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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5 10:41:06

AAM-A-1 파이어버드

파일:AAM-A-1.png
미군의 전투기인 DB-26 인베이더에 장착된 AAM-A-1 파이어버드의 모습.

1. 개요

미군이 1940년대에 개발, 1950년대 초에 실전배치할 예정이었던 공대공 미사일.

2. 제원

이름 AAM-A-1
종류 공대공 미사일
생산 Ryan Aeronautical Company
유도 방식 반능동 레이더 유도 방식
길이 2.29m(7피트 6인치)
날개길이 81cm(2피트 8인치)
직경 20cm(8인치)
발사 중량 120kg
속도 마하 0.85
사정거리 13km
탄두 41kg 고폭탄두

3. 개발

AAM-A-1 파이어버드는 1946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에 공대공 미사일에 관심을 보인 미군이 요격기에 사용될 아음속 미사일을 개발하기로 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미사일은 여타 미사일들과는 다르게 핵만능주의로 부터 개발이 시작되었는데, 당시 미국은 자국 영토로 침입하는 소련군 폭격기들이 핵무기를 실고 있을 경우를 우려하고 있었고, 소련군이 핵무기를 자국 영토에 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한 폭격기 요격용으로 처음 개발이 시작된 것이었다. AAM-A-1은 Ryan Aeronautical Company에 의해 MX-799라는 이름으로 1946년에 개발이 시작되었으며, AAM-A-1 Firebird라는 제식명은 1947년 연구개발이 완료되고 미군이 정식으로 공급계약을 체결하면서 명명되었다.

4. 구조

AAM-A-1 파이어버드는 십자형 날개와 꼬리지느러미가 장착된 2단 미사일이었다. 항법제어는 날개의 차동 움직임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보조익은 고정식이었다. 미사일의 동체는 알루미늄 합금으로 제작되었으며 노즈콘과 제어핀은 플라스틱으로 제작되었다. Firebird에는 초기 추력을 제공하는 고체 연료 부스터 로켓이 장착되었으며, 고체연료 부스터는 12kN의 추력을 가지고 2단을 추진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1단이 분리된 후에는 2단이 점화되었으며, 2단은 액체 연료 로켓으로 15초간 점화될 수 있었고, 2.8kN의 추력을 제공하였다.

노즈콘 안에는 발사모기와 연동되는 레이더 시스템이 들어있었으며, 아직 컴퓨터 기술의 극초창기였던 탓에 발사모기의 조종사가 직접 미사일에게 적 항적의 변경을 일일이 터미널로 보고해주어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노즈콘에는 AIM-4 팰콘과는 달리 근접신관이 장착되어 있었으며, 이는 미사일이 빗맞더라도 어느정도의 위력을 보장해주는 장치였다.

5. 기술적인 모험

AAM-A-1은 당시로서는 굉장히 혁신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우선 당시의 관점에서 보면,
1. 플라스틱의 적용
플라스틱은 그당시로 따지자면 오늘날의 에어로젤과 같은 엄청난 신물질이었다. 사실 당시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가볍고 알루미늄 합금 정도의 경도와 내구성을 보장해주는 플라스틱은 당시로서는 꿈의 소재였을 것이며, 이 신물질이 적극적으로 적용된 이 미사일은 첨단 재료공학이 응집되어 있었다.
2. 레이더 유도
비록 오늘날에 비하면 말도안되게 불편하기는 하지만, 당시에는 발사되는 무기라고는 기관총과 공대공 로켓이 전부였으며, 그마저도 끔찍한 명중률을 자랑했고 사거리도 파이어버드에 비하면 형편없었다. 그러나, 파이어버드는 반능동일지라도 카탈로그상 레이더로 유도를 받아 정확하게 타깃을 때릴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으며, 특히나 상대가 폭격기라면 충분히 잡아볼 만 한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6. 문제점

AAM-A-1은 기술적으로 크나큰 혁신이 적용된 첨단의 극치를 걷는 무기는 맞았으나, 안타깝게도 문제가 너무나도 많았다.

우선,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그놈의 속도이다. 제원을 보면 알 수 있지만 AAM-A-1의 최고속도는 마하 0.85에 불과했으며, 이 속도로는 전투기는 커녕 본래 목적이던 폭격기 요격마저 쉽지 않다. 게다가 50년대에 나오기 시작한 제트기들은 마하 0.9정도는 가뿐히 넘겼기에, 이런 물건으로는 소련의 폭격기들을 제대로 잡을 수 없었다. 게다가 미사일 자체가 굉장히 크고 무거웠기에, 당시 미군 주력기였던 F-82 트윈머스탱같은 약한 출력의 레시프롭 전투기에다 달기는 굉장히 부적합했다.

두번째는 심각하게 구린 유도성능이다. 분명 기술 자체는 굉장히 혁신적이었지만, 조종사가 조종하기 까다로운 전투기를 몰면서 터미널을 만지작거리며 미사일에 일일이 적 항적의 변경을 줄만큼 여유가 있는 것이 절대 아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적 항공기에 아주 근접하지 않으면 맞추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웠다. 그렇다고 이 미사일을 맞추자니 적 항공기의 방어용 기총 사거리에 들어가서 격추되니 할 수가 없고, 그렇다고 적 기총사거리 밖에서 발사하자니 도체 맞지를 않는 진퇴양난이자 미사일의 이점을 전혀 살릴수 없는 베트남전의 미사일의 단점을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세번째 문제는 기동력과 구동계통의 신뢰성 문제이다. 파이어버드는 일단 현대 미사일에서도 굉장히 보기 힘든 2단 구조를 채택하였으며, 이 2단 구조는 사거리를 더해주지만 무게가 크게 증가하고 무엇보다 단 분리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치명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게다가 당시는 로켓 기술이 아직 초보적이던 시절이기 때문에[1]신뢰성이 바닥을 찍었고, AIM-4나 AIM-7처럼 날아가다가 그냥 자폭해버리는 경우도 허다했다고.

7. 결과

미군은 이러한 파이어버드의 성능에 크게 실망하였고, 그러자고 미사일 자체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무기여서 포기하기는 그랬기 때문에, 당시 미군이 파이어버드와 함께 개발하고 있던 폭격기의 자체 방어용 미사일을 개수해서 파이어버드의 역할을 대신하기로 한다. 그러나 이 물건 역시 심각하게 구린 성능을 자랑하였으며, 베트남전에도 투입되었지만 결국 명예만 완전히 실추당하고 말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미군이 미사일 만능주의에서 벗어나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AIM-4 팰콘이다.




[1] 사실 당시에 있었던 제대로 된 로켓이 달린 미사일은 로켓탄 말고는 JB-2 룬 순항미사일이나 V-1, V-2 같은 물건 말고는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