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5-06 08:32:56

히가시오사카 생매장 살인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개요2. 배경3. 진행4. 검거 및 재판 결과

1. 개요


東大阪集団暴行殺人事件

2006년 6월 일본 히가시오사카시에서 발생한 보복 살인 사건. 간단히 서술하면 평범한 대학생들이 사이코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사이코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가 예상외의 결과를 내고 자신까지 법적으로 처벌을 당한 사건. 법 밖에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게 얼마나 위험한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2. 배경

2006년 6월 16일 히가시오사카 대학에 다니던 21세의 도쿠미쓰 유타가 후지모토 쇼지 및 다른 가해자들에게 구타당한다. 피해자는 도쿠미쓰 그리고 동행했던 친구 사토 유키였는데 구타의 이유는 도쿠미쓰가 후지모토의 애인에게 휴대폰 메일을 보냈다는 것이었다. 구타 동기도 황당한데 애인과 잘 풀리지 않으니까 메일 보낸 놈을 때려잡고 싶어졌다고 한다.

후지모토는 폭력단까지 거론하면서 도쿠미쓰 유타에게 50만엔을 위자료로 내놓으라는 협박까지 했는데 이에 겁을 집어먹은 도쿠미쓰의 친구 사토 유키는 당시 조폭 활동을 하던 자신의 동갑내기 친구 고바야시 류지에게 도움을 청했고 고바야시는 협박하는 가해자 두 명을 미야마 공원으로 유인하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다. 오카야마시 부근에 고바야시가 일하던 건설회사의 자재 보관소가 있었다.

3. 진행

고바야시 류지는 친구 사토 유키를 구하기 위해 '가해자' 후지모토 쇼지 등 두 명을 살해하는 게 좋겠다고 결론짓고 같이 활동하던 동창생 겸 조폭인 히로히타 도모노리에게 도움을 청했다. 히로히타는 고바야시에게 한 명은 그냥 죽이되 또 한 명은 돈을 뜯어내고 풀어주자고 말했으며 상부에 보고하여 허락을 받고 미성년자 1명을 포함해 7명의 조직원을 동원했다. 한편 최초의 가해자 도쿠미쓰 유타 등은 이 사실을 모르고 후지모토 일행을 유인했는데 이 때 도쿠미쓰는 자기편에 한 명의 회사원을 더 데리고 왔다. 실제로 경찰에 신고하려고도 했던 모양인데 고바야시의 지시로 철회했다고 한다. 살해하려고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며 법정에서도 이 점이 인정되었다.

6월 19일 범행 현장인 미야마 공원에서 고바야시와 히로히타 등 9명이 후지모토 등 세 명을 습격해 구타한 뒤 오카야마시 야산으로 끌고 가 후지모토를 그 자리에서 산 채로 생매장했고 또 다른 한 명을 끌어다가 돈을 뜯어내려고 했지만 본인에게 돈이 없고 또 다른 친구들에게 그의 명의로 돈을 빌리려 해도 여의치 않자 결국 그도 생매장했다. 단 도쿠미쓰와 그의 친구 및 망을 본 범인은 후지모토 쇼지 살해 당시에만 현장에 있었고 범행 자체에도 소극적이었다.

이때 회사원이었던 청년은 살해하지는 않고 50만 엔을 내놓는 조건으로 풀어줬는데 그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사건이 발각되었다.

4. 검거 및 재판 결과

6월 24일부터 28일 사이에 4명이 자수했고 수사 과정에서 5명이 추가로 체포되었다.

이들 전원이 구속 기소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 유족들은 공원에서 집단 폭행을 하고 조폭까지 언급하는 등 범행 동기를 직접적으로 제공한 자기 자식들의 잘못은 언급하지 않고 그저 가해자의 사형만 요구하는 뻔뻔한 태도를 보여 일본 언론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한편 고바야시 류지의 발언도 도마에 올랐는데 매우 중2병스러웠다고 한다. 친구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정의를 실천했다는 헛소리를 했다.

그러나 처벌은 피해자들의 요구와는 무관하게 진행되었고 2011년에 최종 판결이 내려졌다.

고바야시 류지는 사형수로 구치소에 수감 중이고 나머지 범인들도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단 사건으로부터 10년이 지난 2015년에는 사건 가담의 정도가 가벼운 몇 명은 만기 혹은 가석방 등으로 출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1] 사형이 검토되었으나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당시 법정 최고형인 징역 15년이 선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