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몰년도 미상
839년에 종오위를 수여받고 840년에 지쿠젠노카미에 임명되었다가 841년 정월에 해임되었으며, 장보고가 특산품을 조정에 바치는 목적으로 사람을 다자이후에 파견하자 타국의 신하에 의한 공물 진상은 받아들이지 않고 그 물건을 민간에 맡겨 교역할 수 있게 하라고 했다.
장보고에게 비단을 줘서 당나라의 물건을 얻으려다가 11월에 장보고가 사망하자 실패했으며, 장보고가 보낸 회역사 이충이 가져온 화물에 대해 이충이 장보고의 수하라는 것을 이유로 몰수했다가 842년에 발각되어 이충에게 반환했다.
843년 12월 22일에 야코 우지오가 모반을 기도했다고 고발하자 24일에 헤이안쿄와 나니와의 저택에서 무기가 압수되었으며, 이즈국으로 유배되고 그의 두 아들도 각기 다른 곳으로 유배를 보냈다.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후에는 결백하다고 여겨져 863년에 신센엔의 고료에(어령회)에서 위령제가 치러졌다.