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압사 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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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dd,#000><colcolor=#000,#fff> 1959년 | <colbgcolor=#fff,#212121><colcolor=#000,#ddd> 프라야그라지 쿰브멜라 압사 사고 |
1981년 | 방갈로르 서커스 화재 |
1995년 | 다브왈리 화재 |
2005년 | 데비 사원 압사 사고 |
2013년 | 라탄가르 힌두교 사원 압사 사고 |
2024년 | 하트라스 압사 사고 |
1. 개요
1954년 2월 3일 인도 우타르프라데시 프라야그라지에서 일어난 압사 사고.2. 사고 내용
당시 프라야그라지에선 종교 축제인 쿰브멜라(Kumbh Mela)가 열렸다. 쿰브멜라는 금욕주의자, 성인, 수행자, 칼파바시가 되려는 사람들이 모여 성스러운 겐지스강 강물에 몸을 적시거나 씻는 행사로, 카스트나 신조, 종교, 성별 차별 없이 수많은 사람이 모이는 행사였다. 다만 인도의 주 종교가 힌두교인 만큼 힌두교 신자가 많이 모이긴 한다. 2017년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오르기도 했다.1954년에 열린 쿰브멜라는 인도 제국이었다가 대영제국으로부터 독립하고 처음으로 열린 쿰브멜라여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무려 500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당시 인도 총리였던 자와할랄 네루를 포함한 여러 정치인들도 왔고, 정치인을 보러 온 사람들도 많았다. 사람이 너무 모여 기존의 인구 통제 병력으로는 감당할수가 없었다. 거기다 쿰브멜라가 한동안 안열렸던 시절, 겐지스강의 흐름이 바뀌어 전보다 더 강둑 가까이 흐르게 됐는데, 이 때문에 이전의 쿰브멜라 때 보다 사람이 설 수 있는 지역에 한정되어 인구밀집도는 더더욱 증가했다.
사람들이 좁은 곳에 너무 몰리자 사람들이 다니기 편하라고 지역을 구분해놓은 임시 장벽들도 소용 없었다. 임시 장벽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넘어지자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넘어지며 사람들은 서로에게 눌리며 압사당했다. 사람들에게 밀려 강물에 빠진 채 올라오지도 못해 익사한 사람들도 나왔다.
사태가 진정 됐을 땐 최소 350명이 사망했다. 기록에 따라 사망자 수는 최대 800명까지도 오른다. 부상자 수도 2,000여명을 넘었다. 사고는 인도 역사상 최악의 압사 사고로 기록됐다.
3. 사고 이후
자와할랄 네루는 정치인과 VIP는 쿰브멜라에 오지 않는 것을 건의했다. 정치인을 보러 사람들이 더 몰렸기 때문이다.희생자 유가족들에게 보상은 없었다.
쿰브멜라 축제는 이후에도 매년 열리고 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는데 인구 관리는 잘 안되어 압사 사고 또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1986년과 2003년 #, 2013년 #, 2019년 #에도 압사 사고가 일어났다.
우타르프라데시 주에 2024년 다시 한번 대형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자세한 내용은 하트라스 압사 사고 문서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