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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5:54:54

ASKA 마약 스캔들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개요2. 사건의 진행3. 재판 이후

1. 개요

CHAGE and ASKA의 멤버 ASKA(본명 미야자키 시게아키)가 마약 복용으로 물의를 빚은 사건.

2. 사건의 진행

2009년 해체 후 각자의 솔로 활동에 집중하던 차게아스는 2013년 새해 첫날 차게아스의 부활을 선언하고 8월에 부활 기념 콘서트를 개최할 것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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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게아스의 팬들은 당연히 일제히 축제 분위기에 빠졌다. 그리고 부활하게 된 이유로는 ASKA의 딸 카오루가 마쓰다의 CM송을 부르기도 하는 등 연예계 활동을 시작하자 도움을 주기 위해 결심한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하기도 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차게아스의 행보는 순풍에 돛을 단 듯했다.

그런데 그 즈음부터(더 정확히는 2011년 말부터) '주간 문춘[1] ', '주간 신초' 등의 주간지 위주로 '거물 아티스트 A가 마약을 하고 있다'는 찌라시성 기사가 돌기 시작했다. 연예계에 대해 조금의 상식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다들 알겠지만 워낙에 이런 류의 허황된 기사를 많이 써제끼던 동네라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겨왔었지만 2013년 경부터는 한층 더 자세해져서 앞서의 반복된 두루뭉술한 기사 대신 '국민적 히트곡을 낸 인기 그룹 출신의 거물 아티스트 A'라는 식으로 점점 더 노골적으로 기사가 나기 시작한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연예 소속사에서 강력한 대응이 나오는 것이 일반적인데 ASKA측은 전혀 대응을 하지 않았다.

동년 5월 11일 ASKA가 NHK의 'SONGS'에 출연하였다[2].

동년 6월 11일 ASKA가 의사로부터 일과성 뇌허혈증을 진단받았음을 발표하고 부활 기념 콘서트의 연기를 발표했다.

2013년 6월 15일 본인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부활 기념 콘서트의 연기를 발표하는 CHAGE.

이때까지만 해도 이 사건은 차게아스 본인들 입장에서 그냥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는 듯한 분위기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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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24일 '도쿄 스포츠' 제1면에 거물급 가수 X가 약물중독이라는 특종이 실렸다.

기사에 따르면 X는 초거물로 라는 내용과 더불어 실루엣까지 나왔다. 초기에는 일본 네티즌들 사이에서 호테이 토모야스 같은 가수들이 용의선상에 거론되었지만 네티즌 수사대는 이런 류의 기사에 항상 나오던 ' 홍백에도 출전한'이라는 구절이 빠져 있음을 근거로 ASKA라고 확신하기 시작했다[4].

이런 좋은 떡밥을 절대 놓칠 리 없는 것이 바로 일본의 주간지들. 8월 6일, 7일에 걸쳐 'Flash'와 '주간 문춘' 등의 주간지들이 일제히 실명으로 된 기사를 싣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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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도 백미는 역시 기사 제목을 아예 'シャブ[5]&飛鳥'(일본어 발음으로 샤부 앤 아스카)라고 뽑은 주간문춘. 약을 흡입하는 영상뿐 아니라 약에 취해 성관계를 하는 동영상까지 있다고 폭로하였고 이것을 빌미로 한 야쿠자, 그 중에서도 일본 최대의 폭력조직인 야마구치구미가 관련된 협박에 대해 ASKA는 '신고 하려면 해라. 그 정도는 해야 이 약을 끊을 수 있다.'고 했다고 기사를 실어 버렸다. 이런 상황에 거의 쐐기를 박는 기사가 나오게 된 것.[6]

그러자 스포츠신문들이 8월 9일에는 지난 6월 라이브가 연기된 것이 ASKA의 약물중독을 놓고 CHAGE와 주먹다짐까지 벌이며 일대난투를 벌였었던 것이 원인이었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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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로 예정된 라이브공연을 위한 연습에서 ASKA가 확실히 정상인 모습이 아닌 모습을 보이자 CHAGE가 라이브 연기를 제안했고 ASKA는 강행할 것을 주장했다. CHAGE는 ASKA가 계속해서 정신이 반쯤 나간 듯한 모습을 보이자 '적당히 해라, 이상한 짓 그만좀 해!'라고 화를 냈고 이에 격분한 ASKA가 홧김에 먼저 주먹을 날려 일대 난투가 벌어졌다고. 주변 사람들이 모두 붙어서야 뜯어 말릴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싸우고 나서 CHAGE가 '저런 상태로는 저 자식과는 도저히 같이 할 수 없다', '내가 언론에 깡그리 불어도 좋은거냐!' 라고까지 해서 완전히 두 사람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어지자 라이브의 연기가 불가피해졌다...라는 것이 기사의 내용. 그냥 보기에는 '에이 그걸 누가 믿어' 수준의 소설 같은 내용이지만 문제는 이 내용이 거의 같은 내용으로 복수의 주간지와 신문에 동시에 게재되면서 기정사실화되어 버렸다[7][8][9].

이렇게 급격하게 사태는 악화일로를 걸었고 여론은 이미 'ASKA = 약쟁이' 라는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져 버렸다. 참고로 이때까지도 ASKA와 소속사는 아무런 대응이나 공식적인 입장 발표등을 하지 않고 있던 상태였지만 오로지 스포츠신문과 주간지의 찌라시성 언론 보도만으로도 여론이 어떻게 움직여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듯. 언론과 ASKA의 그다지 좋지 않던 관계도 물론 한몫 단단히 했다.

거의 침묵을 지키던 ASKA가 언론에 최초로 대응한 것은 10월이 되어서였다. 10월 8일 '주간 문춘'과의 인터뷰에서는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각성제 복용 사실은 부인하고 대신 의료기관에서 안식향산 나트륨 카페인을 처방받은 적이 있다고 답하면서 그 입수 경로와 '음악관계자를 사칭했던 야쿠자와의 트러블'에 대해 일부 인정하는 인터뷰를 한다. 문제는 이 인터뷰가 소속사와의 상의가 없이 무단으로 이뤄진 것이어서 결국은 10월 10일 '세간에 물의를 일으킨 점과 사회적 책임의 중요성을 통감한다'는 이유로 소속사는 ASKA의 활동을 자숙하기로 발표한다.

이 인터뷰는 또 본의 아닌 곳으로도 불똥이 튀었는데 바로 그 인터뷰 중에 이런 말을 했다.
"약을 했다고 소문이 난 것에 대해 마음에 짚이는 곳이라면, '문춘'에서도 약물의혹 기사가 난 적이 있는 에이벡스의 사장 마츠우라군[10]. 그가 주최한 파티 등에 불려간 적이 있다보니 동료라고 생각되었는지 모르겠다. 마츠우라와 약물에 대해 얘기한 적은 없지만 그런 소문이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문제는 ASKA 본인의 아들과 딸이 모두 당시 에이벡스 소속 연예인이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에이벡스 측에서는 맹렬히 반발, 항의하였고 아들과 딸 모두 에이벡스에서 계약해지( 해고) 통보를 받게 되었다. 뒤늦게 ASKA의 소속사측에서 저 발언에 대한 사과문을 올렸지만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상태였다. 자녀를 발탁해 준 은인을 그야말로 제대로 뒷통수를 후려쳤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

일이 얼마나 커졌던지 한국 언론에서도 이런 기사가 뜰 정도였다. 보면 알겠지만 저 기사가 쓰여진 시기는 2013년 10월경이고 기사의 내용도 아스카의 혐의를 기정사실화한 것으로 보아 이 때부터 사태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한국에서는 차게아스의 인지도는 거의 없는 수준인지라 그냥 묻혔다. 만약 차게아스가 일반적인 유명 팝스타들마냥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있었다면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을 것이다.

12월 12일에는 결국 연기되어 있던 부활라이브 공연을 완전히 중지하게 됨을 발표하였다.

2014년 4월 29일 활동을 자숙하던 중에 개인적으로 관람하던 타마키 코지의 콘서트에서 뜬금없이 불려 올라가 'SAY YES'를 원코러스로 듀엣하였다. 전혀 본인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이로 인해 이후 타마키 코지도 넷상에서 마약법 위반에 대한 의심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5월 17일 드디어 '각성제취제법위반(소지)'의 혐의로 체포되었다. 혐의는 4월 6일, 4월 12일 미나토구의 맨션에서 각성제를 소지하고 있었던 것. 요는 이전의 약물 사용이 체포사유가 된 것이 아니라 활동 자숙 중에 그새를 못참고 또 약을 한 것이 체포 사유가 된 것. 일본 현지에서는 이로 인해 '이젠 돌이킬 수 없이 약물에 찌들었다.'라고 받아들여진 듯. 체포 당시 ASKA는 '폭력단 일원에게 받았으며 합법적 약물일 줄 알았다.'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이후 경시청에서의 소변 검사에서 각성제 양성반응이 나왔고 이후 자택 수색에서도 MDMA가 발견되며 빼박 약쟁이 확정.

당시 뉴스에는 CHAGE&ASKA의 명곡들이 흘러나왔는데 이것의 영향으로 SAY YES와 YAH YAH YAH같은 옛날 히트곡들이 아이튠즈에서 상위권에 올랐지만 이것이 사건이 터진 시점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5월 19일 ASKA 및 CHAGE & ASKA의 음악, 영상, 관련 상품이 모두 판매 중지 및 회수, 디지털 및 영상 자료의 온라인 배송이 정지되었다. 5월 20일에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집에서도 On Your Mark가 제외되었음이 발표되었다.

5월 23일 모발검사에서도 양성반응이 확정되자 그제서야 혐의를 인정햤다. 5월 25일에는 다시 자택과 소속사 사무실이 가택수색을 받았다. 그 이유가...

5월 27일 재체포되었다. 이번에는 5월 초반에 MDMA를 사용한 곳에 대한 혐의였던 것. 아주 일말의 희망을 갖고 있던 ASKA 팬들의 멘붕은 이미 한계치에 도달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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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5월 19일은 마침 Chage의 팬미팅이 후쿠오카에서 있었던 날로 이날 모여든 기자들 앞에서 '멤버로써 깊이 사과드리고 싶다. 대단히 죄송했습니다. 아직 제 자신도 정리가 되고 있지 않습니다. 일의 중대성이 아직 파악이 안됩니다. 대단히 폐를 끼쳤습니다.'라고 트레이드 마크인 모자를 25년만에 공식석상에서 벗으며 사죄하였다. ASKA에 대해서도 '자신을 소중히 여겨주기 바란다.'라고 코멘트.

6월 17일에 또 다시 체포되었다. 이번 혐의는 5월 17일 체포 당일 오전에 마약을 소지하고 있던 혐의다. 혐의가 좁혀지고 체포 절차가 진행되고 있던 그 순간조차 약물을 사용한 그야말로 중증의 약물중독임이 밝혀지며 '적당히 하고 치료 좀 시켜줘라'는 동정여론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6월 27일 ASKA 개인에 대해 소속사 '록담아티스츠'로부터도 해고통보되었다. 공식 팬클럽인 'TUG OF C&A'도 일시 활동 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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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일 보석되었다. 90도 인사로 사죄하며 마이크로도 잘 안
들릴 정도로 아주 작은 소리로 '죄송했습니다.'라고 하고 다시 한 번 가볍게 머리를 조아린 이 장면은 몇몇 게닌들에 의해 패러디되기도 하였을 정도로 완전히 조롱거리로 전락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후 차에 타 미리 타고 있던 가족에게 사죄하였다고 한다. 이후 약물 의존증에 대한 치료를 위해 치바의 치료 병동에 입원하게 된다. 당시 보석금은 700만엔. 이는 보석금의 액수를 대상자의 자산 정도에 따라 부과하는 일본의 형법을 감안할 때 그동안의 다른 마약 혐의의 연예인들에 비해서는 현저히 적은 금액[11]인데 이 이유가 약물의 구입을 위해 그동안 벌어두었던 그 많은 재산을 탕진해서였던 것이 밝혀지며 이젠 아예 금지어 취급을 받기 이르게 되었다. [12]

8월 28일 첫 공판이 열렸고 8월 31일 공식 팬클럽 'TUG OF C&A'가 활동 중지되며 그룹은 사실상의 해산의 길을 걷게 되어 이로써 36년간 많은 사랑을 받았던 CHAGE and ASKA의 역사는 그 막을 내렸다.

9월 17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구형받았다. 이후 폭력단과의 연계, 같이 흡입한 여성들과의 관계 등 수차례의 공판이 이루어지며 이미지는 그야말로 바닥을 치고 말았다. 치료 시설에서 12월 퇴원하였지만 야쿠자들의 보복이 두려워 도피생활을 하는 등 한때 대중의 주목을 받던 스타였던 것이 무색해질 정도의 비참한 생활을 이어가게 되었다.

3. 재판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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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KA가 대중들에게 거의 잊혀질 무렵이던 2015년 12월 22일 잡지 '여성자신'의 취재에서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엄청나게 체중이 불었고 이전 '50대의 왕자님'으로 불리울 정도로 말쑥했던 외모는 온데간데 없고 환갑을 훌쩍 넘겼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백발이 성성한 동네 아저씨가 되어 나타났다. 체중이 65킬로그램에서 80킬로그램까지 불었고 스트레스로 원형 탈모증까지 생겼다고. 오랜 친구인 CHAGE조차 재판 이후로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ASKA에 대한 언급을 일절 하지 않고 있기에 여전히 꿈도 희망도 없는 상황.[13] 그나마 부인의 헌신적인 내조 덕분에 조금씩 정상적인 삶을 찾고 있다는 아주 절망적이지만은 않은 기사였는데...

2016년 1월 9일 체포 이후 최초로 사건의 경위와 지금까지의 음악인생에 대한 회고록이 블로그에 갑자기 올라왔다[14]. 2만자의 장문으로 이루어진 이 글은 1. 서장 2. 런던 3. kicks 4. 위기와 기회 5. 대한민국 라이브 6. 리얼캐스트 해산 7. GHB 8. 착각 9. 이이지마 아이 10. 도청 도촬 11. 각성제 12. 음악관계자 13. 공갈 14. 주간문춘 15. 엑스터시 16. 체포 17. 재판 18. 메일 19. 후기 20. 추기 의 총 2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글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 처음으로 마약을 접했던 것은 1996년 ' MTV 언플러그드'를 촬영할 당시 스탭을 통해서 였다.
* 당시에는 호기심에 한번 해 본 정도였지만 이후 각성제를 사용하면 작업에 몰두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빠져들게 되었다.
* 그러던 중 우연히 만난 것처럼 가장한 '사이토 카즈오'라는 야쿠자의 권유로 다른 마약류를 접하게 되었고 이후 각성제 외에도 점점 더 큰 자극을 위해 여러가지 약물에 손을 대게 되었다.
* 2011년 주간 문춘에서 불륜이었다는 기사가 났던 ' 이이지마 아이(飯島愛)[15]와는 같은 야행성으로 이것저것 상담할 수 있었던 친구였을 뿐으로 '도청당하고 있다'고 하여 상담에 응해준 적이 있다.
* 그 즈음부터 ASKA 본인도 도청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신경쇠약이 올 정도로 피해의식이 사로잡혀 생활 패턴까지 바꿔야 했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 그 와중에 친하게 지내던 음악관계자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자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어 정기적으로 마약을 투약하게 되었다.
* '일과성 뇌허혈증'으로 쓰러졌던 것은 사실이며 마약의 후유증에 의해 라이브가 연기된 것은 아니다.
* 뇌허혈증에 의해 입원했을 때부터 야쿠자들이 공갈 협박을 해 오기 시작했다.

그 외에도 '주간문춘'과의 트러블, 체포와 재판 당시의 심경, 체포 당시에 같이 체포되었던 불륜관계의 '카스미(香澄美)'는 마약과는 관계없이 이 사실을 전혀 모른다는 것, 또 그로 인해 마약사범으로 만들어 버린 것에 대한 죄책감, 변하지 않았던 '카스미'에의 마음 등을 각 챕터별로 시 구절을 써가며 써 놓았는데 위의 주된 내용들을 보면 알겠지만 아무리 좋게 봐줘도 자기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반성은 전혀 없고 변명에 가까운 내용들 투성이라 관계자에 의해 2~3회 삭제되었지만 바득바득 또 이걸 계속 블로그 회사까지 바꿔가며 다시 올려버리고 시간이 지나지 않아 일본 네티즌들 사이에서 순식간에 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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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 당시 경찰차에 연행되는 ASKA와 토치나이 카스미.
이에 대한 반응은 '이 사람 아직도 정신 덜 차린것 아닌가' 딱 그 수준. 뜬금없이 각성제를 복용하니 100km도 달릴 수 있을 것 같이 힘이 났다느니 도청이 의심된다고 스트레스로 마약을 했던 것을 합리화하지 않나 같이 체포된 '토치나이 카스미(栩内香澄美)'라는 여자의 본명까지 언급하며 카스미가 모발 검사에서 양성이 나온 것은 본인과의 성관계중에 땀이 옮겨가며 생긴 것이라고 하며 아직도 사랑한다고 하지 않나 아직도 절절한 마음을 담은 문자내용을 공개하지 않나 가족이나 멤버인 CHAGE에 대한 미안함이나 반성 등은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었기 때문. 그러다보니 이 글이 반성문이나 참회록으로 보이기보다는 불륜 상대인 '카스미'의 혐의를 벗겨주기 위한 호소문 정도로 밖엔 안보이니 반응이 냉담한 것도 어쩌면 당연하겠다. 헌신적으로 내조해 온 부인이 차곡차곡 벌어준 점수를 한방으로 날려버린 셈. 참고로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ASKA와 불륜 상대인 토치나이 카스미라는 여성은 체포 당시 37세로 ASKA와 20세 가까이 나이차가 나는 파소나라는 기업의 비서였으며, 파소나는 도쿄·겐아자부에 인풍림(仁風林)이라고 하는 후생 시설을 만들어, 거기에 정치인, 관료, 유명인등을 불러 접대 파티를 열였다. ASKA는 이 '인풍림'의 단골이었으며 그곳에서 접대부 역할을 한 토치나이 카스미는 밤이면 밤마다 ASKA가 있는 곳으로도 찾아와 짐승과도 같은 소리를 냈다고 주변 이웃이 디스했다.


[1] 문예춘추의 자매지인 주간지로 본래의 발음은 '분슌'이지만 워낙에 '문춘'이라는 이름이 유명해져버린 잡지인지라 본문에는 문춘으로 표기하였다. 항목에도 나와 있지만 더 선 급의 ~카더라 류의 찌라시 모음집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워낙에 자극적인 기사로 낚시를 잘 해 악명이 높다. [2] 이 출연이 현재까지 ASKA의 마지막 지상파 출연이다. [3] 여기서는 야쿠자를 의미 [4] 차게아스는 이전 야마하 소속일 때부터 소속사의 정책상 12월 31일은 무조건 쉰다는 원칙 하에 홍백출전을 하지 않고 있었으며 이후 야마하를 떠나서도 이 원칙에 따라 홍백에는 출전하지 않고 있었다. [5] 각성제를 뜻하는 속어 [6] 이 와중에 FLASH는 3년간 ASKA에게 마약을 팔았다는 업자의 인터뷰를 싣고 ASKA는 이미 하루에 3.5g 이상을 흡입해야 하는 중증의 중독자라는 인터뷰를 실었지만 이후 FLASH에서 게재했던 그 약은 치사량이 하루 1g임이 밝혀지며 빈축을 사기도 했다. [7] 복수의 언론기관에 동시에 뿌려졌다는 점에서 ASKA와 같이 일했던 음악관계자의 동시다발적 폭로라고 본 듯하다. 사실 라이브 연습 중 일어난 사건에 대해 음악관계자가 아니면 알기 어려웠을 일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ASKA가 음악작업 때마다 관계자들과 심하게 트러블이 있는 것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업계에는 ASKA에 대해 악감정을 갖고 있는 스탭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8] 이 와중에 라디오 방송에서 CHAGE가 라이브의 연기를 발표하면서 '하루라도 빨리 ASKA가 건강히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몸이 회복될 때까지, 물론 저는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어른의 대응'을 한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9] ASKA가 체포되었다가 보석으로 풀려나고 나서 한참 후에 ASKA가 블로그에 CHAGE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절대 자신과 싸움을 할 성격이 아니라며 CHAGE와 자신이 주먹싸움을 했던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지만 이미 그때는 때가 너무 늦어 있었다. [10] 마츠우라 마사토(松浦勝人), 에이벡스의 난 문서에도 나와 있는 現 에이벡스 총사장 맥스 마츠우라 [11] 같은 혐의를 받았던 사카이 노리코가 500만엔, 코무로 테츠야가 3000만엔이었으며 전 라이브도어 CEO였던 '호리에몽' 호리에 타카후미의 경우는 무려 3억엔이었다. [12] 나중에 ASKA와 부인이 사건 이후에도 파혼을 안 한 이유를 알고 보니까 ASKA가 사건 이후 부인에게 '가수로서 반드시 재기하겠다'고 맹세하면서 붙들어 매서였다고... [13] CHAGE가 사건이 터지고 나서 1년이 흐른 2015년 9월 27일에 솔로 투어를 선언하면서 사실상 금지곡이 되어 버린 차게아스의 곡들을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고 싶다는 식으로 언급을 한 적이 있긴 했다. 다만 가끔씩 기자들이 자신에게 ASKA의 근황에 대한 질문을 할 때는 항상 노코멘트로 일관했다고 한다. [14] 원문은 삭제되었지만 일본 웹에서 여기저기 퍼져버린 탓에 현재는 이곳에서 원문을 볼 수 있다. [15] 1992년 AV 배우로 데뷔했으며, 2000년 폭행, AV 출연, 낙태, 성형 등을 고백한 자서전 '플라토닉 섹스'가 베스트 셀러가 됐으며, 영화나 드라마로도 만들어지며 일약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이후로도 거침없는 말빨로 한동안 TV 패널로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하였다. 런던 하츠의 ' 가치매기는 여자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패널이기도 했다. 2007년 건강 문제를 이유로 연예계에서 은퇴하였다가 2008년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으나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2002년 FIFA 월드컵 당시 한 토크쇼에서 '대한민국 축구는 반칙으로 승리한 것'이라고 발언해 욕을 바가지로 퍼먹은 그 본인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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