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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ὕβριςHubris, hybris(휘브리스, 하이브리스)라고도 쓴다.
고전 그리스 윤리·종교 사상에서 질서 있는 세계 속에서 인간의 행동을 규제하고 있는 한계를 불손하게 무시하는 자만 또는 교만을 일컫는 말이다. 보통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자주 나오며, 신성모독의 범주에 들어간다. 가장 대표적인 휴브리스는 개인 단위로는 오이디푸스, 아라크네의 이야기를, 국가 단위로는 아틀란티스가 있다. 보통 이런 짓을 하면 복수의 여신인 네메시스가 찾아와 친히 뜨거운 맛을 보여준다. 보통은 모욕당한 신이 너가 그렇게 XXX를 잘해?를 읊으며 직접 조지러 오는 경우가 많고, 딱히 담당하는 신이 없는 분야에서는 제우스나 아테나 등 다른 신들이 응징할 때도 있다.
아라크네의 이야기로 살펴보면 비교적 이해하기 쉽다. 아라크네는 베를 잘 짜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자신이 직물의 여신인 아테나보다도 실력이 뛰어나다고 주장했고 실제로 여신과의 대결에서 승리했다. 현재의 상식으로라면 다소 오만할지언정 실력으로 증명했으므로 큰 죄라고는 보기 힘들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의 상식에서는 아라크네가 인간의 한계, 신의 영역을 무시하고 위반한 휴브리스라는 대죄를 지은 것이었다. 그 결과 아라크네는 아테네의 분노로 인해 죽음을 맞이했다. 물론 사후 아테네가 돌연 가엾다며 거미로 환생시켜주기는 했다. 휴브리스 위반자들( 오이디푸스, 이카루스 등)은 처참한 죽음만으로 끝나는 게 일반적인데 아라크네는 굳이 동물로 환생시켰기 때문에 일종의 자비를 베풀었다고 보기도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을 모독한 웬만한 인간들은 특별한 혈통이나 능력, 운이 뒷받쳐주지 않는 이상 신들의 눈 밖에 나면 죽음, 타르타로스로 끌려가거나 동식물로 변신당하는 최후를 맞이하는 등 필연적으로 불운한 결말을 맞는다. 예외적으로 트로이 전쟁에서 아프로디테, 아레스에게 상처를 입힌 디오메데스의 경우, 디오메데스가 결코 독단적으로 저지른 것이 아니라 아테나의 가호와 지시, 개입에 의해서 꼭 해야 되는 상황이었기에 저런 짓을 할 수 있었던 것일 뿐이었다. 아테나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저런 짓은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기에 위의 신을 모독한 사례들과 똑같이 비교하기는 힘들다. 애초에 아테나 스스로도 디오메데스에게 "다른 신들을 보면 절대 함부로 무력을 행사하지 말되, 아프로디테가 끼어들면 그때나 창으로 한번 찔러주고 말아라"고 분명히 신신당부했었다. 결국 디오메데스도 아프로디테와 그녀의 아들 아이네이아스에게 상처입힌 죄로 인해 처벌을 받았는데, 아프로디테는 아들 에로스를 시켜 그의 부인이자 아르고스의 왕비 아이기알레이아에게 금화살을 쏠 것을 명령해 아이기알레이아는 처음 본 남자인 코메테스에게 한눈에 반해 불륜을 저지르고, 그와 작당해 남편을 나라 밖으로 쫓아냈다. 이렇게 디오메데스는 빈손으로 나라 밖으로 추방당한 신세가 되어버렸고, 아테나도 이때는 아프로디테가 디오메데스가 고국에게 버림받는 처벌을 내렸을 때 아무 말도 못하고 이쯤에서 처벌을 줬으면 됐으니까 다시는 건드리지 말라고 부탁하는 게 고작이었고 아프로디테도 이쯤에서 복수하는 걸로 만족하고 물러났다. 그 후 이탈리아 북부 지방까지 도달한 디오메데스는 자신의 명성을 알고 있는 한 나라의 왕으로부터 환대를 받으며 그 왕의 딸인 공주와도 결혼하고 새 나라를 세우는 창업군주가 되는 등, 올림포스 12신들을 건드린 인간 치곤 행복한 결말을 맞이했다. 하지만 다른 전승에 의하면 오뒷세우스와 공모하고 팔라메데스를 잔인하게 살해한 업보로 인해 아카이아 연합군에게 복수심을 품은 그의 아버지 나우플리오스 2세와 팔라메데스의 형제 오이악스 부자의 간계로 아이기알레이아에게 버림 받아 참혹하게 죽었다는 결말도 있지만, 이건 인간에게 복수를 당한 거지 신벌은 아니다.
심지어 자신이 의도하지 않고 주위 사람이 신성모독을 했을 때 연좌제로 불경죄를 지은 것으로 여겨져 신들의 눈 밖에 나기도 한다. 당장 칼리스토도 자의로 신을 모독한 게 아님에도, 제우스에 의해 강제로 강간당하고 상관인 아르테미스와 헤라에 의해 2차 가해까지 당한 가장 억울한 피해자였다. 본인이 의도치 않게 사생아 아르카스를 낳은 게 헤라에게 들켜서 어린 아들의 유무와 상관없이 곰으로 변해버린다. 또, 아프로디테도 자신의 연적인 새벽의 여신 에오스에게 오직 신이 아닌 인간 남자만을 사랑하게 될 테지만, 결국 사랑의 끝이 불행해지는 저주를 내린 전력이 있다. 프시케는 의도치 않았다지만 아프로디테의 영역인 아름다움을 침범하고, 사랑을 의심하고 배신해 신성모독한 죄인이나 마찬가지가 되었음에도 그나마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해피 엔딩을 맞이했는데, 사실 프시케 이야기는 고대 로마에서 서기 170년 경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가 쓴 황금 당나귀에 나오며, 가족적인 분위기를 중요시하는 당시 로마 시대의 풍습이 반영된 것이다.
물론 신의 위상을 넘보면 심판당한다는 개념은 그리스도교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으며, 칠죄종 가운데서도 가장 큰 죄악으로 여긴다. 하지만 '신을 모욕했다'는 일상적 문장이 아닌, 특별히 '휴브리스'라는 단어를 정립할 정도로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휴브리스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휴브리스는 일종의 상식과도 같았는데, 이 개념을 인식하고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면 많은 부분에서 휴브리스가 숨쉬듯 적용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현대 윤리와 상식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보면 오독을 할 여지가 큰 셈.
이 그리스 로마 신화만의 특징은 북유럽 신화와 특히 구별되는게 북유럽 신화에서도 오만함을 뽐내다가 파멸하는 결말은 같지만 이게 신들의 개입보다는 그냥 그 인물의 오만함으로 인한 자멸이라는 구조이다. 근데 이 부분은 북유럽 신화의 정리와 체계화가 굉장히 늦게 일어났음을 감안해야 한다.
2. 역사학적 의미
휴브리스란 말은 고대 그리스에서 쓰이던 말이었지만, 역사학자인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를 바꾸는데 성공한 창조적 소수가 그 성공으로 인해 교만해져서 남의 말에 귀를 막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다 판단력을 잃게 되는 것'을 가리켜 '휴브리스'라고 부른 후, 고대 그리스를 제외한 분야에서 이 뜻으로 쓰인다. 좀 더 첨언하자면, 토인비는 '한 사회를 성장시킨 창조성이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사회의 쇠퇴를 야기하는 경우가 있음'을 논하였는데 그 과정을 코로스(포식)-휴브리스(무분별)-아테(파멸)에 대입하여 설명했다.이렇게만 보면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보수적 내지는 꼰대스러운 의미로 쉽게 해석할 수 있지만 역사를 바꾸는 데 성공한 즉 새로이 대두해 기득권층이 된 다음 자만해 자멸하는 경우가 있으면 그것을 지칭하는 의미로 읽는 것이 옳다. 토인비는 도전과 응전이라는 말로 유명하다. 도전의 의미를 무시한 사람이 아니다.
3. 신화에서의 사례
- 니오베
- 나르키소스
- 벨레로폰
- 살모네우스
- 소 아이아스
- 스미르나
- 시시포스
- 아라크네
- 에리식톤: 자신의 농경지를 넓히기 위해 데메테르에게 바쳐진 숲을 벌목했고 때문에 영원히 허기지는 저주를 받아 모든 재산을 식료로 탕진하고 딸 메스트라도 노예로 팔다가 끝내 자신의 몸까지 먹어치워 딱딱거리는 치아만 남게 된다.
- 오이디푸스
- 이카로스
- 익시온과 페이리토오스 부자
- 카시오페이아
- 탄탈로스
- 히폴리토스
- 그 외에 신을 공경하지 않고 오만에 빠진 신화 속 모든 인간과 필멸적 존재들
4. 비슷한 사례
그리스 로마 신화 뿐만이 아니라 다른 동네의 신화에서도 이러한 일화는 자주 나오는 편이다. 대표적으로 북유럽 신화에서의 솔과 마니와 성경의 골리앗이 있다.특이하게도 북유럽 신화에서 휴브리스는 별로 부각되지 않는 것이 솔과 마니는 태양과 달의 여신이 되는 수혜를 얻었고 토르의 규칙을 어긴 티알피는 아예 토르의 시종이 되었다. 아마 오만함을 어느 정도 죄악시하지만 특별히 죄악시하지는 않는 바이킹 문화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솔과 마니는 라그나로크 때 결국 늑대들에게 잡아먹혔지만 이때는 다른 신들도 예외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