건물이 무너지는 것은 예사에 운 없이 주위에 있던 인간 수십은 고깃 조각이 되기 마련이었다. 격렬한 동족전에 사지가 잘리고 내장이 튀어나와 피보라를 일으켜 심장과 뇌가 파괴되더라도 "마녀"는 재생되어 부활한다. 스스로의 피로 형성한 병장인 '철혈의 첨인(鐵血の尖刃/ブルータル・エッジ/부르탈 엣지)'을 휘둘러 상대에게 대량 출혈을 강요해 마력을 상실케 하여 전투 불능으로 만드는 것이 "마녀"를 쓰러뜨리는 방법이며, 그조차도 영구적인 끝맺음이 아니었다.

싸움 후 불가사의한 힘의 원천인 마력을 소모한 "마녀"들은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남자들을 덮쳐 마력의 공급원인 정액을 뽑아낸 뒤 변덕이 들면 죽였다. 참사는 거리 한복판의 무관계한 통행인들을 포함했다. 그리하여 관동사법가의 거리는 언제나 핏자국이 겹겹이 축적되어 흉흉한 분위기를 가중했다. 현지인들에게 있어서 "마녀"의 정사나 널브러진 시체 따위는 특별히 신경 쓸 것 없는 일상이 되었다.

그러나 "마녀"들에게도 불가능한 것이 있었고, 그것은 하늘에 이계가 펼쳐진 이 도시 주변로부터 벗어나는 일이었다. 그렇게 관동사법가는 탄생했다.

추악한 거리의 남자들은 "마녀"들의 포학성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미모와 그에 대비되는 문란함에 비뚤어진 정복욕을 느끼며 마력을 찾는 "마녀"에게 벌레 무리처럼 기어들기 일쑤였다. 목숨을 잃을 확률이 다분한 이율배반적 스릴을 느끼면서.

거대한 체격과 흉포한 근육질의 "마녀" 산디(サンディ)와 몸은 작지만 단순하고 잔혹한 "마녀" 이자벨(イザベル)은 마력의 보충을 위해 거리에 나왔다. 어느덧 둘을 에워싼 공기는 알기 쉬울 정도였으나 자진해서 나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산디는 주위에 몰려든 것들에게 가까이 올 것을 명령했고 한 놈을 깔아 눕혀 착취해 반동으로 뼈를 으스러뜨려 죽였다. 쓸모가 없어진 고깃덩이를 갈아치워 착정을 반복했다. 이는 이자벨도 마찬가지였고, 머지않아 모두 기력을 다해 쓰러졌다. 그리고 흰 것을 낼 수 없게 된 것들로부터 붉은 것을 뽑아내 길바닥에 흩뿌렸다.


관동사법가 어딘가의 연회장. 연회장에는 고급의 의복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특별한 구경거리를 위해 자리에 모여들었고, 앳되어 보이는 소녀가 몸을 결박당해 단상 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결박당한 존재는 인간과는 다른 창백한 피부에 눈동자는 자수정의 보석빛을 발해 있었고 이는 분명 "마녀"의 특징이었다. "마녀" 아리손(アリソン)은 이미 수많은 고문을 당한 뒤였지만, "마녀"의 불사성으로 육체에는 손상된 부분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다만 정신의 대부분을 소모한 듯했다.

세계에 악명이 자자해 공포의 대명사가 된 "재화의 마녀"를 약자의 위치로 끌어내려 유린해 가학심을 채운다. 그 아이러니함과 기묘한 역전 관계를 상상해 원해 마지않던 사람들은 기꺼이 막대한 금액을 치러서라도 일그러진 욕망이 실현되는 장면을 목격하고자 했다.

엽기적인 스너프쇼의 막이 올랐고, 예리한 칼날이 몸에 닿자 아리손은 거의 남지 않은 정신으로 절규를 외쳤다. 지정된 부위에 숫자를 매겨 룰렛의 결과에 따라 숙련된 도살공이 적절한 도구를 골라 제외해가는 엔터테인먼트. 왜, 어째서? 라며 의문을 반복할 수밖에 없던 아리손은 극한의 정신상태에 내몰려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꺼져가는 생명 속에서 간원했다. 아리손의 신체 부위가 몇 종류 사라졌을 때쯤, 룰렛은 이윽고 최후의 부위를 점지했다.

"마녀"는 목이 잘려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면 더 이상 재생도 부활도 하지 못하고 완전히 죽음에 이른다. 심장이 도려내지고 사지가 절단되는 등 인체에 치명적인 사인들은 무수히 많지만, "마녀"라는 존재는 오로지 참수로서만 죽음을 맞는다. 심장이 멈추어도 피가 스스로 의지를 가진 듯 순환하기 때문으로도 보인다.

머리를 쳐내는 것이 확정되었을 때, 위의 사실이 청중의 낙심을 불러일으켰다. 진행자는 이것도 룰렛의 재미를 위한 공평한 룰이라고 납득시키며 아리손에게 일찍 죽을 수 있겠다며 행운을 칭송해준다. 관람자들도 아리손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기 시작했다. 고문자는 처형용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총성이 들렸다. 진행자의 몸이 날았다. 연회장은 혼돈의 도가니로 변했고 경호원들은 총기를 빼 들었다. 그러나 습격자는 우왕좌왕하는 인파 속에 몸을 숨겨 가늠자로부터 이탈해 무장을 든 인원들을 SIG P226의 적확한 조준으로 꿰뚫었다. 여러 무장으로 현장을 급습한 츠누가의 주위에는 온통 시체만이 남았다. 출입구의 밖에서도 비명은 들려왔고 이내 조용해졌다. 결국 아비규환 속에서 도망치는 데 성공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소리가 끊어진 바깥으로부터 석류색의 눈동자를 가진 이형의 소녀가 츠누가를 향해 걸어왔다. 츠누가는 다가온 "마녀" 캐롤(キャロル)에게 그녀의 동족인 아리손을 그 손으로 끝낼 것을 주문했다. 아리손의 정신은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넘어있었고, 망설임을 추궁하는 츠누가에게 캐롤은 돌려줄 각오를 정했다.

츠누가가 현장에서 얻은 소득은 마크가 쳐진 관동사법가의 지도. 지도에 표시된 지점에 이 장소도 포함되어 있었다. 단편적인 정보에 따른 다소 무리한 습격이었으나 자신의 적인 사법가의 지배 세력에의 경고를 겸했다고 할 수 있었다. 츠누가는 허름한 차에 몸을 실어 캐롤과 함께 도심의 북쪽 외곽에 있는 수림의 은신처로 향했다.

은신처는 전전(戦前) 시대로부터 내려온 양관이었다. 숲으로 둘러싸인 문호가 남긴 저택은 이전까지 시에서 관리를 해와 외견은 견실함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재해가 발생한 뒤에는 그저 방치되어 있던 것을 츠누가가 최적의 아지트로서 사용 중이었다. 양관의 안에는 한 명의 인간과 두 명의 "마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츠누가의 관동사법가 정보통인 마츠마루 세리카(松丸 芹佳).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는 무투파 "마녀" 그로리아(グロリア). 흑발의 이지적인 풍모의 "마녀" 위르마(ウィルマ). 캐롤이 같은 동족으로서 교섭해온 두 "마녀"에게 츠누가는 연회장에서의 일--'마녀사냥(魔女狩り)'의 분명한 존재와 지도에 표시된 현황에 관해 설명하였다. 지도의 마크는 두 종류, 오늘 습격한 장소와 같은 표시는 "마녀"의 공개 처형이 이루어지는 시설. 다른 한 가지는 사냥당한 "마녀"의 보관 창고로 추정되었다.

위르마는 스스로 존재에 대해 고찰하는 것을 그만두지 못하는 독특한 개체의 "마녀"였다. 동족으로서의 "마녀"를 수난에서 구하여 답을 얻기 위해 위르마는 츠누가에 당장은 협력키로 했다. 그로리아는 위르마처럼 복잡한 이유는 아니었지만 '마녀사냥' 자체는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따라올 전투의 희열을 느끼기 위해 가세하기로 했다.

교섭이 끝난 후 츠누가는 방으로 향했고 캐롤은 그를 따라가려 했다. 그런 캐롤에게 세리카가 츠누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불쑥 물어보았다. 관동사법가의 험한 바닥에서 숱한 사선을 넘은 세리카였지만 그녀 역시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질 한창의 나이였다. 원래 감정이 적은 캐롤은 확실한 답을 할 수 없었다. 이미 몇 번이나 그와 몸을 걸쳤다고 해도. 츠누가가 하는 일은 어떤 쾌감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도구에 동력을 주기 위한 일임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만 츠누가에게 구해졌기에 그가 바라는 대로 할 뿐이라고 답해 캐롤은 츠누가가 향한 위층으로 사라졌다.

"마녀"로서 태어나 살아가는 이유를 알기 위해 인류의 서적을 탐독하는 것을 좋아하는 위르마는 캐롤이 품은 흔들리지 않는 마음에 내심 부러움을 느꼈다. 폭력과 정음에 감정을 맡기는 대부분의 "마녀"와 자신의 차이는 인지하고 있지만 스스로의 행동 역시 인간의 흉내에 지나지 않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어째서 태어났는지, 무슨 목적으로 살아가는지 모르는 "마녀"의 존재. 기억으로 과거를 인식해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는 것도 할 수 없다. 근래의 일은 뚜렷하지만 거슬러 올라갈수록 안개가 걸친 듯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역대 허리케인에 붙여졌던 그녀들의 이름처럼 인간보다는 자연 현상, 자연재해에 가까웠다. 위르마는 진실을 추구하는 일로 하여금 망설임을 거둘 것을 마음먹었다. 그 앞에 어떤 결말이 기다리더라도.

그로리아는 츠누가가 가진 근육질의 신체에 욕구를 느끼며 이런저런 감상을 남겼다. 츠누가 단 한 명과 관계하는 특이한 "마녀"인 캐롤을 의식한 그로리아는 척력의 힘을 발해 도심으로 유성처럼 날아갔다.

그로리아는 남자를 목적으로 거리에 나오긴 했지만 어째서인지 전혀 그럴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로리아의 영향력에 반응해 거대하고 불어터진 형상의 무언가가 도시의 그림자로부터 여럿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계도시가 낳은 어둠 중 하나인 '요저(妖蛆)'였다. 몇 미터는 되는 시체색 구더기 형상을 한 손발과 눈알, 이빨 등의 기관이 마구잡이로 달린 괴물은 끈적한 점액과 괴성을 흘리며 그로리아에게 점점 다가왔다.

"마녀"들은 '요저'에 대해 본능적으로 큰 거부감과 공포를 지니고 있다. 끔찍하게 생긴 요저는 바라보는 누구라도 그런 감정을 느끼기 마련이지만, 중요한 것은 강력한 "마녀"조차도 같은 감정을 품는다는 점이었다. 격렬한 감정에 휩싸인 그로리아는 배틀 액스(重戦斧)의 형상을 가진 자신의 '철혈의 첨인'을 내질러 요저를 갈기갈기 토막냈다. 그러나 날붙이에 닿은 요저의 조각은 금세 재생을 시작해 증식하기 시작했다.

고전 중인 그로리아의 사투에 고고한 중립의 "마녀" 에드나(エドナ)가 합세했다. 둘은 요저의 무리를 형체도 없이 파괴해, 터진 벌레의 잔해와 더러운 핏물만을 땅에 남겼다. 둘은 의기를 주고받으며 깨어난 "마녀"의 전투 본능에 따라 격렬한 한판 대결을 연이어 시작했다. 상대로부터 오로지 피를 빼앗기 위해 날붙이의 형상을 한 '철혈의 첨인'을 형성해 폭력을 부딪친 충격의 여파로 주변 건축물 여기저기가 박살 나 파편이 떨어지며 불운한 희생자를 늘려갔다. 그로리아는 배틀 액스의 칼날을 에드나에게 내리꽂지만 한 쌍의 방패와 한손검으로 이루어진 에드나의 전력에 가로막혔다.

결투는 그로리아가 검을 든 에드나의 팔을 베어내는 것으로 승부가 났다. 그로리아는 전투의 만족감을 느끼며 돌아갔고, 에드나는 그대로 쓰러져 전투의 여운을 느끼며 몰려오는 수마에 몸을 맡겼다. 그러나 등을 꿰뚫는 고통을 느끼며 안식은 깨졌고, 마력을 잃어 무력화된 몸이 들어 올려져 컨테이너에 실리는 것을 느꼈다. 자신을 어딘가로 끌고 가려는 그들의 속셈을 깨달았지만,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백모(白貌)의 형상, 에드나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자신의 사신의 모습이었다.


관동사법가 치고는 관리가 되어있는 건물의 내부. 동족을 사냥하는 '마녀사냥'의 "마녀" 산디는 새로운 얼굴을 맞이했다. 본능에 따라 힘을 휘두를 뿐인 "마녀"가 아닌, 자제심을 들인 검술을 갈고닦아 단련을 거듭한 "마녀" 아이린(アイリーン). 어두운 피부색의 "마녀"는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남자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 도시는 여자의 자성에 지극히 적대적이었고 "마녀"인 아이린도 그런 시선에서 비껴가지 못했다. 미래가 없이 투쟁을 이어갈 뿐인 "마녀"의 삶은 안식이 없었다. 이는 절제의 수련을 거듭한 아이린조차 심신의 안정을 위해 위협에서 벗어나려는 선택을 하게 했다.

산디는 아이린의 그런 마음가짐에 나름대로 공감을 표하며 문신이 새겨진 만면에 입꼬리를 올렸다. 사냥당하는 쪽이 아닌 사냥하는 쪽에 섬으로써 그런 위협을 회피할 수 있다. 여자로서 웅성에는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 의견을 표하며 산디는 사냥하는 쪽에 서 왔다고 말했다. 이는 공포의 극복을 위한 반석이며, 모니터 너머로 사냥당한 "카라(カーラ)"의 수난극을 보며 어투를 확정했다. 위협을 회피하고 싶을 뿐 타인의 고통과 욕망의 투사에는 관심 없던 아이린의 태도는 산디 옆에 있던 이자벨의 비위를 거슬렀고, 임무 수행을 위해 멀어져 가는 아이린을 보며 산디도 흉흉한 웃음을 지었다.


밤, 츠누가는 사냥당한 "마녀"의 보관 창고로 추정되는 어느 폐공장으로 향했다. 인원은 3명. 츠누가, 캐롤, 위르마였다. 그로리아는 제 시각에 오지 않았고, 츠누가는 원래 자유분방하기 이를 데 없는 그로리아를 처음부터 돌입 인원수에 계산치 않았다. 계획에 따라 "마녀" 전력을 후방에 배치한 츠누가는 단신의 무장으로 폐공장에 돌입하였다.

에드나는 철제 관 안에 단단히 갇혀 있었다. 여성의 모습을 겉에 새긴 아이언 메이든은 안에 가시가 달리지 않았다. 여러 군데 구멍이 뚫려 있을 뿐이었다. 힘이 회복되면 이 정도 감금은 얼마든지 부술 수 있었지만, 전투의 결과로 피를 잃어 당장은 척력장을 발할 수 없는 상태였다. 밖의 남자는 저열한 웃음을 내뱉으며 에드나를 조롱했다. 인간과 "마녀" 사이에서 편을 들지 않는 고결한 에드나는 조롱을 담담히 맞받아치며 남자의 가학심을 자극했다.

남자는 사바에서 저지른 죄악을 상기했다. 뒤틀린 욕구를 채우기 위해 납치 살인을 거듭했지만 높은 신분의 아버지의 비호로 어느 것 하나 심판받지 않았다. 수습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가버린 그를 수사 기관의 묵인하에 관동사법가로 내쫓는 것이 되었지만, 그 화려한 행적에 사법가의 지배 세력은 남자를 스카우트의 대상으로 삼았다.

남자는 '핏물 제거(血抜き)'의 일환을 겸해 일그러진 욕구를 마음대로 채우고도 죽지 않는 "마녀" 고문의 나날이 자신의 적성에 꼭 맞아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관의 틈새로 에드나의 몸 여기저기에 철제 봉이 첨단으로 내리꽂혔다. 피가 멎을 새도 없는 에드나는 불합리한 치욕 속에서 남자의 살해를 결의했지만, 불사의 육신이라 할지라도 정신은 무적이 아니었다. 허벅지, 복부, 흉부까지 더 손가락에 꼽을 수도 없는 관통의 연속은 채집된 곤충의 표본을 연상케 했다.

이윽고 안구를 관통해 의식이 끊기는 죽음을 맞은 에드나는 원치 않는 회복으로 생사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고결한 기사와도 같은 의지는 서서히 꺾여, 집을 찾아 헤매는 아이의 소절로 넘어갔다.

느닷없이 폐공장의 창문을 깨어 투하된 포대 자루에서 하얀 가루가 휘날리기 시작했다. 건물 내부는 자욱한 분진의 여파로 시야가 가려져 분간을 하기 어려웠다. 적의 움직임으로 보이는 방향을 향해 누군가 어리석게도 발포했고, 튄 불꽃이 분진과 작용해 거대한 폭발을 일으켜 휘말린 인원이 대부분 형체를 잃고 사망했다. 살아남은 경비 인력은 츠누가의 근접 격투술과 구르카 나이프에 의해 마무리되었다.

'핏물 제거'를 담당하던 남자는 츠누가가 격투 중에 거꾸로 들어 올려 머리를 바닥에 메다꽂아 절명시켰다. 츠누가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마녀" 이자벨이었다. 쇠사슬로 이어진 스파이크의 모닝스타(結鎖鉄球)를 휘두르는 "마녀"를 교란한 츠누가는 전투를 회피, 건물 바깥으로 달렸다.

1.2. 배드 엔딩

건물 앞에서 츠누가는 지금 "마녀"를 처단할 것을 결의했다. 건물 안에 분진은 아직 짙게 깔려 흥분한 "마녀"를 해치우기에 최적의 호기였다. 츠누가는 폐공장을 폭파시켜 연이은 폭발로 건물의 골재가 버티지 못하고 붕괴했다. 폐공장은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그러나 "마녀" 이자벨은 상처 하나 없이 츠누가의 앞에 나타났다. 섬광이 번뜩여 츠누가의 목에서 피보라가 튀어 시야를 붉게 물들였다. 사내의 투쟁극은 여기서 막을 내렸다.


'마녀사냥'의 "마녀" 산디와 이자벨은 세 명의 "마녀"를 생포하는 임무를 완수했다. 그 보상으로 그들의 고용주에게 새로운 장난감을 요구했다. "마녀"인 자신들의 정욕을 버티지 못하는 놀이 대상에 질려 '튼튼한' 장난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위에서는 두 "마녀"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지독한 피와 장물의 자국이 켜켜이 쌓여 악취가 진동하는 분실은 이곳에서 벌어진 무수한 참사의 행적을 드러냈다. 사지가 구속되어 볼썽사나운 자세를 취한 위르마는 자신에게 다가온 그 남자를 노려보았다. 그 남자의 밑에서는 인간의 물건으로 볼 수 없는 이형의 촉수가 대신 기어나왔다. 요저의 공포를 감지한 위르마의 안에 들어간 가닥은 무언가를 심고 빠져나왔다.

위르마의 아래에는 곧 여성에게는 존재할 리가 없는 것이 자라났다. 능글맞던 그 남자의 태도가 약간 흔들렸다. 그 남자도 물건이 두 개나 자라나는 경우는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그 남자는 경탄하며 얌전해 보이는 주제에 속은 터무니없다며 위르마로 하여금 수치를 느끼게 했다. 능욕이 이어질수록 두 갈래의 물건은 계속 성장하여 하나하나가 일반적인 남자의 것보다 크게 성장했다.

이자벨은 그로리아가 감금된 방으로 들어왔다. 이자벨은 그 남자에게 부탁해 자신에게도 물건을 받아낸 뒤였다. 이자벨은 그로리아의 그것을 보고 그로리아의 인격을 깎아내기를 주저치 않았다. 흉한 모습의 거무칙칙한 물건은 심지뿐만 아니라 거대한 주머니를 늘어뜨려 추악함을 숨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자벨의 홀쭉한 그것은 그로리아의 가장 깊은 곳까지 꿰뚫었다.

곧바로 꼴사나운 모습을 보인 둘을 조롱하는 이자벨과 그에 동의하는 산디. 다만 손을 대지 않고 방치된 한 명의 "마녀"에 이자벨은 흥미를 떨어뜨렸다. 산디는 "마녀"라는 것은 결국 모두 똑같은 결말에 이른다며, 알기 쉬운 반응을 하는 이자벨의 단순한 머리를 사랑스러워한다.

캐롤은 육벽의 방에 홀로 갇혀 있었다. 방의 벽에서는 끈적한 체액이 흘러나와 캐롤의 몸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다. 머릿속에서 셀 수 없는 시간이 흘러 스스로 몸을 제어할 수 없게 된 캐롤은 이런 상황에서 츠누가라면 어떻게 했을지 번민한다. 그라면 흐름에 한 번 맡겨 사고의 여유를 되찾는 것을 선택할 것이라 여긴 캐롤은 위로를 시작했다. 츠누가와의 관계를 생각해 몰두하던 캐롤의 몸에 변화가 생겨났지만 멈출 수 없었다. 양손으로 움켜쥐어 흔들어대던 그것은 아랫배를 넘어 얼굴에 닿을 정도로 성장했고 이내 그것을 입에 물었다.

산디와 이자벨의 가혹함은 한때 동료였던 아이린에게도 향했다. 요저의 세포 조직으로 형성된 물건은 끝에서 요저의 씨앗을 발한다. 인간과의 관계로는 잉태하지 않던 "마녀"는 임월의 형태를 드러낸 아이린의 모습으로 이외의 사례를 드러냈다. 그것은 그로리아도 마찬가지였다. 맨 아래에서 밀어 올리는 이자벨은 둘의 모습에 조소를 보냈고, 사이에 끼인 아이린은 강제된 손동작으로 흉곽의 지방을 사용해 그로리아의 추악한 것을 쓸어올렸다. 새 생명을 위해 변화한 흉부는 마지막에 명백한 증거를 토해내 쐐기를 박았다.

산디도 이자벨의 권유에 따라 거대한 물건을 받아 전부터 눌러뜨리고 싶었던 그로리아의 학대를 시작했다. 산디와 이자벨은 그로리아에게 욕망을 불어넣으면서도 정작 그로리아의 남성성은 갈 곳을 잃고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하나의 분실에 "마녀" 셋, 요저 하나. 천장에 손발을 매달린 "마녀" 위르마, 그로리아, 캐롤에게 구불구불한 가닥이 달린 요저는 틈새에 출납하는 무례를 범하지는 않았다. 구더기 색의 촉수는 있지 말아야 할 것들에 기구와도 같은 것을 씌웠다가 곧 떼어냈다. 요저에 닿아 이상을 느꼈던 표피의 부분마다 붉은색 반점이 떠올라 사마귀 같은 돌기가 자라났다. 가려움에 이성을 잃은 세 "마녀"는 발광을 일으켰고, 위르마는 구속을 파괴해 캐롤에게 다가가며 계속 사과의 말을 흘렸다. 이중 침투를 시야에 새긴 그로리아는 발버둥 치다 구속을 끊어냈다. 캐롤에게 여유가 없는 것을 신경 쓰지 않은 채 남성으로서의 첫걸음을 캐롤의 남성의 첨단을 열어젖히는 것으로 시작했다. 고통과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흘리는 캐롤의 흉부에 요저의 체액이 주입되어 탄성의 크기를 늘렸다.

아이린의 말로는 인축의 길이었다. 지켜보는 시선에 분개하면서도 주어진 의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육벽의 공간 안에서 거대한 돼지의 암수가 결합하는 것을 본 아이린은 이성을 잃어 수컷을 밀치고 자리를 차지했다. 수퇘지는 자리를 되찾기 위해 아이린의 등에 올라타려 했다. 아이린은 이에 화답해 자세를 고쳐 정상적인 크기를 벗어나 변형된 나선의 물건이 기어들 수 있도록 했고, 세 마리의 돼지는 구경꾼들의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남은 세 명의 "마녀"의 운명도 정해졌다. 처형 전 마지막 할 일을 위해 요저에게 맡겨진 위르마, 그로리아, 캐롤은 사람들의 앞에서 그 형상을 흔들었다. 지성을 잃고 오르가슴만을 탐한 말초적 정신이 거하는, 본디 슬렌더였던 균형이 무너져 복부와 흉부의 크기를 비대히 늘리고 모든 틈이 마개 되어 전신이 칠해진 육체의 광경은 더는 "마녀"라 부를 수도 없는 세 존재가 다다른 끝이었다.

1.3. 전개

츠누가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목표한 방향으로 계속 달렸다. 거점 파괴라는 목적은 이미 달성했다. 남은 것은 현장으로부터의 철수뿐이었다. 그러나 적의 추격은 계속되었고, 전력 질주를 여유 있게 쫓는 불온한 기척을 느끼며 오래전 자위대의 폭격으로 파괴된 빌딩의 숲에 다다랐다.

도망치는 사냥감을 몰아넣었다는 이자벨의 달성감은 츠누가의 계산범위 내였다. 츠바이핸더(両手大剣)의 칼날이 가속력을 받아 위에서부터 내려쳐 이자벨의 다리를 양단했다. 격노한 이자벨은 모닝스타를 휘두르지만 연이은 글레이브(薙刀)의 타격으로 한쪽 팔이 썰려 혈액을 대량으로 잃고 무력화되었다.

궁지에 몰린 이자벨과 그에 대치하는 츠바이핸더의 캐롤, 글레이브의 위르마. 화려한 폭력의 여파로 발생한 진동은 호박(琥珀)빛 유성을 불러들였다. 전장에 나선 거체의 "마녀" 산디는 톱날의 쌍검을 들고 단신으로 둘을 상대하여 우위를 점하는 것은 물론, 캐롤의 복부를 그어 토혈케 하고 위르마의 내장에 손을 박아넣어 헤집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역전의 "마녀"가 휘두르는 무시무시한 톱날은 살점을 베어내는 것을 넘어 '철혈의 첨인' 자체를 파괴할 정도로 막강했다. '철혈의 첨인'은 "마녀" 자신의 피로 형성되기에 만약 부서진다면 신체 대부분의 마력을 상실하는 치명상에 직결된다.

캐롤은 츠누가가 자리에서 벗어날 시간을 벌기 위해 무리하며 버티지만 처참한 유린극이 지속될 뿐이었다. 두 "마녀"를 간단히 도살하여 목숨만 겨우 붙여둔 산디는 아직까지 우뚝 서서 도주의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는 츠누가에게 흥미를 갖고 다가간다.

츠누가는 조금씩 뒷걸음질 치며 다가오는 산디와 잘 맞물리지 않는 문답을 주고받았다. 아직도 공포에 질려 무너지지 않은 츠누가에 대한 개인적인 흥미, 자매(여동생) 캐롤의 소중한 사람이니 죽이지 않고 사지를 잘라 인견(人犬)으로 만들어 캐롤의 반응을 보는 것이 즐거울 것 같다는 유열의 감상.

몇 걸음 물러나 마침내 벽에 등이 닿자, 츠누가는 거기가 딱 좋겠다며 중얼거렸다. 공포에 질린 츠누가가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한 산디는 다가선 자리에서 봐주지 않고 돌진하려 하지만, 이상을 눈치챈 산디가 위를 올려보았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전투의 여파로 불려온 것은 산디 하나가 아니었다. 츠누가의 조커 카드였던 그로리아는 "마녀"의 괴력으로 폐빌딩에 참격을 가해 붕괴시켜 산디 위로 커다란 잔해를 투하했다. 비록 "마녀"를 완전히 죽일 수는 없었지만, 압도적인 질량으로 산디를 억눌러 동료들을 구할 시간을 벌기에는 충분했다. 자욱한 먼지가 걷히고 산디와 이자벨은 분통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츠누가는 차를 타고 은신처로 복귀한다. 차창에 창백한 소녀의 모습이 일순간 비쳤지만, 차량의 속력으로 급속히 멀어져 확인할 수 없었다. 어두운 밤 한가운데에서도 그 얼굴은 낯이 익었다. "마녀"의 특징을 하고 있었으나 여전히 기이했다. 츠누가는 기억의 밑바닥에 회칠해 묻어뒀던 얼굴이 겹쳐져 악몽을 꾼 듯 고통스러워했다. 죽음의 사자인 밴시라도 본 듯이. 츠누가는 핸들을 꽉 쥐었다.


구 카죠우 시의 JR 역 근처 상업지구의 후미진 곳에 우뚝 솟아있는 '슬럼 빌딩'. 50층에 이르는 원통형 건물 안은 광대한 상업 시설과 거주 지구가 펼쳐져 있었다. 장래 도시의 랜드마크가 될 것을 기대받았지만, 그 바람은 빛이 바래 온갖 범죄자들이 들끓는 최악의 마굴화가 진행되어 있었다.

그 최상층의 옥좌 없는 왕은 시몬(至門)이라는 이름의 중년 사내였다. 늘어진 양복 차림의 50세 정도로 보이는 남자는 비록 근육질이었지만 나이에 따른 해이함을 보이고 있었다. 그는 이주자 가운데에서도 단연 이전의 행적을 가늠키 어려운 존재였다. 몽골로이드 계통의 외견을 한 그를 두고 뒤에서 온갖 추정이 잇따랐는데, 그 내용은 싱가포르의 화교계 마피아, 캄보디아의 마약왕, 대만의 유맹(流氓), 한국의 컬트 교단 교주, 혹은 일본인일지도 모른다는 것.

시몬의 앞에 "마녀" 산디와 이자벨이 임무 보고를 하러 들어왔다. 벌어진 사건을 듣는 시몬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지더니 경박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마녀"들의 무능을 힐난했다. 어쨌든 창고에 보관된 "마녀"는 탈취되거나 해방되진 않았으니 임무는 성공한 게 아니냐며 멍청히 웃는 이자벨에 기가 막힌 시몬은 암코양이 같이 제어불능의 여자란 생물은 이래서 도움이 안 된다며 태도의 저열함을 드러냈다. 그 "마녀"를 상대로 두려움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폭력을 휘두르는-\-비록 상처하나 남기지 못했지만--남자 앞에서 최강의 "마녀" 산디는 감정을 꾸깃꾸깃 눌러 담을 뿐이었다.

위험 대상은 초장부터 뿌리를 뽑아버려야 한다. 무슨 목적이든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도 불쾌하며 기존의 질서에 반하는 일이다. 조직을 이룬 것도 아니고 혈혈단신으로 사법가에 기어들어와 천방지축의 "마녀"를 전략 무기로 사용할 정도의 남자는 더없이 위험한 존재였다.

골치가 아파진 시몬은 둘을 바깥으로 물렸다. "마녀"들과 교대하듯이 들어온 백모의 남자는 시든 늪 색의 눈동자를 시몬에게 향했다. 남자의 이름은 브라이언 막쿨(ブライアン・マックール). 전직 아일랜드 공화국군(IRA) 급진 과격파 출신이며 현재는 프리랜서 용병. IRA 당시 동료들을 배신했다는 소문으로 어지간한 테러리스트들도 꺼릴 정도의 악명을 가진 인물이었다. 용병들로 구성된 '마녀사냥' 부대를 이끌고 츠누가의 행적을 쫓으며 브라이언은 오랜만에 즐거움이라는 것을 찾아낼 수 있었다.

모든 벽이 철거되어 휑하고 넓기만 한 50층의 내부에서 입구로 나온 이자벨은 옆의 산디에게 불평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깟 인간 따위에게 자존심이 짓밟히는 걸 더는 참을 수 없다며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교살 가능한 벌레를 언제쯤 처리할지에 대해 주변에 숨기지도 않고 발해왔다. 산디도 그 의견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이자벨조차 모르는 산디의 심부에는 시몬에게서 느껴지는 근원적 공포의 감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그 남자에게는 거스를 수 없는 근본적인 무언가가 있다. 산디는 그런 것에 의도적으로 접해 공포의 감정으로부터 자신을 단련하고 있었다. 힘만 믿고 날뛰는 "마녀"가 아닌, 마치 요저에게서 느껴지는 것과 같은 두려움을 완전히 극복해낸다면 분명 지금 이상의 존재가 될 수 있으리라 굳게 믿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은신처에 도착한 츠누가를 기다리는 것은 번견처럼 대기하고 있던 캐롤의 모습이었다. 츠누가를 구하려 했던 캐롤의 이전 행동에 츠누가는 의미 없는 소모를 했을 뿐이라며 비판적인 피드백을 전했다. 만약 둘의 상황이 바뀌어 츠누가가 캐롤을 버려야 할 때가 되었다면 망설임 없이 그리할 것이라고. 스스로 츠누가의 도구라 여기던 캐롤은 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캐롤은 여전히 어떤 감정을 품은 채였다.

츠누가가 악몽에서 깨어났을 때 옆에는 캐롤이 있었다. 무언가 말을 하고 싶어하는 캐롤의 얼굴을 뒤로한 채 츠누가는 방을 나갔다. 몇 번의 전투로 당분간은 상황을 지켜보는 것으로 가닥이 잡힌 상황에서 츠누가는 사법가의 도심으로 향해 정보를 캐낼 궁리를 했다. 정보원 세리카가 요주의 인물을 마킹해 츠누가가 직접 접근하는 방식이었다.

츠누가에게는 확신이 필요했다. 모든 범죄의 사슬은 '슬럼 빌딩'으로 이어지는 것 정도는 사법가의 누구라도 알 정도의 일이었다. 그러나 '슬럼 빌딩'으로의 직접 침투는 굉장히 까다로운 일이었다. 지배자를 보위하기 위해 배치된 병력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1층부터 위의 수십층까지 이어진 배타적 범죄자 주민들의 인적 네트워크 겸 인해의 방어선이었다. 헛물을 켜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7년 전의 적은 '슬럼 빌딩'에 있다. 그런 확신을 얻고 싶었다. 7년 전 지옥의 광경을 보았던 츠누가는 기다렸다는 듯이 발생한 "마녀"라는 재해가 그 광경에 직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걸려든 것은 폐공장 습격 당시 사냥당한 "마녀"의 운송을 담당했던 끄나풀이었다. 세리카가 '대상'이 자리를 떠 거리의 뒷골목으로 나오는 때를 알려주기로 하고 건물의 내부로 들어간 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다. 약속된 시간을 넘긴 것을 확인한 츠누가는 폭약 함정을 설치한 차량에서 나와 곧장 건물의 뒤를 돌아 추적을 시작했다. 출입구가 아닌 외부 계단의 존재를 파악하고 있었던 츠누가는 왜건 차량에 실려 억지로 강압된 상태의 세리카에게 적들의 의식이 쏠려있는 것을 확인했다. 조용히 밴을 향해 다가간 츠누가는 암기 중 하나인 택티컬 펜을 꺼내 사정없이 적들을 찍어 발겨냈다. 츠누가의 흉기는 수련을 거듭한 실전 가라테의 몸놀림과 밴의 내부에서 여자 하나를 둘러싸고 있는 적들의 자세의 불리함을 십분 활용해 머릿수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살상력을 드러냈다.

때에 맞추었는지 세리카의 몸은 무사했다. 츠누가는 세리카에게 '대상'이 누구인지 물었고, 지목당한 자를 제외한 모든 적을 P226으로 확인 사살했다. '대상'은 츠누가의 집요한 '설득'으로 '마녀사냥'의 최종 목적지는 '슬럼 빌딩'이라는 정보를 토해냈다. 츠누가는 주저 없이 그에게 방아쇠를 갈겼다.

츠누가는 세리카에게 일에서 손을 뗄 거라면 지금이 적기라고 말했다. 몸이 아직 성하고, 쌓인 돈도 어느 정도 되니 전부 가져 이 지옥에서 나가는 게 좋을 거라고. 그러나 세리카는 자신의 지목으로 사람이 죽었으니 스스로 손에 피를 묻힌 거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런 죄악의 깊이에 비해 얻은 것은 턱없이 부족하다며 피와 돈벌이의 냄새가 나는 츠누가의 곁에 더 남아있겠다는 세리카. 츠누가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받아들이면서도 이 소녀조차 추악한 욕망이 휘몰아치는 사법가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갈 수 없는 일원임을 깨달았다.

츠누가는 돌아가는 길에 언뜻 남자들에 둘러싸여 몸을 흔드는 백발의 소녀의 기색을 보고 폐공장에서 돌아가는 길에 스쳤던 "마녀"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어서 연상된 것은 누군가의 얼굴--훼손된 얼굴을 떠올렸지만, 오래전에 죽었을 터인 사람이 존재할 리가 없었다. "마녀"가 길바닥에서 뒹구는 일은 으레 있는 일일 뿐이다. 츠누가는 기억의 폭주를 억누른 채 아지트로의 복귀를 서둘렀다.


은신처에서 츠누가는 위르마에게 "무명의 마녀"의 특징을 설명하며 그 "마녀"를 알고 있는지 질문했다. 위르마는 동족들의 특징과 이름을 모두 구분하고 있었지만 "무명의 마녀"의 특징은 해당하는 바가 없었다.


아래의 슬럼가와는 달리 관리가 이뤄지는 40번대 층을 돌며 각 방의 문마다 설치되어 있는 모니터를 확인하는 시몬. 그는 옆에서 걷고 있는 브라이언으로부터 츠누가의 추적에 관한 보고를 재촉했다. 브라이언은 시몬이 하는 일이 맨정신으로는 못할 일이라며 그 정신력을 높이 산다는 발언을 하며 시몬의 비위를 거슬렀다.

그래서 츠누가의 꼬리를 잡았느냐는 시몬의 직설적인 발언에 브라이언은 츠누가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살해 현장에 남겨진 츠누가의 족적은 일관성이라고는 찾을 수 없었다. 무심히 마무리 지은 시체가 있는 반면, 야수의 행적이라 여겨질 만큼 지나친 파괴의 흔적이 남기도 했다. 이는 유혈의 열락에 맛을 들인 짐승의 행각이며 기특한 선행의 실천을 목적으로 한다고는 감히 일컬을 수 없었다. 츠누가 스스로 살인의 순간에 사정충동을 느낄 정도라 생각했으니 이는 정확한 평가였다.

거울상을 찾아 만면의 미소를 지우지 못하는 브라이언에게 시몬은 역시 닮은 바가 있지 않겠느냐, 마치 네가 IRA에서 나오게 된 경위 같은. 라는 발언으로 비꼬았지만, 브라이언은 전혀 정색하지 않고 여유롭게 시몬에게 계책을 전부 일러준 것이 아니라고 안심시켰다. 그제야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시몬이 그 계책을 묻자, 찾을 수 없다면 찾아오게 만들면 된다.는 지론을 펼친다. 정확히 뭘 할 것인지까지는 나오지 않았으나 이번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그러다 시몬은 어느 방의 문 앞에서 우뚝 섰다. 마음에 들지 않아 거슬린다는 듯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간 안에는 붙잡힌 "마녀" 카라가 요저의 아이를 잉태한 자신의 복부를 벽에 들이박기를 수차례 반복하고 있었다. 시몬은 그렇게 마음에 안 든다면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며 그 몸에서 요저의 것과도 같은 촉수를 기어 나오게 해 카라의 사지를 단단히 붙들었다.

시몬은 카라의 아래에 팔뚝을 끝까지 밀어 넣고 안의 무언가를 세게 붙잡았다. 기구 따위는 필요도 없다는 듯이 쥐어 뜯어낸 그것을 카라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카라는 경악을 흘리며 정신이 붕괴할 지경까지 이른다. 알고 싶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좋지 않으냐며 낮은 웃음을 흘리는 시몬은 손에 든 통통히 살찐 구더기를 치아에 대고 씹어먹었다.

잘 들어라. 너희들은 얼척없이 큰 기계에 박힌 부품의 한 개. 망가질 때까지 같은 일을 반복할 뿐인. 싫겠지. 울부짖어도 된다. 통곡하며 세상 모두를 저주하는 것도 좋다. 다만, 자신의 의사로 뭔가 하는 것만은 허락하지 않는다. 얼마나 지워도, 몇 번이라도 채워준다. 광기를 번뜩이는 시몬의 앞에서, 카라의 미약한 반항은 산산이 부서졌다.



연행되어 온 장소에서, 츠누가는 갓 칠해진 철분의 취를 맡았다. 마루에는 솔로 쓸어낸 듯한 대량의 혈흔. 부러진 치아나 귀의 일부인 듯한 살점, 도려내진 안구마저 떨어져 있었다. 휴먼 콕파이트--인간으로 벌이는 투계의 회장. 이미 전 시합이 종료해, 베팅 자체도 마감되었다. 하지만 장내의 관객은 아직 남아 있었다. 어느 얼굴에도, 지금부터 시작될 '여흥'에 대한 기대감이 자리했다.

"여어, 역시나 와줬구만. 형씨, 나한테 용무가 있나?"

착붕(着崩)한 다크 슈트의 중년 남자가, 어딘지 시치미를 뗀 어조로 말을 꺼냈다. 감정을 읽을 수 없는 파충류스러운 무표정이, 츠누가의 값을 매기고 있었다.

"나는 시몬이라 이거야. 형씨의 얼굴은 모르겠네… 까먹었다면 미안한데, 어디서 만났었나?"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하는 시몬의 표정에 도회는 없다. 물음에 츠누가는 미소를 띄웠다. 보는 이의 간담을 뒤흔드는 듯한, 방울져 떨어지는 악의가 스며 나온 비웃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시몬으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고 속삭인다. 그 음성은 진흙과 같이 무겁고, 불과 같이 강렬했다. 숨결에는 육식 짐승 같은 비릿한 살의가 진동했다.

"앞으로의 너는, 두 번 다시 나를 잊을 수 없게 될 테니까."

"그렇나. 얄궂게도 일기일회(一期一會)가 될법한 흐름(風向き)이지 말인데."

츠누가의 도발을, 시몬은 코끝에서 조롱해 비웃었다. 이 자리에 있는 호위의 수는 열 명 이상. 전원이 단기관총으로 무장하고 있다. 지금 당장 츠누가가 시몬을 덮쳤다고 해도, 몇 미터도 답파하지 못한 채 사살될 것이다.


츠누가는 부비트랩이 설치된 차량의 손잡이를 주의 깊게 돌리던 중, 거듭된 전투로 민감해진 본능의 경고를 깨달아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찰나의 사이에 츠누가의 머리가 있던 곳에는 총탄이 박혔고 살의의 기색이 감싼 남자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양손에 각각 총검이 부착된 Cz75를 한 정씩 거머쥔 브라이언은 츠누가와의 첫 대면을 기뻐하며 환영의 탄환을 갈겨댔다. 차를 엄폐물로 삼고 탄환을 보충한 츠누가는 반격하며 습격자를 유인했다. 어느덧 잔탄은 바닥을 드러냈고, 구르카 나이프를 꺼낸 츠누가는 브라이언의 총검에 칼날을 맞부딪혔다. 마침내 가까이에서 적수의 얼굴을 확인한 둘. 브라이언은 츠누가가 자신이 가장 혐오하는 부류의 인간임을 깨달았다. 마피아도, 킬러도, 군인도, 테러리스트도 아닌 경찰의 냄새를 그에게서 맡았던 것이다.

츠누가는 목표한 지점까지 적을 근접전으로 끌어들인 후 브라이언의 고간에 오른 다리를 박아넣고 배대뒤치기로 차창에 처박았다. 그 틈을 타 차량 손잡이의 타이머를 돌렸고 바로 이탈했다. 곧 도심 한가운데에서 차체는 화려하게 폭발했다. 습격자의 공격에서 벗어나 되돌려주었다. 츠누가의 경험과 판단에 따르면 분명 살아남지 못했을 터였다.


'슬럼 빌딩'의 최상층에서 사법가의 지배자 시몬은 한 "마녀"의 발을 핥고 있었다. 이상자의 도착적인 행위가 아닌, 의자 밑에 엎드려 받들어 모시는 여신과도 같이 신성시한 자세를 견지했다. "마녀"의 외형은 백색의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좌우의 눈 색이 달랐다. 저주받은 도시로 마침내 돌아온 츠누가를 생각해 몇 번이고 그의 앞에 고의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던 "무명의 마녀"는 츠누가를 추적하고 있는 시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미 알고 있다는 투로 말해 그녀를 모시는 시몬의 질투를 사기도 했다. 그러나 의견을 말하려는 시몬의 입에 "무명의 마녀"는 발을 밀어 넣어 질식시켰다. 시몬이 하는 일은 모두 "무명의 마녀"를 위한 봉사이며, 모든 것은 "무명의 마녀"가 이루려고 하는 목적을 위함이었기에 시몬은 더 불평을 말할 수 없었다.

남자는 그저 유린하고 방치한 채 잊을 뿐. "무명의 마녀"는 여자인 자신에게는 인과의 모든 실이 보인다고 말한다. 7년 전 '자신'이 죽었을 때를 상기하는 "무명의 마녀"의 말에 시몬은 그제야 갈피를 잡았다. 츠누가가 관련된 형태를 파악하기에만 몰두한 시몬에게 "무명의 마녀"는 실망과 모멸감을 드러내어, 시몬으로 하여금 굴욕과 수치심으로 홍조를 떠오르게 했다.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무게'라는 그녀의 말. 의미불명의 무가치한 우행도 관철하는 힘이 의미를 부여하며, 어떤 뜻깊고 숭고한 행위도 관철하지 못하면 한낱 티끌로 끝난다. 복수든 사랑이든, 중요한 것은 올바른 가치를 지녔느냐가 아닌 개인이 간직한 질량 뿐.

이 거리는 닫힌 인과의 고리. 들어온 이상, 이제 어디에도 갈 수 없다. 그게 "마녀"라 할지라도, 인간이라 할지라도.


7년 전, 한 여자 고등학생 납치 사건. 수사 중 전 세계적으로 다발한 납치 사건과 특성이 합치되었다. 곧 카죠우 시에서 '파티'가 개최되어 참가자들을 모집한다는 소문이 인터넷상에 돌았고, 게시된 글에는 소녀들의 사진이 첨부되어 실종된 인원으로 밝혀졌다. 당일이 되어 카죠우 시에 모인 이상자들의 수는 5000인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 책임자의 사전 체포에도 실패하여 체면을 구긴 일본 경찰은 현장 급습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해외 요인의 자제가 얽혀있다는 이유로 외풍의 압력을 받아 신중론을 펼치는 내각의 외교부와 이에 동조한 위의 압력으로 돌입이 늦춰졌다.

당시 23세였던 츠누가 쇼고 순경(巡査)은 사건의 개최지로 지목된 회관 건물 밖에서 대기하던 경찰 특수급습부대(SAT) 1팀 대원이었으며, SAT를 지휘하던 이고우 노부타케(飯河 信勇)는 경찰의 수뇌부에 돌입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역설, 이고우의 요청과는 별개로 논의 끝에 정부는 돌입을 최종 승인했다. 곧 돌입한 SAT 1팀이었지만 내부의 인원들은 총기에도 겁먹지 않는 기이한 흥분의 상태. 인간의 장벽 너머로 펼쳐진 광경은 츠누가와 돌입한 SAT 팀의 이성을 앗아갔다. 누군가 발포하여 살육이 시작되었지만, 절대적 수의 격차로 SAT 팀은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츠누가는 단 한 명이라도 생존자를 찾고자 발버둥 쳤다. 참상의 한 가운데서 안구 하나와 비강이 도려내지고 뼈가 드러난, 흉곽은 늑골을 드러내어 팔 다리가 남아있지 않은 참혹한 형상으로 얕은 숨을 이어가는 그것을 찾아낼 수 있었다. 시체의 산에 파묻혀 츠누가는 자신의 등을 위로 향해 그것을 감쌌다. 등에 무수한 압력이 가해져 늑골이 몇 개나 부러졌다. 주위가 조용해졌을 무렵, 그 생명은 마지막 말을 내뱉고 숨을 다했다. 확실하지는 않은 한 소절이었으나 소녀의 몸에 드러난 고통의 흔적은 단 하나의 뜻을 담고 있었다.

■■■■■-\-コロシテヨ. (■■■■■--제발죽여줘.) 소녀를 살려보겠다는 츠누가의 행위는 소녀가 겪었을 무저갱의 고통만을 지연시켰을 뿐이었다. 그 원망의 말은 자신의 정의가 그저 자기만족이었다는 결과를 나타냈다. 개인적인 욕망을 채우려는 주위의 악귀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때 츠누가가 마음속에 품은 신념은 산산이 부서졌다.

7년 전의 사건 이후 5년간 혼수상태에 있었던 이래 깨어난 츠누가. 그는 주위를 둘러싼 친구나 친척 같은 인간관계를 모두 끊었다. 연인도 진작에 성이 바뀌고 경찰 조직 내에 아는 얼굴은 남아있지 않았다. 츠누가는 당시의 신문에 실렸던 기사를 읽었다. 인질은 모두 사망. 돌입한 대원들도 자신만을 남기고 전멸. 주요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연이은 재해에 일대는 범죄 도시화했다. 이럴 수는 없다는 절망, 분노로 재밖에 남지 않았던 츠누가의 마음속에는 오로지 원흉에 대한 살의가 피어올랐다.

판도라의 상자 안에는 희망이 있었다지만, 츠누가가 찾아낸 것은 희망도, 정의도, 인륜도 아닌 인정할 수 없다는 집착뿐이었다. 2년간 칼을 갈며 그동안 무너진 육체를 현역으로 되돌리기 위해 스테로이드를 비롯한 금지 약물의 취급도 주저하지 않았다. 열심히 닦았던 격투기도 오로지 살인만을 위한 기술로서 처음부터 다시 연마했다. '적'에 대해 기울이는 것도 늦추지 않았다. 납치 사건을 일으켰던 카르텔을 하부 조직으로 둔 관동사법가의 이매망량은 7년 전의 참사 이후로도 "마녀"라는 초상(超常) 현상과 더불어 한층 무언가를 꾀하고 있을 터였다. 일찍이 인간 츠누가 쇼고가 매장된 무덤으로 복수귀의 좌표는 정해졌다.


'슬럼 빌딩' 50층. 권력의 심장부까지 늘어선 관문의 규모에도 불구하고, 여러 절차나 과정을 무시한 채 원흉에 다다른 비무장한 노인의 존재는 시몬에게 유머러스하기까지 한 기막힘을 자아냈다. 그자가 전동 휠체어에 신세 지는 불수의 몸이라는 것, 어떤 보고도 없이 침입해왔다는 사실도.

사법가의 창조에 가담한 그쪽이라면, 자신보다 법칙을 속이고 뒤트는데 일가견이 있을 거라 전하는 노신사. 도회의 가면을 벗은 시몬은 '마술사'라는 단어를 입에 담았다. 그런 존재는 이전 세기 초두에 모두 사라졌다며, 자신은 그저 고고학자일 뿐이라 노신사는 소개했다. 반지 낀 손을 깍지끼고는, 다만 마녀라면 하나 살아남아 황금과 불로의 비술을 손에 쥐고 세상의 어둠에서 암약하고 있음을 언급했다. 자신의 용무는 바로 그 마녀라고도.

"마녀"라면 거리를 거닐다 보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며 가서 죽기 전 마지막 재미나 보는 게 어떻겠냐고 시몬은 빈정거렸다. 노신사는 한숨과 실소를 내뱉었다. 그런 "유사품(위치)"을 찾는 게 아님을, 진정한 마녀(헥스). 얄다바오트--위신(偽神)의 이름을 들먹였다.

그 이름을 들은 시몬은 안색이 일변하여 살의의 시선을 노신사에게 쏘아 맞혔다. 노신사의 시선 또한 적의의 빛을 띄우며, 성서의 마술사를 자칭하는 이단의 사제에게 역시 마땅한 보답을 받으려 했다. 죽은 손녀의 혼의 존엄을 걸고. 노신사는 병약한 손녀의 여생에 마음의 건강함이라도 바라 마지않았었다.

비웃음을 지어 입가를 비뚤이는 시몬은 7년 전의 지긋지긋한 관계가 여럿 이어진다며 야수 같은 모습의 잔상을 뇌리에 떠올렸다. 사신의 마수에서조차 벗어난 그 남자도 죽여둘 필요가 있었다.

이 죄를 신이 심판하지 않는다면, 악마의 힘을 빌려 지옥에 떨어지겠다. 오망성이 새겨진 반지가 빛나, 영혼을 바치는 서원영창(誓願詠唱)에 화답해 주위의 공간이 비틀리기 시작했다. 시몬은 그것이 '솔로몬 왕의 반지'의 진품임을 파악했다. 마술사의 절멸에도 각지에 흩어져 내려오는, 힘이 깃든 물건 중 하나. 대천사가 고대 왕에게 하사한 72柱의 마신을 사역하는 반지.

그러나 무언가가 저편에서 위용을 드러내기도 전에 모든 것이 소멸했다. 노신사의 얼굴이 경구(驚懼)로 일그러졌다. 시몬의 안면을 포함한 피부 곳곳이 박리되어 그리스어 문자열이 새겨진 파피루스의 모습으로 변질되고 있었다. 그 내용을 순간 이해해버린 노신사는 절구(絶句)할 수밖에 없었다.

'유다의 복음서(고스펠 오브 주다스)'의 진본. 시몬은 긍정했다. 이 세상의 이것도 저것도 밥상을 뒤집어 엎어버리는 이웃 민폐의 물건이라고. 그러니까 아무튼, 어쩔 수 없으니 단념하라고. 흔치 않은 연민조로 고하며, 시몬은 슈트의 품으로부터 베레타 한 정을 꺼냈다.

다음번에는 신의 진품이라도 데려오라는 시몬의 말. 어딘지 나른한듯한 군소리가 한밤중에 공허히 울렸다.




바렌티노스를 실은 헬리콥터는 관동사법가 변경의 상공에서 약에 취한 무뢰배들의 구 소련제 보병용 지대공 유도탄(SAM)에 격추되었다. 그러나 불길 속에서 2미터의 거구는 아무런 피해 없이 걸어 나왔다. 이상 사태에 도망치는 것도 잊은 강도들은 총을 갈겨댔지만, 검은색 슈트에 상처하나 남기지 못했다. 절도와 자비를 갖추어야만 인간. 하지만 너희는 그리하지 않아도 된다. 신을 따르지 않는 벌레들을 쳐부수는 폭력의 감미로움이야말로 꿀과도 같으니. 바렌티노스는 신보다는 악마에 가까운 웃음을 드높이며 욥기 5:2의 경구를 읊었다. 곧 남자에 손안의 비적(秘蹟)이 빛을 발해 신이 깃듦이 드러났다. 할렐루야를 외치며 주먹을 내지른 그 앞에 찬란한 파괴가 잇따랐다. 그 앞에 있던 것들은 이 세계로부터 존재를 부정당한 듯 흔적조차 사라져 크레이터만을 남겼다. 이 소돔에는 치워야 할 쓰레기들이 너무나 많다. 바렌티노스는 전부 쓸어주겠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위르마는 팔라리스의 황소 안에서 화형당하는 자신의 모습을 깨달았다. 비록 악몽이었지만, '이번 생'에서 겪지 않았던 수난은 너무나 현실적이었다. 이른바 '부활'했다는 아리손의 이야기를 들은 결과 기억해낼 수 없던 것을 깨달은 것인지 의문을 가졌다.

츠누가는 이고우로부터 전해받은 '노스 이스트 그랜드 힐즈', 현 '슬럼 빌딩'의 도면을 머릿속에 집어넣은 뒤 총기수입을 하는 도중, 쓰러져 간 SAT 동료들을 회상하고 결의를 다졌다. 사전에 협의된 세리카의 연락은 약속된 시간으로부터 40분이 경과했다. 은신처를 감싼 IR 센서는 노트북에 경고음을 울렸다. 습격자들은 M4 카빈과 AK-47로 무장해 유탄발사기를 장착한 인원도 포함했다. 경기관총으로 지원받는 다국적 용병들은 양관으로 향해왔다.

'마녀사냥' 부대의 용병들은 브라이언의 대기 명령을 거역한 채 돌입했다. "마녀" 전력을 기다리자는 브라이언의 주장은 불신의 대상이었던 그 배신 전력에 묵살당했다. 용병들은 브라이언의 지휘 없이도 능수능란한 작전을 펼치지만, 건물 2층에서 고지를 점한 츠누가의 저격으로 대부분 사살당하고 내부에 침입한 인원은 츠누가 측의 "마녀"와 SPAS-12의 산탄 폭풍에 고기 조각이 되었다. 그 광경을 지켜본 브라이언은 이쪽 "마녀"는 무엇을 하는지. 그 변덕스러움에 한탄하며 다음의 대결을 기약하며 물러났다.


지금으로부터 2개월 전, 도시의 변두리에서 깨어난 소녀는 여기가 세계의 끝이며 반대편의 도시로 향해야 자신의 운명을 확인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도시를 걷는 소녀의 주위에는 쏟아지는 것이 온당치 않은 시선이 넘쳐흘렀다. 한 꾀죄죄한 노인이 소녀 앞에 서서 이름이 무엇인지 묻지만, 소녀는 대답할 수 없었다. 노인은 웃음을 지어 올렸다. 이름도 붙여지지 않은 신종의 "마녀"에게 이름을 줄 기회를 얻은 노인은 소녀가 사법가에 찾아온 날--성자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에 울려 퍼지는 '축복의 노래(캐롤)'. "캐롤 더 위치"라는 이름을 주었다.

곧 호박빛 돌풍이 강타해 노인을 포함한 주변의 사람들을 모두 피가 튀는 살점으로 만들며 내려앉았다. 자신을 산디로 소개한 "마녀"는 마지막 26번째의 자매를 폭력으로 맞이했다. '철혈의 첨인'은 커녕 자신이 "마녀"인지도 몰랐던 캐롤은 다리가 양단되어 목이 졸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땅을 디딜 수단을 잃고 말았다.

왜? 흐음… 왜, 네?
그러면, 왜 너는 태어났는지 알고 있나? 그런 질문에 대답이 마련되어 있을 거라 생각하나?
모르는 것은, 전부 누군가가 설명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면 큰 착각이라고.

이 세상이라는 건, 그런 식으로는 돌아가지 않는다. 영문을 모르겠다면 모른 채로, 발버둥 칠 수밖에 없다는 거지.
어쩔 수 없다는 거야. 그런데도 태어나 버렸으니 말이야.

죽는 게 두렵나? 그런데 말야, 죽을 수 없다는 건 그것보다 훨씬 최악이라고?
"마녀"의 힘을 지지하는 바탕은 피다. 그걸 대량으로 잃어버리면 그 말대로, 단순한 인간과 별반 차이가 없게 되어.
그러니까, 우리들의 무기는 이렇게 상대방의 피를 흘려내기에 적당한 형태로 되어있는 거지. 이것 자체도 피의 덩어리니까, 일단 그걸 박살 내버리는 것도 먹힌다.
이것도 정말 부조리한 이야기야. 자기의 무적을 지지해야 할 무기가, 한 번에 무적을 상실케 하는 사인이기도 하다니.
하기야 목이 눌려 꺾여버리든, 전신이 회쳐져 저며지든, 목을 쳐내버리지 않으면 죽음을 받아낼 수도 없지만.
끔찍한 일이지? 말하지 않아도 기분은 알겠다고. 나도 같은 신세니까 말야.

…그럼, 최초의 응대는 이걸로 다인가. 뭐, 일단 한번 죽어두려무나. 그 후에 또 만나자고.

폭력의 유열과 "마녀"의 운명에 대한 뒤틀린 감정을 내뱉은 뒤, 산디는 캐롤을 바닥에 내던져 유유히 사라졌다. 곧 "마녀"를 데려가려는 남자들의 손길이 다가왔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습격이 장소를 덮쳐 수거 인원들을 모두 사살했다. 그때 캐롤과 츠누가의 시선이 마주쳤다. "마녀"가 아직 힘이 남아있는 것인지 난처한 기색의 츠누가는 "마녀"를 구할지 어떨지를 망설였지만 호소하는 캐롤의 눈빛을 무시하지 못한 츠누가는 은신처로 데려갔다.

얼마간 양관에서 함께 머무르게 된 츠누가와 캐롤. 츠누가는 캐롤에게 그 자신이 "마녀"인 것과 그 특징들, 사법가의 상식 등 여러 가지를 알려주었다. 그 가운데에는 마력 보급의 방법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츠누가는 자신이 먹는 종류의 식사만을 건넸다.

얼마 후 캐롤은 츠누가가 하는 일을 돕겠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츠누가는 "마녀"의 전력을 철저히 도구로서 받아들였다. 전투의 현장에 캐롤을 대동하여 전투의 기본 방법부터 "마녀"의 힘을 사용하는 방법까지 그 몸에 익히게 했다. 그런 나날 가운데 격렬한 전투에서 피를 흘려 약체화된 캐롤을 아지트에 데리고 온 츠누가는 며칠간 캐롤의 회복을 기다렸지만 "마녀"의 회복 수단은 그것뿐인 것을 깨닫고 있었다. 총기를 손질하는 심정으로 캐롤에 다가간 츠누가는 지극히 조심스러운 손길로 캐롤을 안았다.

전투의 소모가 있을 때마다 둘은 기계적인 관계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츠누가를 향한 캐롤의 마음은 스스로 깨닫지 못한 채 점점 깊어져 갔다. 행위의 도중 캐롤로부터 츠누가를 강하게 요구하는 빈도도 잦아졌다. 그런 캐롤을 대하는 츠누가는 대조적으로 심경이 복잡해져 갔다. 캐롤 자신은 츠누가에게 쓰이는 무기일 뿐인 채로도 괜찮다고, 츠누가와 모종의 인연을 느끼며 그의 바람을 이루어 줄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음에도.

1.4. 피의 수확

츠누가는 총기수입을 하며 과거의 기억에 침잠했다. SAT의 혹독한 훈련. 그중 하나는 몇 번이고 반복된 훈련장의 특정 건물에서의 실습. 인질 표지와 범인 표지가 번갈아 나오는 것을 구분해 사격하는 것. 맹견이 물어야 할 것과 물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시키듯, 어떤 상황에서도 쏘지 말아야 할 것을 학습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어떤 훈련이든 고된 것 뿐이었지만 같이 훈련하는 동료들과 함께라면 이겨낼 수 있었다. 곁에 있던 SAT 동료들 역시 독특한 구석이 있어, 그 점이 츠누가와는 동족이라 할 만했다. 말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통하는 사이. 허나 그런 동료들도 이제는 없다. 츠누가와 진정으로 공감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남지 않았다.

츠누가는 입장을 확실히 하고자 했다. 캐롤과 했던 이전의 행위는 그저 서로를 소중히 여겨 감싸 안는 연인의 관계였던 게 아닌지.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주인과 무기의 관계로서는 한참 틀린 것이다. 감상에 젖을 여유는 지금의 자신에게는 더 남아있지 않았다.

캐롤에 다가간 츠누가는 자신의 것을 강압했다. 캐롤은 당황했지만 츠누가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자신이 무엇인가 잘못한 게 있는 것은 아닌지. 츠누가의 마음을 계속 헤아리며 상냥히 대하는 캐롤의 행동은 츠누가를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초조함은 오히려 끝에 달하는 것을 더디게 만들어 효율적인 관계로의 재설정 목적조차 잃고 있었다. 폭력에 가까운 행위는 이어졌고, 캐롤은 달하기는 했지만 닿지 않더라도 마음이 채워졌던 이전의 관계와는 달리 공허함만을 느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것이 일반적인 "마녀"의 행위가 아닌지. 무기와 그것을 사용하는 자의 태도로서 올바른 것이 아닌지. 캐롤은 그런 생각 속에서 츠누가가 진정으로 바라는 바를 추측했다.

캐롤은 스스로 진실한 마음도 모른 채 츠누가의 무기가 되겠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츠누가는 캐롤을 무기로 삼아 목표를 이룬 뒤에 어떻게 될까. 자신을 모두 태워 끝을 본 남자에게 미래가 있을 리가 없다. 그런 츠누가에게 캐롤의 감정은 거북할 뿐이었다. 그래서 지금 이런 가혹해 보이는 처사를 하고 있지만, 츠누가가 처음의 관계에서 보여주었던 상냥한 태도와 다르지 않다고 캐롤은 생각했다.

결국 자신의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었던 츠누가와 맺어지는 미래를 그린 숨은 감정을 영구히 포기하기로 했다. 이전의 연인과도 같았던 태도는 가라앉고, 관계가 끝난 후에도 더는 무의식적으로라도 요구하지 않았다. 다소 메마른 어조로 츠누가를 대하게 된 캐롤. 그것을 본 츠누가도 초조함이 잦아드는 것을 느꼈다.


인류사는 동족상잔의 살육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중 하나는 종교에 의한 대량 학살이며 대부분의 지분을 그리스도교가 차지하고 있었다. 십자군 전쟁을 거쳐 대항해시대까지 십자를 내세운 진군은 전 세계를 향해 뻗어나갔고, 그 과정에서 특정 민족의 절멸과 문화를 지지하던 생태계의 변화마저 초래하기도 했다. 근대에 들어서는 케이크를 자르듯 아프리카의 국경선을 긋고 저 멀리 아시아까지 이르러 찬탈을 이어나갔다. 극동의 섬나라 역시 그 일익을 담당했으나 패전으로 몰락하여 죄를 추궁당하기에 이른다. 승전국이라는 이름 아래 민간인 학살과 핵병기의 투하를 정당화한 십자의 국가들은 축복이라도 받은 듯 여전히 번영을 구가했다.

두 번에 이른 세계구급 전대미문의 학살은 인류에게 자숙의 시간을 주었지만, 어디까지나 표면의 일이며 그 본질은 변함이 없었다. 역사는 그들의 신이 말했던 사랑 따위는 조각 한 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세계의 향방은 도의나 인륜이 아닌 폭력, 독선적인 의지로 결정되었다. 그것을 부정하는 이들은 어디에도 없는 받드는 신을 내세우고.

유혈과 원망으로 가득 찬 천지는, 십자가에 매달려 살해당해 신으로 모셔진 남자가 꿈꾸는 세계상인가. 그런 포학을 긍정하는 것은 과연 신인가. 이단심문관 바렌티노스는 당연히 신이라고 긍정한다. 신앙은 전적으로 그 대상을 긍정(AMEN)하는 것이지 시비를 묻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선악으로 신을 규정할 수는 없다. 저차원의 정서로 절대적인 상위자로 인정한 존재를 판정하는 것은 모순에 지나지 않는다. 바렌티노스가 생각하는 신은 인간의 수호자가 아닌 세계의 추(錘). 인간이 발밑의 벌레를 신경 쓰지 않듯이 우주의 운행은 감정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마치 신의 노예. 그러나 무언가의 노예가 아닌 인간은 존재하는가. 권력이나 황금 뿐만 아닌 실체가 없는 이상이나 주장에 대해 가치관을 동화시켜, 존재의 불안으로부터 해방되어 심신의 안정을 얻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 심리였다. 이 광신자 역시 그러한 하나의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사법가의 거리에 차고 넘치는 악한들마저도 바렌티노스가 발하는 분위기에 감히 얼씬거리거나 시비를 걸 용기를 내지 못했다. 바렌티노스는 망설임 없이 암흑가의 진원지로 느껴진 '슬럼 빌딩'의 입구로 향했다. 건물의 입구로부터 계속 이어지는 배타적인 부랑자들의 인간 바리케이드가 방어선을 형성하고 있었다. 바렌티노스는 여호수아 6:8--언약궤의 힘으로 난공불락의 성채 여리고의 문을 함락시킨 설화를 읊었다. 손안에 빛이 발하더니 할렐루야의 함성과 함께 입구는 콘트리트 채 박살이나 군중들까지도 세계로부터 자취를 감추었다.

곧 40층 근처에 다다른 바렌티노스의 앞에 "마녀" 아이린이 나타났다. 아이린은 바렌티노스를 향해 카타나를 빼들어 돌진했다. "마녀"를 둘러싼 척력장은 전개하는 것만으로도 닿은 인간을 산산이 분해한다. 이를 부딪친 인간은 살아남지 못할 터였지만, 아이린이 파괴한 것은 이단심문관의 형상을 한 소금 기둥이었다. 창세기 19:26을 외운 바렌티노스는 이어 "마녀"의 불사성을 해제할 신언을 전개했다. 고차원의 별리(別理)에 근거하는 "마녀"의 존재를 더욱 상위의 힘이 개입해 고쳐쓰기 시작했다. 판관기 15:16, 그리고 함성과 함께 "마녀" 아이린은 바닥에 그을음 자국만을 남긴 채 세상에서 완전히 소멸했다.


침입자들을 격퇴한 후, 이후의 방침을 정하기 위해 반파된 저택의 응접실에 모인 츠누가 일행. 한 명의 부재가 분위기를 무겁게 했다. 동료를 구하러 가야되지 않느냐는 의견은 츠누가에게 있어 아무런 메리트가 없었다. 처음부터 철저히 도구로 이용했고, 그런 츠누가의 태도 역시 세리카도 알고 있었다. 스스로 함정에 걸려주는 미련한 일. 여태 쌓아온 것들을 무위로 돌리는 어리석은 행위였다. 츠누가의 전화에 벨이 울렸다. 수화기 너머 고통에 찬 비명과 신음을 흘리며 울먹이는 세리카의 목소리. 폭력을 몸에 입는 듯 연신 물통을 내려치는 듯한 둔탁음이 들려왔다. 치아가 빠져 제대로 된 발음이 되지 않는 언어는 절박한 구원을 바라고 있었다. 츠누가는 '죽어줘.'라는 한마디 직후 통화를 끊었다.

위르마는 츠누가와 여기까지인 것 같다며 입장 차이를 드러냈다. 주위의 모든 것을 도구로 이용하다 주저 없이 버리는 츠누가의 목표는 "마녀"를 구하기 위해 행동해 온 위르마의 목표와 더 합치되지 않았다. "마녀"를 구하며 "마녀"라는 존재를 탐구하던 위르마. 츠누가는 잡지 않았다. 위르마는 캐롤에게 같이 가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보냈지만, 위르마도 이해하고 있는 캐롤의 완고함은 츠누가의 곁에 남는 편을 저버리지 않았다. 도구로 쓰이다 버려질 것이 자명하다 할지라도 꺾이지 않는 캐롤의 일편단심에 위르마는 이전과 같은 선망을 느끼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로리아도 위르마의 개별 행동에 따라 해산의 길을 걸었다. 스승의 부재에 아리손은 풀이 죽었지만 츠누가는 여태껏 아리손에게만은 미숙하나마 상냥한 친절을 보내왔고, 아리손이 필요하다는 츠누가의 강한 긍정은 마음을 붙들어두기에 충분했다. 아리손은 늘 했던 것처럼 츠누가의 다리를 꼭 껴안았다.


남자는 세상의 모든 인간을 자애로이 여겨, 구하고 싶다고 바랐다. 하지만 그 의지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남자는 지배자에게 사로잡혀, 구세주를 자칭한 죄로 재판대에 오른다. 그를 지키기 위해 맞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기는커녕 대부분이 미친 자라 비웃고 업신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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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크레디트 [ 펼치기 · 접기 ]

전체 가사 [ 펼치기 · 접기 ]


ああ 穢れし地に 生まれし命よ
아아 더럽혀진 땅에 태어나는 생명이여
[ruby(運命,ruby=さだめ)] ただ抗い その涯て
운명에 그저 저항하고 그런 끝에
朽ちるのみか
문드러지는가

罪が根を張る大地よ
지은 죄 뿌리 묻은 너 대지여
もしも天に神あらば なぜ
혹시나 하늘에 신 있다면 어찌
不条理な方舟を許したもうた
부조리한 네모난 배를 허락했다는 건가

想い人護るため 争い殺める
애틋이 여긴 이 지키려고 서로 싸우고 해하네
愛さえ[ruby(刃,ruby=やいば)]ならば 何を信じるのか
사랑마저 날붙이라면은 무엇을 믿어야 하나

天が示さぬ答え
하늘이 보여주지 않은 답
探し 這いあがいて
찾아서 기고 몸부림쳐

ああ 慈しみが 哀しみもたらし
아아 자애로움이 곧 애처로움 가져오네
死こそ救いとなる
죽음이 즉 구제가 되는
虚しく憂き報いよ
허무한 우구의 보은이여

愛のため 己棄て捧げ 願えど
사랑을 위해 그 몸을 내어 바치는 소원에도
祈りの言葉 誰に届くこともなく
기도하는 한 마디 누구에 닿아줄 결말도 없이

歪んだ[ruby(久遠,ruby=とわ)]をめぐる 哀しき[ruby(虚,ruby=うろ)]よ
비뚤은 영원을 맴도는 애처로운 공허여
何故愛は かくも脆く壊れゆく
무슨 일로 사랑은 이렇듯 여리게 부서져 가나

色なき世界裂き
색채 없는 세상 가르고
ただ 独り 彷徨う
그저 고독히 헤매이네


1.5. 재와 다이아몬드

'인간은 살아가는 의미를 일상에서 의식하기에, 삶을 견디려 인식이라는 무기를 가진다. 인식의 눈으로 보면, 세계는 영구히 불변이며, 그대로 세계는 불변인 채 영구히 변모한다.' 츠누가는 과거 독서를 좋아한 SAT 동료에게 들었던 '금각사(金閣寺)'의 구절을 떠올린다. 앞의 말에 대해서, '인식' 따위로 세계는 변하지 않으며, 세계를 바꾸는 것은 비로소 '행위'라는 반박이 책의 다음 대목에서 행해진다.

츠누가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은 행위라고 생각하면서도 캐롤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정정한다.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캐롤과 맞닿은 츠누가는 이룰 수 없는 소원을 하나 떠올린다. 스스로 위험에 들이고 있는 츠누가는 생존본능으로서 캐롤에게 자신이 살아있던 증거를 남기려 했다. "마녀"는 인간의 아이를 낳을 수 없지만, 마음만은 이룰 수 있다는 듯 둘은 기원을 바쳤다.


츠누가의 은신처를 습격한 브라이언이 이끄는 '마녀사냥' 부대의 전멸 후, "마녀" 지원 병력이 뒤늦게 도착한다. 산디는 캐롤과 위르마를 간단히 쳐부수고 신체의 내장을 바닥 여기저기에 퍼뜨리는 등 일 대 다수의 전투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드러낸다. 그 사이 브라이언은 츠누가와 염원하던 결투를 벌였다. 츠누가는 부상을 입고 숲속까지 브라이언을 끌어들이지만, 탄을 복부에 여러 차례 맞고 팔 하나를 잃는 등 초주검의 상태가 된다. 츠누가가 브라이언에게 가한 치명적인 부상은 요저를 몸에 들인 경이적인 회복력으로 피해를 누적시키지 못했다.

총성이 반복해 밤의 숲을 울리는 가운데, 치명상을 입었음이 분명한 브라이언이 일어서 집요하게 반격을 거듭한다. 그의 이상(異常)적인 터프함은, 사법가의 요저를 육체에 심는다고 하는 상궤를 벗어난 조치에 비롯된 것이었고, 극한까지 육체를 단련하여 냉철한 살인술을 닦은 츠누가도 점차 밀려나기 시작한다. 그런데도 눈동자로부터 투지의 불꽃을 거두지 않는 숙적에게, 브라이언은 차가운 빛을 품은 채로 말을 건넨다.

"이봐, 츠누가… 우리 두 명, 짓궂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나?"
"너는 전 경찰관. 나는 전 테러리스트 출신 범죄자. 같은 하늘 아래에 있을 수 없는 적끼리다. 그런데 한데 모여 추락한 앞은, 이와 같은 사법가… 반대 측에 있었을 터인데, 상당히 이상한 도행(道行)이 아닌가."
"너 또한, 자신의 제일 소중한 것을 버리고 온 것일 터. 그게 아니면 빼앗겨 버린 건가?"
"신념, 긍지, 희망, 우정… 그런 것이라면 나에게도 있었다. 한때, 이것만은 놓치지 않겠다고 맹세한 인생의 양식(糧)이. …하지만 그런 것에 한해서, 잃을 때는 한순간이다."

그에 대해, 항상 냉철하게 행동해 온 남자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내몰려, 반격과 함께 브라이언의 말을 부정하려 으르렁거린다. 어떤 과거도 장황한 말도, 지금의 나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것.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한탄은 하지 않고, 미래 따위의 찾아올 리가 없는 것 역시 바라지 않아야만 했다.

그러나, 브라이언은 그의 가슴 속에 숨겨진 마음을 간파한 다음, 그 의식으로 태어난 틈을 찔러, 필사의 반격도 체외에 성장하는 촉수를 통해 분쇄. 단련되었으나 인간의 범주에 머무르는 츠누가의 육체를 철저히 파괴한다. 고경(苦境)에 쫓겨 나가면서도, 그런데도 남자는 일어서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네가 실제로 그 눈으로 무엇을 보고 있는지,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다만, 하나만 들려줘라. 그렇게 발버둥 치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다. 너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가?"

가로막는 적에게, 상처 입은 짐승 같은 눈빛으로 노려보며, 무겁게 수긍을 돌려준다. 그 대답에, 이형을 품은 용병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띄운다.

"그렇다… 우리에게는 이제 그것밖에 없다. 긍지를 위해서라던가, 누구를 위해서라던가… 그런 동기를 편린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무엇도, 처음부터 겉치레-\-아름다운 일에 등을 돌려온 것은 아니다… 힘을 냈던 거다. 그 나름대로. 너도 그렇겠지? ----하지만 결과는 이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 이건, 요컨대 그만큼의 이야기다."

말하는 언어는 조용한 채, 그러나 미칠 듯한 열기를 계속 띄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실패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아직 끝낼 수는 없어. 그런 볼썽사나운 꼴을 드러내놓고도 멈추지 않는 발버둥질이,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서라니 참을 수 있을까----"

"…정말, 잘도 말하는 남자군."

그가 하는 말을 입 다물고 듣고만 있던 츠누가는, 상처가 가져오는 열기에 들뜬 의식이 그렇게 시켰는지, 사신인 듯한 백인으로부터 느끼는 것이 있는지, 고통의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네놈의 거울이 나라고 말하려 한다면, 더더욱 문답 따위는 소용없을 터다. 자신의 동류 따위, 신물이 달릴 뿐의 존재겠지만. 한 조각의 인정사정도 없이, 짓밟아 부숴주면 그것으로 족해… 틀렸나?"

처절한 웃음을 띄워. 아명(牙鳴)에 삐걱거리는 듯한 소리로 츠누가는 내뱉는다. 브라이언 막쿨은 그 반환에 눈을 부라리며, 말을 뽑아낸다.

"나는, 너라는 남자를 지워버리고 싶어 견딜 수 없다… 절망을 맛보게 한 뒤 죽여 시체를 범해, 침과 정액을 뱉어 존재 자체를 짓밟아 주고 싶다. 그저 그것만으로 끝나는 이야기인데, 이러쿵저러쿵 쓸데없는 일을… 하, 나한테도 아직 그런 인간내나는 귀염성이 남아 있었을 줄이야."

그의 가라앉은 얼굴은, 평소와 같은 시든 늪을 연상케 하는 무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여기서 버리고 간다. 이 손으로,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을 부숴버리는 것으로 말이야."

그리고, 남자들 사이의 공기는 결착을 향해 극한으로까지 긴장되고, 교착(交錯)하는 순간, 월하의 숲에 짐승의 포효와, 사냥꾼의 총명(銃鳴)이 울려 퍼졌다.


7년 전, 카네무라 토우코(歌音邑 瞳子)는 평화로운 나라의 나름 유복한 가정에 사는 소녀로서 어떤 괴로운 일이 있더라도 밝은 자세를 견지해 세계의 화목한 부분을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믿었다. 그런 한결같은 모습은 어른들에게는 호감을 샀으나 주위 사춘기 또래의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날을 기점으로 토우코의 세계는 일변한다. 낯선 장소에 납치되어 감금된 토우코는 자신과 같이 세계 각지에서 끌려온 소녀들을 보게 된다.

패닉에 빠지거나 울음을 터뜨린 소녀들을 북돋기 위해 토우코는 무리해서라도 상황을 진정시키려 했다. 토우코는 메이요우(美友)의 시계를 보고 힌트를 얻어 주위의 소녀들이 대부분 유복한 가정의 태생임을 알고 몸값 지불을 노린 것으로 추리했다. 안나가 모두 살아남지 못할 거라는 울분에 찬 반박을 내놓았지만, 토우코의 의견을 소녀들이 지주로 삼던 테레이제가 지지했다.

스스로 독일에 살던 수녀 테레이제 하이네만(テレーゼ・ハイネマン)으로 소개한 그녀는, 자신의 사례-\-변두리 창부의 사생아로 태어난 빈곤한 삶 가운데, 매일 밤 자신을 범한 양부로부터 도망쳐 수녀가 된 반례--를 알면서도 모두의 심신을 안정시키는 편을 택했다. 테레이제의 품에 안긴 가장 어린 중동 태생의 공주 나우라(ナウラ)에게도 토우코는 확언했다.

'겉치레(綺麗事)'는 각각의 사람들이 믿는 것으로 현실로 만들어 나가야만 한다. 상냥함이나 이웃을 돕는 것을 상상으로 해 단념하는 것은 인간 스스로가 행하는 일이기에. 그런 토우코의 옆에서 테레이제는 로자리오를 쥐고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만일 그녀들에게 수난이 닥친다면 가장 먼저 자신을 희생해달라고 부탁하며.

시몬은 자신이 섬기는 "무명의 마녀"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발주 미스로 끌려온 테레이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순수함을 유지한, 가능한 신을 믿을 정도의 순수성을 요구했더니 아예 신을 섬기는 수녀를 데려와 버렸다며 난처해한다. 심지어 테레이제는 낙태 경험까지 있는 순결하지 않은 몸이었다. 어떤 기구한 과거를 두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정절을 지킬 것이라는 "무명의 마녀"는 테레이제에게 특별한 역할을 맡기기로 결정했다. 수녀는 신이 아니라 신을 가장 증오하는 존재의 눈에 들어버린 것이다.

"무명의 마녀"는 과거를 회상했다. 15세기에서 17세기까지 전 유럽에 퍼졌던 마녀사냥(말레우스 말레피카룸). 5만에서 6만의 희생자를 낳은 것으로 추산되는 인류사의 오점이었다. 그녀는 그것이 실제 마녀들을 궁지에 모는 목적을 완수했다고 밝혔다. 미천히 여겨지던 인간은 군중을 이루어 그늘 속의 지배자들을 학살했다. 후로도 미디어의 발달은 마녀를 비롯한 여러 존재들의 개념을 소비했다.

마녀는 인간으로서의 이름을 은닉해 세계의 법칙의 바깥에 몸을 둔다. 각각은 이명을 지니며 최후이자 유일의 마녀가 된 그녀는 '위신(偽神)' 얄다바오트로 불렸다. 그노시스 철학의 체계에 속했으나 그리스도교의 이단 교의에 흡수된 이름. 지금 세상의 이치를 정하는 신--예수 그리스도를 위신이라 여기는 그녀는 곧 위치를 역전해 스스로가 진정한 신으로 군림하려 한다. 얄다바오트의 이름은 가짜 신을 자칭한 자복(雌伏)의 때를 해학한 것이다. 그런 마녀를 바라보는 시몬의 눈에는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었어도 여전한 소년의 동경과 사모의 불길이 자리했다.

A에서 Ω에 이르는 26개의 문자(게마트리아)는 삼라만상 모든 것을 구성하는 근원의 힘에 이르며, 수비술(数秘術)에서 그리스도교의 조물주(야하웨)를 상징하는 숫자였다. 용맥(レイライン)이 흐르는 이 토지에 용혈(ヴォルテクス)은 존재했다. 세계의 지배권을 탈취해 인과율을 고쳐쓰기 위해서는 예수가 신에 이른 길을 걸어야만 한다. 여자인 그녀가 사무치게 공감할 수 있는 절망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 그리하여 악의에 짓밟히지 않은 순결한 영혼이 필요했다. 인지를 넘어선 어둠의 권세와 불사의 육체를 지닌 유일의 진정한 마녀. 그 몸을 26개의 길로 잇고 천한 것들의 유린으로 영혼을 비고(悲苦)와 애절(哀絶)의 규환(叫喚)을 연주시킨다. 지극히 도착적인 극한의 자학행위.

의식의 장소로 마련된 카죠우 시로 각국의 서버를 경유해 마녀의 야연의 개최를 고지했다. 준비된 제물을 범해, 죽여도 상관없다는 엽기의 연회. 사이트상에는 26명의 면면이 공개되어 있었다. 시몬은 여의치 않으면 자신이 태어난 중국 어딘가의 빈촌에서 인원을 수급할 예정이었지만, 불과 10여 일 만에 5000명이라는 수가 운집한 인세의 업을 느끼고 어두운 창작 의욕을 느꼈다.


광연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모두를 격려했던 용기와 사람의 상냥함을 믿는 마음, 토우코가 가슴에 내걸었던 그 이상마저도 색이 바래어 사라져갔다. 일찍이 그녀가 살아갔을 일상의 저편으로.


폐허가 된 저택에 그로리아가 뒤늦게 나타난다. 상황을 파악하는 그로리아의 앞에 숨어있던 아리손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리손은 용기가 없어서 산디에 맞서지 못해 두 동료를 방치했고, 홀로 츠누가를 찾아 나설 용기도 없었기에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리손을 제자로 여겼던 그로리아는 이를 꾸짖으며 홀로 산디에 맞설 것을 결의하고 아리손을 방치한 채 '슬럼 빌딩'의 벽면으로 돌격했다. 아리손은 스스로 비겁한 것을 알면서도 울음을 흘리며 츠누가를 찾아 나섰다.

그로리아는 산디를 찾으며 '슬럼 빌딩'을 거의 반파시키며 내부를 헤집고 다녔다. 곧 그로리아는 산디와 조우했고 산디는 '이번'에는 자신을 피해 다니는 겁쟁이가 아닌 '그로리아'를 칭찬했다. 의미불명의 칭찬에 그로리아는 불쾌해하며 산디와 접전을 펼친다. 배틀 액스를 위에서 짓누르는 우위를 점한 그로리아는 산디에게 절대적인 불리함을 강요했다. 승부의 추가 그로리아에게 기울지만, 건물이 파괴되며 격리실에서 기어 나온 요저들이 두 "마녀"의 기색에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로리아는 본능적인 공포에 휩싸이지만 산디는 의도적으로 저런 것들에 접해왔다며 완벽히 극복하지는 못했으나 너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다고 기세가 완벽히 역전한다. 팔다리가 썰려 더는 전투를 속행할 수 없는 그로리아는 복부에 산디의 톱니 칼날이 박혀 일어날 수도 없게 된다. 산디는 그로리아를 완벽히 꺾어주겠다며 남성의 물건을 드러내 강압했다. 끝없는 폭행과 압력은 그로리아의 정신을 패퇴시켰고 한낱 소녀의 정신에 몰린다. 그로리아의 육체와 정신을 완벽히 굴복시킨 산디는 패배한 개에게 용무는 없다며 그로리아를 요저들의 사이에 방치한 채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츠누가와 함께 쓰러진 브라이언. 그는 츠누가가 결투 도중 "마녀"들의 전투에 한눈을 판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면서도 결국 사랑하는 이를 두고 볼 수 없다며 고통 속에서도 일어나려는 츠누가를 보고 브라이언은 과거를 회상한다. 자신에게 소중했던 것. 고국 아일랜드의 얼스터 지방에 살던 그는 주위의 분위기에 떠밀려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에 가입했다. 무장 투쟁원은 아니었으나 관헌의 무차별적 탄압에 붙잡히고 말았다. 모진 고문을 견디며 동료들의 이름을 내놓기를 거부했지만, 출소 후 본 것은 동료들이 자신의 부인을 집단으로 범하는 광경. 유약한 그라면 분명 있는 것 없는 것 다 불었을 테니 애적에 배신자로 낙인을 찍었다. 배신자의 아내라면 무엇을 해도 괜찮을 터. 이성을 잃은 그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인원을 죽였다. 후에 고문을 견뎌낸 의지를 높이 사서 아프리카로 건너가 본격적인 전투 훈련을 받지만, 동료 살해자라는 낙인은 영영 지워지지 않았다. 악명은 브라이언의 전적과 함께 커져만 갔고, 결국 주위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브라이언은 츠누가에게 살아갈 길이 하나 남았음을 전한다. 그는 요저 세포를 이식하여 저주받은 삶을 이어나갈 것인지 묻는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캐롤의 곁에 가야만 한다는 츠누가의 의지. 자신이 자신의 의지대로 있을 수 없게 될 것이라는 브라이언의 경고. 브라이언은 자신의 내장을 헤집어 꿈틀대는 요저의 조각을 꺼내 츠누가의 부상에 옮겼다. 세포는 츠누가의 속으로 기어들어가 끊어진 부분을 잇고 엮는 고통의 치유를 시작했다.

츠누가는 브라이언에게 작별을 건네며 자신은 곧 죽을 테니 다시는 만나지 못할 거라 전했다. 여전히 쓰러진 채 뒤를 전송하는 브라이언. 츠누가의 부상은 요저 세포 중에서도 말단부가 아닌 중핵 세포를 이식하여야 회복이 가능했다. 중심부를 잃은 요저 조직은 브라이언의 몸을 치유할 수 없었다. 브라이언은 어떤 식이든 우리는 다시 만나지 못할 운명이라며 처절한 삶을 마무리했다.


그로리아의 몸은 팔과 다리의 죽지부터 관절부까지의 위쪽 부분만 남긴 채 그 아래를 우각의 목발로 대체되었다. 코에는 뚜레가 끼어 식별표를 귀에 붙인 모습은 정진정명 인축 그 자체였다. 고통과 쾌감이 주어질 때마다 착유 설비의 내부가 물발로 요동쳤다. 위르마도 사정은 마찬가지. 오히려 더 잔혹했다. 인간의 언어를 잃고 돼지 목발을 한 채 꼬리와 연동된 기기를 끼워진 위르마. 탁액이 흘러내린 사료 그릇만 탐하는 텅 빈 존재가 되었다. 각각 임월에 임박해 복부를 불려 요저의 새끼를 품은 그 모습에 투쟁심과 지성의 편린은 온데간데없었다. 그 영락한 모습을 지켜보는 캐롤은 아연함을 숨길 길이 없었다.

모니터를 들이민 산디는 결국 "마녀"의 최후란 저런 것. 자신을 대신할 또 다른 '자신'을 낳은 뒤 폐기처분되는 그뿐인 존재라고 말한다. 탄생 이후의 기억을 모두 계승한 "마녀" 산디. 그것은 유일 최후를 맞은 적 없는 특수한 역할의 "마녀"임을 뜻했다. 캐롤은 절대로 부서지지 않을 것 같은 얼마 전까지의 위르마의 모습을 기억했다. 산디는 "마녀"의 진실을 한 치의 거짓 없이 알려주기만 한 것으로도 무너졌다며, 오히려 새로운 '역할'을 부여한 것으로 존재의 지속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고 자평했다. 캐롤의 몸도 수많은 유린이 가해졌지만 뚜렷한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고통은 고통. 쾌감은 쾌감일 뿐이며 츠누가를 향한 마음 자체를 꺾을 수는 없었다. 산디는 아직도 부서지지 않은 캐롤을 무너뜨리기 위해 동료라 불렸던 인축의 모습을 들이밀기를 주저치 않고, 요저를 통한 고통과 열락의 고문을 끝없이 병행하였다.


아리손은 숲속에서 츠누가를 찾아냈다. 츠누가는 아리손으로부터 캐롤의 행방을 비롯한 상황을 전해 들었다. 아리손은 늘 했던 것처럼, 그리고 지금의 죄악감을 덜기 위해 츠누가의 다리를 껴안았으나 본능적인 공포와 거부감을 느끼고 뒤로 물러났다. 츠누가의 모습은 이전과 다를 게 없었지만 아리손은 그에게서 요저의 기색과 같은 무언가를 느꼈다. 다만 둘은 동행하여 목적지로 향했다.

그로리아와 바렌티노스의 폭풍이 불어닥친 '슬럼 빌딩'. 여기저기에 시체가 널리고 외부의 침입을 막는 기제는 찾아볼 수 없는 형편. 둘은 혼란의 와중에 있는 빌딩 내부에 잠입했다. 이윽고 방비역의 아이린과 맞부딪혔다. "마녀"와의 전투를 위해 츠누가는 건물 내부의 방에 들어가 자신을 미끼로 삼고 아리손을 문 뒤에 대기시켜 기회를 노렸다. 아이린은 힘만을 믿고 날뛰는 타입의 "마녀"가 아니었다. 츠누가의 계략을 간파한 아이린은 뒤편의 아리손을 직접 시인하지도 않은 채 검을 휘둘러 아리손의 다리를 모두 절단했다. 무력화된 아리손을 남기고 아이린은 츠누가에게 맹공을 가했다.

츠누가는 간단히 아이린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절단된 오른팔로부터 기괴한 재생이 시작되었다. 고통에 찬 츠누가는 냉정과 이성을 모두 잃고 절규를 발했다. 곧 요저의 본능은 츠누가의 신체를 침식했고, 아이린은 츠누가의 이상을 느꼈으나 요저의 공포에 넋을 잃고 사지를 붙잡혔다. 아이린은 공포를 느끼면서도 완강히 거부했지만, 요저의 본능에 따르는 츠누가는 가혹함을 담아 아이린의 신체를 꿰뚫고 뒤틀었다. 숨이 멎어가는 아이린은 죽기 싫다고 외쳤다. 그런 끝에서, 아이린의 안의 목소리는 토우코와 테레이제를 찾으며, 이제 죽을 수 있다며 우리 모두가 죽음을 맞을 수 있는지 흐느끼며 신체의 절명과 함께 사라졌다.

아리손은 참상의 장면을 목격했다. 츠누가는 요저의 지각으로부터 되돌아왔지만, 아리손은 다음은 자기 차례일 거라는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도망치고 말았다. 겁먹은 토끼처럼 도망가는 아리손의 등을 츠누가는 무언으로 전송했다. 부상을 입고 그 자리를 요저로 채워지는 불가역적인 변화를 자각하면서도 츠누가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를 더 중요히 여겼다. 분명 시몬을 매장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였을 텐데, 문득 눈치채면 다른 목적을 위해 행동하고 있었다. 그 남자를 살려둘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그런 기묘함에 자조의 웃음을 흘릴 여유를 아직은 가지고 있었다.




바렌티노스는 이단심문관으로서 주어진 자신의 의무를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 교의가 구가하는 이상으로서의 인류애. 현실로서 그 편린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의 실상. 쌍방의 거대한 모순마저도. 이의를 주장하고 모순을 논하면 무력을 행사해 묻어왔다. 그 행동이야말로 폭력에 의해 처형된 성자를 신체(神体)로 한, 지고하며 야만스러운 교의의 진수라고 믿었으므로. 희생자의 피로 쓰인 교의사가 그것을 증명했다.

그렇기에 그 주먹에는 신의 비적이 머물렀다. 세계를 움직이는 인과율의 정체, 그것이 피와 폭력임을 인정한 신앙자만이 그것을 받았다. 이 권능이야말로 교의의 모순을 파괴하기 위한 절대 성전(聖典)이자 종교 병장이기에.

츠누가와 대치한 바렌티노스. 바렌티노스는 츠누가에게 스스로가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 물었다. 이미 인간의 자취는 거의 남지 않은 모습으로 자신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츠누가. 무엇이 인간과 그 이외를 나누는지도 모른다. 다만 목적을 위해 나아갈 뿐. 기다리고 있는 여자를 향해, 이름 모를 여신을 향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도착한다.

츠누가는 돌진했다. 두 다리, 두 개 이상의 다리는 수십 개의 촉수가 보조다리로서 가속력을 주어 그 어떤 짐승보다 빨랐다.

바렌티노스는 부동자세로 요한묵시록 9장을 읊었다. '제5의 천사 나팔을 불고, 나, 한 개의 별이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것을 보거나.' '…연기의 안으로부터 황(蝗)이 지상에 나와, 땅의 전갈이 가진 힘이 주어져, 땅의 풀 전부와 푸른 것 곧 전부와 모든 수목을 해하지 말고, 이마에 신의 인(印)이 없는 사람만을 해칠 것을 명령받았거나.' '이 황의 왕이 있어. 바닥없는 나락(곳)의 심부름꾼으로서, 이름을 히브리어로 아바돈이라 읽고, 그리스어로 아포루온이라 부른다.'

메뚜기의 군세가 츠누가를 덮쳤다. 가공할 회복력의 요저의 신체도 압도적인 숫자의 황충에 뜯어먹히며 붕괴해 갔다. 바렌티노스를 당황케한 변화는 츠누가의 고뇌에 찬 신음과 함께 터져 나왔다. 요저의 가닥은 무수히 많은 입을 만들어내 이빨을 드러내어 황충을 모조리 잡아먹으며 상쇄해 그 몸집을 불려갔다. 바렌티노스는 격정에 찬 근육을 진동하며 사사기 15장, 천 명을 죽인 삼손의 파괴와 살육의 사적(事蹟)을 몸에 현현시켰다.

바렌티노스는 우리의 신을 의심하는 자는 대체로 같은 말을 한다며, 신이 전능하다면 왜 적이 되는 악마가 있는지, 왜 인류가 적과 아군으로 싸우는 전란이 끊이지 않는지 폭력의 희열을 느끼며 자답했다. '적'의 존재야말로 우리가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한 신의 자비. 만약 '적'이 없으면 이웃, 동포, 가족, 친구--심지어 구세주까지 죽인 인간의 본성은 곧 마음이 통하는 인간들까지도 성난 이를 들이댈 것이라고.

그러므로 인간이 아닌, 마음이 통하지 않는 절대의 '적'이 필요하다. 이도교, 이인종, 이민족. 그리고 지금의 자신에게 있어서 츠누가와 같은. 바렌티노스는 넘쳐나온 오장육부와 튀어나온 늑골, 살점을 무수한 구더기들이 이으며 불굴의 생명력을 불태우는 츠누가를 보고 아연키는커녕 넘치는 희열을 분출했다. 바렌티노스의 팔은 츠누가의 어깻죽지를 찢고 상반신을 갈라 양단했다. 츠누가는 인외의 성대를 긁어 절규를 울리며 바닥에 이물과 선혈을 튀기며 흩어졌다.

바렌티노스는 최후의 성구를 외웠다. '사법(邪法)의 짐승, 그 이마 혹은 손에 그 인을 받은 자 있다면, 필시 신의 노여움은 잔을 채우고, 불과 유황으로 인해 고통받아야만 할지니.' 황린(黄燐)의 불길이 쌍권과 함께 강타한다. 불길이 세포 하나하나를 불살라, 연소가 재생을 압도하여 더는 일어설 수도 없이 괴성과 함께 타오를 뿐인 츠누가 쇼고였던 잔재.

재로 변할 때까지 영영 꺼지지 않을 불길. 그것만이 명백할 터인데, 바렌티노스의 눈은 착각을 용납하지 않았다.

아이의 모습. 불길은 다섯 개의 손가락의 형상에 의해 지워져 갔다. 괴물을 지키려는 듯, 어두운 피부를 한 이도교의 어린아이는 그것에 다가붙었다. 바렌티노스는 이교의 악령의 방해에 노여움을 참지 못하며 무구한 눈동자에 아랑곳없이 신위(神威)를 머금은 일격을 가하려 했다.

이번에야말로, 바렌티노스는 경악에 몸이 얼어붙었다. 직진하는 강권의 행방을 가리듯, 새로운 잔상이 피어오른다. 몸을 감싼 가톨릭의 검은 수도복과 가슴팍에 빛나는 십자가가 바렌티노스의 정신을 강렬하게 때려눕혔다. 죽은 수녀 역시 아이와 함께 괴물을 감싸고 있었으므로. 이 존재를 멸하는 것은 허락할 수 없다고 투명한 시선이 고하고 있었다. 눈동자에 깃든 신앙의 빛이 진짜이기에 바렌티노스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바렌티노스는 신을 시중드는 영혼이 어째서 그 괴물을 지키는지 외쳤다. '적'으로서 가로막은 십자가의 문장에 대한 처신을 고민하던 그는, 인식을 조정해 이단으로 간주하여 재판하기로 결의했다. 그러나 바렌티노스는 비지땀을 흘리며 신음을 토했다. 죽은 수녀의 신앙이 한 치의 흐림도 없다는 것을 신도로서의 직감이 이해했기 때문이다.

악몽과 같은 이율배반의 작태에 바렌티노스는 고뇌한다. 멸해야 할 신의 '적'과, 사이에 가로막고 선 신앙의 십자가. 강철의 신념을 지닌 이단심문관의 세계에 처음으로 부조리가 생겨났다. 머뭇거리는 사이에 이형은 부정불굴의 생명력으로 부활을 이루고 있었다. 신앙의 절대성이 요동친 바렌티노스는 신의 사도가 아니라 한 사람의 평범한 남자로서 눈앞의 괴물에 공포를 느끼고 말았다.

그저 인정할 수 없다는 일념만으로, 바렌티노스는 맹목의 분노로 주먹을 달구어 성구를 입술에 담아 단련한 육체를 돌진했다. 성스러운 십자를 진 이가 자신을 막는다면 그조차도 밟고 나아갈 뿐이라며. 성명(聖名)을 찬송하며 포효하는 절규와 함께 이형과 성사쌍극(聖邪双極)의 주먹은 정면으로 충돌했다. 숙적의 섬멸을 희구한 필사의 의사와 파괴력을 실은 타격. 피아의 한편은 무르게도 부서져, 산산이 부서진 뼈와 액상화한 고기토막을 세차게 사방으로 흩트렸다.

숨을 깊게 들이쉰 바렌티노스는 눈앞의 광경에 당목했다. 부서지는 육체의 고통보다, 패배의 무념에 대해. 이형의 철퇴에 부서진 것은 주먹뿐만 아니라 바렌티노스라는 남자의 신앙이었다. 신을 위해 사사로움을 버렸던 존재의 모든 것이 독신(涜神)의 사법을 앞에 두고 쓰러졌다.

신의 이름 아래, '적'을 쳐부수는 자신의 정당성. 그것을 어디까지도 믿어 머무는 초상의 비적은 이미 주먹으로부터 사라졌다. 자신이 받드는 십자가를 공격한다는 모순을 두고, 그 왜곡을 무시하는 것은 바렌티노스의 지성과 생애의 불범을 관철하는 순결의 맹세가 용납하지 않았다. 이단심문관 바렌티노스는 지켜야 할 규범을 잃었어도 구더기로 떨어지지는 못한 채 인간으로서 패배했다.

그리하여 신이여, 저를 내버리시나이까--(에리 에리 레마 사박타니). 가상(架上)의 성자가 숨지기 전에 중얼거렸다는 원망의 주언을 흘린 채, 반신이 사라진 흑의의 거체는 피바다에 가라앉았다.


"마녀" 아리손과 이고우는 계단을 통해 38층까지 도달했다. 40층까지 연결된 엘리베이터도 발견했지만 만일을 기해 사용하지 않았다. 이고우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무수한 시체를 보아왔으나 이토록 처참한 파괴는 본 적이 없다며 상처의 원인을 파악하는 이고우. 그의 기색을 느꼈는지 흑단색의 눈시울이 조금 열렸다.

'이 앞으로 가는지. 무엇을 목표로 하는가.' 이고우는 추상적인 말에 당황하면서도, 돕지 않으면 안 되는 녀석이 있다며, 어떤 일을 해서라도 가야만 한다고 돌려주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가야 하는지.' 이고우는 아들이 있다면 그 녀석처럼 기르고 싶었다고, 그를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기꺼이 죽어줄 수 있다고 재차 전했다. 빈사의 이단심문관은 깊은 한숨을 토했다. 거기에 머무는 후회와 같은 무언가를 이고우는 같은 씁쓸함을 가진 남자로서 깨달았다.

이고우는 그에게 하다 남긴 일이 있지 않으냐며, 유언이 있으면 들어주겠다고 말했다. 그에게 유언은 없었다. 평생 이 길밖에 선택할 수 없으니까, 결과도 마찬가지일 테므로. 다만 마지막 힘으로 품에서 9밀리 구경의 탄환을 꺼내 떨구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너도 그 괴물과 같은 길을 갈지. 이윽고 그 숨이 멎었다.


'다음'의 유체를 출산한 그로리아와 위르마. 그로리아의 비어버린 그릇은 '슬럼 빌딩' 41층으로 이송되어 여전히 희희낙락한 관람객들을 동반한 이벤트에 동원되었다. 금지된 약물, 아무리 닦아내도 지워지지 않는 거듭된 피의 향취. 이고우는 이런 광경을 처음으로 목도했다. "마녀"는 저항할 기색도 없이 강철의 롤러 사이에 끼여 고장 난 비명 레코드가 되었다.

감정 없는 압착 기계는 작동을 개시해 시간을 들여 다리부터 복부까지 피부를 늘리고 갈라져 지방이 터져 나오고 뼈가 부서져 경단이나 소시지로 비유되는 처절한 모멸을 겪고 있었다. 압사, 질식사 등 다양한 죽음으로 청중들의 고간을 만족시킬 뿐인 비참한 인형. 흉부의 한계점까지 올라간 롤러는 하강하며 다시 승강을 대비했다. 생식용 체액과 요저 세포의 혼합물은 "마녀"의 재생 능력을 극대화해 유일한 탈출구인 죽음마저 가로막았다.

갖은 것이 으깨지는 소리. 구토하는 소리. 울음을 흘리는 소리. 자신의 자랑이던 그로리아가 부서지는 모습을 본 아리손. 이별의 때로부터 멀지도 않았는데, 한심하게 자비를 청하는 비명을 울리는 그로리아에게 한순간, 아리손은 실망--이 아닌 소중한 스승의 '적'에 대한 분노를 느꼈다.

처음으로 느낀 분노의 감정. 용기보다 격렬하고, 정의보다 강력한, 인간의 행동을 이끄는 고열량의 화기. 증오와 살의가 아리손에게 싸워야 할 정당한 이유를 주었다. 목을 찌르는 절규의 아픔에 자기를 해방하는 쾌감마저 느꼈다. '철혈의 첨인'의 난무. 무장한 요원들은 군중 사이의 분란을 제지할 정도의 화력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을 지켜줄 아군의 "마녀" 같은 건 더는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약체화하지 않은 만전의 "마녀"의 무력 앞에서 저항은 무의미했다.

외부에 비상사태를 타전하려는 인원을 이고우가 제지해, 글록 17의 인철을 짜넣어 자신의 몫을 챙겼다. 그 사이 장내에는 전격적인 살육이 휘몰아쳐 용서 없는 귀신의 형상만을 남기고 있었다. 아리손은 빈사의 그로리아를 구해내 안았다. 육체는 치유될 터였지만 그로리아의 정신은 이미 한계에 달해있었다.

또 한 사람의 자신을 만들어낸 "마녀"의 자아는 시간에 따라 소실한다. 그에 비례해 다음 세대의 '자신'이 눈을 뜬다. 그렇게 "마녀"는 인간의 지혜를 넘은 교대를 완수하지만 계승되지 못하고 소실하는 것도 있다. 한심한 모습을 보인 것에 미안해하는 그로리아. 이름이 불려진 데에 기뻐하는 아리손을 향해 그로리아는 고개를 옆으로 지었다. 아직은 너를 기억해낼 수 있지만, 곧 잊게 될 것이라며. 이어지지 못하고 소실되는 것은 기억. 만난 사람, 경험한 것. 그런 기억은 개개의 육체에 한정된다. 데이터를 보존할 수 없이 교체되어 사라질 뿐인 단말처럼.

기억이 사라지는 때가 바로 자신의 죽음. 남는 것은 비어버린 고기의 덩어리. 자신과 같은 얼굴을 한 "나"를 만났다고 해도, 그것은 아리손, 네가 알고 있는 "마녀" 그로리아가 아님을. 너에게 있어서의 그로리아는 지금 여기에만 있음을. 아리손은 자신의 스승은 스승뿐이라며 울먹였다.

그로리아는 아리손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했다. 아리손을 기억하는 자신으로 있을 수 있을 때, 끝내 달라고. 눈물을 흘리는 아리손에게 그로리아는 어디까지나 상냥했다. 할 수 있다는 아리손에게 그로리아는 자신보다 훨씬 강해졌다고 말했다. 눈을 감은 그로리아의 뺨에 아리손은 살그머니 입맞춤을 했다.

잘 자요. 스승님.

칼날은 지극히 적은 고통을 줄 것도 없이 목적에 달했다.

그리고, 발소리에 고개를 돌린 이고우의 입가가 이완해 담배를 떨구었다. 다가온 "마녀"를 아리손의 칼날이 통과해, 그 말이 채 닿기도 전에 머리와 동체를 분리했다. 반복되는 "마녀"의 윤회가 하나 끊어졌다.

아리손은 이고우에게 츠누가의 곁에 갈 수 없게 되었다며 사과했다. 스승과 같이 붙잡힌 동료를 돕고 싶은 마음, 거리에 있는 동료들에게 "마녀"의 비밀을 알려야 하는 사명. 그리고 여기 있는 나쁜 녀석들을 모조리 해치우러 돌아오기 위해. 이고우는 "마녀"의 존재나 비밀에 대해 자세하진 않았지만, 어른스러워진 표정의 아리손의 결의만은 이해했다. 자신이 하기로 결정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다만, 어중간하게 하지는 않도록. 이고우는 마지막으로 전했다.

아리손은 이고우에게 쇼고 오빠를 부탁했다. 둘은 악수를 주고받은 뒤, 한 사람의 남자와 한 사람의 "마녀"는 각각의 길로 헤어져 걸어갔다.


언젠가부터 창문을 통해 세계를 보는 자신을 느꼈다. "마녀"라는 창문 너머의 세계는 매우 어둡고, 위험하고, 악의가 입을 벌리고 있었지만 망설이는 일은 없었다. 가야 할 길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그'는 반드시 이 거리에 돌아온다. '그'를 만나는 것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 이름조차 모르는 자신은 그것만을 이해하고 있었다.

무엇을 하면 좋을지는 몰랐다. 그러니까, 싸우기 위해서 모든 것을 내던지는 '그'의 무기가 되어 도구가 되었다. 다가가기 위해서라면 어떤 아픔도 견뎌낼 자신도 있었다. 망설임은 없다는 것. 세상을 살아가는 단 하나의 단서.

그러니까, 문을 억지로 열고 나타난 것이 누구인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비록 그것이 변해버린 이형의 모습이었다고 해도.

힘을 잃은 가냘픈 신체는, 그것만으로도 저항의 9할을 빼앗긴다. 피부가 울혈되어, 늑골이 격통과 함께 삐걱거림을 울려 몇 대 접힌다. 하지만 이상하게 공포만은 없었다. 무서운 요저의 촉수로 전신의 틈을 탐해져 부서지려고 하는데도. 캐롤 자신에게도 그 의미는 왜일까 모른다. 다만, 괜찮다고 무의식의 어둑한 바닥에서 '누군가'가 속삭이고 있었다. 여기서 죽는다고 해도 잃어버릴 것은 없다며.

츠누가 쇼고였던 존재는 인간으로부터 완전히 이탈했다. 기형적으로 융기한 근육과 밀집한 무수한 촉수. 끝없는 기아를 상징하는 거대한 입. 눈과 귀는 사라져, 전두엽에 스친 잔상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찬연히 빛나는 여신이며 어머니이며 여행의 끝 성지. 캐롤의 핏줄과 힘줄이 뼈로부터 분리되고 부드러운 안구가 물결쳤다. 귀와 손가락 조각이 흘러내렸으나 괴물은 한 조각도 남기지 않았다. 뼈와 머리칼마저도 늘어선 송곳니가 씹어 삼켰다.

'슬럼 빌딩' 최상층에 최후의 순례자가 당도했다. 이고우는 형언할 수 없는 괴물을 향해 반사적으로 글록을 뽑아 발포했다. 탄창은 바닥을 드러내었으나 괴물에게 상처하나 남기지 못했다. 사고가 미친 것은 그 탄환. 슬라이드가 후퇴해 내부가 개방되어 수동으로 탄환을 넣어 슬라이드 스톱을 해제했다.

그것이 바티칸의 암흑 아래에서 단조된 성유물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고, 떠올려야 할 순간도 아니었다. 괴물은 쓰러지고 요저의 세포는 사멸을 시작했다.

이고우는 총을 내던져 무아지경으로 달려들었다. 츠누가는 신음하여 옛 상사에게 허약한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라며, 소중한 사람을 이 손으로 죽여 삼켜버렸다는 무서운 꿈을 보았다고. 꿈이라서 정말 다행이라며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브라이언과의 사투에서 죽음이 확정된 육체는 잠식한 요저 조직으로 이어온 임시 생명 활동을 멈추었다.

츠누가의 표정은 고뇌하는 이고우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온화했다. 그를 돕기 위해 왔던 이고우는 몸에서 힘이 빠졌다. 도상에서 횡사해버린 츠누가의 죽음. 이고우의 시선에서, 7년 전의 사건을 획책한 자들을 단죄하지도 못한 지금의 결말은 개죽음일 뿐이었다.

어느새 츠누가의 망해는 통곡하는 이고우의 품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무명의 마녀"는 츠누가 쇼고와 "마녀" 캐롤의 기구한 여로를 지켜보았다. 서로를 생각해 최악의 결말을 맞은 그 운명. 마녀는 마음속으로부터 연민을 표하면서도, 연기투의 어조로 일우의 희열을 표현하기를 주저치 않았다. 그를 계속 지켜봐 온 보람이 있었다. 츠누가와 캐롤이 만난 '우연'에 마녀는 건배를 올렸다.

심연의 소우주로부터 측량할 수 없는 인간의 정신 활동을 마도의 예지와 술리(術理)로 가시화하여 작용하는 힘으로 바꾼다. 우주의 법칙을 고쳐 쓰는 신에게도 닿을 위업. 모형 정원에서 몇 번이고 환생하는 26명의 "마녀"들의 되풀이되는 절망의 고통을 책형에 처박힌 자신의 몸에 회수했다.

이유도 모른 채 죽어버리는 "마녀"와는 달리, 인간적인 희망을 품었을 캐롤의 뒤집힌 절망은 마녀의 대망에 성취의 쐐기를 박기에 충분할 터였다. 줄곧 그를 생각하다가 그에게 죽임을 당한 그녀. 당신과 같은 비극은 아가페로 가득 찬 이상향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

마녀의 어전에 마지막 공물인 캐롤의 영혼이 피와 살을 입은 채로 떠올라 있었다. 그녀의 육신은 츠누가 쇼고의 육체를 심연으로 퍼내 다시 빚은 것이었다. 쌍방의 영혼은 명멸하며 동기를 시작했다.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 상정외의 사태에 마녀는 내부에 들어온 이물을 소거하려 했으나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자아가 있을 리 없는 잔류 사념의 망령은 아르스 마그나의 섬세한 톱니바퀴에 대한 모독이었다. 그렇기에, "마녀" 캐롤은 이전의 캐롤과는 다른 무언가라고 마녀는 깨달았다. 캐롤이라 불렸던 "마녀". 그리고 다른 누군가.

석류색의 눈동자가 뜨였다. 신의 자리를 찬탈하려는 자의 노여움에도 불구하고 캐롤은 말문을 이어갔다. 그것은 자신의 희망. 끌어안은 기도가 보답받은 축복의 노래. 결코 한탄이 아니었음을.


츠누가 쇼고는 선잠과 각성의 사이에서 유영하고 있었다. 태아를 감도는 양수와도 같이 모든 것을 긍정해주는 평온한 공간 안. 타인의 존재는 태어난 이후의 세계임을 짐작게 했다. 츠누가는 눈을 떠 예상했던 상대의 모습을 찾아냈다.

츠누가는 만남의 처음부터 상대가 자신의 앞에 나타날 만한 어떤 이유의 존재를 깨닫고 있었다. 캐롤은 수긍했다. 우연이 아니라, 스스로 츠누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과 함께.

7년간, 닫힌 인과의 고리로 츠누가가 돌아오기 전까지 모습을 취한 적이 없었던 캐롤. 츠누가는 캐롤의 대답에 놀라움을 가지지는 않았다. 그녀를 원해 하나가 된 것으로, 믿고 이해하는데에 무리는 없었다.

츠누가는 캐롤이 누구인지 가르쳐주기를 원했다. 츠누가가 걸어온 7년간의 유혈과 방황의 여로에 내려질 대답. 이미 알고 있었을, 츠누가의 뇌리에 스치던 악몽의 진상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의 신념이 무너져 인간으로서의 정신적 죽음을 맞이한 정경. 의식의 초점이 맞추어지고 피투성이의 얼굴이 드러났다. 츠누가는 이것이 7년 전의 진실된 기억임을 이해했다. 어떤 보정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안구가 비어 그림자가 진 소녀의 안와가 그를 올려다보며 찢어진 입술을 움직였다.

"■■■■■--" 그것은, 츠누가의 영혼에 새겨진 저주의 말.

"ありがとう--"

그녀는 확실히, 그렇게 고하고 있었다.

절망의 원망 같은 것이 아니라, 누구도 잘못 들을 리 없는 진심 어린 감사.

상처받고, 빼앗기고, 살아있으며 겪는 지옥 안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토우코의 기원에 누군가가 응했다. 생명이 끝나는 순간에, 자신이 믿고 싶었던 세상의, 인간의, 이상의 윤곽을 믿게 해준 누군가. 그것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구세주에게 바쳐진 말이었다.

어안이 벙벙한 츠누가. 자신이 알았던 것은 증오와 절망의 저주, 무력함과 지옥의 고통을 잡아 늘인 위선을 탓하는 단말마의 신음. 그런 있을 수 없는 착각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이 세상에 있는 예쁜 것, 아름다운 것. 그것을 거짓으로 만드는 건 언제나 우리 쪽. 그런 토우코의 말. 지옥의 안에서 절망에 물든 쪽은 츠누가 그 자신. 그의 내면이 들려준 목소리였다.

아름답고 바른 인간의 모습. 선의, 용기, 사랑, 상호이해. 그런 예쁜 것은, 그것을 믿을 수 있는 마음의 풍요로움을 가진 마음의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어둠에 가라앉은 인간에게는, 선의도 날붙이나 독으로서 닿아버린다. 그런 세상에 흔히 있는 어긋남 하나가, 츠누가에게도 일어났다는 이야기.

츠누가 쇼고는 누군가를 구했다. 그 지옥에서 누군가의 마음을 구했다. 겨우, 이 말을 전했다는 토우코.

츠누가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카네무라 토우코--캐롤의 구원임과 동시에, 고독한 살육자에 대한 보답. 터무니없는 지옥에 도전한 자신들의 투쟁은 무의미하지 않았다. 한 소녀가 품은 작고 아름다운 세상만은 지켜낼 수 있었다.


심연에 붙잡힌 사지 잃은 신체. 안면에 가시관을 둘러 피눈물을 떨구는 "무명의 마녀"의 본 모습은, 일그러진 얼굴에 노골적인 불쾌함을 숨기지 못했다. 그런 초라한 희망 따위 필요치 않다. 도대체 왜 멋대로 구하거나 구해지거나 하는 것인지. 구하는 것은 나라고 분명히 일렀는데.

자신의 절대애--아가페 만이, 의심할 혐의 한점 걸치지 않은 참된 지고의 인류애. 나머지는 뇌수가 분비하는 쾌감 물질에 만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성욕의 미화, 자가중독에 빠진 주정꾼의 착각.

"무명의 마녀"는 7년에 걸쳐 축적된 몇십만의 죽음의 고통과 굴욕, 비탄을 '회수용 그릇'에 역류시켰다. 그것은 설령, 일부라 할지라도 초인인 마녀 이외의 자가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일부를 직격한 것만으로도 목이 꺾이고, 흉부가 조각나, 보이지 않는 불길은 내장을 구워 몸의 틈새로 증기를 발한다. 팔다리조차 온전함을 잃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현격한 축척의 규모로 비화한 응축된 절망은, 보통의 인간이 품은 희망 따위는 덮어버리고도 셀 수 없는 남음이 있었다.

캐롤의 전신에 무수한 상처가 달리며 견딜 수 없는 출혈로 울컥거렸다. 언어를 초월한 격통과 악의가 그 영혼을 유린하고 지워 날려 보낸다. 마녀 본인이 몸에 받아내온, 이것의 몇만을 곱한 부정의 힘은 그녀가 가진 진실된 초인적 정신력의 무서움을 증명하고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 예수가 그 허물로 살해당했음을 알라며 마녀는 분수를 운운했다. 인지와 천리의 가장 깊은 곳을 탐구한 현인신이자, 세계에 왕으로서 군림하는 권능을 갖기에 부족함이 없는 존재로서.

그렇기에, 여기서 왕을 찌르는 것은 옥좌 뒤에 숨은 어릿광대의 역이었다.


이단심문관에게 무저항인 채 쓰러졌던 시몬. 죽음을 맞이하기 전, 미리 몸에 베풀어진 법술과 의식의 갖가지는 "마녀"들과 같이 혼백이 되어 최후의 마녀와 융합하는 목적을 완수했다. 물질세계의 육체 따위 더는 필요치도 않았기에 버렸을 뿐.

이레귤러인 "마녀" 캐롤의 존재와 반역은, 완전무결한 세계에 구멍을 뚫어 시몬의 침입을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도,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을 거라는 점을 지적하며 시몬은 자조의 쓴웃음을 띄웠다.

장미의 가시관을 쓴 소녀는 혼백화한 시몬에게 물리적으로 구속되었다. 반역이라 외치며 분노하는 팔다리 없는 형상에게, 시몬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답했다. 그저 세상의 끝까지 함께 있고 싶을 뿐. 그런 시몬을, 마녀는 불가해한 미친 자 보듯 내려다봤다. 무엇을 위해서? 시몬은 그녀가 말했던 뇌의 착각이라 받아쳤다. 오십 년이나 깨어주지 않는 중증 중독이라고. 마녀의 시선에 처음으로 공포의 색이 떠올랐다.

더럽다. 무섭다. 기분 나쁘다. 온몸과 영혼을 다해 거절의 의사를 떨치지만, 심연이라는 마술적 공간에 스스로 고정한 마녀에게 탈출은 불가능하다. 혼백인 장미의 소녀상을 억제당하는 한 물질세계로 돌아갈 수도 없다.

시몬은 모든 비원을 성취했다. 그 표정에는 환희가 아니라, 단념의 적막이 떠올라 있었다. 한 사람의 남자로서 받아들여 주었으면 했던 벌거숭이의 남자. 그것이 영원히 무리라고 한다면, 단념해야 좋으냐며. 시몬은 코웃음 친 뒤 분노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 단념을 할 수가 없다고. 구질구질한 꼴불견의 기분을 사랑이란 예쁜 말로 포장할 생각은 없다고. 제멋대로의 욕망일 뿐. 그것을 알고서 저지른 일.

거기 누나, 아니 두 분인가? 시몬은 캐롤에게 흥미 얇은 시선을 떨어뜨렸다. 지금부터 여기는 내가 닫는다. 영원히. 나와 스승이 오붓하게 지낼 테니, 다 나가 주시라고.

배신자. 망은의 패거리. 온갖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미친 듯이 절규하는 마녀. 그러나, 이 상황이 역전되는 일은 없다. 절대 깨어지지 않을 마도는 법리로서 견고하기에, 규칙을 넘어 장군을 뒤집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중년의 남자는 내가 나빴네. 다 물거품으로 만들어서. 라며 소년의 주절거림을 늘어놓았다. 그 뇌리에 스치는 것은 내일 없는 나날을 보낸 빈곤과 부패의 고향 풍경. 색채 없는 닫힌 세계. 나타난 그녀가 말하는 기개가 장대한 야망은 소년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태양만을 옆에서 보고 있자면 그 밖에 보이지 않게 된다며. 남자는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을 교환해, 한 마리의 구더기로 전락할 어두운 각오만이 남았다.


캐롤은 이별의 순간이 왔음을 느끼고 있었다.

최후의 마녀에 의해 재구성된 육체라는 그릇은 하나뿐. 그러나, 그곳에 깃든 영혼은 둘이었다. 사라지는 쪽은 자신. 스스로 사라지기를 바라는 츠누가의 영혼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너도 알 거라며. 캐롤은 수긍해 복부에 싹트기 시작한 기색에 의식을 폈다. 아직 혼백을 아우르는 하나의 생명으로 부를 수는 없지만, 츠누가와의 사이에서 탄생한 결정임은 틀림없었다.

당신의 아이가, 여기에 있어. | 그 말 대로다. 그럼, 부탁한다.

침묵한 캐롤. 어느 때보다 당황한 듯한 츠누가의 반응은 불만인 듯한 캐롤의 안색을 살폈기 때문인가. 끝까지 필요한 말만 하는 그에게, 캐롤은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눈물을 견디는 듯한 목소리와 표정. 그 강한 감정은 츠누가가 모르는 캐롤의 것이었다. 붙여 넣어진 토우코의 기억뿐만이 아니라. 그와 함께 싸우면서, 그를 위해 살다가 죽을 것을 진심으로 생각했음을. 쇼고를 사랑하고 있다고.

츠누가는 끝까지 사랑이란 말을 입에 담지는 않았다. 다만, 마천의 심연으로 떠난 두 사람을 보며 느낀 것을 이야기했다. 추악하리만큼 드러난 시몬의 아욕과 망집. 전능자로서 사심 없는 마녀의 인류적 박애. 세상에 마지막에 남는 것은 말보다도, 강한 사념을 실은 행위. 고결한 이상도 단순한 욕망에 져버린 것처럼. 그가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그녀에게 무엇을 느껴왔는지는, 그의 발자국이 알려줄 것이다. 몇 년이 걸리더라도. 언제라도. 말을 끊고, 츠누가는 파트너의 얼굴을 곧바로 바라보았다. 정말로 말해야만 하는 것이 남아 있었다.

네가 없었다면, 나는 끝까지 싸워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여기까지 도착할 수 없었다. 캐롤. 너는, 이 세상에서 찾아낸 나의 반신이었다.

말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자신은 분명, 그것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캐롤은 생각했다. 말없이 흘러가는 남겨진 시간 속에서, 남자와 여자는 영원한 이별을 했다. 적멸의 여운을 곱씹으며, 일찍이 츠누가 쇼고라는 남자가 살았던 세계에 캐롤은 홀로 귀환한다.


한때 관동사법가로 불린 무법지대는, 그 후 수년을 거쳐 일본 국토에 복귀했다.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직접적인 것은 상공에 펼쳐져 있던 심연이라 불린 이공간 및, "재화의 마녀"라 칭해지던 초상적 존재의 소실이다.

현대 병기를 치아 하나 박히지 않는 무력을 자랑하던 여성형 재해들은, 그것이 찾아온 심연 저편으로 돌아갔다고 여겨진다. 한편으로는, 요저라 불린 괴생물은 그 후에도 출몰이 확인되어 주변 피해가 보고되었다. 이전과는 달리, 구 사법가를 중심으로 한 일정 범위의 밖에도 이동이 가능하게 된 모양이다.

그 사실로부터, 그 요저와 대등한 존재였던 "마녀"들은 과연 심연으로 돌아간 것이 맞는지에 관한 논의가 오가게 된다. 그것은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마녀"들은 떠나지 않고, 이 세계에 남아있었다. 세계 각지의 분쟁지역에, 가장 어린 외모를 가진 개체에 이끌린 "재화의 마녀" 집단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그녀들의 목적은 당초 불명이었지만, 반드시 쌍방의 군세를 평등하게 괴멸시키는 것, 리더격의 개체의 반복된 발언으로부터, 아무래도 "마녀"에 의한 무력 개입으로 '세계를 평화롭게' 하는 것이 이념인 것 같다. 다만 그 행동양식과 '결정 대사'를 통해, 재패니메이션의 강한 영향이 느껴진다고 하는 분석 결과가 지식 계층에게서 나오고 있다.

현실 세계의 정치정세를 일절 고려하지 않은 야만스럽고 유치한 행동 이념과 지상 최강의 무력과의 융합으로 인해, 그 존재는 각국 정상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관동사법가 이후의 세계가 직면한, 두려워해야 할 새로운 천재지변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계는 약간 소란스럽고 뒤숭숭해졌지만, 여전히 역사의 변화의 나날을 의연히 새겨 이어가고 있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 하나하나의, 삶과 함께.

이고우 노부타케는 신록의 계절을 맞아, '딸'과 '손자'를 태운 승용차를 북쪽으로 향했다. 도착한 앞은, 카죠우 현립 자연공원. 현지에 도착한 후에는, 백합꽃이 흐드러진 고지의 산들바람을 맞으며, 어느 장소를 향해 걷는다.

나무에 둘러싸인 숲의 안쪽. 전망이 좋은 초록의 초원에 가로놓인 비석은, 이고우 개인에 의한 기증품의 명목으로 놓인 미술품이라는 취급이었다. 그러나. 여기를 방문한 이고우와 그의 '딸'에게 있어서, 이것은 이름이 없는 묘비였다. 몇 번째 금연에 실패한 이고우는 변함없이 골초였지만, 옆의 '딸'이 안은 갓난아기 앞, 입이 심심함을 참고 있었다.

이고우 가의 양녀로서 일본 국적을 취득한 캐롤은, 이미 "마녀"는 아니다. 그 육체는 의학적으로, 완전한 인간임이 증명되었다. 그렇게 된 원인은, 어쩌면 심연에서 마녀에 의해 재탄(再誕)을 당했기 때문일 것이다. 잡아 먹히는 것으로 물질적으로 소멸한 캐롤의 육체는, 인간인 츠누가의 세포를 사용해 재구축 되었으니까.

일찍이 캐롤로 불린 아가씨는, 그 최후의 마녀가 꿈꾼 세계를 생각했다. 모든 것을 기도한 마녀가 몽상했던, 사랑의 세계. 계획이 무너진 이상, 그것은 결국 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세계는, 오늘도 비뚤어지고 불완전한 채. 마녀가 한탄한 것처럼, 사랑에 따라서 움직이지는 않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은, 사랑이라는 것의 실재를 믿을 수 있다. 두 가지의 사항에 의해. 캐롤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나는, 아직도 심연의 소우주를 방황하는 그 남녀의 존재였다. 진저리 처질 정도의 인간의 업으로 가득 찬, 그 결말. 저것은 틀림없이, 사랑이라고 하는 정신 활동이 사람을 내달리게 한끝에 이르는 하나의 북쪽 극점일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그것은 캐롤에게 있어, 무엇보다 자명한 증거였다. 팔 안에서 건강하게 숨소리를 내는, 사랑한 남자에게 받은 인생의 결정. 자는 그 얼굴보다 웅변하는 것은,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다.

지금은 아직 먼 초여름의 정취. 그것을 희미하게 옮기는 초록의 바람이, 부드럽고 덧없는 그 뺨을 어루만져 간다. 잎사귀 사이로 비치는 햇빛 아래 선잠의 그 꿈속까지 닿도록, 어머니의 입술이 부드러운 가락을 흥얼거려갔다. 그것은, 태어난 생명을 기리는 축복의 노래가 되어 세계에 흘러나왔다.

바람에 불려서. (風に吹かれ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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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연표 및 정리

||<table width=640><table align=center><width=85>1세기 초 ||책형의 성자 주 예수의 죽음으로 세계에 원망과 저주가 내림 ||

||<table width=640><table align=center><width=90>캐롤||카네무라 토우코 | [ruby(歌音邑,ruby=かねむら)] [ruby(瞳子,ruby=とうこ)] ||건축 디자이너 가정의 일본인 고교생 ||
그로리아 헤자 | ヘザー 병약한 미국인 소녀
위르마 안나 | アンナ 머리띠를 한 유대인 소녀
산디 테레이제 하이네만 | テレーゼ・ハイネマン 독일인 가톨릭 수녀
이자벨 사라 | サラ 안경을 착용한 미국인 소녀
아리손 리타 | リタ 모로코계 스페인인 19세 대학생
에드나 나타리야 | ナターリヤ 상원 의원 집안의 작은 루마니아인 소녀
아이린 나우라 | ナウラ 중동 일대 왕국의 공주
카라 메이요우 | [ruby(美友,ruby=メイヨウ)] 시계를 찬 중국계 소녀
무명의 마녀 얄다바오트 | Yaldabaoth 최후이자 유일의 진정한 마녀의 이명

||<table width=640><table align=center><width=130> 이름 ||<width=125> 피의 수확 ||<width=125> 재와 다이아몬드 || 비고 ||
츠누가 쇼고 X X
캐롤 더 위치 생존 생존
그로리아 더 위치 X X
위르마 더 위치 X 생존으로 추정 본편 기억 없음
마츠마루 세리카 X 생존
이고우 노부타케 불명 생존
산디 더 위치 X X
이자벨 더 위치 X X
아리손 더 위치 X 생존
에드나 더 위치 X 생존으로 추정 본편 기억 없음
아이린 더 위치 X X
카라 더 위치 X 생존으로 추정 본편 기억 없음
무명의 마녀 생존 생존 추방(재와 다이아몬드)
브라이언 막쿨 X X
시몬 X 생존 추방
바렌티노스 X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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